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5화 (195/273)

195화

갑작스러운 아델의 등장에 성현은 크게 놀랐다.

첫 번째 버스킹 공연에서 아델이 관객으로 등장한다는 것은 예상 가능한 범주 내의 일이었다.

그런데 세 번째 공연에도 아델이 찾아오다니……?

‘이건 뭐 게임보다 더 게임 같잖아......’

이런 상황은 메이크 유어 스타를 플레이하면서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했다.

“이게 무슨 일이래요.”

“……우리 오늘 무슨 곡 준비했죠?”

“아델 곡은 없는데!”

황망하게 아델을 바라보던 임하나에게 천소울이 나직이 물었다.

오늘의 무대는 태반이 두 사람의 듀엣곡.

그 중에 아델의 노래는 더 이상 없었다.

두 사람은 하얗게 탈색된 얼굴색으로 성현을 바라봤다.

“괜찮아요. 그대로 가죠.”

성현도 당황스럽기는 마찬가지.

무슨 뾰족한 수가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설마 아델이 여기서 자신의 노래를 불러주지 않았다고 감정이 상할 위인이 아닐 거라고 믿는 수밖에.

‘그건 그렇고.’

영국의 팝스타 아델이 데뷔도 안 한 한국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직접 트라팔가 광장에 온다?

정식 공연장도 아니기에 위험에 노출되기도 쉬운 곳이었다.

정작 대여섯명의 경호원을 끌고 나타난 아델은 개의치 않아 보였지만.

이건 영화나 드라마로 만들어도 개연성 제로라는 비난을 받아도 할 말이 없는 상황.

SNS 홍보 좀 받자고 시작한 일인데, 이 정도로 일이 커질 줄은 몰랐다.

“아델!”

“아델! 이쪽 한 번만 봐줘요!”

갑작스러운 아델의 등장에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더욱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카메라맨들 또한 그녀를 찍기 바빴다.

“아델! 잠시만.”

현장을 지켜보던 찰리 PD가 자신이 이곳 책임자라고 밝히며 아델 쪽으로 다가갔다.

그는 아델에게 뭐라 귓속말을 하며 성현의 무대 쪽을 가리켰다.

아델은 곧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무대 쪽으로 걸어왔다.

아델이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했다.

“......우리한테 오는 거예요. 설마?”

임하나는 아델의 모습이 가까워질수록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나 지금 떨려서 기절할 거 같아요. 진짜로.”

“기절하더라도 공연은 끝내고 해요.”

천소울이 임하나를 놀리듯 말하지만 정작 그의 표정 또한 긴장감에 굳어 있었다.

마침내 아델이 무대로 올라왔다.

성현을 비롯한 그 누구도 먼저 입을 떼지 못한 채 그녀를 가만히 지켜봤다.

아델은 잔뜩 긴장한 셋의 표정을 보며 웃더니 이내 성현에게 손을 내밀었다.

“마이크 잠시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성현이 침착하게 자신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넘기려고 했지만 무리였다.

마이크를 잡은 그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당장 자신의 앞에서 글로벌 스타가 마이크를 달라고 하는데 성현이라고 침착할 수 없었다.

“고마워요.”

아델은 성현에게 여유 있게 웃어 보이며 무대 가운데로 걸어갔다.

다같이 아델을 연호하던 사람들은 아델이 마이크를 들어올리자 조용해졌다.

아델은 자신의 말에 집중하는 사람들을 둘러보고 미소지으며 말했다.

“다들 아시겠지만 전 이분들의 팬입니다.”

아델의 말에 성현의 팀을 응원하러 온 외국인들이 환호를 지르며 셋의 이름을 외쳤다.

아델은 흥분한 팬들에게 진정하라는 듯 쉬쉬, 거렸다.

이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는 제스처.

버스킹 공연을 보러온 관중들이 아델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체스터에 갔다가 우연히 세 사람의 무대를 보게 됐는데 그날 전 잊고 있었던 어떤 소중한 걸 깨달았어요.”

그렇게 말한 아델이 뒤를 돌아 임하나를 쳐다보았다.

“바로 열정입니다.”

