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3화 (193/273)

193화

주최 측은 호텔 근처에 합주를 할 수 있는 연습실을 마련해줬다.

성현의 일행은 김치찌개 집을 찾아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곧장 연습실로 향했다.

“마지막 공연은 두 사람 듀엣곡이 많은 만큼 개인 곡보단 합을 맞추는 것에 중점을 두고 연습할게요.”

첫 번째와 두 번째 공연에서는 솔로곡에 집중했다.

그에 반해 세 번째 공연은 마지막 버스킹 공연인 만큼 두 사람의 완벽한 하모니를 보여줄 수 있는 합주곡 위주로 곡을 정했다.

세 번째 공연에서는 성현 역시 다양한 악기를 다루도록 편곡을 해놓은 상태였다.

성현의 얼굴로 많이 알려지다 보니, 성현이 재즈 피아노를 연주했을 때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이 좋았다.

이를 본 임하나가 성현에게 제안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 사람 모두 순조롭게 연습을 이어가는데 연습이 잘 되는 것과 별개로 성현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평소의 성현답지 않게 자주 휴대폰을 쳐다봤다.

“너무 걱정 마요. 큰일이면 진작 연락 왔을 겁니다.”

천소울은 오히려 성현이 걱정되는 마음으로 말했다.

성현이 천소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연습을 재개하려던 순간.

갑자기 합주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김인호 AD가 들이닥쳤다.

“깜짝 놀랐잖아요!”

임하나는 갑자기 들이닥친 김인호 때문에 놀라 소리쳤다.

이번 합주는 방송에 안 보낸다는 김인호의 말에 카메라도 설치되어 있지 않은 상태였다.

성현의 팀은 지금까지 방송 분량이 차고 넘친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임하나의 비명을 들은 김인호는 싱글벙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세 사람을 쳐다봤다.

“아직 깜짝 놀라긴 이를 텐데.”

김인호는 뜻을 알 수 없는 의미심장한 말을 흘렸다.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설명을 해주지 않는 김인호의 행동에 성현과 두 사람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알 수 없는 소리를 하며 옆으로 비켜선 김인호 뒤로 예상치 못한 사람이 들어왔다.

성현을 비롯한 멤버들 모두 벙찐 표정이 되었다.

“짜잔! 서프라이즈!”

등장한 사람은 서지현이었다.

얼굴 가득 장난스러운 미소를 띠고 멤버들을 향해 두 팔 벌려 외치는 서지현.

뒤이어 그녀의 뒤로 숨어 있던 사람들도 하나 둘 등장했다.

“야...... 네가 왜 거기서 나와......?”

다들 멍하니 넋이 나가 있는 사이, 임하나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보고 싶다고 해서 직접 찾아 왔지롱!”

환하게 웃으면서 임하나에게 다가오는 릴리부터.

“그러게 왜 술 먹고 보고 싶단 문자를 보내요. 사람 설레게.”

성현에게 와서 장난스럽게 어깨를 치는 서자명.

“형! 저도 보고 싶었어요!”

성현에게 와락 달려드는 요하까지.

아일랜드에서 두 번째 공연을 한 날, 알딸딸하게 취한 성현이 멤버들 모두에게 보고 싶다는 문자를 보냈었다.

그런데 진짜로 멤버들 모두가 영국까지 성현을 보러 찾아온 것이다.

게다가 멤버들 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 대표님까지......?”

한국에 있던 이주성과 심훈영까지 영국으로 찾아왔다.

“원래는 더 비기너 형들도 같이 오기로 했는데 스케줄 때문에 안 된대요. 형. 완전 놀랐죠?!”

요하는 뿌듯한 표정 지으며 물었다.

성현은 요하의 물음에 대답하는 대신 지금 상황에 대해 묻는 게 먼저였다.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갑자기 영국엔 왜 오셨어요?”

당황한 성현의 말에 대답한 것은 이주성이었다.

“내가 데려왔다. 마지막 버스킹인데 응원이라도 해주고 싶어서.”

“그럼 미리 연락이라도 했어야죠.”

이주성은 아들을 제대로 놀라게 한 것이 뿌듯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데 성현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당장 한국에 있던 가족과 멤버들을 만났다는 기쁨보다는 조금 화가 난 듯 보였다.

“어…… 성현씨?”

순식간에 조금 싸해진 분위기에 다들 슬그머니 팔을 늘어뜨렸다.

놀러 온 멤버들은 모두 먼저 쉽사리 말을 꺼내지 못했다.

