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91화 (191/273)

191화

호텔 라운지 바에 도착한 천소울은 맥주 대신 탄산수를 주문했다.

성현과 임하나만 맥주 한 잔씩을 주문했다.

맥주가 나오길 기다리는 동안 휴대폰을 보던 임하나가 갑자기 흥분해서 소리를 질렀다.

“대박. 나탈리 포르트만이 제 영상에 좋아요 눌렀어요!”

이번에는 할리웃 유명 배우가 임하나 영상에 좋아요를 누른 것.

성현과 천소울도 그 유명 배우의 이름에 놀라서 휴대폰을 확인했다.

“SNS가 무섭긴 하네요.”

임하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신기한지 열심히 새로고침을 하며 아델의 계정을 확인했다.

“아무리 좋아도 맥주는 딱 한 잔만 마셔야 해요.”

성현은 임하나가 여기서 더 신나서 과음을 할까 봐 말렸다.

임하나는 그 말에 아쉬운 듯 입을 삐죽 내밀었다.

아마 나탈리 포르트만이 와도 성현의 과보호는 이길 수 없을 것이다.

휴대폰을 보던 천소울 역시 들뜬 표정으로 성현을 쳐다봤다.

“첫 공연보단 아니지만, 오늘 공연 반응도 괜찮은데요?”

천소울이 보고 있던 것은 그래프턴 스트릿 버스킹 영상이 올라온 너튜브 영상이었다.

아까 행인 중에 한 명이 찍어서 올렸는지 화질이 좀 떨어졌지만 벌써부터 높은 조회수를 찍고 있었다.

“아무래도 아델을 이기긴 힘들겠죠.”

아무리 아일랜드에서의 버스킹 공연이 좋았다 해도 첫 번째 공연에서의 아델의 힘은 무시할 수 없었다.

그렇기에 성현이 먼저 체스터 시계탑 광장을 선점했던 것도 있었다.

잠시 생각하던 성현이 덧붙였다.

“화제성은 덜 할지 몰라도 공연비는 두 번째 공연이 더 많을 거예요.”

이번 오디션의 승패를 결정하는 건 영상 조회수가 아니라 공연비였다.

비록 두 번째 공연이 화제성 면에서 밀릴지는 몰라도 현장에서의 반응만큼은 결코 첫 번째 공연에 뒤처지지 않았다.

오히려 아델의 계정에서 임하나의 영상을 보고 성현 일행의 얼굴을 알아보는 바람에 더 많은 행인들이 구경하려고 몰렸다.

“하긴 오늘 사람들 진짜 많았죠.”

임하나와 천소울은 오늘 건너편 가게들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몰려들었던 인파를 떠올렸다.

첫 번째 공연과는 비교할 수 없는 인파.

그 사람들이 1달러씩이라도 냈다면, 공연비 측면에서는 첫 번째 공연을 쉽게 넘어설 듯했다.

“전 사실 이번 라운드에서 떨어지고 한국 간다고 해도 후회 없을 것 같아요.”

임하나는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스스로 생각해도 웃긴지 피식 웃었다.

“전 사실 여기 처음 지원할 때만 해도 본선 통과만 해도 잘한 거라 생각했거든요.”

성현은 임하나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춤만으로 자신의 선배를 이기겠다고 땀을 비 오듯 쏟으며 연습하던 그녀.

그때 당시 팀을 이뤘던 프로듀서마저 임하나를 포기하려 했었다.

“그런데 한국 TOP 7에 들어가더니 이번엔 아델이 내 이름을 불러주고..... 아직도 꿈만 같고 믿기지가 않아요.”

임하나 말에 천소울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다.

그 역시 오디션을 처음 지원할 때만 해도 TOP 7에 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런데 영국에 와서 공연을 하고, 펍에서 사람들이 알아보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심지어 축구 스타 손현민이 자신을 언급하며 응원을 보내주기까지 한다.

“저도 사실 지금 너무 과분한 관심을 받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하고 싶은 음악을 하기 위해 참가한 것뿐이었는데 지금은......”

천소울은 말끝을 흐리며 성현을 봤다.

아무도 필요치 않았다.

누구와 함께 작업하는 것보다 혼자서 일하는 것이 마음이 편했고, 나았으니까.

“좋은 프로듀서와 좋은 동료들을 만났네요.”

