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미국 LAX,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한 성현과 일행들.
출국 심사를 끝내고 나오자 그곳에 더 넥스트 슈퍼스타라고 적힌 종이를 들고 있는 AD와 스탭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 스탭들이 작게 환호하며 이들을 반겼다.
“반갑습니다. 이대훈 PD입니다.”
이대훈 PD가 급히 앞으로 나서서 말하자, 미국 측 스탭 하나가 나와서 악수를 건넸다.
“환영해요. AD 마이크 리입니다. PD님은 급하게 회의가 잡혀서 제가 대신 마중 나왔어요.”
조금 통통하고 인상이 좋은 AD와 이대훈 PD가 인사를 마쳤다.
그러고 나서 바로 그의 뒤로 보이는 성현 일행과도 인사를 나눴다.
AD의 눈은 아까와는 다르게 호기심으로 반짝이며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한국 참가자들 인기가 장난 아니던데 기대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성현이 대표로 화답했다.
성현의 일행이 미국 측 스탭들과 인사를 나누는 중, 갑자기 공항이 소란스러워졌다.
“천소울 맞다니까?”
“저 여자 그 여자지. 아델 SNS에 올라온 여자.”
“다음 본선 미국에서 한다더니 진짜였나 봐.”
공항 내 성현을 알아본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휴대폰을 들어 그들을 찍기 시작했다.
천소울의 실물을 본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도 들렸다.
몇몇 팬들은 사인을 받기 위해 접근하다가 공항 안전요원에게 제지당했다.
한국 스탭들은 낭패 어린 표정이 되어 미국 측 스탭들에게 말했다.
“사람 더 몰리기 전에 빨리 이동합시다.”
“차 바로 앞에 준비해놨으니까 따라오시죠.”
AD와 스탭들은 성현의 일행을 공항 앞에 주차된 차로 안내했다.
넉넉한 크기의 코팅된 대형 버스였다.
안전을 위해 세 사람은 먼저 버스에 올랐고, 스탭들이 짐 정리를 서둘렀다.
차는 빠르게 LA에 위치한 고급 호텔로 출발했다.
“가서 짐부터 풀고 내일 오전에 모이도록 하겠습니다. 정확한 시간은 커넥트 앱을 통해 공지할게요. 이번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체크인을 마친 이대훈 PD는 카드키를 건네며 성현과 일행들과 하나하나 악수를 나누었다.
그후, 자신은 스탭들끼리 미팅이 있다며 먼저 자리를 떴다.
“여기 호텔도 오성급 맞죠? 영국이 뭔가 고급스럽게 좋았으면 여긴 그냥 부내가 펄펄 나요.”
확실히 그들이 도착한 호텔은 이전보다 훨씬 좋은 호텔이라는 것이 티가 났다.
그냥 봐도 하루에 숙박비만 몇백은 기본으로 나갈 것 같았다.
다 함께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엘리베이터 홀로 향했다.
임하나는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구경했다.
천소울은 호텔에는 별 관심이 없는지 이리저리 팔을 돌리면서 성현을 봤다.
“저녁 같이 먹을 거죠?”
“네. 왜요?”
세 사람의 카드키를 확인한 성현이 엘리베이터를 호출했다.
주최 측의 배려인지 이번에도 세 사람은 같은 층, 각기 다른 방에 배정됐다.
“헬스장에서 운동 좀 하다 가게요. 비행기 오래 탔더니 찌뿌둥하네요.”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가 팔짝 뛰며 반가워했다.
“어! 저도 스파 다녀올래요, 그럼.”
“그럼 각자 자유시간 보내고 7시에 로비해서 보죠.”
각기 다른 스케줄을 세운 세 사람은 엘리베이터를 기다렸다.
세 사람이 룸으로 올라가려는데, 갑자기 네 명으로 구성된 무리가 케리어를 끌고 지나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와. 저 남자 진짜 잘생겼다......”
임하나는 네 명의 무리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그중 가장 키가 크고 화려한 외모를 지닌 남성의 옆모습을 보며 중얼거리는데, 눈이 마주쳤다.
자신을 보는 시선을 느꼈는지 그 남성이 임하나 쪽을 쳐다본 것.
임하나를 비롯해 성현과 천소울의 눈이 커졌다.
“저 남자...... 그 사람 맞죠?”
