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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200화 (200/273)

200화

조용한 회의실 안.

각 나라의 참가자들끼리 모여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각자 낮게 대화를 나누는 와중 회의실의 문이 열렸다.

등장한 것은 한국의 대표 프로듀서 이성현.

그리고 그 순간 대화를 하던 참가자들 모두 말을 멈추더니 성현을 쳐다봤다.

“Korea?”

“그 프로듀서 맞지?”

그들 역시 이미 너튜브나 SNS와 같은 매체를 통해 서로의 공연 영상을 접했다.

그중 성현의 팀의 영상은 아델이 직접 포스팅을 할 정도로 큰 화제였다.

그리고 그 말은 성현의 팀이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하나란 걸 의미하기도 했다.

성현의 등장은 그들의 대화를 멈추게 할 정도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일이었던 것.

‘이런 시선도 오랜만인데.’

오디션 초반에야 참가자들의 경계하는 시선을 받았었다.

그것도 점차 위로 올라가면서 사라졌지만.

참가자들 사이에 유대감도 생기고 끈끈해졌기 서로를 딱히 경쟁자로 의식하진 않았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참가자가 되었다는 점도 서로를 응원하는 기폭제가 되어주었다.

그러나 반대로 확실히 국가별 살아남은 사람들만 모인 자리인 만큼 더 살벌하기도 했다.

국가를 대표해서 왔다는 자긍심과 국가의 이름을 걸고 이겨야 한다는 경쟁심에 대기실은 조용했다.

성현은 따가운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일행들에게 걸어갔다.

스윽.

“……?!”

갑자기 누군가 성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조식 먹을 때 안 보이던데.”

기다란 팔로 성현의 발걸음을 막은 것은 메튜 페리였다.

“아, 조금 늦게 일어나서요.”

“그래요? 아쉽네요. 기다렸거든요.”

메튜 페리는 정말 아쉬운 표정이었다.

성현과 메튜의 등장에 대기실에 있는 사람들 모두 이제 대놓고 두 사람을 지켜봤다.

프로듀서 우승 후보와 가수 우승 후보.

두 사람의 만남만큼 긴장감 넘치는 일도 없었기에.

성현은 게임을 통해 메튜의 성격을 알았다.

지금 이 말은 순수하게 아쉬움을 표하는 말일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성현은 웃으며 답했다.

“다음에요. 밥 먹을 기회는 많으니까.”

“그래요. 다음에 꼭이요.”

성현의 말에 메튜는 환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상하게 왼쪽 뺨이 따끔했다.

성현은 어쩐지 천소울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은 기분에 더욱 메튜에게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천소울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데 회의실 문이 열렸다.

덩치가 큰 남자가 들어오자 참가자들의 시선이 이제 모두 그에게 쏠렸다.

“늦어서 미안해요.”

그 틈을 타 임하나 옆으로 온 성현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임하나는 웃으며 작게 타박했고, 천소울은 이쪽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덩치가 크고 어딘가 포스 있어 보이는 그의 등장에 메튜도 자신의 일행들에게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남자는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 가운데로 저벅 저벅 걸어갔다.

여전히 굳은 표정으로 회의실에 있는 참가자들을 훑어봤다.

적막한 회의실.

참가자들 모두 긴장해서 말도 꺼내지 못했다.

이내 굳은 표정이던 그가 활짝 웃었다.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미소에 참가자들 모두 순간 눈을 의심할 정도였다.

“반가워요. 더 넥스트 슈퍼스타 총괄 프로듀서 리키 헨더슨입니다.”

총괄 프로듀서.

그 말에 참가자들 모두 오오오 하며 상기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예선부터 시작해서 지역 본선 라운드, 통합 본선 라운드를 거치면서 수많은 AD와 PD를 경험한 참가자들.

총괄 프로듀서의 등장은 최종 보스를 눈앞에 두고 있단 걸 의미했기 때문이다.

거물의 등장과 함께, 드디어 결전의 무대가 시작된다는 고양감에 참가자들은 들떠 있었다.

“오늘 이곳에 모인 36명의 참가자들 모두 절 만난 것만으로 박수받아 마땅한 분들입니다.”

