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02화 (202/273)

202화

성현과 천소울 그리고 임하나는 주말에 있을 공연 홍보에 직접 뛰어들기로 했다.

홍보를 위해 세 사람은 곧장 LA 한인타운으로 향했다.

물론 이 영상도 담기 위해 김인호 AD가 따라붙었다.

“어! 저분 야구선수 아니에요? 류현신 선수잖아요!”

임하나는 미국 전광판에서 한국인이 걸린 은행 광고를 보자 흥분해서 말했다.

그 모습을 본 지나가던 할아버지 몇 분이 귀여운 듯 웃었다.

단순히 세 사람을 놀러 온 관광객 정도로 생각했는지 거리낌 없이 말을 걸어왔다.

“놀러 왔어?”

“아니요. 공연 홍보차 왔는데 생각보다 거리에 사람이 없네요.”

“홍보? 플라자 쪽으로 가봐. 거긴 사람 좀 있으니까.”

“감사합니다.”

성현의 일행은 할아버지께 깍듯하게 인사하고 플라자로 향했다.

지나치는 길에는 찜질방, 한방 병원, 이발관 등 한국어로 된 낡은 간판들이 즐비했다.

임하나는 여기저기가 모두 신기한지 쉬지 않고 눈을 굴렸다.

“간판도 그렇고 무슨 70년대 한국 모습 같아요.”

임하나의 말에 설명을 덧붙인 것은 천소울이었다.

“6, 70년대 이주한 사람들이 모여 만든 동네니까요. 그래도 2000년대 들어서는 CCV 같은 영화관도 생기고 나름 발달되고 있다고 들었어요.”

“천소울씨는 한인타운에 대해 꽤 잘 아네요?”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

“......그냥 관심이 좀 있어서요. 코리아타운 플라자 먼저 들리죠. 거기 푸드코트에는 사람이 꽤 있을 겁니다.”

천소울은 대수롭지 않게 말하며 먼저 플라자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성현와 임하나는 몇 번 와본 사람처럼 익숙한 듯 길을 찾아가는 천소울의 뒤를 따랐다.

플라자에 있던 몇몇 사람들은 성현의 일행을 알아보고는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맞지? 맞는 거 같은데.”

“영국에 있다고 하지 않았어?”

“미국에서도 공연을 하나 보지.”

“근데 여긴 왜 온 거래? 여기서 무슨 공연을 한다고.”

행인들은 성현의 일행이 맞다 아니다로 싸우더니, 결국 천소울과 성현 일행 쪽으로 걸어왔다.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몇 번이나 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혹시...... 더 넥스트 슈퍼스타 그분들 맞아요? 한국인 TOP 7?”

“네, 맞습니다.”

흔쾌히 맞다고 대답하는 성현의 모습에 놀란 행인들의 눈이 땡그랗게 커졌다.

“어머, 정말? 여긴 왜 온 거예요?”

“주말에 근처에서 공연이 있어서 홍보차 왔습니다.”

“공연? 무슨 공연?”

세 사람의 공연이라는 말에 행인들의 표정이 변했다.

잔뜩 기대가 어린 표정.

성현은 웃으며 그들의 기대에 부응해주었다.

“한인 교포들을 위한 작은 공연을 준비 중이거든요.”

“그래?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도 있을 거 같은데. 내가 여기 상가 번영회장이거든.”

알고 보니 먼저 말을 걸었던 아주머니가 이곳 정보통 역할을 하는 듯했다.

성현은 일이 잘 풀려간다고 생각하면서 바로 물었다.

“그럼 부탁 좀 드려도 될까요?”

“그럼, 그럼. 대신 나 사진 한 번만 찍어줘. 우리 딸내미가 저 총각 팬이거든.”

아줌마는 수줍게 천소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천소울이 흔쾌히 알겠다며 아줌마와 사진을 찍었다.

그 모습을 본 다른 사람들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곳은 한인 타운에서 가장 번화한 코리안 플라자 안.

요즘 들어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는 세 사람을 보기 위해 너나 할 거 없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자기들아, 차례를 지켜야지. 이쪽으로 일렬로 서봐. 그렇지.”