“네.”
남자는 임하나를 뚫어지게 보다가 이내 성현네 쪽으로 걸어왔다.
“히익, 이쪽으로 오는데요?”
설상가상으로 남자와 함께 있던 무리도 그를 따라왔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들 맞죠? 반가워요. 메튜 페리입니다.”
임하나가 쳐다본 남성은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먼저 손을 내밀었다.
메튜 페리.
미국 내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서 독보적인 1위인 가수 참가자였다.
미국은 10개국 중 오디션 참가자 수가 가장 많았다.
거기서 그 엄청난 경쟁을 뚫고 단 한 번도 1위를 놓치지 않았던 인물.
그가 바로 지금 성현의 일행 앞에서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메튜 페리였다.
‘가수로서 지녀야 하는 모든 걸 갖춘 남자.’
성현은 게임을 통해 그를 숱하게 만났다.
그때마다 메튜 페리의 완벽함 앞에서 주저앉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이 사람도 올라왔구나.’
그에게는 부족한 것이 없었다.
외모면 외모, 실력이면 실력, 재능이면 재능, 성격이면 성격.
‘천소울이 반드시 넘어야 하는 라이벌. 이번엔 이길 수 있을까.’
메튜 페리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우승을 놓고 천소울과 마지막까지 경쟁하게 될 상대였다.
이 남자를 꺾어야지만, 우승이 가능하다.
그리고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매번 게임의 진정한 엔딩을 보지 못했으니까.’
겨우겨우 오디션의 마지막에 도달하더라도 항상 이 남자가 있었다.
굳건한 벽처럼 우승으로 향하는 관문에 있었던 메튜 페리.
천하의 천소울마저 그를 상대하는 것은 번번이 힘에 겨웠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성현이 메튜 페리를 미워하는 건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좋아했다.
그는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천소울이 있다면, 미국에는 메튜 페리가 있었지.’
그 역시 음악에 대한 열정과 사람이 넘치는 남자였다.
항상 얼굴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친절하고 유순한 성격의 남자이기까지 했다.
유리 멘탈을 가지고 쌀쌀맞은 누구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심성의 참가자였다.
그런 그에게 성현이 적의를 품을 수 있었을 리 없다.
“프로듀서 이성현입니다. 영상 올라온 건 다 챙겨볼 정도로 팬입니다.”
메튜가 내민 손을 성현이 유창한 영어로 답하며 맞잡았다.
메튜는 설마 유창한 영어가 바로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는 듯 놀란 눈으로 반가워했다.
“성현 리. 당연히 알고 있어요. 저도 당신의 팬입니다.”
성현은 이미 너튜브에 올라온 미국 참가자들의 영상에서 메튜 페리의 공연 연상을 접했다.
강력한 우승후보라는 것은 한 소절만 듣고서도 알 수 있었다.
게임을 통한 정보가 아니더라도 경계해야만 하는 실력자.
메튜는 항상 모니터링 대상 1순위였다.
이는 성현뿐만 아니라 임하나와 천소울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영상을 다 챙겨볼 정도로 팬인 건 몰랐네.”
천소울은 성현의 말에 살짝 빈정이 상한 듯 중얼거렸다.
메튜를 왜 체크했는지는 알 것 같았지만, 묘하게 기분이 상했다.
나보고 꿈에 그리던 목소리라고 꼭 작업하고 싶다고 말할 때는 언제고.
천소울은 메튜 페리에게 눈을 빛내고 있는 성현을 못마땅하게 쳐다봤다.
“천소울씨 맞죠? 음색 너무 제 스타일이에요. 언제 한 번 기회가 되면 작업같이 해요.”
“네.”
그 탓인지 메튜의 제안에도 천소울의 대답은 짧기만 했다.
천소울의 너무 짧은 대답에 메튜는 조금 당황한 듯 어색하게 웃으며 이번엔 임하나를 돌아봤다.
임하나를 보는 메튜가 빙긋이 웃으며 물었다.
그 미소에 임하나는 넋이 나갔다.
매일 보는 천소울도 엄청나게 잘생겼다.
잘생겼는데, 이제 익숙해진 잘생김과 뉴페이스의 잘생김.
그 사이에서 임하나는 혼란에 빠졌다.
