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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85화 (185/273)

185화

공연 전날 밤, 마지막 합주 연습이 종료되었다.

그 후 성현은 호텔로 올라가기 직전 임하나와 천소울을 불렀다.

“오늘 연습, 무리해서 하지 않은 이유는 다들 아시죠?”

“네. 컨디션 관리요.”

임하나의 대답에 성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봤다.

다행히 두 사람은 한국에서와 다름없는 모습이었다.

그래도 이런 시기이니만큼 방심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여긴 한국이 아니다 보니 잠자리부터 마시는 물, 시차, 하다못해 습도까지 달라요. 이런 미세한 차이가 목소리에 영향을 줄 수도 있는 거니까 이번엔 조금 더 신경 써서 컨디션 관리를 해주셨으면 해요.”

성현의 거듭된 당부에도 두 사람은 귀찮아 하는 기색 없이 알겠노라고 대답했다.

거기에 천소울은 역으로 성현을 붙잡고 말하기까지 했다.

“알겠습니다. 이성현씨도 며칠간 연습 봐주느라 무리하셨는데 오늘은 일찍 자요.”

성현이 연습이 끝난 후에도 종종 다른 연습실에 가서 또 다른 곡 작업을 하거나, 호텔방에 가서도 무언가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천소울은 오늘만큼은 성현 역시 휴식이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어요. 그럼 다들 올라갈까요?”

성현은 천소울과 임하나와 헤어져 각자 호텔 방으로 돌아갔다.

방으로 돌아온 성현은 곧장 악기 정리부터 시작했다.

‘빠뜨린 건 없겠지.’

눈으로 내일 가져가야 할 악기들을 점검하고, 따로 빼두기까지 했다.

당장 내일 있을 공연에서 악기를 담당하는 것이 자신이었기에 더욱 까다롭게 점검할 수밖에 없었다.

성현은 거기서 끝내지 않고, 내일 주로 쓸 기타를 집어 들었다.

그렇게 자리에 앉아 기타 튜닝에 한창인데 갑자기 성현의 휴대폰이 울렸다.

‘누구지?’

해외에 나가 있느라 전화를 걸어올 사람이 극히 드물었다.

계속해서 울리는 진동에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합주 연습 시간 동안 확인하지 못했던 밀린 문자들이 엄청나게 쌓여 있었다.

다 메시지들인데, 계속해서 울리는 바람에 전화인 줄 착각할 정도였다.

성현이 메시지를 하나하나 확인하는데 전부 한국에 있는 가족들과 동료들이 보내온 문자들이었다.

-아버지: 영국 날씨가 좀 쌀쌀하다던데 옷은 따뜻하게 입고 다니냐? 감기 조심해라. 너 시간 날 때 전화 좀 해주고.

한국에서도 걱정이 끊이질 않았던 아버지.

-심훈영: 조은별씨 회사에서 곡주기로 했어. 자세한 계약 조건은 메일로 보내놨으니까 시간 나면 확인해 봐.

기획사 문제로 자신 대신 열심히 뛰어주고 있는 심훈영 대표님.

-서지현: 내일 버스킹 공연이라면서요! 다들 컨디션 관리 잘하고 한국 돌아올 생각은 말아요! 영국까지 간 거 무조건 이기고 오세요!

-서자명: 이번에도 멋진 공연 기대하겠습니다. 릴리씨 비행기 타고 버스킹 보러 간다는 거 말리느라 정신이 없네요.

-릴리: 궁금하단 말이에요! 저 지금 당장 갈 수도 있는데 가도 돼요?

-주영준: 릴리야 연습은 안 해......? 너도 곧 데뷔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릴리: ㅎㅎ그럼 전 연습하러 이만......

여전히 시끌시끌한 멤버들의 단체 메시지방까지.

쌓여 있던 문자를 확인하는 성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비록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그들이 보낸 메시지만으로 힘이 났다.

성현은 어쩐지 내일 공연을 더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성현과 일행들 그리고 스탭들은 이른 아침부터 일사불란했다.

성현이 챙기는 음악 장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촬영을 위한 장비까지 합쳐져 커다란 대형차를 빌려서 체스터까지 차로 이동하기로 한 것.

