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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03화 (203/273)

203화

이대훈 PD는 자신이 말한 바를 바로 지켰다.

그는 지체 없이 임하나를 참전 용사 관련 단체와 연결해주었다.

그 결과, LA 근처 공연장에 200여 명 정도의 참전 용사, 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을 초대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은 각자의 공연 준비를 끝냈다.

한국을 떠나 항상 함께 공연을 하던 세 사람이기에, 오랜만에 떨어지는 것이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공연 당일 저녁, 각자 공연을 하러 떠나기 전에 세 사람은 마지막으로 로비에 모였다.

“떠나기 전에 두 분에게 할 말이 있어서 이렇게 모이자고 했어요.”

성현의 말에 두 사람이 성현에게 집중했다.

오늘 밤 세 사람은 각기 다른 장소로 가서 공연을 선보인다.

성현은 UCLA 음악원.

천소울은 LA 한인타운.

임하나는 LA 공연장.

“비록 추가 촬영 때문에 하게 된 무대지만 어떻게 보면 본선 7라운드 미션과도 관련이 있는 만큼 두 분에게 이번 무대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잘 생각해 보면 좋겠어요. 그리고 이에 대한 얘기는 공연 끝나고 자세히 나눠보도록 할게요.”

세 사람은 오늘 밤사이에 공연의 여독을 충분히 풀고, 내일 오전에 만나자는 약속을 잡았다.

“좋은 것 같네요. 안 그래도 두 사람한테 할 말이 있었거든요.”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지는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가 고개를 갸웃했다.

성현은 대충 짐작이 가는 바가 있었기에 조용히 그의 말을 기다렸다.

“무슨 할 말이요?”

“별건 아니고 그냥 개인사입니다. 공연 끝나면 말씀드릴게요.”

“그래요, 그럼. 다들 공연 잘하고 저녁에 봐요.”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

세 사람은 각자 차를 타고 공연을 위해 다른 곳으로 떠났다.

***

LA 한인타운 근처 공연장.

그곳에는 700명 정도의 관객들이 차 있었다.

그들은 모두 미국에서 살아가는 한인들이었다.

“안녕하세요.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참가하고 있는 천소울입니다.”

천소울의 등장에 한인들은 환호를 하며 그를 맞이했다.

작은 소규모 공연장에서 천소울의 무대가 시작됐다.

“오늘 다양한 곡들을 준비했어요. 댄스곡부터 발라드 락 할 거 없이 여러분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해봤습니다.”

천소울의 위트 넘치는 멘트에 한인들은 모두 함박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집중했다.

“아, 참고로 제가 춤을 못 출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던데 안 추는 거지 못 추는 게 아닙니다.”

천소울은 직접 진행까지 맡아가며 자연스럽게 공연을 이끌었다.

중간중간 노래를 쉬는 동안에는 재밌는 얘기를 들려주면서 분위기를 가볍게 풀어 갔다.

방송에는 등장하지 않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숨겨진 이야기에 관객들은 눈을 빛내며 즐거워 했다.

콘서트보다는 팬미팅을 하는 것처럼 아늑한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오늘 한인분들을 모셔서 하는 공연인 만큼 여러분들과 함께할 특별한 이벤트를 준비해봤어요.”

천소울의 말에 스탭이 무대에 올라와 천소울에게 박스를 전달해주고 퇴장했다.

천소울은 박스를 들어 관객들에게 보여주었다.

“바로 미국에 한인으로 살면서 겪는 여러분들 각자의 사연을 읽어주는 이벤트인데,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사연을 보내주셔서 다는 읽지 못할 것 같고. 이중에 몇 개만 추첨을 통해 읽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공연과 함께 천소울이 준비한 이벤트.

바로 가족들과 떨어져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인들을 위로하고픈 천소울의 마음이 담긴 서프라이즈였다.

천소울은 마이크를 잠시 내려놓고, 박스에서 쪽지 하나를 꺼냈다.

“이은미씨의 사연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남편 사업 때문에 미국에 왔고 미국에 산 지는 이제 막 1년 차가 된 신입이에요. 최근 한국에 계신 저희 엄마가 건강이 많이 안 좋다고 해요......”

천소울은 그렇게 사연 하나하나를 함께 읽어주었다.

한인들은 다들 비슷한 상황에 같이 눈시울을 붉히며 천소울이 짧게 전하는 위로에 귀 기울였다.

어느덧 마지막 사연 하나만 읽을 수 있는 시간만이 남았다.

“아쉽지만 시간 관계상 이게 마지막 사연이 될 것 같아요.”

천소울의 말에 객석에 있는 관객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저기서 야유 소리가 들려오자 천소울은 웃으며 말했다.

“다음에 더 좋은 무대로 여러분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꼭 약속하세요!”

무대 맨 앞에서 날아온 일갈에 천소울은 굳은 목소리로 다짐하듯 말했다.

“네. 꼭 약속드릴게요.”

천소울은 몇 번이나 한인들과 약속을 한 뒤 마지막 사연을 읽었다.

“안녕하세요. 전 미국에서 조그마한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기러기 아빠입니다.”

거기까지 읽은 천소울은 잠시 말을 멈췄다.

하지만 곧바로 다시 사연을 읽어나갔기에, 그의 이변을 알아차린 관객은 거의 없었다.

“......처음에는 가족들 모두 미국에 데려와 살았는데 아이들 교육만큼은 한국에서 시키고 싶은 마음에 아내와 자식들은 한국에 보내고 저 혼자 미국에 남게 됐습니다. 어느덧 미국에 혼자 산 지도 7년이 다 되어가네요.”

이번 사연은 기러기 아버지와 관련된 내용이었다.