“아델 SNS에 올라온 영상 주인공 맞죠? 이름이 하나? 였나? 미안해요. 내가 한국말은 잘 못 해서.”
“좋아요! 지금도 너무 잘하세요!”
임하나는 메튜의 얼굴에 넋이 나가 빠르게 대답했다.
메튜는 그런 임하나를 보며 귀엽다는 듯 웃었다.
“꼬리 좀 넣지 그래요? 얼마나 흔들어 대면 먼지가 다 날리네.”
천소울은 임하나까지 메튜에게 넘어간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부러 임하나에게 틱틱대며 말해봤지만, 평소 같으면 바로 이쪽을 돌아볼 임하나.
지금은 천소울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 상태였다.
“어떡해...... 실물이 더 잘생겼어. 얼굴에서 후광 나오지 않아요, 지금? 내 눈에만 보여요?”
임하나는 메튜 페리의 얼굴에 말 그대로 빠져 있었던 것.
“일행들인가요?”
성현은 정신을 못 차리는 임하나를 잠시 내버려 두기로 했다.
메튜 페리 뒤로 보이는 세 명의 일행을 보며 묻자, 세 사람이 나서 성현 일행과 인사를 나눴다.
“반가워요. 프로듀서 레베카예요.”
시원시원한 성격의 매력적인 미소를 가진 프로듀서 레베카.
“가수 참가자 존입니다. 트라팔가 공연 끝내주던데요?”
흥분한 표정으로 임하나와 천소울을 둘러보는 작은 체구의 거인으로 불리고 있는 존.
“사이먼이에요. 프로듀싱, 노래 가리는 것 없이 다 잘합니다.”
자신만만한 미소를 장착한 채 턱끝을 살짝 들어올린 채로 말하는 사이먼까지.
자신감을 보이며 말하는 사이먼을 본 임하나는 한국말로 혼잣말을 했다.
“미국판 서자명씨구나.”
그렇게 세 사람은 서로 인사를 나누는데 메튜 페리가 시간을 확인하더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식사라도 같이 하고 싶은데 연습실을 대여해놔서요. 이만 가봐야겠네요.”
메튜가 일행들과 함께 자리를 떴다.
사이먼은 이쪽을 향해 마지막까지 웃으며 손을 흔들며 사라졌다.
성현은 그의 뒷모습을 한동안 계속 쳐다봤다.
정확히는 그와 그의 일행들이 들고 있는 케리어에 시선이 꽂혀있었다.
‘방금 도착한 것 같은데 연습실 먼저 가는 건가.’
역시 괜히 미국 1위가 아니었다.
메튜는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기도 전에 연습실 대여를 먼저 해놓은 것이다.
‘역시 쉽지 않겠다.’
성현은 이번 본선 라운드가 결코 쉽지 않을 거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최고의 실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 노력가.
이는 성현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는지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임하나와 천소울의 표정 또한 처음처럼 밝지만은 않았다.
“연습실 누가 예약할래요?”
“제가 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성현이 말하기도 전에 서로 의지를 불태웠다.
결국 헬스장과 스파는 취소되고 말았다.
***
호텔 창을 통해 여과 없이 햇빛이 침대로 떨어졌다.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는 아침.
성현은 햇빛에 눈이 부셔 눈을 비비며 일어나는데 몸이 찌뿌둥해서 멈춰야 했다.
누운 자세에서 스트레칭을 하는 성현은 작게 웃었다.
‘어제 좀 무리했나.’
어제 저녁까지 일행들과 연습을 하느라 호텔에 늦게 들어왔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시차 적응도 없이 연습에 매진한 세 사람.
아무래도 피로가 조금 덜 풀린 것 같았다.
‘일단 씻고 나가야겠다.’
어제저녁, 커넥트 앱을 통해 오전 10시에 모여달라는 공지가 있었다.
이제 곧 오전 10시이기에 더 이상 침대에 있을 수 없었다.
성현은 룸 내에 비치된 과일을 먹고는 샤워를 마쳤다.
대충 준비를 끝내고 호텔 내 회의실로 향했다.
그러자 이미 회의실에 와있다는 천소울과 임하나가 성현에게 어디냐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성현: 다 왔습니다.
성현이 회의실 문 열고 들어가자, 회의실에 먼저 도착해 있는 다른 나라의 참가자들의 시선이 모두 성현에게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