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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2화 (192/273)

192화

“성현씨는 어디서 하고 싶으세요?”

임하나는 스크린에 떠 있는 버스킹 공연 리스트들을 훑어보며 물었다.

“생각해 둔 곳이 있습니까?”

임하나와 천소울은 이번에도 장소 선택은 성현에게 맡기기로 했다.

궁금하다는 듯이 묻는 두 사람을 두고 성현은 말없이 남은 16개의 장소 리스트를 다시 한번 체크했다.

다행히 아직도 기억에 남는 장소 몇 군데가 눈에 띄었다.

“생각해 둔 장소가 몇 군데 있긴 한데......”

미리 뽑아둔 후보군이 몇 있기는 했지만, 성현의 눈에 들어온 곳은 단 한 곳이었다.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이어야 돼.’

첫 번째, 두 번째 공연까지 마친 성현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성현의 팀이 웬만한 관객을 끌어올 수 있다고.

게다가 세 번째는 지금까지와의 공연과는 달랐다.

게임을 통해 마지막 버스킹 공연과 관련된 특이사항을 미리 아는 성현은 망설임 없이 한 장소를 선택했다.

이번 선택에 제일 큰 영향을 끼치는 건 바로 최대한 많은 관객들을 수용할 수 있는 장소이냐 아니냐.

고민은 길지 않았다.

성현은 이대훈 PD를 불렀다.

“세 번째 버스킹 장소 선택하겠습니다.”

“말씀하세요.”

이대훈과 상대팀이 모두 성현에게 주목했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여기로 선택하겠습니다.”

성현이 택한 곳은 영국 런던의 심장, 수많은 집회가 열리기도 하는 트라팔가 광장이었다.

***

성현의 팀은 이른 아침부터 호텔을 나와 체크 아웃을 했다.

다음에 있을 버스킹 장소가 영국 런던인 만큼 다시 히드로 공항으로 가기 위함이었다.

성현은 모든 짐을 챙기고 버스에 오르며 스탭들의 눈치를 살폈다.

이제 슬슬 말할 때가 되었는데…….

“출발하기 전에 잠깐 공지사항이 있겠습니다.”

‘이제 발표하려나.’

스탭의 말에 성현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공지가 곧 발표될 거라고 예상했다.

버스에 이대훈 PD가 올라탔다.

갑자기 이대훈 메인 PD가 버스에 올라타자 천소울과 임하나는 놀란 눈치였다.

“다들 더 넥스트 슈퍼스타 SNS 계정을 확인해주시길 바랍니다.”

이대훈의 말에 임하나와 천소울은 영문을 몰라하며 휴대폰을 확인했다.

“어, 이래도 되는 거예요?”

임하나가 놀라서 외치고, 천소울은 말없이 명단을 확인했다.

미국 1번 팀 – 한국 홍대 놀이터

미국 2번 팀 – 한국 부산 해운대

독일 1번 팀 – 프랑스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

독일 2번 팀 - 프랑스 디종 다르시 광장

스페인 1번 팀 – 일본 도쿄 메이지 신궁

스페인 2번 팀 – 일본 고베 난킨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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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1번 팀 –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

한국 2번 팀 – 영국 리버풀 매튜 스트리트.

이전 공연과 다르게 이번엔 버스킹 공연 장소가 주최 측 SNS 계정을 통해 미리 공개가 된 것이다.

첫 번째, 두 번째 버스킹이 돌발적이었던 만큼 관객이 모이는 데 있어서 한정적이었다.

음악을 듣고 모여드는 행인이 얼마나 많으냐.

바꿔 말하면 ‘더 넥스트 슈퍼스타’를 모르는 사람이라도 멈춰서게 할 공연을 준비해야 했다.

그리고 결과는 그날의 우연에 맡겨야 했다.

놀라는 참가자들한테 이대훈 PD가 덤덤하게 말했다.

“마지막 버스킹인 만큼 주최 측에서 특별히 장소를 공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이대훈 PD가 잠시 성현의 일행들, 특히 임하나를 응시하고서는 마저 말했다.

“SNS를 이용하든 탑스타 인맥을 활용하든, 어떤 방식으로도 공연장 홍보가 가능합니다. 각 팀 모두 총력을 기울여 주시길 바랍니다.”

이대훈 PD은 그 말을 끝으로 버스에서 내렸다.