무엇보다 성현을 비롯해서 함께 음악을 할 수 있는 동료들.

자신이 누군가와 동료가 되어서 음악을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다.

“저도 그게 제일 기뻐요. 좋은 프로듀서와 좋은 동료를 만난 거.”

임하나 역시 천소울과 마찬가지로 혼자 음악을 해왔다.

“물론 저는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성현씨한테 스카웃을 못 당하긴 했지만.”

“하나씨, 그건.”

당황한 성현이 입을 열려고 하자 임하나가 손을 내밀어 그의 말을 막았다.

“알죠, 알아요. 그냥 그렇다는 거예요.”

장난스럽게 웃는 임하나를 본 성현이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흘렸다.

노래보다는 춤에 중점을 주던 그녀는 가수 지망생으로 보기에 보컬이 부족했다.

그렇다고 댄서라고 하기에는 그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꿈은 가수였다.

그 애매한 경계에서 어디 소속이 되지 못하고 아등바등 애를 쓰고 있었다.

그랬던 임하나가 성현과 동료들을 만나 음악이 재밌다는 걸 알게 됐다.

이들을 만나고 가수로서 한층 더 높이 도약할 수 있었다.

‘다들 같은 마음이구나.’

이는 비단 천소울과 임하나의 생각만이 아니었다.

성현 또한 혼자 프로듀싱을 해오면서 많은 아티스트와 작업할 기회가 없었다.

어쩌면 음악밖에 모르던 성현이기에 사람보다는 음악이 먼저였으니까.

밤 늦게까지 혼자 작업실에 남아 자신의 음악을 만들고 누구에게 들려주지도 않았다.

프로듀서에 대한 열망은 가수를 키우는 게임으로 삭히고 있었다.

놀랍게도 그런 성현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오디션에 참가하고, 성현은 동료들을 만들었다.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가수가 생겼다.

그러면서 음악 이전에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에 대해 알고 나니 점점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게 됐다.

‘갑자기 보고 싶네.’

거기까지 생각한 성현은 한국에 있는 동료들이 불현듯 궁금해졌다.

그들 또한 지금의 성현이 있기까지 중요한 사람들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성현을 믿고 따라와 준 소중한 사람들.

“우리 한국에 있는 팀원들이랑 영상 통화라도,”

“전 사실 가끔 불안하기도 해요.”

임하나는 생각에 잠겼는지 성현의 말을 듣지 못하고 말을 잘랐다.

성현은 그 말에 놀라서 그녀를 쳐다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 불안할 이유는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뭔가 이유가 있나요?”

성현이 당장 임하나의 생각이 궁금해서 물었다.

초조한 표정이 된 성현이 임하나를 조용히 기다렸다.

임하나는 조금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 닫았다를 반복 했다.

“그,”

조금 더 망설이던 임하나는 쑥스럽다는 듯이 머리를 쓸어넘겼다.

“살면서 이렇게 행복했던 적이 없어서 불안해요.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랑을 받아도 되는 건가, 이렇게 행복하게 음악을 해도 되는 건가, 이게 정말 꿈이 아니라 현실이 맞나? 가끔 이런 생각이 들면 불안해져요. 정말로 이 모든 게 꿈이고 여기서 깨어났을 때 현실이 너무 차가울까 봐.”

성현과 천소울은 임하나의 진지한 말에 모두 쉽게 말을 떼지 못했다.

임하나는 그런 둘의 눈치를 보며 억지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가 집에서 맨날 구박만 받고 자라서 그런가 봐요. 미안해요. 갑자기 분위기 깨서.”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임하나는 분주하게 사과를 건넸다.

임하나는 그래도 가시지 않는 분위기에 어색함을 느끼고, 맥주를 마시려는데 이내 맥주로 향하던 그녀의 손이 멈췄다.

“임하나씨만 그런 거 아닙니다.”

조용히 흘러나온 천소울의 말 때문이었다.

“저도 무서워요. 음악 하면서 이렇게 즐거웠던 적 처음이라서 지금도 꿈같습니다.”

천소울의 말에 성현이 조금 놀라서 그를 봤다.

처음으로 듣는 그의 진솔한 속마음.

모건과의 일이 있었을 때조차, 천소울의 자신의 입으로 아무런 말도 해주지 않았다.

모든 건 성현의 추측으로 넘겨짚었을 뿐.