문제는 체스터까지 차로 넉넉하게 5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라는 점이었다.

오후에 버스킹 공연이 있기에 이른 아침부터 출발이 예정되어 있었다.

“악기 이게 다죠?”

“네. 기타는 제가 들고 타겠습니다.”

스탭과 함께 마지막으로 짐 점검을 마친 성현은 감사 인사를 건네고 차 입구로 향했다.

성현이 차에 올라타는데 차 곳곳에는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카메라를 든 카메라맨들 또한 함께 탑승해 있었다.

한국에서 있을 때보다 확연하게 느껴지는 카메라 대수의 차이.

성현은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며 동료들이 앉아 있는 곳으로 향했다.

“생각보다 카메라가 많네요.”

“사방이 카메라라서 코도 못 파겠어요.”

임하나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말에 옆에 있던 천소울이 슬쩍 몸을 물렸다.

“코는 갑자기 왜 팝니까?”

“진짜 판다는 소리가 아니라 비유죠, 비유. 비유 몰라요?”

진지하게 받아치는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따졌다.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괜히 코 파서 한국인 망신시키지 마십쇼.”

“안 판다구요!”

임하나와 천소울은 어느덧 사이가 가까워져 서로 티격대는 사이가 되었다.

성현이 그런 둘의 모습을 지켜보며 키득거리고 있는데 김인호 AD가 차에 탑승했다.

김인호는 자연스럽게 성현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으며 말했다.

“촬영은 내가 담당할 거니까 한국에 있을 때처럼 편하게 하세요.”

한국에서처럼 김인호 AD의 촬영팀이 성현에게 붙었다.

한국의 다른 팀 또한 한국에서 온 다른 관계자들이 붙었다.

치열한 AD의 세상에서 김인호는 요즘 영웅 대접을 받고 있었다.

예선전에서부터 성현과 붙어 다녔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카메라를 들고 있던 카메라맨이 김인호를 보더니 긴장해서 인사를 건네는 것을 보고 성현은 마치 격세지감과 같은 감정을 느끼며 웃음을 지었다.

자신 역시 김인호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많았기에, 김인호가 잘 되어 가는 모습이 보기 싫지만은 않았다.

그렇게 각자 다른 곳으로 향하는 두 대의 버스가 호텔에서 출발했다.

오랜 시간 동안 버스는 영국을 가로질렀다.

그동안 성현의 일행은 잠시 눈을 붙이거나, 다시 한번 가사를 점검하는 등 편안한 휴식시간을 가졌다.

그렇게 정오가 조금 지날 무렵, 성현의 일행은 체스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

체스터 시계 탑 앞.

빼곡하게 줄지어 있는 중세 시대풍의 건물들 사이로 플리 마켓이 열려 있었다.

그 사이사이에 버스킹을 하는 사람들과 소규모 공연을 열고 있는 사람들도 보였다.

스탭들은 빠르게 시계탑 앞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사전에 파견 나와 있던 스탭이 있었던 것인지 꽤나 명당자리가 비어있었다.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피아노 건반과 스피커 등 버스킹 공연에 사용될 장비들을 세팅했다.

성현은 그들에게 사소한 것 하나까지 디렉팅을 해가며 꼼꼼하게 무대를 준비했다.

비록 한 번으로 끝나는 버스킹이었지만, 여타의 공연과 다름없이 무대 구성을 신경 써서 했다.

“성현씨, 인터뷰 지금 할게. 천소울씨랑 임하나씨는 아까 끝냈어.”

“네, 여기서 하면 되나요?”

김인호의 부름에 마지막 지시를 내리던 성현이 고개를 돌렸다.

“포멀한 거 아니니까 그냥 앉아서 편하게 해. 편하게.”

김인호가 마련해둔 간이 의자에 성현이 앉자 김인호는 곧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에서처럼 이 미션 역시 편집되어서 너튜브로 공개될 예정이었기에 얼마간 방송의 형식을 따라야 했다.

“한국에서 영국까지 와서 본선 6라운드를 진행하게 됐는데 어떤 각오로 임하고 있나요? 우승에 대한 부담이라던가, 압박감이 있나요?”

