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화
“프로젝트 진행은 어떻게 되고 있어요?”
“안 그래도 이건 너한테 물어보고 진행하려고 했는데,”
성현은 자연스럽게 회사 프로젝트에 대해서 얘기를 꺼냈다.
한국과 영국이라는 먼 거리를 두고, 성현과 심훈형은 한동안 비즈니스적인 대화에 골몰했다.
“괜찮은데요? 그대로 진행하시죠.”
틈틈이 심훈영에게 보고를 듣긴 했지만, 회사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부족했다.
최근 이틀간은 공연을 준비하는 데 온 신경을 집중하느라 더욱 그랬다.
“이따 메일로 진행 현황 보내주겠지만 가져온 곡 두 개가 전부 좋아서 일단 두 개 다 올리기로 했어. 아마 둘 중 하나가 타이틀곡으로 나올 것 같고. 곡은 지금 보내줄 테니까 시간 나면 들어보고.”
성현이 영국에 온 지 일주일.
그동안 매일같이 전화를 받아 업무 이야기를 전해준 심훈영이었다.
심훈영은 시차 차이도 많이 나는 성현과 군말 없이 업무를 이어나갔다.
성현은 그런 그가 든든하면서도 죄송한 마음이었다.
“고생이 많으시네요.”
“내가 고생은 무슨. 조은별씨가 고생이지.”
심훈영은 성현의 말에 아닌 척 말을 돌렸다.
그러고 나서 문득 생각이 미쳤는지 진지하게 성현에게 말했다.
“은별씨 말이야, 확실히 한 번 경험이 있어서 그런가 일을 잘하더라.”
성현은 한국에 없는 자신을 대신하여 주선아까지 합류한 걸그룹 앨범 준비를 조은별과 주영준에게 맡겼다.
그중에 메인 프로듀서는 조은별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역시, 잘해줄 줄 알았어.’
성현이 조은별에게 이번 걸그룹 데뷔를 전적으로 믿고 맡길 수 있었던 이유는 따로 있었다.
오디션이 시작되기 전, 같은 소속사에서 일했을 시절에 그녀가 아이돌 데뷔 앨범 작업을 한 번 해본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함께 일해본 경험으로 그녀의 프로듀싱 실력 또한 신뢰하고 있었기에 믿고 맡기는 것이 가능했던 것.
“요하 콜라보 작업은요?”
“그거야 뭐, 워낙 그쪽에서도 적극적이기도 하고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어.”
요하의 프로젝트 역시 예상대로 문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사실 이와 관련해서는 더 비기너 멤버들에게 많은 것을 맡긴 상태였다.
록음악에 관해서는 A부터 Z까지 그들이 성현보다 더 전문가일 것이 당연했다.
성현은 재야의 고수에게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 것처럼 요하를 더 비기너에게 보냈다.
더 비기너는 애초에 요하의 재능을 알고 있었기에 맡겨만 달라며 큰소리까지 쳤다.
“다행이네요.”
심훈영이 보기에도 그쪽 프로젝트가 잘 돌아가고 있는 모양이었다.
자신 역시 더 비기너 멤버들로부터 계속해서 진행 상황과 결과물에 대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기에 잘 알았다.
‘오디션만 아니면 직접 가서 챙겨줬을 텐데......’
물론 그럼에도 미안한 마음은 가시질 않았다.
프로듀서인 자신이 한국에 있는 동료들에게 모든 걸 맡기고 있다는 것이 항상 성현에게 마음의 짐처럼 남아 있었다.
“제가 직접 가서 하나하나 신경을 써야 하는데 죄송해요.”
“어쩔 수 없지. 간판 프로듀서님이 워낙 잘난 걸 어쩌겠나.”
심훈영은 성현이 미안함을 느끼지 않게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성현은 그 말에 피식 웃음을 짓다가도 얼굴에서 금세 미소가 사그라졌다.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말이 없는 성현.
심훈영은 그런 마음을 아는지 먼저 농담을 건네 왔다.
“정 미안하면 우승하고 오던가.”
그 말에 성현은 이럴 때가 아니란 걸 다시금 깨달았다.
“노력해 볼게요.”
자신의 농을 진지하게 받아치는 성현의 모습에 심훈영이 헛웃음을 지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조회수 60만회를 넘는 공연 영상을 보내놓고 왜 저렇게 패기가 없는지.
오아시스 바에 두 번 세 번 찾아오던 성현이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
“뭘 또 노력을 해. 농담이야, 농담. 앞으로 버스킹 공연 몇 번 남았댔지?”
심훈영은 더 이상 말해봐야 입 아프다고 판단했다.