아델의 말에 맨 앞에 서 있던 관중 몇몇이 휘파람을 불며 동조했다.

“이분들의 노래는 훌륭했고 노엘 겔러는 여기 있는 이 소녀가 저보다 노래를 잘 부른다고 극찬했어요.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그녀의 실력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으니까요.”

아델은 임하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임하나는 아델과 눈이 마주치자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노래를 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스피치일 뿐인데 박력이 엄청났다.

한순간에 사람들을 휘어잡는 아델의 말.

“하지만 제가 진심으로 이들의 무대를 보고 감동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음악을 진심으로 대하고 있으며 오디션이 아니라 공연 자체를 즐기고 있단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에요.”

싱어송라이터로 수많은 무대에 서본 아델의 말에 몇몇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주억거렸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성공과 부를 눈앞에 둔 사람에게 그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이미 부와 명예, 그래미 석권까지 도달한 선배의 말.

아델의 연설에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 모두가 순식간에 그녀의 말에 몰입해 조용해졌다.

“그래서 전 이분들을 응원해주려고 왔어요. 탑스타 아델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음악을 응원하는 팬으로서요. 저뿐만이 아니라 이곳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같은 마음이라 생각해요. 여러분들 모두 이 세분의 미래를 응원하지 않나요?”

아델의 말에 광장에 모인 사람들 모두 맞다고 소리를 질렀다.

관중들의 반응에 만족스럽다는 듯이 웃은 아델이 마지막으로 짚고 넘어가자며 입을 열었다.

“그럼 오늘 절 여기서 본 건 잊어주세요. 오늘의 주인공은 이 세분들이잖아요. 물론 어려운 일인 거 알아요. 제가 키가 좀 크거든요.”

여유있게 농담까지 던져가며 말하는 아델의 얼굴에서는 결코 미소가 떠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인사까지 마친 아델은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으며 무대를 떠났다.

“괜히 저 때문에 버스킹을 망친 건 아닌가 몰라요.”

아델이 마이크를 건네주며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

멍하니 있다가 성현이 전해주는 통역에 임하나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아니란 걸 온몸으로 표현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입에서 간단한 영어조차 튀어나오질 않았다.

“괜찮습니다. 와주신 것만으로 영광이에요.”

성현이 그런 임하나를 대신해 아델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아델은 마지막으로 멋진 무대를 기대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아델이 분위기를 정리한 이후 광장의 분위기가 달라졌다.

모여있던 시민들은 더 이상 아델을 찾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질서를 지켜가며 공연을 기다렸다.

“촬영 시작하겠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성현 팀의 버스킹 무대가 시작됐다.

“하나씨 할 수 있겠어요? 무리다 싶으면 천소울씨랑 순서 바꾸고.”

성현은 아델의 등장으로 인해 얼굴이 하얗게 질렸던 임하나의 상태가 걱정 되어 물었다.

천소울 역시 원한다면 바로 바꿔주겠다며 곁에 섰다.

두 사람의 배려에 임하나가 조금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저었다.

“할래요. 할 수 있어요.”

임하나, 아델이 보는 앞에서 도망치긴 싫었고 곧 흥분한 마음을 다스렸다.

“으아, 진짜 이럴 줄 알았으면 아델 노래로 준비할 걸.”

임하나가 아쉬운 듯이 투덜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그 모습에 성현은 확실히 그녀가 전보다 긴장을 푼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일렉 기타를 맨 성현이 튜닝을 점검했다.

“찢어버립시다.”

“당연하죠.”

두 사람은 마지막 각오를 다지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임하나는 자신감 있게 마이크를 잡으며 자신의 눈 앞에 펼쳐진 엄청난 인파를 마주했다.

“갈까요.”

성현이 스탭들에게 싸인을 보내자 이내 광장에 성현이 준비한 반주가 울려퍼졌다.

생각보다 많은 관중이 모이는 바람에 스탭들이 급히 스피커를 더 공수해 왔다.

그럼에도 상대적으로 뒤편은 소리가 적게 울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모인 관중들 아무도 불평을 쏟아내지는 않았다.

뒤로 갈수록 인파가 적어 더 자유롭게 음악 반주에 몸을 흔들 수 있었던 것.

