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7화 (197/273)

197화

“다들 이미 어느 정도 승패를 예상한 것 같으니 빠르게 본선 6라운드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대기실에 모인 참가자들의 놀란 표정을 보고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은 찰리.

그는 옆에 있던 스탭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와 동시에 스크린에 다시 숫자가 떠올랐다.

1번팀: 13,718달러

2번팀: 5,107달러

성현의 팀이 무려 8,611달러 차이로 승리한 것이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우리 같은 일반인들이 어벤져스를 무슨 수로 이기겠어.”

“어벤져스는 한국 땅이 좁으니 더 멀리 진출하셔야지.”

탈락한 다른 한국팀 참가자들이 웃으며 승복했다.

그들은 결과를 보고 난 뒤에도 서로 농담을 주고받으며 덤덤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모습이었다.

그러다 이내 박수와 함께 성현의 팀을 진심으로 축하해줬다.

“축하해요. 앞으로도 좋은 음악 부탁할게.”

“우리가 지켜볼 거예요!”

상대팀 참가자들은 모두 아쉬운 미소를 지으며 세 사람을 축하해줬다.

대기실엔 누군가 탈락했다는 걸 믿기 힘들 정도로 박수 소리와 웃음소리가 이어졌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우승 가즈아!”

한 참가자 말에 다들 가즈아! 외치며 성현의 팀을 향해 외쳤다.

다들 그들이 앞으로도 좋은 음악을 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한참을 서로 인사를 나누며 응원을 하던 찰나, 불청객이 끼어들었다.

“분위기 깨서 미안한데 이게 제 역할이라서요.”

찰리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양복 안 주머니에서 비행기 티켓 세 장을 꺼냈다.

그 티켓의 정체를 알고 있는 성현은 올 게 왔다는 생각이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트의 마지막 무대는 미국이 될 겁니다.”

찰리의 말에 임하나와 천소울은 놀라서 눈이 커졌다.

마지막 무대라는 말도 그렇지만, 그 무대가 미국이란 말에 긴장감과 떨림을 숨기지 못했다.

미국이 어떤 나라인가?

세계 음악 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빌보드의 나라.

마침내 그곳에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가 가게 된 것이다.

마지막 결전의 무대를 펼치기 위해서.

‘빌보드라...... 과연 이번에는 어떤 엔딩을 볼 수 있을까.’

성현은 게임에서 겪었던 101번의 엔딩들을 차례로 떠올려 보았다.

그러다 곧 고개를 저었다.

이미 자신이 하던 게임과는 너무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어, 어떡해! 성현씨, 미국이래요!”

“하나씨 영어 못하는 데 큰일났네요.”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긴장과 설렘에 방방 뛰던 임하나에게 천소울이 따끔한 한 마리를 던졌다.

그러자 바로 발끈해서 천소울에게 달려드는 임하나.

두 사람은 미국행이라는 말에 들뜬 마음을 나름대로 해소하는 중이었다.

성현이 원하는 엔딩은 따로 있었다.

101번의 엔딩을 봤지만,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최고의 엔딩.

그 엔딩을 과연 현실에서 볼 수 있을까 생각에 잠겨 있던 성현의 시선 끝에 천소울이 있었다.

천소울은 옆에서 뭐라뭐라 하는 임하나를 무시한 채, 찰리 브라운이 들고 있는 티켓을 응시하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어쩌면. 천소울, 임하나씨와 함께라면 가능할 수도...... 아니, 가능하게 만들 거야.’

성현이 그렇게 생각에 잠겨있는데 그의 앞으로 찰리 브라운이 불쑥 나타났다.

깜짝 놀란 성현이 살짝 몸을 뒤로 뺐다.

찰리는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성현에게 물었다.

이제부터 미국에 간다는 발표에도 이 참가자는 도통 놀라는 모습을 안 보여준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아, 그냥 미국에 간다니까 조금 설레네요.”

성현이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찰리는 성현에게 미국행 비행기를 건네줬다.

티켓은 당연하다는 듯이 퍼스트 클래스.

“난 사람 보는 안목이 아주 좋아요. 한국말로 감?이 좋다고 하나?”

찰리는 한국인 사위가 있다는 것이 정말인지 한국말을 꽤 알고 있었다.

