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6화 (196/273)

196화

“시작할게요.”

성현의 말에 맞춰, 성현의 곡 ‘놀이터’가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을 가득 채웠다.

성현뿐만 아니라 임하나와 천소울에게도 이 노래가 가지고 있는 의미는 특별했다.

그들 역시 영국에서의 마지막 곡만큼은 커버곡이 아닌 걸 원했다.

해외 유명 가수의 곡이 아닌 자신들의 진심을 담을 수 있는 곡.

성현의 음원 미션 곡이었던 ‘놀이터’의 반주가 흘러나오자, 임하나와 천소울은 반주에 맞춰 몸을 살짝 흔들며 눈을 감았다.

“벌써 그때가 그리워 우리 함께했던 그 날들.”

성현의 잔잔한 피아노 곡에 맞춰 천소울이 첫 소절을 불렀다.

감미로운 목소리에 트라팔가 광장에 모인 관객들은 숨을 죽였다.

이에 뒤따라 임하나가 다음 소절을 이어나갔다.

“지금 넌 내 곁에 없지만 우린 결국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거야.”

그루브 넘치는 임하나의 노래.

휴대폰을 높이 든 관객들은 천소울과 임하나를 번갈아 보며 누구를 카메라에 담아야 할지 망설였다.

원래 이 곡은 천소울과 임하나, 각자 다른 가사로 다른 버전이 존재했다.

성현은 이번 마지막 무대를 위해 두 사람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듀엣곡으로 편곡을 했다.

가사 역시 서로가 서로에게 하는 말처럼 새롭게 만들었다.

그 결과, 두 사람은 주고받으며 대화하듯이 노래를 전개해나갔다.

“놀이터에서 놀던 그 날이 다시 또 올 수 있을까.”

“두려워 하지마 내가 항상 네 곁에 있을게 돌아올 거야 그 날의 행복이.”

두 사람은 이 노래만큼은 번역 안 하기를 원했다.

천소울과 임하나는 한국어로 노래를 이어갔다.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눈가가 점차 촉촉해졌다.

비록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 가사를 알아들 순 없었지만, 그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감정과 위로의 메시지는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노래에 국경은 없어.’

그리고 이러한 감동이 가장 마음에 와닿는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한국에서 온 성현의 동료들.

성현의 동료들은 그들의 노래에서 깊은 위로를 받았다.

언제나처럼 자신들을 향한 진실된 그리움과 앞으로도 계속 함께 할 수 있다는 진심도.

“훌쩍.”

“서자명씨 울어요?”

“……안 울어요.”

“휴지 주려고 했는데.”

“주세요.”

성현의 동료들은 다들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러다 서로 어떤 말도 없이 서로의 손을 잡거나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들었다.

그들의 모습을 본 몇몇 외국인들이 이를 따라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 서로의 어깨동무를 하며 노래를 감상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거야! 이거 찍어. 빨리!”

흥분한 김인호 AD의 지시로 드론을 띄운 카메라 감독들은 이 장면을 고스란히 담았다.

비록 한국에서처럼 신현식의 피처링은 없었다.

피처링 파트는 서로의 목소리로 채웠다.

대신 천소울과 임하나, 서로를 바라보며 서로에게 그리고 이곳에 응원을 온 멤버들을 향해, 상처받은 누군가를 향해 진심 어린 노래를 불렀다.

“돌아, 올 거야.”

두 사람의 합을 마지막으로 잔잔한 음이 노래의 끝을 알렸다.

“…….”

“…….”

그렇게 마지막 곡이 끝이 났을 때 광장은 조용했다.

마지막 무대를 끝낸 것 치고 반응이 너무 조용하자 성현과 임하나와 천소울은 당황해서 관중들을 바라봤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무대 앞에서 짝짝짝, 박수 소리 들려왔다.

“브라보!”

광장의 깊은 침묵을 깬 건 아델이었다.

아델은 머리 위로 박수를 치며 성현의 일행을 향해 소리쳤다.

아델의 박수를 시작으로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 힘차게 박수를 보내왔다.

트라팔가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 성현의 팀원들을 향해 앵콜을 외쳤다.

공연비를 내기 위한 사람들의 행렬에 광장 전체가 들썩거렸다.