“성현씨, 왜 그래요. 아들 응원하려고 오신 것 같으신데.”

임하나가 나서서 어색하게 웃으며 분위기를 풀려고 했다.

그래도 성현의 굳은 표정은 풀릴지 몰랐다.

“성현씨.”

아무 말도 못 하고 고개를 숙인 성현의 어깨를 천소울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툭툭 두들겼다.

당연했다.

성현은 연락이 안 됐던 그 짧은 시간 동안, 온갖 생각을 했다.

혹시 한국에 있는 가족과 멤버들에게 무슨 걱정이라도 생긴 건가 싶어 속이 타들어 가는 줄만 알았다.

“……오기 전에 연락이라도 할 수 있었잖아요. 몇 번을 전화했는데.”

성현은 한국에서 온 멤버들 하나하나를 보며 굳은 목소리로 말했다.

가만 듣고 있던 이주성이 나섰다.

“내가 오자고 했다. 뭐라 할 거면 나한테 뭐라 해.”

멤버들을 모두 자신 뒤로 물린 이주성이 성현 앞으로 향했다.

이주성은 성현을 놀래켜 주고 싶은 마음에 멤버들 모두에게 퍼스트 클라스 좌석을 끊어주며 영국으로 가자고 했다.

멤버들은 이주성의 제안에 응한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막상 성현의 반응이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달랐다.

그 모습에 이주성 또한 조금 감정이 상하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부자간의 신경전에 누구 하나 나서지 못하고 숨을 죽였다.

“영국에 가자고 제안한 건 대표님이지만 연락 안 한 건 우리 잘못이야. 대표님은 연락 안 되면 네가 걱정할 거라고 반대했어.”

결국 둘 사이를 중재하기 시작한 것은 심훈영.

성현에게 그만하라는 듯이 손짓한 그가 이주성이 차마 하지 못한 변명을 대신했다.

“맞아요. 연락하지 말자고 한 건 저희 의견이었어요. 대표님은 끝까지 반대하셨어요.”

서지현 말에 요하 역시 조금 눈치를 보더니 앞으로 나왔다.

“형 놀라게 해서 죄송해요. 제가 말하지 말자고 했어요. 깜짝 놀래켜 주고 싶어서......”

요하는 처음보는 성현의 화가 난 모습에 주눅이 들어서 우물쭈물거렸다.

주선아는 괜히 요하가 큰 죄인이 된 듯한 모습에 괜히 한 마디를 보탰다.

“그러게 내가 연락하고 가자고 했잖아. 아무튼, 김요하.”

“난 그냥 형 놀라게 해주려고 한 거지...... ”

요하는 주선아의 구박에도 기가 죽어 풀어질 줄을 몰랐다.

성현은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 사람들한테는 아무 죄가 없었다.

“난 진짜 무슨 일 생긴 줄 알고...... 화낸 건 죄송해요.”

성현은 멤버들의 말에 마음이 풀어졌는지, 전보다 조금 표정을 풀며 말했다.

심훈영은 그런 성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분위기를 풀었다.

“그만큼 우리 걱정했단 거니까 기분 좋은데? 이제 제법 프로듀서 냄새가 나네. 안 그러냐, 애들아?”

멤버들을 돌아보며 묻는 심훈영 말에 멤버들은 슬그머니 웃으며 그렇다고 말했다.

결국, 성현이 피식 웃고, 방에 있던 멤버들도 모두 그제서야 표정을 풀고 웃으며 재회를 만끽했다.

“우리가 연습 중엔 방해한 건 아닌가 몰라.”

“안 그래도 잠시 쉬려고 했어요.”

심훈영의 말에 연습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성현이 정리를 하려 했다.

솔직히 성현의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있는 바람에 오늘 제대로 연습이 되지도 않고 있기도 했다.

“그러지 말고 연습 마저 해요. 우린 나가서 근처 관광이라도 하고 있을 테니까 연습 끝나고 저녁에 만나요.”

서지현의 말에 성현이 임하나와 천소울을 돌아보았다.

두 사람 모두 그편이 나았다고 판단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멤버들의 얼굴도 직접 봤겠다, 성현의 걱정거리가 사라졌으니 연습은 빠르게 진행될 테니까.

“그럼 다 같이 저녁 식사라도 해요. 술은 당장 연습 일정 때문에 안 되겠네요.”

“그래, 그럼. 우린 나가 있을게.”