워낙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보니 다들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젊을 땐 괜찮았는데 나이가 들수록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어요. 마음 같아선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가장으로서 가족들을 책임져야 하기 때문에 그것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천소울은 사연을 읽으면서 점차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다.

그는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사연을 이어 말했다.

“......최근 한국에 있는 아들이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사연을 읽던 천소울이 말을 멈추고 말았다.

‘설마......’

천소울은 고개를 들어 객석을 한번 보더니, 이내 다시 사연이 적힌 쪽지를 내려다 봤다.

“아버지로서 아들에게 힘이 돼주고 싶은데 몸이 떨어져 있다 보니 그것마저 쉽지가 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소중한 시간을 통해 아들에게 미안하고 고맙단 말 하고 싶었......”

천소울은 결국 종이를 내려놓는데 그의 얼굴엔 당혹감이 서려 있었다.

누군가를 찾는 듯 객석에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 다급히 마이크를 들어 올려 물었다.

“사연 보내신 분 어디 계시죠?”

천소울이 객석을 보며 재차 묻자, 이내 한 중년의 남성이 손을 들었다.

웅성거리는 관객들은 손을 남성의 모습에 천소울과 그를 번갈아 보더니 천천히 길을 터줬다.

남성은 일어나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관객들은 다들 무언가를 짐작이라도 한 듯이 조용하기만 했다.

남성과 천소울은 서로 물끄러미 보더니 이내 천소울이 남성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가 여길 어떻게......”

갑자기 등장한 아버지를 보며 당황하는 천소울.

그는 곧 이상한 직감에 서둘러 이대훈 PD를 보는데, 이대훈 PD는 웃으며 어깨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며칠 전에 네가 한인 타운에서 공연을 할 거라고 연락이 왔어.”

“.......”

“......한국에서 못 본 공연 미국에선 꼭 보고 싶었는데 잘됐지 뭐냐.”

천소울은 아버지 말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아버지였다.

기억 속 아버지의 모습보다 조금 더 작아지고, 늙어버린 아버지.

“잘 지냈지?”

“......네. 보고 싶었어요, 아버지.”

천소울은 남성을 껴안고 말하며 눈물을 쏟고 말았다.

남성은 그런 천소울을 말없이 꽉 안아줬다.

그리고,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보던 한인들은 같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보냈다.

***

LA 근처 공연장.

군복을 입은 참전 용사들과 그들의 가족들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 앉아있었다.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무대에 임하나가 등장했다.

짝짝짝.

차분한 분위기 속 임하나가 참전 용사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한 다음, 마이크를 들었다.

그 신호로, 곧 공연장에 전주가 흘러나왔다.

들리는 전주에 참전 용사들 모두 동시에 경례를 했다.

임하나가 처음으로 부른 곡은 바로 The Star-Spangled Banner, 미국의 국가였다.

“O say can you see, by the dawn's early light, What so proudly we hailed at the twilight's last gleaming.”

임하나는 소울풀한 목소리로 미국의 국가를 불렀다.

임하나의 노래에 참전 용사 할아버지 몇몇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And the star-spangled banner in triumph shall wave While the land of the free is the home of the brave.”

마지막 구절, 임하나의 노래가 클라이막스로 치달았다.

노래가 끝난 뒤 앉아있던 참전 용사들과 그들의 가족 모두 일어나서 기립 박수를 보냈다.

“감사합니다.”

임하나는 생각보다 더 뜨거운 반응에 활짝 웃으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한참동안 이어지던 박수가 끝나자 임하나는 도로 자리에 착석하는 관객들을 확인하며 말했다.

“첫 번째 곡을 어떤 걸 부를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저를 위한 곡이 아니라 여러분들을 위한 곡이 되어야 할 것 같더라구요.”

여러분들을 위한 곡.

임하나의 사려 깊은 말에 몇몇이 손수건을 들어 눈물을 훔쳤다.

임하나는 어둑한 관객석을 한 바퀴 휘 둘러본 다음, 깊이 허리를 숙였다.

“한국을 위해 희생하신 참전 용사 여러분.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첫 번째 곡을 끝내고, 이어지는 다음 노래.

다음 곡 역시 평소 임하나의 스타일과 달리 조금 차분하고 조용한 곡들이 이어졌다.

그렇게 5곡 정도를 연달아 부른 임하나는 노래를 잠시 멈추었다.

성현과 천소울에게 자신이 이곳으로 와서 공연을 하겠다고 한 이유.

임하나는 천천히 마이크를 들어 올렸다.

엄숙한 분위기 속, 참전 용사들은 모두 임하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실 저희 할아버지도 6.25 전쟁에 참여하신 참전 용사세요. 할아버지께선 제가 태어나기 전에 돌아가셔서 함께한 시간은 없지만, 어릴 적부터 아버지가 항상 할아버지 얘길 해주셨고 자랑스러워하셨어요.”

임하나의 말에 이미 한국어를 잊은 이들을 위해 곳곳에 위치한 통역사들이 소곤소곤 통역을 해주는 것이 보였다.

무대 한켠에는 귀가 어두운 참전 용사들을 위해 수화 통역사도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을 기다리기 위해 잠시 마이크를 뗀 임하나는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의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할아버지와 여러분들 같은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싸워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봐요. 저뿐만이 아니라 한국의 모든 젊은 청년들이 꿈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는 건 모두 여러분들의 희생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거기까지 말한 임하나는 관객 한 명 한 명과 최대한 눈을 마주치며 마저 말을 이었다.

“저의 꿈을, 한국의 미래를 지켜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진심 어린 임하나의 말.

감동한 참전 용사들이 모두 박수를 치며 임하나에게 따뜻한 미소를 보냈다.

그때, 앞자리에 있던 한 백발의 할아버지가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손을 들었다.

스탭은 임하나를 한 번 바라보고는 그에게 마이크를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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