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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01화 (201/273)

201화

본선 7라운드 미션이 공개되고 난 후, 성현의 일행은 곧장 회의에 돌입했다.

“한국을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이라...... 애국가? 판소리?”

“판소리 할 줄 알아요?”

“모르죠.”

임하나의 대답에 천소울의 표정이 오묘하게 굳었다.

“근데 왜 말해요.”

“자유롭게 말하라면서요!”

천소울과 임하나는 서로 티격거리며 회의를 계속했다.

그 뒤로도 여러 가지 의견이 나왔지만, 이거다 싶은 한국적인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국가와 판소리 말고는 다른 아이디어가 더 낫다 싶은 것도 전무한 상황.

“성현씨는 아이디어 없어요? 성현씨는 항상 계획이 있잖아요.”

결국 임하나는 몇 시간 째 결론이 나지 않자 포기 선언을 외쳤다.

성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한 임하나의 눈이 반짝였다.

“저도 딱히 떠오르는 음악은 없네요.”

성현의 답변에 임하나뿐만 아니라 천소울까지 흠칫 놀라 성현을 봤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동안 어떤 미션이 주어지든 간에 이성현은 미션에 맞는 해결책을 가지고 있었다.

누구보다 먼저 멤버들에게 돌파구를 알려주었던 성현은 그야말로 정신적 지주였다.

그런 성현조차 생각나는 음악이 없다니?

“…….”

“…….”

두 사람은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이로써 두 사람 모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번 미션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그냥 애국가를 아주 멋들어지게 부를까요?”

“정 안되면 그렇게라도 해야죠.”

성현에게도 별다른 해결책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자 두 사람은 심각한 얼굴이 되었다.

“흠......소울씨는 한국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요?”

“갑자기 그건 왜요?”

“생각해 보니 한국에 대해 표현하는 게 미션이라면 우리가 한국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는 게 먼저일 거 같아서요.”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두 사람은 곧 자신들이 생각하는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한국인 하면 정이죠, 정.”

“노래에서 따지자면 한의 감정도 만만치 않습니다.”

“초코파이 CM송을 부를까.”

“임하나씨한테 양보하죠.”

성현은 그런 두 사람의 모습을 지켜만 볼 뿐 회의에 끼어들지 않았다.

한국 하면 떠오르는 장소, 감정, 추억까지.

다양한 의견들이 튀어나왔다.

‘당장 두 사람이 한국을 어떻게 표현하고 싶은 건지 그 생각을 아는 게 먼저일 테니까.’

성현이 나서서 답을 유도하는 식의 질문은 던지고 싶지 않았다.

이번 라운드는 지금까지와는 달랐다.

가수 참가자들이 오롯이 느끼는 감정과 감성을 담아낼 수 있어야 했다.

그들에게서부터 발아된 노래.

성현은 두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화를 통해 그들이 생각하는 한국이 무엇인지 듣고 싶었다.

물론 아무런 생각이나 대비 없이 이러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성현에게는 성현 나름대로 계획이 있었다.

‘지금쯤 연락이 올 것 같은데.’

그때, 연습실 문 열리더니 이대훈 메인 PD가 들어 왔다.

“회의 중에 미안한데 급하게 공지 사항이 생겨서.”

“뭔데요? 룰이 바뀐 건가요?”

임하나는 자신의 바람을 담아 이대훈을 바라봤다.

이번 미션은 도저히 타개책이 보이지 않은 탓.

간절한 임하나의 시선에도 이대훈은 고개를 저었다.

“그건 아니고 추가 촬영을 하게 됐습니다.”

‘왔구나.’

성현이 미리 생각해둔 첫 번째 계획.

뒤에 이어질 이대훈의 공지를 미리 알고 있었기에, 성현은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무슨 촬영인데요?”

의아한 임하나의 물음에 이대훈이 답했다.

“방송에 공개될 영상을 추가하기로 했어요. 어떤 컨셉으로 어떤 촬영을 하든 참가자들 자유입니다.”

갑자기 추가된 자유 촬영.

이 소식에 임하나와 천소울의 표정은 그다지 밝지 않았다.

아직 이번 미션에 대해 어떠한 돌파구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시간을 더 뺏길 것 같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럼 지금 진행되는 본선 7라운드랑 별개로 또 다른 활동을 찍는 건가요?”

“네. 한국뿐만 아니라 10개국 참가자들 모두 추가 촬영 들어갈 거고 일종의 소개 영상이라 생각하고 각자 본인들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영상을 촬영하기만 하면 됩니다.”

소개 촬영이라.

천소울은 침착하게 일정을 물었다.

“언제까지 정하면 되는 거죠?”

