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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4화 (194/273)

194화

성현의 원망한다는 말과 함께 스산한 바람이 이주성을 스쳤다.

“아버지 때문에 음악 하는 게 무서워질 만큼 스스로 위축됐었어요.”

“…….”

“그때 일이 아직 저한텐 트라우마로 남아있어요.”

이주성은 막상 성현의 입에서 솔직한 말을 듣자 미안함에 목이 메었다.

그는 아무 말도 못 한 채 그저 눈시울을 붉히며 먼 곳을 바라봤다.

“음악이 음학(音學)이 되면 안 된다.”

성현이 처음 재즈를 배웠을 때 동아리 선배가 성현에게 해줬던 말이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성현은 악보를 던지고서 자유를 얻었다.

누가 시키는 대로 치는 것이 아니라, 네가 치고 싶은 대로 쳐라.

그게, 음악이다.

성현이 이번에 그 말을 이주성에게 해주었다.

아버지가 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지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성현은 더 이상 하고 싶은 말을 꾹꾹 눌러 참지 않기로 했다.

“동아리 선배가 저한테 그 말을 해주는데 그때 머리를 망치로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제가 아버지한테 배워왔던 건 음학이었고 그게 정답인 줄 알고 살아왔으니까.”

“성현아…….”

“저 별거 아닌 말이 저한텐 위로가 됐어요. 음악이 즐거워도 되는 거구나, 즐거워야 하는 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됐거든요.”

이 말은 곧 성현에게 자신이 주입한 음악이 즐겁지 않다는 소리와 같았다.

이주성은 찬찬히 어린 날의 성현을 떠올려봤다.

제일 마지막에 클래식을 강요하면서 보여준 성현의 표정은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던 반면.

맨 처음 음악을 들려주었을 때, 어린 아들이 지었던 표정은 도통 기억나지 않았다.

“......미안하다. 그땐 그게 최선이라 생각했는데 돌이켜 보니 네게 상처만 준 것 같구나.”

성현의 말에 이주성은 어릴 적 성현에게 엄격하게 클래식만을 가르치고 콩쿠르 우승만을 원해왔던 것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그것이 성현을 위한 길이고, 음악은 그래야만 한다고만 생각했다.

지금은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걸 이주성 본인도 알게 됐다.

“솔직히 지금 트라우마를 다 극복했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많이 나아졌어요. 좋아하는 음악 하면서 좋아하는 사람들 만나고 요즘은 하루하루가 즐거워요.”

성현은 거기까지 말하고 잠시 고개를 들어 깜깜한 영국의 하늘을 올려다봤다.

지난밤, 천소울과 임하나와 함께 봤던 달이 조금 줄어들어 있었다.

아이리쉬 펍에서 하고 싶은 노래를 실컷 부른 천소울.

오늘은 노래보다 맥주라면서 두 사람이 공연을 하는 동안 즐거운 얼굴로 기네스를 추가 주문하던 임하나.

정신없이 기타를 튕기던 자신까지.

“그러니까 아버지가 저한테 죄송해할 필요 없어요.”

이주성은 성현의 마지막 말에 놀라서 성현을 봤다.

성현과 이주성, 두 사람은 대화를 하며 처음으로 서로의 얼굴을 마주 봤다.

“아버지도 제 하루가 행복해진 이유 중 하나니까요. 아버지 덕분에 지금 이렇게 좋은 식구들과 음악 할 수 있게 됐고 탈락해도 돌아갈 곳이 생겼잖아요.”

성현은 이주성을 향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런 성현의 미소를 본 이주성은 조용히 성현을 따라 웃었다.

‘어른이 됐구나.’

계속 어린 아들로 생각하던 것은 오히려 자신일지도 모르겠다.

“힘들면 말해. 탈락이고 뭐고 당장에라도 아버지랑 집 가면 되니까.”

예전에 콩쿠르 준비를 하면서 피아노 치는 손을 가차 없이 회초리로 내려치던 아버지가 이런 소리를 한다.

이 광경이 믿기지 않고 너무나 우습게 느껴져서, 성현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당장 공연이 코앞인 아들한테 그런 말해도 돼요?”