지금하고 있는 오디션에나 집중하라는 듯 앞으로의 일정을 물었다.
“두 번이요.”
“그래, 여긴 신경 쓰지 말고 당장 공연 준비에만 최선을 다해. 그게 우리 도와주는 거야.”
계속해서 가벼운 어투로 말하는 심훈영의 말에 성현 역시 그의 진심을 느꼈다.
성현은 그제야 웃으며 심훈영에게 다짐했다.
“꼭 좋은 무대로 보답할게요.”
성현이 심훈영과의 전화 통화 마무리 짓는데, 갑자기 누군가 성현의 방을 다급하게 두들겼다.
쿵쿵쿵-
“성현씨! 큰일 났어요! 성현씨!”
목소리의 주인공은 임하나였다.
분명 조금 이따가 1층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무슨 급한 일이라도 생긴 듯, 문이 부서질 것처럼 문을 두드리며 성현을 부르고 난리가 났다.
***
스탭 여러 명이 숙식하는 호텔룸.
성현팀을 포함해, 한국 스탭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었다.
“무슨 일이길래 사람을 그렇게 급하게 부릅니까?”
천소울은 샤워 도중 나왔는지 머리가 젖은 채로 방에 들어왔다.
먼저 도착해 있는 성현과 임하나에게 묻는데 조용했다.
성현과 임하나 모두 태블릿 PC에 고개를 숙인 채 대답이 없었다.
“지금 난리 났어요. 이것 봐요.”
천소울은 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싶은 표정으로 지금 상황을 살폈다.
그러고보니 성현과 임하나 뿐만 아니라 방에 모여있는 영국과 한국 측 스탭들도 휴대폰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누가 죽기라도 했어요?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 좀 설명해주지.”
천소울이 황당한 마음으로 서있자 그를 발견한 김인호가 조용히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줬다.
“일단 보면 알아요.”
아무리 입 아프게 말해봤자, 천소울도 이것만 보면 자신들처럼 말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도대체 뭐길래,”
김인호 말에 천소울이 그의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인상을 찌푸리며 화면을 살피던 천소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사람 설마......?”
“네. 아델 맞아요. 그 유명한 영국 팝스타 아델이요. 그, 아델.”
영국의 유명 팝스타 아델.
꽤 긴 글과 함께 짧은 동영상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그런데, 영상의 썸네일의 배경이 익숙하다.
방금 전, 보고 온…… 어둑한 밤하늘과 상당히 흡사한 거 같은데,
[우연히 보게 된 너무 멋진 공연!]
[길거리 공연이었지만 제겐 웸블리 스타디움 공연보다 더 멋지고 행복했던 공연이었어요. 세 사람 모두 엄청난 실력을 보여줬지만, 그중에서 가운데 소녀의 공연이 특히 인상 깊었습니다. 그 소녀가 제 게시물을 보고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자리를 빌려서 꼭 말해주고 싶었어요.
당신이 부른 내 곡을 듣고 어쩌면 이 곡이 당신의 곡이었다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했을 정도로 완벽한 노래였어요. 이 공연을 더 많은 사람들이 봤으면 하는 마음에 제가 직접 찍은 영상을 올려요.
멋진 공연 준비해준 세 사람 모두 고마워요!]
조금은 긴 게시물의 내용과 함께 아델은 3분가량의 직접 찍은 공연 영상을 함께 올렸다.
영상 속에는 임하나가 아델의 ‘Hello’를 열창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었다.
“…….”
김인호의 예상대로 천소울은 말을 잃었다.
그는 김인호의 휴대폰을 낚아채듯 가져가서 게시물을 샅샅이 살폈다.
영상은 순식간에 조회수가 100만을 넘어가 있는 상태였다.
좋아요 수 또한 그에 못지않게 빠르게 올라가는 중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델의 영상을 접한 다른 글로벌 스타들도 빠르게 영상을 퍼갔다.
그녀와 친한 여러 해외 슈퍼스타들이 연이어 댓글을 달고 있었다.
-브루노 막스: KPOP이 한 방 먹일 줄 알고 있었어. 그거 알아? 내가 저분들을 영국으로 모셔왔다고! 장소 추첨을 내 손으로 했거든.
-애드 샤런: 엄청난 노래 실력이네. 그녀와 콜라보를 하려면 어디로 연락을 해야 하지?
-앤 마리아: 말이 필요 없어. 난 그녀와 꼭 작업하고 말 거야.
-노엘 갤러: 아델 미안한데 너보다 잘 부르는 것 같기도. 농담 아님.
└아델: 당신은 못됐어요. 난 당신 말을 부정하면서 저 소녀의 실력을 깎아내리고 싶진 않다고!
