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86화 (186/273)

186화

먼저 마이크를 잡고 무대에 선 것은 천소울이었다.

성현은 기타를 매고 연주를 준비했다.

빠르게 튜닝을 확인한 성현이 천소울과 눈빛을 교환했다.

고요한 분위기 속 관객들이 모두 그들의 공연을 숨을 죽이고 지켜봤다.

성현이 기타 반주를 시작하자 천소울이 이에 맞춰 담담하게, 말하듯 첫 소절을 내뱉었다.

“As the storm inside you dies All my fears disappear with my lies.”

천소울이 고른 무대는 한국의 락커인 윤대준의 ‘당신이 만든 나의 날씨’라는 곡.

한국어인 가사를 영어로 바꿔서 이번 버스킹 공연용으로 만든 곡이었다.

이 곡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를 날씨로 비유했다.

따뜻한 햇살, 기분 좋은 잔잔한 바람과 같이 우리의 관계가 좋을 때도 있지만.

천둥 번개, 폭풍과 같이 우리의 관계가 좋지 못할 때도 있을 거란 나직한 가사가 이어진다.

하지만 그럴 때조차도 나에겐 당신이 필요하다는 사랑 노래였다.

“저 남자 목소리 너무 좋은데?”

“저 사람 유명해. 영국에 팬카페도 있을걸?”

이미 너튜브를 통해 천소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속삭이듯 말했다.

그 말에 깜짝 놀란 관객이 친구를 돌아봤다.

“이름이 뭔데?”

“소울.”

“얼굴만큼이나 예쁜 이름이네.”

관객들은 천소울의 목소리와 외모에 넋이 나가 공연을 지켜보았다.

그때 거리에서 청소를 하던 젊은 환경미화원이 갑자기 그들 앞에 털퍼덕 주저앉았다.

그는 천소울의 노래에 영감을 받은 듯 주머니에서 공책을 꺼내 열심히 뭔가를 적어 내려갔다.

“저거 찍어.”

김인호는 이를 놓치지 않고 말하고 카메라를 든 스탭들에게 말했고, 그 모습을 담았다.

“Before the thunder quakes revealing my mistakes You forgive me you forgive me.”

노래는 점차 클라이맥스를 향해 갔다.

감미롭고 담담했던 천소울의 얼굴에도 점차 감정이 짙게 묻어나왔다.

천소울의 폭발적인 가창력에 공연을 보던 사람들 모두 입을 벌리며 넋이 나갔다.

성현 또한 공연이 점점 클라이맥스로 향해 갈수록 더욱 열정적으로 기타를 쳤다.

어느덧 공연을 보던 사람들 모두 무대 자체에 압도당하여 숨을 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당신으로 인해서 내 삶에 빛이 생겼고 천둥 번개가 치고 우리가 멀어질 날이 오더라도 난 당신을 기다릴 거니까 당신만이 내 영혼을 어루만질 수 있으니까요.”

천소울은 마지막 구절은 한국어로 마무리 지었다.

마치 한 사람에게 나직하게 말하듯 끝나는 노래.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노래를 보던 사람들 모두 환호를 하며 박수를 보내왔다.

“한국이라고? 끝내주는데!”

“쏘울!”

낯선 영국 땅에서 처음 하는 버스킹이었지만 성공적인 반응을 끌어낼 수 있었다.

공연을 본 사람들 모두 가방에서 돈을 꺼내며 공연비를 내기 위해 줄을 섰다.

성현과 일행들 모두 벅찬 표정으로 관객들을 바라보았다.

그러던 중 아까 일행의 앞에 주저앉았던 미화원.

그 남자가 벌떡 일어나 성현 일행에게 종이를 찢어서 건네줬다.

“지갑을 안 가져와서 돈은 없어요. 이거라도 답례로 드리고 싶습니다.”

성현은 놀라서 남자가 준 종이를 받아 들었는데, 성현의 공연 장면을 크로키로 그린 그림이었다.