“뭐 어떠냐. 우승이 전부는 아닌데.”

우승이 전부다.

과거 생생했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겹쳐서 들리는 것만 같았다.

성현에게는 콩쿠르 대상을 타지 못하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던 시절이 있었다.

성현은 입을 떡 벌렸다.

“아버지 입에서 그런 말 나올 때마다 살짝 소름 돋아요.”

“뭐야?”

성현과 이주성은 그렇게 서로 가볍게 농담을 주고받으며 한참을 공원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고 어느덧 공연 당일이 됐다.

성현의 일행들은 공연 장소에 대한 홍보를 딱히 진행하진 않았다.

오히려 성현이네 팀의 팬이 된 사람들이 소식을 듣고는, SNS에 대신 장소 홍보를 해주는 상황이었다.

이건 모두 아델로 인해 영국 내에서 성현의 일행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기 때문.

예상대로 엄청난 인파가 트라팔가 광장에 몰렸다.

김인호는 스탭들에게 미리 광장에 무대 준비를 해놓으라고 말해둔 상태였다.

공연 직전에 카메라 설치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라는 판단이었고, 이는 주효했다.

“이건 뭐 버스킹이 아니라 콘서트장이라 봐도 되겠는데?”

나름 서열이 높아진 김인호는 성현의 일행과 함께 트라팔가 광장에 도착한 참이었다.

벌써부터 광장에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본 김인호가 혀를 내둘렀다.

오늘도, 특종감이었다.

얼마나 많은 조회수가 나올지 벌써부터 기쁜 현기증이 나는 것을 느끼며 김인호는 성현에게 인사를 한 뒤, 스탭들을 단속하러 떠났다.

“……스피커 더 설치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임하나는 몰린 관중들을 보면서 질린 듯이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영국의 넬슨 제독의 동상부터 해서 내셔널 갤러리 앞까지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갑자기 몰린 인파들 때문에 영국 경찰들까지 출동하여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주최 측 또한 생각보다 빠르게 많은 인파가 몰리자 사전 준비를 했음에도 당황한 모습이 역력했다.

그들은 미리 협의된 버스킹 무대를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이제야 실감 나요? 더 넥스트 슈퍼스타. 당신들 이미 스타예요.”

스탭들을 지도하던 메인 PD 찰리 브라운이 성현의 일행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그는 얼굴 가득 미소를 숨기지 못하며 말했다.

그가 아무리 한국인 사위 때문에 한국에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성현과 천소울의 능력을 높이 샀다고 생각했는데, 부족했던 모양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한국이란 작은 나라에서 온 아시아인들이었고, 영국이 어딘가?

엘튼 존과 비틀즈, 레드 제플린, 오아시스, 아델 등 수많은 가수를 배출한 나라다.

“헤이! 거기 내 자리라고.”

“버스킹에 내 자리, 네 자리가 어딨냐?”

“엄마, 엄마아!”

그런 콧대 높은 영국인들이었는데…….

트라팔가 광장은 벌써 거의 포화상태였다.

행인들은 서로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몸싸움을 벌이는가 하면, 미아까지 나오고 있었다.

아시아에서 온 세 명의 가수들을 보기 위해 이렇게 벌떼처럼 몰려들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장담하는데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국 통틀어 가장 많은 관객이 모인 걸로 기록될 겁니다.”

찰리 브라운은 자신이 더 벅차서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그 말에도 입을 벌리고 평소와 달리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이건 게임에서도 없던 일이야.’

아델이 공연을 우연히 보고 유명세를 얻는 것까지는 게임에서도 이미 겪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우고 차량 이동이 불가능할 정도로 사람들이 몰려들다니.

지금 같은 상황은 게임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이게......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성현은 당장 눈앞에서 보고 있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예상치 못한 성과였고, 상상도 못 했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성현 말고도 임하나, 천소울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전부 다 우리 공연 보러온 건 아니겠죠?”

“맞는 것 같은데. 저거 임하나씨 이름이잖아.”

천소울은 인파들 사이를 가리켰다.

