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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79화 (179/273)

179화

“선아라면……. 선아를 영입하고 싶다고? 우리 회사 주선아?”

“네.”

김성민은 순간 성현의 말을 잘못 들었다 생각했는지 되묻기까지 했다.

성현의 확답을 듣고는 옆에 있는 심훈영을 쳐다봤다.

대체 이게 무슨 소리냐는 듯한 표정.

심훈영은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 성현이 말을 하도록 나서지 않고 기다렸다.

김성민은 심훈영이 입을 열 기미가 보이지 않자, 찜찜한 표정으로 성현을 응시했다.

“왜?”

김성민은 정말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별안간 남의 소속사에 찾아와 연습생 한 명을 자신이 데뷔시켜주겠다니.

제정신이 아니고서야 이렇게 나서는 것이 이해가 안 갔기 때문이다.

“멤버로 서지현, 릴리, 문희진씨를 생각 중인데 주선아씨가 들어온다면 더 완벽해질 것 같아서요.”

“완벽해질 것 같아서라...... 그것 때문에 주선아를 우리 대신 데뷔시키고 싶단 건가?”

날카로운 눈으로 성현을 구석구석 살피는 김성민은 떠보듯이 물었다.

“네.”

성현의 자신 있는 대답에 김성민의 눈썹이 움찔했다.

“재밌는 친구네.”

김성민은 몸을 뒤로 빼며 성현을 흥미롭게 쳐다봤다.

‘너튜브 스타 릴리, 서지현, 거기다 이번에 사달이 난 문희진까지? ……화제성은 확실한데.’

김성민은 성현이 말한 세 사람을 모두 알고 있었다.

세 명 다 오디션 동안 상당히 인기가 좋았던 참가자들이었으니 당연했다.

거기에 셋 모두 실력 또한 좋아서 그 또한 눈여겨 보고 있었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문희진은 최근, WE 엔터와의 분쟁에서 목소리를 낸 사람이기도 해서, 이쪽 업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왜?

김성민 대표는 성현에게 뭔가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닌가 의심했다.

자기네 소속사도 아닌 연습생을 대신 데뷔시켜 주겠다고 찾아오다니.

그 저의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주선아를 데뷔시켜주겠단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더 완벽한 그룹을 만들고 싶다는 이유라니.

아직까지 한국에 이렇게 순수한 마음으로 데뷔를 논하는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게 신기했다.

‘말도 안 되지, 말도 안 되는데.’

아마 믿지 않았을 것이다.

소파에 푹 기대앉아 찻잔을 들고 허허로이 창밖을 내다보고 있는 심훈영이 시야에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김성민 대표는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웬일로 그 구석진 술집에서 나왔나 했더니…….’

지금 눈앞에서 열변을 토하며 한낱 연습생에 불과한 넷의 잠재력을 말하는 성현을 보고 있자니 자연히 이해가 됐다.

성현이 얼마만큼 이 일에 진심일지 가늠이 됐다.

딱, 심훈영의 젊었을 때 모습이었다.

배경, 재력에 상관없이 가능성 있는 젊은 사람들의 꿈을 키워주려 했던 심훈영.

세상의 풍파에 떠밀려 날개가 꺾인 채로 숨죽이고 있는 그를 끄집어낸 것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처음엔 세 명으로 가려고 했지만 계속 2프로 부족하단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러다 근래에 주선아씨의 무대를 다시 보게 됐는데 그때 확신이 들었어요. 그 2프로를 채울 수 있는 퍼즐이 주선아씨라는 걸요. 이미 몇 명 멤버들과는 함께 무대를 준비하면서 호흡을 맞춰왔기 때문에 합을 맞추기에도 수월할 것 같구요.”

김성민은 이성현 말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듣다 보니 그럴듯했다.

그 또한 기획사 수장으로서 지금 네 명의 조화가 상당히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가지고 있는 화제성도 있겠다, 데뷔만 시키면 마케팅 효과도 상당하겠네.”

대충 그림이 그려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건 되는 게임이다.

김성민은 자신도 모르게 네 명의 그림을 그려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심훈영은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며, 김성민 대표 모르게 성현에게 엄지를 들어 보였다.

다 넘어왔네, 다 넘어왔어.

왕년에 심훈영에게 걸렸던 김성민이 어디 갈 리 없었다.

비슷한 성격의 성현이 건네는 달콤한 제안을 물지 않을 거라는 생각 자체를, 애초에 심훈영은 하질 않았다.

그럼에도 김성민은 쉬이 입을 열지 못했다.