그렇게 말한 리키 헨더슨이 두 팔 벌려 참가자들을 가리키며 이어 말했다.

“절 만났다는 건 우승이 코 앞이란 얘기니까요!”

리키 헨더슨 주먹을 쉰 손을 높이 올리며 외쳤다.

그의 쇼맨십에 참가자들 또한 흥분해서 소릴 지르며 박수를 쳤다.

“이렇게 10개국의 참가자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건 이번이 처음이라 들었습니다. 분위기도 풀 겸 각자 자기소개를 하면 좋겠는데, 어떤가요? 괜찮습니까? 설마 싫은 건 아니겠죠? 다른 나라 참가자들을 보면 겁이 나서 말이 안 나올 것 같다는 사람 있으면 말하세요. 빼 드리겠습니다.”

리키 헨더슨의 도발에 참가자들 모두 아니라며 소리를 질렀다.

만족한 듯이 웃은 리키는 각각 돌아가며 국가별로 자기소개를 시켰다.

“미국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가장 첫 번째는 미국 측 참가자.

“메튜 페리고 가수 참가자입니다. 다 같이 좋은 음악 만들면 좋겠어요.”

환하게 웃으며 말하는 메튜의 모습에 회의실에 있는 여자 참가자들 모두 그의 미소에 넋이 나가 쳐다봤다.

“일본에서 온 프로듀서 참가자 구로사와 슌지입니다.”

“스페인에서 온 가수 참가자 페넬로페 콘테입니다.”

“독일에서 온 프로듀서 참가자 플로리아 베르켈입니다.”

“러시아에서 온 프로듀서 참가자 아나스타시 보야르스카야입니다.”

이어서 세계 각국 참가자들의 자기소개가 계속됐다.

참가자들 모두 박수를 치면서 경계하는 눈빛은 풀지 않았다.

한 명, 한 명이 이름을 밝힐 때마다 서로를 알아본 참가자들은 호기심, 경계, 경외 등의 눈초리로 서로를 훑었다.

그들 모두 서로의 공연 영상을 너튜브를 통해 접해왔지만, 영상은 영상일 뿐.

아직 서로의 실력을 정확하게 가늠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껏 영상으로만 접했던 실력자들을 직접 보는 데서 오는 고양감이 이들을 흥분시켰다.

단, 성현을 제외하고는.

‘콘테. 하나씨처럼 파워풀한 고음을 구사하진 않지만, 중저음이 매력적이고 무엇보다 가성 사용이 탁월해.’

성현은 게임을 통해 이미 여러 번 오디션을 경험했다.

그도 모든 참가자들의 실력을 외우지는 못했다.

다만, 미국 본선 라운드까지 올라온 대부분의 참가자들에 대한 정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중국 양양. 저 남자는 성악을 전공한 걸로 기억하는데. 단순히 고음만 잘하는 가수가 아니라 표현력 천재. 결코 만만한 상대는 아니야.’

각 나라 참가자들의 실력을 다시금 체크하는 성현은 빠르게 자신이 경험했던 정보를 정리했다.

그중 우승이 가능할 정도의 참가자들은 더욱 유심히 지켜봤다.

“마지막으로 한국 참가자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돌아온 성현 팀의 차례.

이미 성현을 비롯한 천소울, 임하나 모두 참가자들 사이에선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고 있었다.

하나같이 이름을 날리고 있었기에 이미 모두가 그들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한국에서 온 프로듀서 이성현입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성현은 자신을 참가자가 아닌 프로듀서로 소개했다.

그의 패기에 여기 저기서 워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서도 모두가 성현의 실력을 알기 때문에 그 누구도 태클을 걸지 않았다.

“한국에서 온 가수 참가자 임하나입니다.”

“한국에서 온 천소울입니다.”

임하나와 천소울을 끝으로 자기소개도 끝이 났다.

두 사람의 소개에는 몇몇 참가자가 휘파람으로 응답하기까지 했다.

리키 헨더슨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마지막 7라운드 미션을 공지했다.

“우승까지 가는 길은 결코 순탄치 않습니다. 최고가 되기 위해서 우린 모두 각자만의 고독한 시간을 견뎌야 합니다.”

리키는 고독이란 말에 강조를 하며 말을 이어갔다.