“내 감은 한국에서 온 이성현씨가 우승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 딸은 내가 늙어서 감이 떨어졌다는데 글쎄요, 난 그렇게 안 봐요. 내 감은 떨어진 게 아니라 더 날카로워진 겁니다.”

찰리는 그 말을 하며 성현과 천소울을 번갈아가며 봤다.

“난 아시아에서 온 이 두 남자가 더 넥스트 슈퍼스타 우승자가 된다는 데 베팅할 겁니다.”

자신만만한 찰리의 말에 내심 놀란 성현이 물었다.

“뭐를 걸 생각인지 물어봐도 될까요?”

호기로운 성현의 질문.

찰리는 잠시 생각하다가 곧 대답했다.

“제 커리어를 걸죠. 떨어진다면 당장에라도 이 바닥을 떠날 겁니다. 방송국 PD가 감을 잃으면 떠나는 게 맞는 거니까요.”

찰리는 그 말을 하며 싱긋 웃으며 성현의 어깨를 두들겼다.

굿럭, 그의 입이 소리 없이 그렇게 움직였다.

“그럼 이만.”

찰리는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 세 사람에게 미국행 비행기 티켓을 주고 대기실을 나섰다.

***

나른한 오후.

런던의 드넓은 잔디 위에서 성현과 이주성, 심훈영을 비롯한 성현의 일행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한차례 미션이 끝난 후, 호텔 근처에 있는 공원에 모여 각자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아직 본선 6라운드가 끝나지 않아 미국 본선까지는 1주일 정도의 시간이 남았다.

찰 리가 건네준 비행기 티켓 날짜도 아직 남았겠다, 그 사이 영국에 조금 머무르기로 결정한 것이다.

그 김에 영국에 남아 있던 성현의 동료들도 이주성의 특별한 선물로 함께 영국에서 한가로운 나날을 보내는 중이었다.

“이런 게 삶의 여유인 건가.”

잔디에 뻗어 누운 서자명이 자신의 위로 유유자적 지나가는 구름을 보며 말했다.

그 옆에 누운 요하도 눈을 감고 바람을 즐겼다.

어떻게 된 게 영국은 날씨가 안 좋다더니, 일행들이 놀러나올 때는 좋기만 했다.

“짠!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마셔라! 술이 들어간다 쭉쭉쭉쭉쭉!”

그리고 임하나.

언제나처럼 신이 나서 사람들과 와인잔을 부딪히며 술을 마셨다.

서지현은 옆에서 그런 임하나를 말렸다.

“언니, 피크닉을 회식처럼 하면 어떡해요. 와인 좀 그만 마셔요.”

“그래, 하나는 그만 마셔. 저러다 나중에 오이사스바에서 보는 거 아닌가 몰라.”

심훈영의 진심어린 충고에 임하나는 헉, 하는 얼굴이 되어 와인잔을 내려놓았다.

“치, 알았어요.”

시무룩해진 임하나는 와인은 관두고, 앞에 놓인 치즈만 잘라 먹었다.

안 그래도 성현이 목이 망가지면 부르고 싶은 노래 선택을 못하게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뒤였다.

“부럽다. 이런 데서 버스킹도 하고.”

그때 혼자 와인을 마시며 풍경을 구경하던 릴 리가 생각에 잠긴 듯 말을 꺼냈다.

곧 다른 사람들 역시 릴리가 말하는 영국의 풍경들을 구경했다.

나무 밑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

늙은 부부가 서로의 손을 잡고 산책하는 모습.

강아지와 함께 놀고 있는 아이들.

하나같이 너무나 평화로운 일상 그 자체였다.

맴버들 모두 한국에서 느낄 수 없었던 여유를 만끽했다.

그러면서도 성현의 팀을 향한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성현은 그런 그들을 보다가 한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어쩐지 지금의 시간을 공원에서만 보내기에는 조금 아쉬운 생각이었다.

“정말 공원에만 있어도 돼요?”

성현의 물음에 서지현을 비롯한 요하와 릴리 주영준, 서자명이 모두 말없이 서로의 눈치를 봤다.

“뭐어.”

그들은 세 사람의 눈치를 보는 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현의 일행이 버스킹 공연을 끝낸 지도 얼마 되지 않았다.

거기에 다시 일주일 후에 공연을 하러 미국에 가야했다.

여러 사정이 마음에 걸려 멀리 놀러를 가기 보다는 호텔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자고 제안한 것.