“고마워요. 10달러보다 훨씬 값진 선물이네요.”

성현이 남자를 향해 빙긋 웃으며 유창한 영어로 말했다.

남자는 자신의 마음을 전해서 뿌듯한지 그림을 준 뒤에 다시 청소 도구를 들고 유유히 사라졌다.

성현은 그에게서 받은 그림을 손에 쥐고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마지막까지 지켜봤다.

***

첫 번째 무대가 끝이 나고 이어서 임하나와 천소울의 듀엣 공연이 이어졌다.

아까 기타를 잡았던 성현이 기타를 내려놓고 건반 앞으로 향하자 관객들이 기대 어린 눈으로 그를 지켜봤다.

천소울의 노래에 묻혔지만, 저기 저 동양 남자의 기타 실력도 아주 출중했던 것.

“이성현! 맞네. 긴가민가했는데. 저 사람이 천소울이랑 같이 한국에서 1등 한 사람이야.”

“그렇구나. 이번에는 피아노인가 본데?”

앞서 천소울을 알아본 관객은 저 사람이 한국에서 제일 인기 많은 프로듀서라고 친구들에게 전하고 있었다.

성현의 손에서 재즈풍의 화려한 인트로가 시작되자 사람들 휘파람을 보내며 환호했다.

임하나는 전주를 음미하다가 곧 마이크를 들고 첫 소절을 뱉었다.

“Slip outside the eye of your mind Don't you know you could find A better place to play I said that you'd never been.”

영국 대표 밴드인 오아시스의 ‘Don't look back in anger’였다.

오아시스의 대표 곡 중 하나로 추모곡으로도 많이 불려지는 곡이었다.

영국인들은 갑자기 들리는 유명한 오아시스의 노래에 반가운지 활짝 웃으며 즐거워 했다.

임하나가 가진 특유의 살짝 힘을 빼며 그루브한 맛을 살린 목소리로 노래가 이어졌다.

이어서 천소울이 그 위로 미성을 섞으며 화음을 맞췄다.

“And so Daniel can wait He knows it's too late As we're walking on by His soul slides away But don't look back in anger You heard I say.”

노래의 후렴구 부분, 임하나의 폭발적인 고음과 천소울의 미성이 섞인 허스키한 음색이 어울리며 거리에 울려 펴졌다.

그때 갑자기 노래를 듣던 사람들 모두 노래를 함께 따라 부르며 떼창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이 아는 노래에 흥이 난 몇몇이 따라 부르자 모두가 거기에 동참한 것이다.

카메라는 질세라 그 모습을 담았다.

떼창은 한국에만 있는 줄 알았던 임하나와 천소울은 관객들의 반응에 조금 놀란 표정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관객과 소통하며 노래를 이어갔다.

성현 역시 브릿지 부분에서 화려한 재즈 솔로를 연주하며 관객들에게 화답했다.

“봤어? 저 남자 손가락이 안 보일 정도야.”

“이 노래를 재즈 버전으로 들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지만 너무 괜찮은데?”

노래를 듣던 관객들 성현의 연주 실력을 홀린 듯 바라봤다.

세 사람의 노래가 끝이 났을 때, 이번에도 역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다.

공연료를 지불하려는 사람들로 박스 주변이 북적거렸다.

너무 많은 관객이 몰리는 바람에 스탭들의 정리로 다음 곡을 시작하는 데 텀을 만들어야 할 지경이었다.

‘생각보다 더 빨리 모이고 있네.’

성현은 첫 번째 공연이다 보니 홍보가 불가능했기에 관객이 많이 몰릴 때까진 시간이 좀 걸릴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웬걸, 생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여 스탭들이 당황할 정도였다.

체스터 시계탑 근처는 이미 거리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수가 대략적으로 봐도 100명은 넘어 보였다.

그리고 이제 가장 공들였던 ‘그 곡’을 할 차례.

‘저 속에 그 여자도 있으려나.’

