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84화 (184/273)

184화

영국에서의 셋째 날 저녁,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는 주최 측에서 마련해준 합주실에서 첫 연습을 준비했다.

이미 한국에서 연습을 계속하긴 했지만, 영국 현지에서 연습을 하는 건 처음이었기에 진지한 분위기 속 연습이 진행됐다.

‘이건 찍어야지.’

김인호는 합주실 구석에서 셋에게 방해가 되지 않게끔 설치하는 카메라를 최소화하고 숨을 죽였다.

성현과 천소울이 속한 한국의 팀 연습을 지켜보러 몰려온 영국 스탭들도 정리도 그의 몫이었다.

너무 많은 스탭들이 몰려드는 바람에 김인호는 성현에게 허락을 받고, 순서를 정해 최소한의 인원만 합주실로 들여보냈다.

많은 이들의 주목 속에서 영국에서 셋의 첫 연습이 시작되었다.

“하나씨, A파트에서 Imagine~ 이 부분, 살짝만 힘을 더 빼서 다시 갈게요. A 파트부터 그렇게 힘이 들어가면 뒤에 가서 보여줄 게 없어져요.”

임하나와 천소울의 첫 번째 곡은 존 레논의 ‘Imagine’.

평화를 이야기하는 곡으로 영국뿐만 아니라 올릭핌에도 자주 사용되기도 하는 상당히 유명한 곡이다.

원랜 남자 솔로 곡이지만, 성현이 이를 임하나와 천소울이 부를 수 있는 듀엣곡으로 편곡한 것이다.

성현의 팀이 선택한 첫 듀엣곡이었다.

“반면에 소울씨는 너무 힘을 뺀 것 같은 느낌이 있어요. 소울씨가 가지고 있는 소울을 조금 더 보여주면 좋을 것 같아요. 그렇다고 밴딩을 심하게 하란 소린 아니고.”

성현이 임하나와 천소울 각자에게 세심한 디렉팅을 하면서 연습 진행됐다.

그러다 갑자기 연습실 문이 열리더니 누군가가 들어왔다.

“성현!”

성현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라 돌아보니 찰리 브라운을 비롯한 영국측 관계자들이었다.

일반 스탭이 아닌, ‘더 넥스트 슈퍼스타’ 주최 측의 영국 지사 인사들의 등장에 셋은 연습을 잠시 멈춰야 했다.

성현이 찰리 브라운과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일어났다.

놀란 찰리 브라운이 그런 성현을 말렸다.

“연습 방해하러 온 건 아니니까 편하게 하세요. 우린 뒤에서 조용히 구경하다 가겠습니다.”

이미 합주실에 들어와 있던 영국 스탭들이 난감한 표정이 되었다.

이 많은 인원이 연습을 구경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결국 합주실 문을 열고 연습을 진행하기로 했다.

오히려 복도에서 차례를 기다리던 스탭들 사이에서는 행운이라는 수군거림이 일었다.

성현은 찰리의 말에 다시 멤버들과 연습을 재개했다.

한차례 디렉팅을 대충 마친 성현이 직접 피아노 앞에 가서 앉자, 그 모습을 다들 흥미롭게 지켜봤다.

주최의 영국 지사 인사들은 영국의 TOP 8 참가자들과 비교해서는 어떨지, 더 좋은 실력들을 가지고 있을지.

아니면 그보다는 못한 실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을지 기대하는 표정이었다.

“저 남자예요? 찰리가 말한 한국의 천재 프로듀서가?”

“두고 봐. 어쩌면 우승까지도 할 수 있는 참가자니까.”

한 관계자가 결국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곁에 있는 찰리에게 속닥거렸다.

찰리는 자신만만하게 콧김을 내뿜으며 팔짱을 꼈다.

그 말에 관계자는 말도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내저었다.

“에이, 아무리 그래도 한국에서 우승자가 나올 수 있을까요? KPOP이 아무리 대세라고 해도, 글쎄요. 전 회의적입니다.”

대세는 대세고, 이번 오디션은 전 세계에서 실력자들이 모여든다.

아무리 동방의 작은 나라가 요즘 조금 잘 나간다 해도, 인구수부터 차이 나는 대륙의 강자들을 모두 꺾기는 무리라는 의견이었다.

이 말에 몇몇 관계자들 역시 동조하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두고 보라니까? 일단 보고 얘기하자고.”

찰리는 답답한 듯이 가슴을 치며 노래를 시작하려는 세 사람을 턱끝으로 가리켰다.