그 말에 임하나는 조금 들뜬 표정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우리 완전 운 좋았어요. 광장이니 사람들이 많이 몰려도 전부 수용 가능할 거 아니에요! 성현씨 짱!”

임하나는 성현에게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성현 역시 웃으며 장난스럽게 화답했다.

“아델보다 노래 잘 부르는 하나씨 때문에 사람 많이 몰릴 거라 생각하고 고른 건데 운이 좋았네요.”

“아! 진짜! 이제 성현씨도 저 놀려요?!”

성현에 말에 신나 하던 임하나가 뚝 멈췄다.

임하나는 믿었던 성현까지 자신을 놀리자 툴툴거렸다.

그런데 뭔가가 이상했다.

임하나를 놀릴 땐 빠지지 않던 천소울이 잠잠한 것.

“웬일로 가만있어요?”

임하나가 조금 의아해져서 천소울 쪽을 쳐다봤다.

그런데, 천소울은 임하나가 아니라 성현을 보고 있었다.

그것도 빤히, 아주 미심쩍다는 듯이 눈을 가늘게 뜨고서.

“왜요?”

“알고서 골랐어요?”

천소울의 말에 성현이 뜨끔해서 시선을 돌렸다.

이상한 부분에서 감이 좋았다.

“뭘 알고서 골라요.”

“버스킹 장소요. 사람 몰릴 거 알고 광장으로 선택한 겁니까?”

“그걸 제가 무슨 수로 알아요.”

두 사람의 말을 듣던 임하나가 혼란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래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천소울은 결국 성현이 입을 열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했는지 고개를 저으며 입을 닫았다.

성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여전히 시선은 창밖으로 돌렸다.

‘큰일날 뻔했네.’

성현은 이미 게임을 통해 세 번째 공연은 장소 홍보를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리 장소가 홍보된다면, 지금까지 했던 것처럼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좁은 거리는 공연 장소로 부적합했다.

이미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세 사람이기에 사람들을 많이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을 택한 거였다.

‘물론 그게 다는 아니지만.’

성현이 많은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광장을 택한 마지막 이유.

바로 공연비 때문이었다.

이번 미션은 공연을 본 관객들이 낸 공연비가 각 팀의 운명을 결정한다.

지금까지 공연이 선전했기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해도 신경이 쓰였다.

마지막 공연을 앞두고 있었기에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서 성현은 일부러 많은 인원을 수용할 수 있고, 동시에 많은 공연비를 받을 수 있는 광장을 택한 거였다.

“결과적으로 잘됐으니까 인상 풀어요.”

성현은 자신에게서 의심스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는 천소울에게 말했다.

능청스럽게 웃는 성현의 모습에도 천소울의 시선은 떨어질 줄 몰랐다.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뭐가요?”

임하나는 지금 천소울이 더 이상하다는 듯이 그의 말에 집중했다.

“첫 번째 공연 장소부터 시작해서 이 모든 게 정말 우연이라고?”

천소울은 성현이 공연 장소를 선택한다고 하고 나서부터 영국에서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물론, 셋의 실력이 출중한 것도 있지만.

첫 번째 공연에서 아델의 관심을 받고, 마지막 공연에서 그 영향력을 발판 삼아 거대 광장에서 공연비를 끌어모은다?

우연치고는 너무 아귀가 잘 들어맞았다.

“우연이 아니면 뭐겠어요. 제가 관계자도 아니고.”

성현은 짐짓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했다.

천소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양심에 찔렸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그래요. 그냥 운이 좋았던 거지. 운도 실력이라잖아요. 성현씨 실력이 좋은 거라구요. 그리고, 그날 그 자리에 아델이 올지 이 오디션 관계자라도 어떻게 미리 알았겠어요. 안 그래요?”

“…….”

임하나 마저 성현을 옹호하며 나서자 천소울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 뒤로도 성현을 의심스럽게 쳐다보다 이내 시선을 거두었다.

성현은 그가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히드로 공항에 도착한 뒤 곧장 런던에 위치한 호텔로 이동했다.

새로운 방을 배정 받은 성현의 일행들은 각자 휴식을 취한 뒤 오후가 되자 호텔 밖으로 나왔다.

“다들 먹고 싶은 거 있어요?”

호텔에서 먹는 것보다 이왕 런던에 온 거 다 같이 수도에 있는 영국 음식을 먹으러 가기로 한 것이다.