“조건도 까다롭게 갈 생각은 없습니다. 최대한 대표님 쪽 의견 반영해 드리겠습니다.”

“시간을 좀 줄 수 있겠나. 지금 당장은 대답하기 좀 곤란해서.”

크흠, 헛기침을 하며 일부러 딱딱하게 대꾸하는 김성민의 말에 심훈영은 속으로 콧방귀를 꼈다.

성현은 김성민이 당장 수락할 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흔쾌히 알겠다고 대답했다.

“회사 내부적인 차원에서 논의가 들어가야 할 거 같은데……. 빠르게 답변을 주도록 하지.”

“그럼 긍정적인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성현이 지체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김성민과 심훈영은 마지막으로 서로 인사를 나눴다.

“연락 좀 하고 살아요, 형님. 이럴 때만 찾아오지 말고.”

“알겠어. 간다.”

김성민은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심훈영에게 당부했다.

웃으며 선뜻 대답한 심훈영이 성현의 등을 두드리며 같이 방을 나섰다.

성현과 심훈영이 사무실을 나가는 뒷모습을 지켜보던 김성민은 고민에 빠졌다.

‘그림 자체는 나쁘지 않은데 말이지......’

성현의 제안이 김성민에게도 나쁘지는 않았다.

않았지만, 당장 수락할 수 없는 이유가 있었다.

바로 회사 내부에서도 주선아를 솔로로 데뷔시킬지 아니면 그룹으로 데뷔시킬지를 아직 정하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

그 옛날 혈혈단신으로 음악하던 그때 심훈영의 제안을 그 자리에서 바로 수락할 때와는 자신의 덩치가 너무 커졌다.

그 역시 성현과 마찬가지로 책임져야 할 식구들이 있으니 마음대로 움직이다가는 모든 게 무너질 수도 있었다.

생각에 잠겨 있던 김성민은 곧 직원을 불렀다.

“선아 데뷔 문제로 회의 잡을 거니까 회의실 예약해.”

김성민은 어느 쪽이 득이 될지 일단은 더 지켜볼 생각이었다.

***

김성민과의 만남을 끝내고 차로 돌아온 성현과 심훈영은 서로를 쳐다봤다.

심훈영은 운전대를 두드리며 성현에게 물었다.

한 가지는 대충 해결됐고, 이제 나머지 하나가 남았다.

“주소가 어떻게 된다고 했지?”

“잠시만요.”

성현은 곧 휴대폰에서 주소를 찾아 불러주었다.

심훈영은 바로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찍었다.

“20분 거리면 가깝네.”

심훈영이 주차장을 빠져나가며 성현에게 말했다.

예정시간을 전해 들은 성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저 지금 출발하는데 20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성현의 말에 수화기 너머에서 천천히 와도 된다는 말이 들려오고 성현은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성현이 전화를 끊은 것을 확인한 심훈영이 은근히 물었다.

“어떻게 될 것 같아? 주선아씨 내 줄 것 같아?”

“다른 도리가 없을 거예요.”

성현은 김성민 대표를 잘 아는 사이가 아님에도 꽤나 확신하는 어투였다.

심훈영은 짐짓 놀라서 웃으며 물었다.

자신도 김성민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지만, 백 퍼센트 넘어왔다는 확신을 갖지는 못했다.

그에 비해, 성현은 이미 다 해결됐다는 듯이 말하는 것이 놀라웠다.

“꽤나 확신한다?”

“아마 거기도 지금 주선아씨 데뷔 문제로 머리가 아플 텐데 마침 제가 좋은 제안을 한 거니까요.”

“머리가 아프다니? 선아 정도면 당장 데뷔시켜도 되는 실력 아니야?”

성현의 말에 심훈영은 의아하다는 듯이 물었다.

직접적으로 주선아를 만나서 무대를 지켜본 것은 아니지만, 그 역시 ‘더 넥스트 슈퍼스타’ 애청자였다.

천소울과 함께 무대를 누비며 활약을 떨친 주선아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충 알았다.

그녀는 앞으로 빠르면 빠른 데뷔를 했지, 더 오랜 시간 연습생으로 머물러 있을 인재가 아니었다.

“실력의 문제가 아니라 회사 내부 사정 때문이에요. 주선아씨가 오디션을 통해 스타성을 입증했다 하지만 회사 내 다른 대형 가수들이 연달아 컴백 준비를 한다고 들었거든요.”

꽤나 날카로운 통찰력이었다.

심훈영은 매일 오디션 준비를 한답시고 스튜디오에 틀어 박혀있는 성현이 이런 정보는 어디서 얻었을까 생각하며 핸들을 돌렸다.