쿵쿵 울리는 808드럼 베이스 반주에 힙합 사운드가 뒤섞였다.

그 반주에 성현의 일렉 기타 연주가 얹어졌다.

“네가 너무 아름다워 영원히 널 잊을 수 없어 그 눈빛이 항상 날 설레게 해.”

성현의 팀이 버스킹 무대에서 처음 부르는 곡은 바로 한국의 최정상 걸그룹의 노래.

유명한 노래의 편곡이기에 관중 몇몇이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KPOP의 위상이 높아진 탓인지 전주만 듣고도 노래를 눈치챈 몇몇 팬들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다 같이!”

팬들의 호응이 신이 난 임하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노래뿐만 아니라 걸그룹이 췄던 춤을 추면서 디바로서 모습을 뽐냈다.

곧 광장에 있던 사람들 모두 임하나 노래에 맞춰 몸을 흔들었다.

“남자들은 날 가질 수 있다 착각 난 많은 걸 원하지 않아 난 네 맘을 원해.”

임하나는 랩까지 선보였다.

여태까지 영국에서의 버스킹 무대와 다른 색다른 매력을 선보이자, 앞자리에서 노래를 듣고 있던 아델 또한 놀라서 눈이 커졌다.

“Amazing!”

그렇게 임하나 노래가 끝나갈 때쯤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노래에 몸을 맡겼다.

한 손에 맥주를 들고 있던 사람들도 맥주잔을 내려놓고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박수를 치기 바빴다.

어느새 광장 자체가 버스킹 무대가 아니라 콘서트장으로 변해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앞에서 노래를 듣던 아델 또한 마치 콘서트장에 온 것처럼 카메라를 들어 버스킹 공연을 찍기 바빴다.

스탭들은 그런 아델의 모습을 찍느라 바빴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 각자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음악을 즐겼다.

지금 이 자리에 있던 이들은 인종과 문화는 다르지만, 음악으로 하나가 되었다.

***

공연의 분위기는 무르익어갔다.

마지막 한 곡을 남겨둔 상황에서 성현이 마이크를 잡았다.

성현의 등판에 그를 알아본 관객들이 환호를 내질렀다.

“아쉽지만 오늘 준비한 곡은 다음 곡이 마지막입니다.”

호응에도 어쩔 수 없었다.

세 사람이 준비한 무대는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이미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스탭들이 어떻게든 통제를 하려고 뛰어다니고 있는 상황.

공연장도 아닌 간이 무대에서 더 시간을 끌기에는 애로사항이 많았다.

성현의 말에 사람들 모두 아쉬움에 더 불러 달라고 소리쳤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번 무대가 단순히 버스킹 무대가 아닌 본선 6라운드 무대인 만큼 정해진 시간이 있었다.

아델이 왔다고 해서,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룰을 어길 수는 없었다.

한바탕 야유가 가라앉기를 기다린 성현이 다시 입을 열었다.

“마지막 곡을 부르기 전에 곡에 관한 설명을 조금 드리고 싶어서요.”

성현의 말에 관중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성현은 무대와 가까운 곳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멤버들에게 잠시 시선을 던졌다.

“이 곡은 한국에서 음원 미션 당시 발표했던 곡으로 지금 무대에 함께하지 못한 저희 팀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인 동시에, 꿈을 향해 달려가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위로의 노래입니다.”

천천히 전달되는 성현의 말에 다들 놀란 표정이 되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를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참가자들의 자작곡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오늘 광장에는 오디션을 잘 모르다가 성현의 팀을 찾아온 이들이 더 많았다.

성현의 곡이라는 소리에 다들 놀라면서 기대감 어린 표정으로 무대를 바라봤다.

“단 한 분이라도 저희 노래를 듣고 위로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찾아주신 여러분 모두 감사드립니다.”

성현은 마이크를 내려놓고 건반 앞에 가 앉았다.

“하나, 둘.”

마지막으로 천소울과 임하나가 호흡을 맞추고.

영국까지 응원을 와준 아버지와 동료들, 그리고 이곳에 모인 팬들을 위한 마지막 노래를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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