“미치겠네. 이렇게 많이 몰릴 줄 알았으면 애들 좀 더 데려올걸.”

인파가 너무 심하게 몰리자 당장 공연비를 받고, 통제하는 데 스탭들의 인력이 모자랐다.

그렇게 광장 전체가 들썩거리는데, 아델 역시 공연비를 내기 위해 줄을 서는 모습이 보였다.

아델은 보란 듯이 10달러 지폐를 꺼내 박스에 넣었다.

공연비를 낸 아델은 곧장 광장을 떠나지 않고 무대에 있는 성현과 일행들을 찾아왔다.

무대 쪽으로 걸어오는 아델은 한껏 상기된 표정으로 세 사람에게 외쳤다.

“최고의 공연이었어요. 특히 마지막 곡은 가사를 알아듣지 못했지만, 그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보다 위로를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언젠가 아델을 만나면 큰절을 올려야겠다고 일행들에게 말해온 임하나였다.

절은 고사하고 감사 인사를 전하는 임하나의 몸은 딱딱하게 얼어있었다.

마지막 순간만큼은 꼭 직접 인사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임하나.

그녀는 긴장한 얼굴로도 꿋꿋이 무대에 서서 아델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델은 그런 임하나의 모습이 귀여운지 웃었다.

“우리의 인연이 여기서 끝은 아닐 거예요. 지금보다 더 높은 곳에서 만나길 바랄게요.”

장난스럽게 하늘을 가리킨 아델이 몸을 돌렸다.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무대를 떠나는 아델.

그녀의 뒷모습을 성현과 일행들이 말없이 지켜봤다.

“진짜 열심히 살아야지. 더 높은 곳으로 가고 만다.”

직접 아델에게 들은 응원.

임하나는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아델의 마지막 말에 성현은 생각에 잠겼다.

‘더 높은 곳이라......’

성현은 아델이 말하는 더 높은 곳, 그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게임의 엔딩이자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의 끝인 바로 ‘그’ 무대였다.

***

세 번째 공연을 끝으로 영국에서의 모든 공연이 종료됐다.

한국의 양 팀은 3주 만에 런던에서 재회했다.

오랜만에 만난 두 팀은 반갑게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마지막 버스킹 무대는 진짜 후덜덜하던데요?”

성현이 엄지를 치켜세우며 말했다.

성현은 너튜브나 SNS에 올라온 상대팀의 공연 영상을 봐왔다.

한국에서보다 월등히 늘어난 실력이 여실히 느껴지는 무대들.

그들이 보여준 무대에 진심으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저쪽 팀에도 클래식 전공자가 있었다.

그 사람의 전공을 살려 플루트 연주를 선보이는 무대가 특히 압권이었다.

관중들과 하나가 되어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화면 너머로도 잘 느껴졌다.

오디션을 통해 성장한 건 성현의 팀뿐만이 아니었다.

상대 팀 역시 무대를 진행할수록 더욱 성장했다는 것이 피부로 느껴진 무대들이었다.

하지만, 칭찬을 받은 상대팀의 마음은 그다지 편치 않았던 모양인지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것이 승자의 여유인 건가? 어차피 우승은 성현씨 팀이라고 너무 여유 부리는 거 아니에요?”

상대팀 이유찬의 말에 성현은 크게 당황했다.

“네? 그런 뜻이 아니라 전 정말 무대를 재밌게 봐서. 불쾌했다면 죄송합니다.”

성현의 반응에 이유찬의 얼굴이 풀어졌다.

성현만이 아니었다.

이유찬 역시, 자신의 상대팀 영상을 봤다.

안 볼 수가 없었다.

한국 뉴스만 틀어도 아델이 올린 성현팀의 영상이 떠다녔다.

SNS에서는 오통 ‘국위선양한 한국인’이라는 제목으로 성현팀의 버스킹 공연 영상이 떠돌고 있었다.

이쯤 되자 승자, 패자 가릴 것 없이 그저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남지 않았다.

“농담이에요 농담. 사실 우리 전부 누가 이기든 크게 상관없잖아요. 마지막까지 후회 없이 음악 했으니까.”

이유찬 말에 그곳에 모여있던 top 7 멤버들 모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곧 한 팀은 한국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잔인한 발표의 시간이 점차 다가왔지만, 속은 후련했다.

이 자리까지 와서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음악을 했다는 것.