“못해도 내일 저녁까진 말씀해주세요. 그럼 수고 하십쇼.”

이대훈은 추가 공지 사항을 끝내고 연습실 나갔다.

갑자기 숙제가 늘어난 기분이 들다니.

임하나는 더욱 머리가 복잡해져서는 한숨을 쉬었다.

“당장 본선 7라운드 준비하는 것도 벅찬데 개인 촬영이라니.”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 역시 조금 막막한지 말이 없었다.

성현은 한순간에 사기가 떨어진 일행들을 독려하고자 입을 열었다.

이번 추가 촬영을 단순한 시간 낭비로 만들 수는 없으니까.

“그냥 일상 말고 조금 특별한 활동을 보여주면 좋겠어요. 방송을 보고 우리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어야 되니까요.”

“특별한 활동이라......”

천소울은 성현의 말에 생각에 잠기는데, 특별히 생각나는 게 없었다.

한국도 아닌 미국 땅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활동은 한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세 사람은 당장 다음 저녁까지 생각해야 하는 과제에 잠시 말이 없었다.

“갑자기 생각난 게 있긴 한데.”

갑자기는 아니었지만 성현, 정말 방금 생각난 듯 연기를 했다.

홱, 성현에게 쏟아지는 두 사람의 시선을 보아하니 발연기는 아니었나 보다.

임하나는 마치 구원자를 만나기라도 한듯 절박한 얼굴로 성현을 쳐다봤다.

“대단한 아이디어는 아니고 특별 공연을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요.”

“특별 공연이요?”

천소울은 의외라는 듯이 되물었다.

미션을 준비하는 데 시간이 빠듯한데, 공연을 준비하는 게 가능할까 싶은 기우도 있었다.

“네. 특별한 공연이란 게 무대가 화려하고 특별하지 않더라도 특별한 관객들에게 특별한 의미를 줘도 특별한 공연일 수 있는 거잖아요.”

성현은 마치 천소울의 염려를 안다는 듯이 간단한 거라고 덧붙였다.

“미국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관객이 누가 있을까.”

임하나가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

아, 성현은 이번에도 역시 방금 생각났다는 듯 말을 꺼냈다.

“방금 떠오른 건데 미국에 이주해 온 한인들이나 6.25 참전 용사들을 위한 공연을 하는 건 어떨까요?”

미국에서 한국을 떠올릴 수 있는 특별한 공연.

성현이 말한 청중들은 미국에서 한국을 그리워하는 이들에게 특별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듯했다.

성현의 제안에 임하나의 안색이 밝아졌다.

“오, 괜찮은 것 같아요. 두 그룹 다 한국이랑 깊은 관련이 있기도 하고 각자 줄 수 있는 메시지도 특별하잖아요.”

“저도 좋은 것 같습니다. 일반 관객들을 위한 무대는 많이 준비해 왔지만 이런 식으로 특정 관객들을 위한 특별한 음악을 해본 적은 없어서 해보고 싶기도 했고.”

천소울 역시 지금까지와는 다른 무대 구성을 꾸밀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특별한 음악이라는 키워드에 맞춰 생각에 잠겼다.

벌써 그의 머릿속에는 어떤 공연을 선보일지 착착 계획이 세워지고 있는 듯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무대를 통한 특별한 경험이 본선 7라운드에 대한 생각의 발판이 되면 좋겠네요.”

임하나는 지금까지 나온 아이디어들을 아우르는 성현의 생각에 박수를 쳤다.

단순히 이번 추가 촬영을 시간 낭비로 생각하지 않고, 미션과 연결지어 생각할 생각을 왜 안 했을까.

“그렇네요.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간 한인들도 한국의 모습이고 6.25 전쟁에 참전한 군인들도 한국의 역사니까요.”

한국의 역사.

한 나라의 역사를 반추하고, 많은 이들에게 우리들만이 가진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면?

그냥 애국가를 멋들어지게 부를 때보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릴 수 있을 게 자명했다.

임하나는 착착 정리되는 계획에 씨익 웃으며 성현을 돌아봤다.

“역시 성현씨는 다 계획이 있었구나.”

임하나의 말에 괜히 제 발이 저린 성현이 재빠르게 부정했다.

“네? 계획한 건 아니고 그냥 어쩌다 보니 잘 맞아떨어진 것 같네요.”

“아니야. 성현씨 자신도 모르는 계획이 있었던 거예요.”

아무것도 모르는 임하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며 성현을 찬양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천소울은 살짝 머뭇거리더니 두 사람 대화에 껴들었다.

“저 한 가지 부탁할 게 있는데.”