자신의 말에 조금 회의적인 관계자들에게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찰리의 모습.

찰리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성현 쳐다보는데, 드디어 성현의 손이 피아노 위로 가지런히 올랐다.

잔잔한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자, 천소울이 첫 소절을 불렀다.

“Imagine there's no heaven It's easy if you try No hell below us Above us only sky Imagine all the people living for today.”

천소울 특유의 미성에 섞인 허스키한 목소리를 들은 관계자들의 표정이 급변했다.

지금껏 찰리의 말을 농담으로 알아 듣고 웃고 있던 표정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그 모습을 보고 찰리는 소곤거리며 중계를 해줬다.

“소울 이라는 참가잔데 저 친구도 실력이 상당해.”

“아, 저 친구가 그 친구구나. 팬투표에서 3등인가 했던 아시아 남자.”

“팬투표?”

찰리는 자신도 모르는 소식에 눈을 크게 떴다.

그 말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참가자가 말을 보탰다.

“네. THE MUSIC 잡지사에서 이번 전 세계 TOP8들 중 누가 가장 인기가 많은지 설문조사를 진행했는데 아시아인 중에서 유일하게 TOP 10 안에 들어간 남자예요.”

“THE MUSIC이면 공신력이 상당하지 않나?”

한 관계자의 말에 놀란 관계자들이 수군거렸다.

찰리는 그 말에 이거다, 싶었는지 신이 나서 속닥였다.

“저 둘이서 가수랑 프로듀서 각각 우승하면 어떨까? 아시아인, 그것도 변방 국가라고 알려진 한국에서 우승자가 둘이나 나오는 거야.”

찰리의 말에 관계자들은 혹시나 싶었던 얼굴을 지우고 다시 미심쩍은 얼굴이 되었다.

“에이, 그건 좀 망상 아닌가요? 아무리 잘해도 그렇지 우승자 둘이 한국에서 나오는 게 말이 돼요?”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쉬잇. 노래 좀 들읍시다.”

계속해서 찰리와 관계자들이 속닥거리자 결국 한 사람이 중재에 나섰다.

노래를 듣고 있던 관계자 중 하나가 노래에 집중하고 싶은 듯 인상을 쓰며 쉿, 검지를 들어 올린 것.

찰리는 그 모습에 합, 떠들던 입을 멈추고 이내 다시 연습을 지켜보는 데 집중했다.

“You may say I'm a dreamer But I'm not the only one I hope some day you'll join us And the world will be as one.”

이어지는 임하나와 천소울의 듀엣.

천소울의 매력적인 미성과 임하나의 파워풀한 저음이 함께 어우러졌다.

곡의 클라이맥스를 완성해가는 두 사람을 보는 관계자들이 감탄을 흘렸다.

“저 여자애도 음색이며 그루브가 상당히 좋네요.”

“그렇지? 한국 내에선 비욘세라는 별명도 있대.”

자신이 다 뿌듯한지 어깨를 으쓱이며 하는 찰리의 말에 관계자 하나가 어이없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비욘세가 생각나긴 하네요. 아니 근데, PD님은 참가자 별명까지 다 어떻게 알아요? 우리 영국애들 별명도 잘 모르시는 분이.”

관계자 말에 옆에 있던 다른 관계자가 쿡 찌르며 대답했다.

주최 측 관계자여도 영국의 메인 PD 자리를 꿰차고 있는 찰리에게 함부로 말을 할 수는 없었다.

이제 그만 슬슬 눈치를 챙기라는 제스처였다.

“PD님 사위가 한국인이잖아요. 한국 완전 사랑해.”

밝혀진 뜻밖의 연관성에 눈치 없이 끼어든 관계자가 헛웃음을 지었다.

“어쩐지......”

“쉬잇. 이제 노래에 집중하지?”

찰리는 민망한지 다시 둘을 노래에 집중하게 분위기를 환기했다.

관계자들도 이내 다시 연습에 집중하는데 연습을 지켜보는 그들은 점차 자연스럽게 말이 없어졌다.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의 노래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기 때문이다.

영국과 비교해서 실력이 얼마나 될지 가벼운 마음으로 방문한 관계자들은 슬슬 머리가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여태껏 최대 라이벌은 미국 참가자들이라 생각해왔다.

이거 어쩌면, 찰리의 말대로…….

영국 스탭들은 착잡한 심정으로 한국에서 온 세 명의 작은 거인들을 지켜봤다.