상가 번영회장이라는 아주머니는 어느새 몰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플라자 내에서 작은 팬사인회가 열렸다.

“이거지, 이거.”

김인호 AD는 세 사람이 한인타운에 간다고 했을 때부터 이런 그림을 예상하고 있었다.

즐겁게 카메라맨에게 이것저것 지시하는 김인호는 이번에도 한국에서 최고 시청률이 나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몸서리쳤다.

“어디요? 아 저기요?”

“치즈!”

“에이, 김치라고 하고 찍어야지. 다시!”

“성함이 어떻게 되신다고 했죠?”

성현와 천소울, 임하나는 모두 한인들에게 사인을 해주고 사진 찍어주기 바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플라자 내부로 모여들었다.

“사진 올릴 때 알지? 해쉬태그 더넥스트슈퍼스타 해쉬태그 한국인 해쉬태그 한인타운 해쉬태그 공연. 오케이?”

“오케이!”

한쪽에서는 성현이 부탁한 대로 공연 홍보를 위해 SNS 업로드 강의가 이어지고 있었다.

플라자에서 인파에 둘러싸인 세 사람의 모습과 팬들과 함께 찍은 인증사진이 속속들이 홍보 문구와 함께 SNS에 업로드됐다.

“한국인 동포 파이팅! 우승 갑시다!”

사람들은 모두 한국을 대표한 세 사람에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성현과 일행들은 그들에게서 많은 힘을 얻어갈 수 있었다.

***

정신없이 작은 팬미팅을 끝내고 플라자를 나온 성현과 일행들은 근처 삼겹살집으로 향했다.

“고기다, 고기.”

임하나는 콧노래를 부르며 들떠서 물을 따랐다.

천소울은 그런 그녀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분명 배 안 고프다 하지 않았습니까?”

방금 전, 사람들에게 시달리느라 입맛도 없다고 했던 임하나였다.

그런데 성현이 한인타운에 온 김에 삼겹살 어떠냐는 말에 임하나의 눈빛이 변했다.

“고기를 배고파야 먹나요? 있으면 먹는 거지.”

임하나는 단호하게 말하며 고기가 익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가게 사장님이 김치찌개를 가지고 나왔다.

“주말에 공연한다면서? 이건 공연 잘하라고 주는 서비스.”

세 사람은 미국에서 만나는 김치찌개에 다들 안색이 밝아졌다.

호텔 조식과 스테이크, 피자에 질려가던 세 사람에게 단비 같은 얼큰함이었다.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반찬 부족한 거 있으면 말하시고.”

사장은 성현의 일행을 향해 기분 좋게 웃어주며 김치찌개를 두고 떠났다.

성현의 일행은 본격적으로 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신나서 고기를 집던 임하나의 젓가락질이 멈췄다.

“임하나씨?”

임하나는 성현의 뒤로 설치된 TV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성현도 뒤돌아 TV를 보자, TV에선 ABC의 간판 토크쇼 지미 파엘의 라이브 방송이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임하나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단순히 토크쇼의 한 장면이 아니었다.

“안녕하십니까. BTG입니다!”

화면에는 머리를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한국인 아이돌, BTG도 함께였다.

한국 가수 최초로 BTG가 미국 ABC의 간판 토크쇼의 메인 게스트로 출연한 것이다.

BTG를 발견한 세 사람은 다들 삼겹살도 잊은 채, 홀린 듯이 화면을 바라봤다.

“최근 정규 앨범 두 개가 빌보드 메인 차트에서 모두 1위를 기록했다고 들었어요.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런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건 저희 음악을 사랑하고 들어준 저희 팬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겸손하게 팬들에게 영광을 돌리는 한 멤버가 상큼한 미소를 뿌리고 있었다.

“곧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하잖아요? 웸블리 스타디움에선 두 번째 공연이라고 알고 있는데 이번에도 전 좌석을 매진시킬 자신이 있나요?”

“글쎄요. 운이 좋으면 가능하지 않을까요.”

리더인 RN이었다.

그는 유창한 영어 실력으로 지미와 인터뷰를 이어갔다.

성현과 일행들 모두 말없이 그들의 인터뷰를 지켜보았다.