바로 털털한 아저씨의 모습을 버리고, AD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간 김인호의 물음에 성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우승 욕심이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부모님께서도 재밌게 놀다 오라고 하셨고 저 또한 지금 이 순간을 마음껏 즐기자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아니라 영국이란 낯선 땅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게 됐는데 걱정되거나 염려했던 부분이 있나요?”

“아무래도 언어나 문화적으로 너무 다른 곳이라 그게 가장 걱정이 되긴 했지만 언어의 끝엔 음악이 있다고 하잖아요. 좋은 음악이 있다면 언어와 상관없이 감동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몇 달간, 하도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해본 성현 역시 이제 슬슬 인터뷰의 달인이 되어 가고 있었다.

성현과 김인호가 짧게 인터뷰를 술술 진행하고 있자, 갑자기 그들 주위로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촬영하는 거 같은데?”

“어, 나 저 남자 알아. 이름이 리, 뭐였더라. 저 사람 잘하는 프로듀서야.”

“프로듀서였어? 얼굴이 너무 잘생겨서 가수인 줄 알았어.”

행인들은 자기들끼리 얘길 나누며 버스킹 공연을 준비 중인 성현의 일행들을 카메라로 촬영하려고 했다.

이미 소문이 난 건지, 성현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들까지 등장했다.

갑자기 사람들이 몰려들자, 김인호는 빠르게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악기 세팅 끝났고 마지막으로 마이크 점검 한 번만 더 하겠습니다.”

스탭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의 마이크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그 사이 아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관중들은 무대 주위로 자리를 잡아 둥글게 둘러앉았다.

천소울과 임하나는 갑자기 몰려든 사람들을 보고도 침착하게 스케일 연습을 하며 목을 푸는 데 집중했다.

이를 들은 주민들은 목 풀기뿐인데도 감탄을 하며 박수를 쳤다.

“우리 방금 뭐 했어요......?”

그 반응에 간단한 발성을 하던 임하나가 얼떨떨하게 천소울에게 물었다.

노래를 부르기도 전에 예상보다 좋은 반응을 받자 당황한 임하나의 모습에도 천소울은 그러한 반응이 당연하다는 듯 입을 푸는 것을 계속했다.

“5분 남았습니다.”

스탭의 말에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 세 사람은 버스킹 무대를 구상하며 얘기한 자신의 자리에 가서 앉았다.

성현은 피아노 건반 앞, 그 옆으로 임하나와 천소울이 나란히 앉는 포메이션이었다.

성현이 건반 앞에 앉아 앞을 보니 어느덧 50명이 조금 넘는 사람들이 자리를 잡고 공연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성현은 그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스탭들과 눈짓을 주고 받았다.

“안녕하세요. 저희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 TOP 7 참가자 이성현, 임하나, 천소울입니다.”

마이크를 든 성현이 멤버들 소개를 했다.

멤버들은 자신들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버스킹 공연장으로 이곳 영국이 당첨됐을 때 굉장히 설렜어요. 영국이라고 하면 비틀즈와 오아시스, 애드 샤런과 같은 아티스트들도 많고 무엇보다 제가 피쉬앤칩스를 너무 사랑하거든요.”

성현의 말에 영국인들은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노래를 기다리고 있을 관중을 위해 성현은 빠르게 안내 멘트를 마무리 지었다.

“아무쪼록 오늘 이곳에 오신 분들 모두 저희 공연 보시고 즐겁고 행복한 하루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인사를 끝내고 성현까지 자리에 앉자,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왔다.

성현의 인사가 끝나고 현지 스탭 한 명이 무대 가운데로 와서 미션 룰을 설명했다.

“공연을 보고 마음에 드시는 분들은 이곳 박스에 공연비를 지불할 수 있습니다. 공연비는 최대 10달러까지 지불할 수 있으며 한 사람이 여러 번 중복으로 지불할 수는 없습니다. 그럼 지금부터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 TOP7 참가자들의 버스킹 공연 시작하겠습니다.”

스탭은 모든 설명을 마치고 무대에서 물러나고, 본격적으로 버스킹 공연이 시작되었다.

띠링,

시작음은 성현의 기타에서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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