***

1시간 가량 이어진 연습이 끝이 났을 때 영국측 관계자들은 상기된 얼굴로 셋에게 박수를 보내왔다.

복도에서 귓동냥으로 연습을 훔쳐 듣던 영국 스탭들까지 하나 된 마음으로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완벽했습니다.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은 기분이었어요.”

찰리가 대표로 나서서 성현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저 연습임에도 한편의 공연을 보여준 것 같은 셋에게 감사 인사를 전한 것이다.

“PD님께서 하도 극찬을 하셔서 사실 조금 깐깐하게 연습을 지켜봤는데 소용이 없더군요. 왜 강력한 우승 후보들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습니다.”

“제가 들어본 Imagine 커버 곡 중엔 단연 최고였습니다.”

관계자들의 극찬이 연이어 이어졌다.

성현과 일행들은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관심에, 그저 그들의 반응에 고마울 따름이었다.

“버스킹 공연에서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지금도 이렇게 완벽한데 여기서 더 완벽해지겠다고? 이건 반칙 아닌가? 응?”

찰리는 말도 안 된다는 듯 너스레를 떨며 성현의 어깨를 치며 말했다.

성현은 연이어진 칭찬에 민망함에 웃으며 연습실 나갔다.

때마침 밖에는 한국에서 함께 온 다른 TOP7 참가자들이 서 있었다.

이 다음 타임에 합주실을 예약한 터라 본의 아니게 경쟁자들의 연습을 듣게 된 것이었다.

다른 참가자들은 영국 스탭들의 환호를 받고 있는 성현의 팀에 약간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

아직 정식 공연도 아닌데, 합주실에서 이 정도 관심을 받고 있을 줄이야.

“다들 너무한 거 아니야? 살살 좀 해.”

“저 지금 호텔가서 짐 싸야겠어요. 저분들 우리 한국 보내려고 작정한 거 같아.”

다른 TOP7 참가자들 모두 성현 일행의 공연을 보며 감탄하며 너스레를 떨어댔다.

반쯤 진심이 담긴 그들의 말에 성현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다들 잘하시면서 왜 그래요.”

괜히 한국 대표가 아니었다.

나머지 네 사람도 만만치 않은 실력자였다.

연습실에서 나온 임하나가 엄살을 떨고 있는 참가자들을 발견하고 피식 웃었다.

“괜히 약한 척하는 거예요. 저러다 우리 가고 나면 이 갈고 연습하실걸요?”

“안에 장비랑 전부 정리해놨으니까 바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성현의 일행들이 먼저 연습을 끝내고 나가자 바로 다른 한국팀이 들어갔다.

“바로 들어갈 거 아니죠?”

미리 말을 맞춰놓은 것은 아니지만, 당연하다는 듯이 둘을 돌아보며 성현이 물었다.

그 말에 임하나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죠. 실컷 구경하다 가야지.”

성현의 일행은 이미 연습을 끝냈기에 곧장 호텔로 돌아가도 됐지만, 성현의 일행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모두 남아 다른 한국팀의 연습을 지켜보았다.

그렇게 얼마 후, 한국 다른 팀의 연습이 시작됐는데 역시나 TOP7에 들어간 참가자들답게 편곡과 보컬 모두 훌륭했다.

‘방심하면 안 되겠는데.’

성현의 팀이 워낙 뛰어나다고 해도 어쨌든 다른 한국 팀 역시 치열한 경쟁을 뚫고 TOP 7으로 올라온 참가자들이었기에 실력의 편차가 눈에 띄게 보일 정도로 큰 편이 아니었다.

물론 성현의 팀 실력이 더 좋긴 했다.

본의 아니게 한국과 다른 나라에서 성현과 천소울이 큰 관심을 받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버스킹이라는 특성상 현장에서 어떤 사고나 돌발 행동이 생길지 몰랐고 승패는 언제든 뒤집힐 수 있었다.

“여기 말고 다른 연습실 없어요?”

“왜요?”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진 건 성현뿐만이 아니었다.

“연습 더 하다 가려구요.”

“제가 주최 측에 물어보겠습니다.”

다른 팀의 연습을 다 지켜보고 성현만 희미한 불안감을 느낀 것은 아닌 모양이었다.

임하나와 천소울 역시 상대 팀의 곡을 듣고는 방심할 수 없다 느꼈는지 더욱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를 다잡았다.

버스킹 공연까지 남은 날은 앞으로 나흘.

그 안에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볼 요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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