“저 슬슬 한식이 없고 싶은데 저만 그래요? 나만 촌스러운 건가?”

그런데 임하나가 슬그머니 손을 들어 올리더니 말했다.

어느덧 한국을 떠나온 지도 꽤 됐기에 슬슬 고향의 맛이 그리워진 것.

더 이상 튀기고, 볶고, 빵에 생선을 끼워놓은 걸 먹고 싶지는 않았다.

이는 그녀뿐만이 아니었다.

“김치찌개가 당기긴 하네요.”

천소울 역시 한국인이긴 마찬가지였다.

매일 기름진 음식만 먹다 보니 얼큰한 국물이 먹고 싶어졌던 것.

“제가 아는 곳이 있는데 거기로 갈래요?”

두 사람의 말에 성현이 제안했다.

“성현씨가 아는 곳이요? 성현씨 런던 와봤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 따라서 몇 번 와봤어요. 공연 보러.”

성현은 클래식 애호가인 이주성을 따라 세계를 유랑했다.

유명한 피아니스트, 바이올리니스트 등 한국에서 보지 못하는 세계 거장들의 콘서트를 보기 위해 영국에도 몇 번 들렸었다.

영국을 옆 동네처럼 몇 번 와봤다고 말하는 성현을, 두 사람은 착잡한 눈으로 쳐다봤다.

이런 사람을 지금까지 몰라보고…….

“부럽다. 전 다닌 거라곤 국내 여행 말곤 없는데......”

“국내 여행이 뭐 어때서요. 한국 무시합니까?”

천소울이 기다렸다는 듯이 받아쳤다.

분명 방금 전까지 자신과 같이 씁쓸한 표정이었으면서.

임하나는 기가 차서 말했다.

“또 시작이네. 좋은 말 할 때 그만해라.”

“해라? 반말하시는 겁니까?”

임하나는 천소울이 다시 놀릴 기미를 보이자 처음부터 싹을 끊어 버렸다.

띠링.

그때, 커넥트 앱을 통해 알람이 울렸다.

“연습실 대여됐네요.”

앱을 통해 연습실 대여가 완료됐다는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밥 먹고 바로 갈까요?”

연습실이 대여됐다는 말에 바로 성현을 돌아보며 묻는 임하나의 표정이 상기되어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성현이 없었다.

성현은 그새 일행들과 조금 떨어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거는 중이었다.

‘아까부터 누구한테 저렇게 전화를 거는 거지.’

임하나는 성현을 조금 걱정스럽게 쳐다봤다.

성현은 상대방이 전화를 받지 않는 듯 전화기를 금방 귀에서 뗐다.

‘왜 연락이 안 되는 거지. 무슨 일 있나.’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전화 기록을 확인하는 성현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성현의 통화목록에는 이주성을 비롯해 심훈영, 서지현 등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던 흔적들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들 모두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무슨 문제라도 생긴 겁니까?”

천소울은 그런 성현이 걱정되어서 물었다.

“다들 멤버분들한테 연락 좀 해보시겠어요?”

성현은 두 사람에게도 멤버들에게 연락을 해보라 했다.

‘내 핸드폰에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는 거니까.’

성현은 한 사람도 아니고 이렇게 단체로 전화를 받지 않는 거라면, 자신의 휴대폰에 문제가 있는 걸 수도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임하나와 천소울은 성현의 부탁에 바로 각자 멤버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그들 또한 금방 휴대폰을 귀에서 떼버렸다.

“일단 지현이랑 요하는 안 받아요.”

“선아랑 서자명씨도 안 받습니다.”

성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쯤되자 이제 두 사람도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한테도 더 해볼게요.”

임하나가 남은 멤버들에게도 마저 전화를 걸어보는데,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사고라도 난 걸까.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연락이 됐는데......’

성현은 이렇게 단체로 전화를 받지 않자 최악의 상황까지 떠올리는 중이었다.

무슨 문제가 생겼다 하기에는 당장 하루 전까지만 해도 이주영과 심훈영과 통화를 했었다.

이렇게 갑자기 연락이 안 된다는 건 무슨 사고에 휘말렸다는 것 말고는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혹시 모르니까 부재중 보면 연락 달라는 메시지라도 남겨두죠.”

당장 한국에 없는 성현이 할 수 있는 건 메시지를 남기는 것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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