그곳에는 어설프게 임하나의 이름과 함께 한국어 응원 문구를 든 외국인 팬들이 공연을 기다리고 있었다.

임하나 뿐만이 아니었다.

성현과 천소울의 이름이 적힌 응원 문구를 들고 있는 사람도 많았다.

개중엔 태극기를 들고 있는 외국인들도 보였다.

“이야, 영국의 심장에서 태극기를 보게 될 줄이야.”

같은 한국인인 김인호 AD는 재빠르게 카메라맨들을 호출했다.

그 역시 국뽕에 차올라 연신 감탄사를 뱉었다.

“죄송합니다. 1시간 후에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영국 측 스탭들의 생각보다 많이 모인 관객들 때문에 급하게 무대의 장비를 다시 세팅해야 했다.

그 때문에 예상보다 버스킹 공연이 조금 딜레이 됐다.

성현은 남은 시간 동안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한국에서 온 성현의 동료들 역시 성현 팀의 버스킹 무대를 보기 위해 트라팔가 광장으로 온다고 했기 때문.

‘다들 와있으려나.’

성현은 혹시나 사람이 너무 많아 못 왔을까봐 걱정되어 찾았다.

“성현씨! 저기 봐요!”

그때, 임하나와 천소울이 성현을 부르며 인파들 사이 한 곳을 가리켰다.

저 멀리 성현 팀의 응원 문구를 들고 있는 이주성과 동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 응원 문구를 들고 있는 멤버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관객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무대에 오르라는 스탭의 말이 들렸다.

드디어 성현과 일행이 주최 측이 내셔널 갤러리 앞에 만든 무대에 올랐다.

분명 버스킹 공연임에도 단차가 필요하다는 판단, 셋의 무대는 작은 단상처럼 꾸며졌다.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온 이성현, 천소울, 임하나입니다.”

이성현! 천소울! 임하나!

성현의 말과 동시에 그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한국어로 셋의 이름을 불렀다.

트라팔가 광장에 셋의 이름이 가득 메워졌다.

너무 넓은 광장에 파도처럼 환호가 여기저기서 뒤섞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는 성현을 비롯한 멤버들은 모두 벅찬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무대를 했고 많은 팬들의 응원을 받아왔다.

그런데 한국이 아닌 낯선 땅 영국에서 외국인 팬이 태극기를 흔드는 광경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

“우리 이번 공연 찢어버려요.”

임하나는 자신을 응원하러 온 팬들에게 손을 흔들다가 말했다.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최고의 무대를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 굴뚝까지 차올랐다.

이는 성현과 천소울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회 없이 즐기다 갑시다. 다들 자신 있죠?”

성현의 말에 천소울과 임하나가 자신있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셋이 자리를 잡으려던 찰나였다.

갑자기 광장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분위기가 시끌벅적해지기 시작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여기저기 흥분한 비명 소리도 들려왔다.

“갑자기 뭐야? 사고났나 봐요.”

임하나는 점점 더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지자 걱정이 돼서 말했다.

성현 역시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해서 현장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현장을 촬영 중이던 드론 카메라가 어느 한 지점을 계속 맴돌며 앵글을 잡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이지. 누가 다치기라도 한 건가.’

성현이 그 모습에 인상을 찌푸리고 스탭들에게 물어보려던 순간.

갑자기 사람들이 동시에 누군가의 이름을 연호했다.

아델!

아델!

‘……아델?’

성현은 갑자기 등장한 아델의 이름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스탭을 붙잡고 물어보자, 무선을 하며 히죽거리던 스탭의 입에서 엄청난 말이 돌아왔다.

“지금 현장에 아델 와있대요. 당신들 응원한다고.”

스탭의 말에 성현을 비롯해 천소울과 임하나 모두 깜짝 놀라 당혹감을 숨기지 못했다.

드론 카메라가 머물던 자리, 그 자리에 빼곡하게 몰려 있던 인파들이 조금씩 길을 비켜주는 모습이 보였다.

높은 사람들의 벽이 사라지자,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인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Hi.”

그렇다.

영국의 팝스타 아델이 등장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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