그 일이 모두 지나고, 매사에 자신감 넘치던 천소울조차 이런 불안감을 느끼고 있을 줄은 몰랐다.

‘좋아하는 걸 행복하게 한다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인 걸까.’

천소울과 임하나는 그저 음악을 하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정작 그 이유로 상처를 받아왔다니.

성현은 그 사실에 조금 화가 났다.

그저 좋아하는 걸 마음껏 한다는데 그게 그렇게 힘든 걸까?

자신 역시 지금 이 자리에 있기까지 많은 일이 있었다.

두 사람의 말에 성현도 생각에 잠겼다.

“아직 적응이 안 돼서 더 불안한 것 같아요. 오디션에 참가한 건 몇 개월 안 됐는데 모든 게 너무 빠르게 바뀌었잖아요.”

“공감합니다. 현실을 깨닫기 전에 현실이 너무 변해있는 것도 있으니까요. 눈 떠보면 영국이고 눈 떠보면 아일랜드고.”

천소울마저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자 임하나는 조금 안심이 됐는지, 가벼운 어투로 말을 이었다.

천소울까지 거기에 동조에 지금까지의 하드한 여정을 되짚었다.

‘나였어도 지금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 거야.’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오디션에 참가하고 있을 동료들 생각은 미처 못했다.

성현이야 게임을 통해 이러한 경험을 미리 해볼 수 있었다.

그덕에 두 사람에 비해 조금 더 상황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가능했다.

만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의 인생이 순식간에 바뀐다면 어땠을까.

지금 두 사람이 같은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했다.

성현은 조금 고심하다가 입을 열었다.

두 사람의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서 지고 싶었다.

“너무 깊게 고민할 필요 없어요. 두 사람 모두 지금까지 충분히 잘 해왔고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만 하면 되니까요. 각자 오디션에 참가한 이유는 다르더라도 근본적으론 모두 같다고 봐요. 음악. 우리 음악 하려고 모인 거잖아요. 그 마음 잃지 않고 경쟁이 아니라 좋은 음악, 무대 만들면 돼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이내 마음 정리를 마친 듯 씩씩하게 대꾸했다.

“맞아요. 불안해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지금 이게 꿈이더라도 전 좋아요. 꿈에서라도 신나게 음악 할 수 있으니까.”

“그럼 아델이 팔로우한 게 꿈이라도 괜찮겠네요?”

“그건 절대 안 될 말이죠! 절대!”

두 사람은 무거운 분위기는 어느새 집어던지고 다시 가볍게 투닥거렸다.

성현은 두 사람의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다가 맥주잔을 들며 마지막 건배를 외쳤다.

“꿈이 아니라 현실로 만들려면 앞으로 더 열심히 해야겠죠? 남은 오디션도 잘 부탁드려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와 천소울 모두 잔을 들어 올려 건배했다.

아일랜드에서의 마지막 하루 일과가 끝나가고 있었다.

***

다음 날, 성현의 일행은 주최 측의 부름으로 호텔 회의장으로 모였다.

영국에서의 마지막 버스킹 장소를 선택하기 위해서였다.

성현의 일행은 메인PD 이대훈이 들어오기 전 커넥트 앱을 통해 다른 팀 한국 참가자들과 문자 메시지를 통해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 역시 성현의 팀이 화제가 된 걸 알고 있었다.

상대팀은 경쟁 관계를 넘어서 진심으로 축하 인사를 건네 왔다.

-이유찬: 아델보다 노래 잘하는 임하나씨, 부럽습니다!

-참가자: 이럴 줄 알았으면 우리도 체스터 시계탑 선택할 걸 ㅠ

-참가자: 마지막 남은 공연도 멋지게 마무리합시다! 파이팅!

성현의 일행들이 상대 팀과 메시지를 주고받고 있는데, 곧 메인 PD 이대훈이 들어왔다.

“다들 마지막 장소 결정은 끝내셨나요?”

이대훈의 말에 스크린에 있는 한국팀 사람들과 성현의 일행 모두 동시에 네, 라고 대답했다.

“마지막 장소 선택은 각 팀의 순번과 상관없이 선착순으로 진행하겠습니다. 원하는 장소가 있으면 먼저 말씀하시고 해당 장소에서 공연하시면 됩니다.”

주루룩 남은 버스킹 장소 목록이 스크린에 떴다.

마지막 장소 선택의 순간이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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