유일하게 미션의 내용을 미리 알고 있는 성현만이, 그의 화법에 조용히 미소지었다.

띠링, 띠링.

곧 참가자들의 커넥트 앱으로 본선 7라운드 미션 공지가 떠올랐다.

“미국 본선 7라운드 미션은 바로 고독한 음악가입니다.”

[ 본선 7라운드 : 고독한 음악가 ]

- 내용 :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음악과 해당 나라의 문화에 관해 배우고 알아보는 음악가를 중심으로 한 드라마가 제작됩니다. 이 드라마에서 쓰일 음악을 만들어내고, 무대를 준비. 총 두 곡의 곡으로 평가. 더 좋은 점수를 기록한 총 5개의 나라가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습니다.

조건 : 1) 이번 라운드는 국가 대항전 형식입니다. 각 국가에 속한 참가자들이 합심하여, 하나의 곡을 완성해 무대를 준비하세요.

2) 곡과 준비한 무대에 관한 평가는 특별 심사위원들이 진행합니다.

3) 드라마의 시나리오에 따라 각 나라를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야 합니다.

4) 오로지 특별 심사위원들의 선택으로 합격/탈락이 결정됩니다.

5) 공연은 오늘로부터 2주 후에 시작됩니다.

6) 합격한 팀들의 나라와 곡들은 본 드라마에 포함, 실제 제작 후 전 세계에 공개됩니 다.

즉, 각 드라마에 사용될 음악을 만드는 것이 바로 이번 미션의 커다란 주제.

그중에 어떤 음악이 드라마에 쓰일 건지가 관건이었다.

이 결정은 무대를 본 특별 심사위원들이 결정하게 된다.

특별 심사위원.

이번 미션이 단순히 음악을 선보이는 무대가 아닌 만큼.

이들의 시선과 심사기준은 특별했다.

“룰 자체가 어려운 건 아닌데 드라마에 쓰일 곡이라는 게 조금 걸리네요.”

임하나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성격의 미션에 걱정을 내비쳤다.

“드라마 내용이 각 나라를 돌아다니며 음악을 통해 그 나라의 문화를 배우는 거라니까 우린 한국을 표현하는 음악을 만들면 될 것 같습니다.”

임하나와 다르게 천소울은 빠르게 미션의 주요 골자를 짚어냈다.

‘역시 천소울씨네.’

천소울은 누구보다 빠르게 미션의 의도를 파악했다.

그의 말처럼 이번 미션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까다로운 점은, 각 나라를 표현하는 곡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성현은 버스킹 미션 다음으로 이번 미션을 좋아했다.

음악이 가지고 있는 어떤 틀을 깨부수는 도전.

각국에서 선발된 실력자들이 보여주는 다채로운 대답이 항상 성현의 선입견을 깨부숴 주곤 했다.

‘음악이 가진 힘을 보여줄 수 있으니까.’

드라마나 영화에 사용되는 음악은 그것들이 가지고 있는 서사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성현은 그것에서 음악인으로서 어떤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고 믿었다.

음악과 다른 예술의 장르가 만났을 때, 이루어지는 시너지.

서로가 서로를 더 좋게 만드는 작업.

성현은 가만히 어떤 방향이 좋을지 천소울과 임하나를 떠올리며 생각에 잠겼다.

그때 참가자들 중 몇 명이 손을 들었다.

그들은 커넥트 앱 알람에 어느 부분을 가리키며 물었다.

“특별 심사위원이 누군지 알 수 있을까요?”

지금까지 ‘더 넥스트 슈퍼스타’를 겪어왔음에도 아직 감이 떨어지는 모양이었다.

참가자의 질문에 리키는 맘에 든다는 듯이 크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미션 평가 당일에 공개될 겁니다. 힌트를 드리자면 아주, 아주 특별한 분들이 될 겁니다.”

리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 말에 성현 역시 미소를 지었다.

성현이 이번 미션을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히 미션의 내용이 흥미로워서가 아니었다.

‘게임에서처럼 이번에도 그분을 만날 수 있을까.’

성현은 게임 속 본선 7라운드마다 만났던 ‘그 남자’를 실제로 만나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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