“애매해졌네. 그쪽도 오디션이 화제성을 가지고 있을 때 빨리 데뷔시키길 원할 거 아니야.”

심훈영의 지적에 성현 역시 같은 생각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기획사 입장에서 이 시기에 주선아를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오히려 손해였다.

“그렇겠죠. 데뷔 늦추다가 오디션 끝나고 화제성이 떨어지면 지금보단 주목 받기가 힘들어질 수도 있는 거니까요. 그런데 그렇다고 당장 주선아씨를 막무가내로 데뷔시키기엔 그쪽도 아까운 거겠죠. 주선아씨가 가지고 있는 재능과 스타성이.”

성현의 말에 심훈영은 그제서야 성현이 왜 이렇게 확신하는지를 알았다.

‘과연, 적절하게 맞는 자리를 주선해주겠다 이건가.’

주선아의 데뷔는 이미 애매하게 붕 뜬 상황이었다.

때마침 성현의 기획사 쪽에서 그녀를 데뷔시켜 준다는 제안을 내건다면?

김성민 대표의 입장에서도 시간과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조건만 괜찮으면 거절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심훈영은 탄식하듯이 허허 웃음을 뱉었다.

사람 좋은 프로듀서가 성현의 모습에 다가 아니었다.

“성현이 넌 다 계획이 있었구나?”

“대표님 아니었음 그 계획 실천하지도 못했어요. 오늘 자리 마련해 주셔서 고마워요.”

“내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냥 너 운전기사 노릇이나 해준 것뿐인데, 뭘.”

심훈영의 말에 성현이 깜짝 놀라 말했다.

“죄송해요. 면허 빨리 따야 되는데.”

“죄송하긴. 운전은 내가 할 테니까 성현이 넌 음악만 해라.”

심훈영은 반쯤 진심이었다.

성현이 지금처럼 다른 건 신경 안 쓰고 음악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었으니까.

그때 내비게이션에서 목적지에 도착했다는 안내 멘트가 흘러나왔다.

“여기야? 생각보다 건물이 작네.”

심훈영은 김성민 대표의 회사에 비해 훨씬 작고, 허름하기까지 한 건물을 보며 말했다.

“아는 사람이 차린 소규모 기획사라 그런가 봐요.”

성현이 건물로 들어가기 전,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기도 전, 건물에서 익숙한 얼굴이 나타났다.

“오랜만이다.”

더 비기너의 기타 김동우다.

김동우를 발견한 성현은 전화를 끊고 반갑게 인사했다.

“잘 지내셨어요?”

“오랜만에 연예인 하려니까 힘들어 죽겠다.”

김동우은 투덜거리다가 성현의 뒤로 보이는 심훈영 발견하고 곧장 90도로 인사를 했다.

더 비기너에게 심훈영은 살아 있는 전설 그 자체였다.

밴드가 시작할 당시 그의 곡을 얼마나 많이 커버하고 따라 불렀는지 셀 수도 없었다.

“안녕하십니까. 더 비기너 김동우입니다.”

“얘기 많이 들었어요. 최근에 재결합했다면서요?”

“네. 데뷔 때부터 같이 한 매니저 형이 기획사 차려서 저희끼리 작게 운영하고 있습니다.”

김동우는 재빨리 두 사람을 연습실로 안내했다.

마침 연습실에 있던 이재원과 최훈이 그들을 반겼다.

“1등 했다며? 오늘 축하 턱 쏴야지?”

“오늘은 안 되고 다음에 좋은 곳에서 사드리겠습니다.”

이재원의 너스레에 성현은 미안한 듯 웃으며 말했다.

“어! 심훈영 선배님?!”

최훈의 말에 이재원도 그제야 성현 뒤로 들어오는 심훈영을 발견했다.

두 사람 모두 심훈영에게 달려가 깍듯하게 인사했다.

“선배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엘 다 오시고, 영광입니다.”

“커피라도 타 올까요? 아니면 차 드시겠어요?”

심훈영이 가수 활동을 중단한 지 한참이 지났지만 그가 가요계에 지니고 있는 위상은 여전했다.

후배 가수들 중에 심훈영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난 신경 쓰지 말고 얘기들 나눠요.”

심훈영은 더 비기너 멤버들이 자신 때문에 안절부절 못하자 잠시 자리를 비켜주기로 했다.

성현은 감사하다는 인사로 작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안부 묻겠다고 온 건 아닌 것 같고.”

이재원은 대충 예상한 듯 말을 꺼냈다.

성현 역시 싱긋 웃으며 답했다.

“네. 지난번 했던 제안에 대한 답변 들으러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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