그것만으로 모두가 값진 경험이라 생각했고, 후회는 없었다.

“어떤 결과 나오든 울지 맙시다. 울 이유 없잖아요.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대단한 거고 여러분들 모두 스타니까요.”

천소울 말에 갑자기 더욱 조용해지는 장내.

서로 눈치만 보는 참가자들에 천소울의 한쪽 눈썹이 슬그머니 올라갔다.

“푸훕,”

이내 임하나가 웃기 시작하고 다른 참가자들도 차례로 따라 웃었다.

웃음은 전염이 되듯이 한국 대표들 전체에 퍼졌고, 임하나는 더 크게 웃고 있었다.

천소울은 다들 갑자기 왜 웃는 건지 영문을 몰라 그들을 쳐다볼 뿐이었다.

성현 역시 웃음을 참기 위해 어깨를 떨며 천소울에게 설명해주었다.

“여기까지 올 줄 몰랐던 것만큼이나 천소울씨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 몰랐던 거죠.”

“.......”

성현의 설명에 천소울은 딱히 부정하지 않았다.

뭐, 자신도 자신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올 줄은 몰랐으니까.

괜한 말을 했나 싶어서 머쓱한 마음에 뒷목을 문지르는데 임하나가 그런 자신을 가리켰다.

“아하하. 소울씨 표정봐!”

“임하나씨는 이제 그만 좀 웃으시죠.”

그렇게 대기실은 마지막 순간을 앞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만큼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그 대기실로 곧 이대훈 PD 와 찰리 브라운 PD가 나란히 들어왔다.

짝짝짝-

대기실에 들어 온 찰리 브라운은 갑자기 한국의 TOP 7 참가자들을 향해 아무 말 없이 박수를 먼저 치기 시작했다.

이를 본 다른 스탭들 또한 눈치를 보다가 따라서 박수를 쳤다.

이대훈 역시 솔선수범해서 박수를 크게 치고 있었고, 한국 스탭들 역시 따라 박수를 쳤다.

곧 대기실엔 TOP7 참가자들을 향한 박수 소리로 가득 찼다.

“뭐, 뭐야?”

“뭐지?”

한국의 TOP7은 영문을 몰라 서로를 바라봤다.

곧, 찰리의 말이 이어졌다.

“축하드립니다. 이번 한국 TOP7 참가자들의 공연을 본 버스킹 관객 수 인원이 이번 더 넥스트 슈퍼스타 통틀어 최고로 많았습니다.”

찰리의 말을 이대훈 PD가 한국말로 번역해주었다.

그러면서 뒷말을 웃으면서 덧붙였다.

“물론 아직 버스킹 공연이 끝나지 않은 나라들도 있으니 너무 김칫국 마시면 안 됩니다. 괜히 설레발 치다 부정 타면 안 되잖아요.”

한국 PD인 이대훈 역시 성현의 팀이 최고 기록을 세우는 건 좋았다.

하지만, 괜히 미리 좋아했다가 결과가 안 좋게 나올까 걱정했던 것.

“김칫국?”

그리고 그때 한국 사위를 둔 찰리가 이대훈의 한국말을 중간에 알아들었다.

김칫국, 김칫국?

찰리는 곧 생각이 났는지 참가자들을 향해 한국말로 단호하게 말했다.

“노 김칫국. 김칫국 아니에요.”

찰리는 웃음기를 거두고는 한국의 TOP 7, 특히 성현의 팀을 응시했다.

“아직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독일의 버스킹 공연이 남았지만 그들은 결코 이 숫자를 뛰어넘을 수 없을 겁니다.”

찰리의 말과 동시에 그의 뒤로 설치된 스크린에 숫자가 떴다.

참가자들은 찰리의 손짓에 따라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

10,513

스크린에 떠오른 숫자를 본 한국의 TOP 7 참가자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만 명이 넘었을 거라고는 상상을 못 했던 것이다.

“대박......”

“쩐다......”

다른 한국팀 참가자들 모두 놀라서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러던 그들의 시선이 이내 성현의 팀으로 향했다.

저 정도로 많은 관객이 왔다는 건 자신들이 아니었으니까.

성현팀의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모인 그 수많은 관객들.

과연 그 관객의 수가 몇 명일지 참가자들의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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