“잘난 천소울씨께서 부탁할 게 뭐가 있는데요?”

임하나는 천소울의 입에서 부탁이라는 말이 나오자 놀라운지 천소울 놀리듯 말했다.

그럼에도 천소울의 표정은 어느 때보다 진지하기만 했다.

“한인들을 위한 공연은 제가 맡고 싶습니다.”

의외의 부탁에 성현이 천소울을 응시했다.

한인 타운과 6.25 참전 용사를 위한 특별 공연은 성현이 게임 속에서 주로 써먹은 전개였다.

그 과정에서 천소울이 먼저 이런 부탁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유가 있나요?”

“제 노래를 들었으면 하는 사람이 있어서요.”

천소울의 말에 성현과 임하나가 동시에 오, 하며 서로를 바라봤다.

사적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 천소울의 입에서 나온 ‘노래를 들어줬으면 하는 사람’이라?

“천소울씨가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라면 특별한 사람인가 봐요.”

성현은 천소울이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주길 바라며 은근히 물었다.

옆에서 임하나도 귀를 기울이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천소울은 그냥 고개를 끄덕일 뿐 더는 이에 대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말하기 싫은 것 같은데 억지로 묻는 것도 실례겠지.’

성현은 아쉬운 마음을 달래며 임하나를 돌아봤다.

“우선 하나씨 의견을 들어봐야 할 것 같은데 하나씨는 어때요? 천소울씨가 한인 교포들을 위한 무대를 준비하면 하나씨가 6.25 참전 용사들을 위한 무대를 준비해야 하잖아요.”

아무래도 같은 한국인들에게 하는 공연이 호응이나 반응 면에서는 더욱 적극적일 수 있었다.

그런데 임하나의 반응은 예상외였다.

“전 오히려 좋아요. 안 그래도 참전 용사들을 위한 공연은 제가 하고 싶었거든요.”

선선히 좋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임하나의 모습에 성현이 씨익 웃었다.

마치 짜놓은 것처럼 착착 진행이 되어갔다.

“다들 하고 싶은 공연이 따로 있었네요. 그래요, 그럼. PD님한텐 제가 말씀 드릴게요.”

“잠깐. 성현씨는요? 성현씨 활동은 아직 안 정했잖아요.”

이대로 마무리 되려는 대화에 임하나가 다급하게 성현을 가리켰다.

“전 사실 촬영과 관계없이 대학에서 공연 초청을 받았는데 가는 김에 촬영도 할까 싶어요.”

아직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소식에 임하나와 천소울의 눈이 크게 뜨였다.

역시, 성현에게는 계획이 다 있었다.

섭섭할 정도로 말이다.

“대학에서 공연 초청이요?! 대학 어디요?!”

“UCLA요. 아버지 지인분이 거기 음악 교수님으로 계시거든요.”

까도 까도 나오는 성현의 인맥이 다시 한번 등장했다.

두 사람은 음악 교수님이라는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검사에 교수님까지. 성현씨 아버지 지인분은 다들 어마무시하네요. 진짜 적응 안 돼요.”

천소울 역시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평범하게만 봤던, 아니 솔직히, 평범보다 더 못살 거라고 짐작했던 성현이 갑자기 금수저가 되다니.

아무래도 적응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았다.

***

“한인 교포들을 위한 무대와 6.25 참전 용사들을 위한 무대라...... 이거 진짜 괜찮은데요?”

이대훈 PD는 성현 일행의 활동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벌써 촬영 그림을 머릿속으로 그려가며 웃었다.

안 그래도 버스킹 최다 관객 유치로 요즘 ‘더 넥스트 슈퍼스타’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국은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상태였다.

그런데 이번에 가져온 아이템도 적잖이 화제가 될 듯싶었다.

“무대 홍보도 따로 해야 할 거 같은데 저희가 직접 하나요?”

“네. 그런데 임하나씨는 좀 어렵겠네요. 막말로 천소울씨 무대야 LA 한인 타운에 가서 전단지라도 돌린다 쳐도 6.25 참전 용사는 임하나씨가 따로 컨택하기가 힘드니까.”

이대훈은 약간 곤란한 척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여기에 속아 넘어간 임하나는 놀라서 걱정스럽게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해요? 못하는 거예요?”

이미 이대훈은 성현의 팀이 가져온 기획안이 마음에 쏙 든 상태.

이대로 나 몰라라 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를 뭐로 보고. 그쪽 관련된 단체랑 연결해서 저희 쪽에서 알아서 모실 테니까 임하나씨는 무대 준비만 하세요.”

자신만만한 이대훈 메인 PD의 말과 함께, 세 사람의 공연이 확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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