그렇지만, 사실 영국까지 와서 공원에서만 시간을 보내는 건 조금 아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었다.

“다른 데 가면 좋긴,”

“괜찮아요. 지금도 좋아요.”

자신이 총대를 맨다는 생각으로 솔직하게 말하려는 서자명.

그것을 눈치챈 서지현이 재빨리 말을 잘라버렸다.

성현은 그 모습만 봐도 일행들이 자신들을 배려하고 있다는 걸 알아버렸다.

그걸 알자마자 성현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저 지금 좀 심심한데 우리 다른 데 가죠?”

성현의 말에 요하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밝아졌다.

“다른 데 어디요?!”

그것도 모자라 목소리까지 신이 나는 바람에 하이톤이 됐다.

이러면서 눈치를 보고 있었다니, 성현은 내심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고 싶은 데 있어?”

“네!”

이 김에 요하가 가고 싶은 곳이 어디더라도 무리해서 가주기로 마음먹고 물었다.

“어디?”

“어디냐면-”

요하가 곧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말하자 맴버들은 모두 크게 웃었다.

요하 다운, 너무 귀여운 발상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그럼. 거기 가자.”

흔쾌히 떨어진 성현의 허락에 기다렸다는 듯이 이주성이 덧붙였다.

“거기 갔다가 축구 관람하는 건 어떠냐? 티켓은 아버지가 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주성의 말에 옆에서 가만 누워 하늘을 보던 천소울이 몸을 벌떡 일으켰다.

“축구장 어디요?”

답지 않게 흥분한 천소울의 모습에 살짝 놀란 이주성이 마저 말했다.

“오늘 손현민 선수 경기가 있더라고. 토르트넘 핫스퍼 스타디움에 갈까 하는데.”

“전 완전 찬성입니다!”

천소울이 이주성의 팔을 붙잡고 흥분해 소리쳤다.

멤버들 모두 천소울 답지 않은 모습에 깜짝 놀라 눈만 깜빡 거리는데, 이주성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었다.

“이 친구 마음에 드는구만. 우리 아들은 통 좋다 싫다가 없어서 탈인데 말이야.”

“전 의사 표현 아주 잘 합니다. 가시죠, 아버님.”

이주성의 툴툴거리는 말에 답지 않게 천소울이 변죽을 맞춰줬다.

이걸 지켜보는 성현의 입이 떡 벌어졌다.

“허?”

그러거나 말거나 천소울은 축구라는 단어에 영혼이라도 판 사람처럼 이주성을 일으키는 것을 도왔다.

성현은 그 모습을 보며 어이가 없어 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

요하가 가고 싶다던 곳은 다름 아닌 애비로드.

바로 비틀즈의 LET IT BE 앨범 커버 사진처럼 횡단보도를 건너가는 사진을 찍고 싶었던 것이다.

사진으로만 봤던 애비로드의 횡단보도를 발견하자 요하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저기 횡단보도에서 찍어야 돼요! 형, 카메라 가져왔죠?”

“가져왔다니까 몇 번 말해.”

“형, 그냥 막 찍으면 안 되고 걸어갈 때 찍어야 돼요.”

“야. 내가 너보다 비틀즈는 더 잘 알거든?!”

서자명는 요하가 계속해서 재촉하자 투덜거리며 카메라를 세팅했다.

구박을 들은 요하는 그래도 기분이 좋은지 헤헤 웃었다.

다른 멤버들도 아닌 척 비틀즈의 향취가 느껴지는 곳에 오자 들뜬 모습이었다.

‘그렇게 좋은가.’

성현은 영국에 온 이후로 가장 밝아 보이는 요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그러다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본격적으로 락을 공부하는 요하한테 요즘 비틀즈는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들의 음악만으로 많은 영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 뭐해요! 빨리 와요!”

횡단보도에 맴버들과 함께 서 있는 요하가 큰소리로 성현을 불렀다.

생각에 잠겨있던 성현이 그런 요하를 보고 피식 웃으며 달려갔다.

“찍습니다!”

삼각대에 카메라를 올려놓고 타이머를 맞춘 서자명은 곧장 달려서 맴버들을 향해 뛰어갔다.

찰칵,

영국에서의 소중한 추억이 익살스러운 멤버들의 포즈와 함께 사진에 담겼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