성현은 과연 게임 속처럼 이번에도 그 여자가 있을지 기대감에 차서 관객이 모여있는 곳을 바라봤다.

너무 많은 인파 속, 게다가 날도 조금씩 어두워지는 터라 광장의 조명만으로는 관객들의 얼굴을 뚜렷하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성현은 시선을 임하나를 향해 돌렸다.

이번 무대에서 임하나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앞으로의 공연 판도가 달라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성현은 지금 이 공연을 위해서 체스터 시계탑 광장을 선택했다.

게다가 천소울과 임하나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부터 공을 들여 편곡을 한 곡을 첫 번째 공연에서부터 사용하기로 결심하기까지 했다.

‘제발, 게임에서처럼 기적이 일어나길.’

“준비됐어요?”

성현이 임하나에게 묻자, 임하나는 바로 감정을 잡고 몰입했다.

성현이 피아노 반주를 시작하고, 임하나는 눈을 감더니 첫 소절을 시작했다.

“Hello, it's me I was wondering if after all these years you'd like to meet To go over amything They told that time's supposed to heal ya But You ain't done much healing.”

성현이 공을 들여 편곡했다던 곡은 바로 영국 대표 여자가수 아델의 ‘Hello’.

헤어진 사람을 그리워하는 내용의 가사로 후반의 폭발적인 가창력이 돋보이는 곡이었다.

임하나는 방금 전까지 파워풀한 고음을 선보인 것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차분해져서 읊조리듯, 누군가에게 말을 걸 듯 노래를 불렀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뿐이었지만 오히려 이것이 임하나의 노래에 더욱 사람들을 집중하게 만드는 효과를 가져왔다.

“Hello, how are you? It's so typical of me to talk about yourself, I'm sorry I hope that you're well Did I ever make it out of that house where nothing ever happened?”

임하나는 확실히 전보다 풍부한 표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바로 앞 허공에 있는 누군가에게 말하듯 살짝 일그러진 표정으로 임하나는 따지듯이, 어르듯이, 또는 더 이상 어쩌라는 듯 당당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듯 노래를 불렀다.

그러면서도 자유자재로 고음과 저음을 오고 가는 임하나의 스킬에 관객들은 멍하니 입을 벌렸다.

“소름 돋아. 가성도 아니고 진성으로 저 정도로 높게 올라가는 게 말이 돼?”

“저 작은 체구에서 저런 폭발적인 가창력이 어떻게 나오는 걸까.”

“아델한테 실례일 수도 있겠지만 가창력만 놓고 보면 결코 밀리는 느낌이 아니야.”

사람들 모두 숨을 죽이며 노래에 완전히 몰입했다.

성현의 잔잔한 피아노 연주와 임하나의 감성이 담긴 목소리가 잘 어우러지면서 노래가 끝나갈 때, 후렴구를 부른 임하나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씨 한 번 더요.”

임하나의 말에 성현은 곧장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연주 시작하고,

“Hello from the outside At least I can say that I've tried To tell you I'm sorry for breaking your heart.”

임하나가 한 번 더 파워풀하게 고음을 내질렀다.

그 엄청난 고음에 사람들이 입을 막으며 놀랐다.

드디어 노래가 끝이 났을 때, 박수 소리로 온 거리가 가득했다.

“그냥 끝내기 아쉬워서 한 구절을 더 불러봤어요.”

임하나는 감사의 인사를 건네다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관객들에게 설명했다.

귀여운 설명에 관객들은 미소를 지으며 박수를 보내줬다.

그렇게 기분 좋은 미소와 함께 버스킹 공연을 지켜보는 수많은 관객들.

그 사이에는 큰 마스크와 모자를 쓴 한 여성이 있었다.

관객들 사이에 섞인 여자는 성현의 일행들을 향해 힘차게 박수를 쳤다.

다른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공연을 즐기는 모습.

“감사합니다. 감사해요!”

임하나는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 자신의 공연을 지켜 보고 있는지 모른 채 그저 환하게 웃으며 관객들에게 인사를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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