댓글까지 다 본 천소울은 너무 놀라서 말이 안 나왔다.
이는 방에 모여있는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지금 벌어진 이 믿기지 않은 상황에 무슨 말을 꺼낼지 갈피가 안 잡힌 탓이었다.
“이거 진짜 맞죠? 아델 사칭 계정 아니죠?”
“진짜 맞아요...... 아니 이거 영화라 해도 안 믿겠는데? 어떻게 이런 일이......”
이번 버스킹 첫 번째 무대는 주최 측만 공연장소 리스트를 알고 있었다.
어디에도 유출된 적이 없으며, 오늘 두 한국팀이 어디서 공연을 할 거라는 공지도 없었다.
아무도 의도하지 않은 순도 100%의 우연.
하필 오늘, 하필 그 시간, 그 장소에서 임하나가 아델의 노래를 불러, 아델 본인이 그 공연을 관람하고 영상을 찍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한국인 스탭뿐만 아니라 영국인 스탭들도 이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다들 조용히 늘어가는 조회수와 좋아요 수를 바라보는 중이었다.
시간이 흐르자 영상의 주인공인 임하나에게 시선이 주목되었다.
임하나 역시 이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넋이 나간 채 휴대폰 화면만 쳐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임하나씨 정신 좀 차려봐요.”
보다 못한 스탭 하나가 그런 임하나의 어깨를 건드렸다.
“네? 아니 이게 대체...... 아델님이 제 영상을...... 저 지금 꿈 아니죠......,?”
임하나는 넋이 나가 두서없는 말을 계속했다.
아무도 그런 그녀에게 뭐라 하지 않았다.
모두가 그런 그녀의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델은 다른 사람의 영상을 올린 것도 아니고, 자신이 직접 찍은 영상을 직접 올렸다.
그 영상 속 주인공이 되면 누구나 임하나와 같은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무려 원곡자로 하여금 영상을 찍고 업로드하게 만든 실력자.
이 방에 있는 스탭들은 임하나를 다시 보고 있었다.
지금껏 비교적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천소울과 이성현보다 임하나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 일이 그 판세가 뒤집어졌다.
“너무 잘됐다, 하나씨!”
“와…… 너무 어마무시한 일이라 얼떨떨한데 이거 좋은 일이잖아요.”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저희 축하 파티라도 할까요?”
스탭들이 하나둘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모두가 왁자하게 임하나에게 몰려들어 축하의 말을 건넸다.
그 정도로 아델이 가지고 있는 글로벌 위상은 엄청났다.
아델이 인정한다는 것은 이미 그 자체로 오디션 우승과 버금갈 정도로 실력은 인정받은 것과 다름없었다.
그리고 옆에서 넋이 나간 임하나를 보는 성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역시 다 보고 있었구나.’
성현이 체스터 시계탑을 첫 번째 버스킹 장소로 고른 이유, 바로 아델 때문이었다.
게임 속에서도 아델은 공연이 놀랍도록 뛰어날 경우 SNS에 이를 올리는 이벤트가 발생했다.
확실히 그녀가 SNS에 공연을 올리면 홍보 효과가 엄청났다.
만약 이 이벤트가 발생했다면, 본선 6라운드에서 지는 법이 없었다.
다만, 그만큼 확실한 카드이기 때문에 웬만한 실력으로는 이 이벤트가 발생하지 않았다.
천소울을 데리고 갔을 때조차 다섯 번의 두 번 정도만 성공하는 이벤트였다.
성현은 임하나라면 당연히 아델의 눈에 들 줄 알았다.
“축하해요, 하나씨.”
성현은 넋이 나간 임하나를 향해 조금은 태연하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임하나는 아직도 믿기지 않는지 넋이 나간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여기 영상 속 여자 저 맞죠? 진짜 저 맞는 거죠?”
임하나는 이제 자기 볼까지 꼬집으며 물었다.
성현은 그녀가 귀여워 웃으며 맞다고 말해주었다.
이내 임하나의 휴대폰에 수십 통의 문자가 날아오더니 전화가 걸려왔다.
“여보세요? 엄마! 어, 봤어? 그거 나 맞아. 진짜 맞다니까?!”
임하나는 엄마의 전화를 받고 나서야 이것이 현실이란 자각이 생겼는지 소리를 지르고 난리가 났다.
성현은 역시 체스터 시계탑으로 가길 잘했다는 생각을 했다.
‘아델이 오는 걸 알았다 해도 하나씨 실력이 뒷받침되지 못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테니까.’
언젠가 세계를 울릴 천상의 디바 임하나.
그녀의 화려한 영국 데뷔가 성공리에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