성현의 말에 심훈영은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서는 아직도 아들 얼굴을 제대로 보지 않는 이주성을 챙겨서 먼저 합주실을 나갔다.

“형 이따 봐요!”

“하나 언니, 조금 이따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 제대로 말해줘야 해요?”

“영준씨, 저희는 술 한잔하죠.”

“그럴까요?”

멤버들은 그렇게 하나 둘 합주실 나갔다.

성현은 합주실을 나가는 이주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어디까지 했었죠?”

성현은 천소울, 임하나와 연습을 마저 하려는데 천소울이 닫힌 대기실 문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조용히 시선을 성현에게 돌렸다.

“따라가 봐요.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괜찮아요. 연습 중이잖아.”

고개를 저으며 하는 성현의 말에 임하나가 무슨 소리냐는 듯이 말했다.

“이미 곡 리스트도 나왔고 연습은 우리끼리도 할 수 있어요. 잠깐이라도 나갔다 와요.”

천소울도 그렇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성현은 조금 망설이다가 연습실을 나갔다.

“금방 돌아올게요!”

***

호텔 근처 공원, 심훈영에게 이주성이 저기에 있다는 것을 들은 성현은 서둘러 공원 안을 헤맸다.

저 멀리 이주성의 등이 보이자 그 곁으로 가서 천천히 보폭을 맞추는 성현.

성현과 이주성은 조금 거리를 두고 공원을 걸을 뿐, 서로 아무 말이 없었다.

‘아버지랑 단둘이 걷는 건 처음 아닌가.’

성현은 막상 이주성과 이야기를 하려고 나왔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건 이주성 또한 마찬가지였다.

“잠깐 앉았다 가자.”

공원 벤치에 나란히 앉은 성현과 이주성.

둘은 조용한 공원의 경치를 바라보며 말이 없었다.

이번에 먼저 말을 꺼낸 건 이주성이 아니라 성현이었다.

“아깐 죄송해요. 그렇게 화낼 일도 아니었는데.”

성현의 말에 앞을 보던 이주성이 성현 쪽을 돌아보더니 이내 다시 앞을 봤다.

“네가 왜 미안해. 한 집안의 가장이라면 응당 그래야지.”

성현은 당연히 이주성이 한마디 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자신의 편을 들어주자 조금 놀라 이주성을 돌아봤다.

“그 친구들, 네가 지킬 식구잖냐. 걱정하는 건 당연한 거지.”

성현의 시선에 이주성은 덤덤하게 말했다.

식구, 그 말을 곱씹던 성현이 작게 말했다.

“아버지도 제 식구세요. 가족이잖아요, 우리.”

그 말에 이주성은 놀란 듯 말이 없었다.

성현이 멤버들 못지않게, 아니 어쩌면 멤버들보다 더 자신을 걱정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사실이 이주성의 가슴을 무겁게 짓눌렀다.

“가족이라...... 때론 가족이 남보다 더한 상처를 주기도 하지.”

이주성이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지금은 성현을 응원하기 위해 영국까지 온 이주성도 잘 알고 있는 사실.

과거 성현이 클래식 말고 다른 음악을 한다고 했을 때 자신이 성현에게 줬던 무수한 상처들.

성현은 아직 그 상처를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이미 지난 일 들춰봤자 달라질 건 없겠지만...... 차라리 네가 그땐 왜 그랬냐고 화라도 내주면 좋겠어. 그럼 속 시원하게 풀기라도 하지.”

이주성의 말에 성현이 뭐라 입을 열라 했지만, 이주성이 조금 더 빨랐다.

“그런데 넌 그런 애가 아니잖냐. 나도 자꾸 그때 일 들추기 싫다만, 네가 너무 말이 없으니 혼자 속으로 앓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 자책하고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이 많아.”

묻어뒀던 이주성의 속 이야기에 성현은 깜짝 놀랐다.

이주성과 성현이 과거 일을 잊고 화해를 했다지만 표면적일 지도 몰랐다.

이주성은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과했다.

하지만 아직 이주성은 자신의 아들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성현이 그에게 그의 진심을 터놓은 적이 없었기에.

그리고 그건 다른 의미로 이주성에게 또 다른 걱정을 안겨주었다.

성현이 이 모든 화해의 과정을 너무나 조용히 받아들였기에 조용히 곪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속이 쓰렸다.

“저 아버지 많이 원망했어요.”

그리고 오랫동안 눌러 담아왔던 성현의 말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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