“BTG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 같아요. 전 세계에서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두 번씩이나 공연을 하는 가수가 몇이나 있을까요.”

계속되는 인터뷰를 지켜보며 임하나는 몽롱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자고 일어나면 믿기지 않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한국 최고의 아이돌, BTG.

영국에 있는 웸블리 스타디움은 마이클 잭슨이나 마돈나, 퀸, 아델과 같은 글로벌 스타들만이 공연을 할 수 있는 곳.

그곳에서 공연을 한다는 것만으로 이미 글로벌 스타라는 걸 인정받는 징표이기도 했다.

BTG는 그런 곳에서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째로 공연을 확정지은 것이다.

“더 대단한 건 그 많은 좌석을 매진시켰다는 거죠.”

웸블리 스타디움은 규모가 큰 만큼 티켓을 매진시키는 것 또한 쉬운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공연을 해서 티켓을 매진시킨 가수들은 몇 없는데, 바로 그중 하나가 BTG였다.

“당신들은 지금 글로벌 스타 반열에 올랐잖아요. 여기서 더는 이루고 싶은 목표가 있다면 뭔가요?”

지미의 말에 RN은 망설임 따위 없이 바로 씩씩하게 대답했다.

“그래미 어워즈에서 신인상을 제외한 메인 상 3개를 수상하는 게 올해 목표예요.”

엄청난 그의 포부에 지미는 짐짓 놀라는 리액션을 보이며 계속해서 물었다.

“작년에도 상을 받지 않았나요? 동양인 최초 베스트 팝 듀오 그룹 퍼포먼스 부분에서 상을 수상한 걸로 아는데요.”

“네. 그 상도 너무 과분하고 저희에겐 소중한 상이지만, 저희 멤버들 모두 이왕 받을 거 메인상은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해서요.”

RN은 엄청난 말을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 패기에 지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멤버들이 다들 야망가들이네요.”

“하하. 네, 다들 꿈이 큰 친구들입니다.”

인터뷰를 보고 있던 임하나는 젓가락을 입에 물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중얼거렸다.

“가능하려나? 그래미 어워즈면 엄청 보수적인 데 아닌가. 외국인이나 흑인들한테는 메인상 안 주는 걸로 유명하잖아요.”

“지금 페이스라면 전 가능할 것 같습니다.”

천소울은 저들이라면 가능할 거라 여겼다.

매일 매일 특종으로 다뤄질 만큼 전 세계적으로 독보적인 신화를 쓰고 있는 BTG.

저들만큼은 그래미도 무시할 수 없다는 의견이었다.

“성현씨는요?”

“벌써부터 올해의 앨범 수상 후보 중 하나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는 걸로 봐서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봐요.”

BTG는 현시대에서 전 세계적으로 최고의 영향력을 가진 가수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래미 어워즈’는 전통과 권위를 가진 세계적인 음악 시상식.

그들은 이 시상식에서 무려 동양인 최초로 상을 받기까지 했다.

지금까지의 행보를 돌이켜 보자면, 메인상을 받는 것이 완전히 불가능해 보이진 않았다.

‘과연 한국인 최초가 될 수 있을까. 노미네이트 된다는 것만으로 엄청난 영광인 상이니 받기만 하면 한국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을 사건이긴 하겠네.’

그뿐만이 아니었다.

BTG의 성공은 성현과 다른 한국인 아티스트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만약 그들이 아시아인 최초로 노미네이트 된다면 한국인들의 그래미 진출에 큰 도움을 주게 되기에.

“BTG 진짜 그래미 갔으면 좋겠네요.”

“저희도 언젠가는 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델보다 노래 잘하는 임하나씨라면 가능하죠.”

“......그거 언제까지 우려먹을 생각이에요?”

천소울과 임하나 역시 그래미는 오르지 못할 산이라고 여기는 듯했다.

물론 당장 성현이 그래미 어워즈를 노리기엔 무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언젠가 성현도 그 자리에 서는 것이 목표였다.

‘누가 최초가 될지는 두고 봐야겠지.’

성현은 계속해서 지미와 인터뷰를 주고받는 BTG를 올려다보며 각오를 다졌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