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76화 (176/273)

176화

진행 스탭이 나간 후 TOP 7 참가자들의 표정은 저마다 제각각으로 변했다.

누군가는 해외 관객들을 앞에서 무대를 하게 된 것에 기대감에 가득 찼고.

낯선 나라에서 버스킹을 할 생각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 참가자도 있었다.

“언어도 다른 곳에서 오로지 음악으로만 소통하는 거잖아요. 우리 노래를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만 해도 설레요.”

임하나는 걱정보단 설렘이 더욱 큰 듯 잔뜩 상기된 표정이었다.

자신들을 모르는 관객에게 오로지 노래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

역시 승부사의 기질을 타고난 임하나는 두려움보다 설렘이 앞서는 듯했다.

임하나의 말에 한 참가자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무리 음악이라 해도 언어가 다른데 원곡이 가지고 있는 감동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을지 걱정이네요. 외국 나가면 인종 차별 이런 것도 있다면서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자들.

임하나와 달리 걱정하는 참가자들도 몇몇 있었다.

기존 자신들의 나라와 다른 생김새의 이방인이 찾아와 익숙한 노래와는 다른 노래를 부르는데 아무런 거부감이 없을까?

게다가 이번 미션은 이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사전정보를 가지고 찾아오는 무대 공연이 아니었다.

우연의 산물로 이루어지는 관객과 공연자의 만남.

외국인이 거리 공연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지는 않을까?

“이성현씨는 이번 미션 어떨 것 같습니까?”

“잊지 못할 정도로 재밌을 것 같아요.”

성현은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빠르게 대답했다.

천소울이 확신에 가득 찬 성현의 대답에 의아해하며 그를 쳐다볼 정도였다.

성현은 거기서 더는 설명하지 않고 싱긋 웃어 보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성현이 게임을 하면서 가장 재밌게 즐겼던 미션이 이번 해외 버스킹 미션이었다.

해외에서 자유롭게 버스킹 공연을 한다는 것에서 오는 재미를 아직까지 잊지 못했다.

매번 이 미션이 실행할 때마다 짜릿함에 전율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엔딩이 종료되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다른 나라로 가서 버스킹을 하고 싶다고 생각할 정도로 인상 깊은 미션이었다.

물론 당시엔 천소울이란 캐릭터를 통해 간접 경험을 한 것에 불과하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느꼈던 자유과 행복은 성현에게 잊을 수 없는 추억으로 남아있었다.

‘한 곳 한 곳 다 재밌긴 했지만 가장 좋았던 곳을 뽑으라면......’

성현은 꿈을 꾸는 것처럼 몽롱한 시선으로 자신이 겪었던 해외 버스킹 공연지를 하나하나 떠올렸다.

성현은 게임을 통해 10개국의 버스킹 무대를 모두 해본 경험이 있었다.

그중 가장 좋았던 나라를 떠올려 보니 2개의 나라가 떠올랐다.

그런데 이번에 실제로 그곳에 가서 천소울, 임하나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이보다 행복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이번에도 그곳이 되면 좋겠는데.’

무작위로 진행되는 추첨이기에 모든 걸 운에 맡길 수밖에 없었다.

성현은 되도록 자신이 생각했던 나라가 되길 바라며 30분을 기다렸다.

성현에게는 미친 듯이 길었던 30분이.

출발하기 전부터 해외 버스킹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참가자들에게는 짧은 30분이 흘렀다.

시간에 딱 맞춰서 대기실로 진행 스탭이 들어왔다.

“그럼 지금부터 나라 추첨을 시작하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과 동시에 대기실에 설치된 스크린이 켜졌다.

스크린에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참가했던 전 세계의 수많은 참가자들의 노래 영상이 편집돼서 흘러 나오기 시작했다.

참가자들은 모두 그 웅장함에 자신들도 모르게 압도돼서 숨을 죽이고 영상을 지켜봤다.

자신들의 모습도 스쳐 지나가고, 각국의 쟁쟁한 참가자들의 모습도 빠르게 지나갔다.

너튜브 방송을 통해 익숙하기도, 또 낯설기도 한 외국인들의 모습.

한국 대표가 된 TOP7 참가자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이제 자신들의 경쟁자는 같은 한국인만이 아니었다.

팟.

화려한 무대 영상이 흘러나오던 화면이 순간적으로 사라졌다.

까맣게 꺼진 화면.

“뭐, 뭐야?”

참가자 한 명이 놀라서 외쳤다.

곧이어 검정 화면 속 한 남자가 실루엣만 보이며 걸어 들어왔다.

곧 무대에 불이 켜지고 모습을 드러낸 남자가 마이크를 들고 각국의 참가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반갑습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 여러분. 브르노 막스입니다.”

미국의 대표 싱어송라이터인 브르노 막스의 등장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 정신을 놓고 환호했다.

항상 음원 속 목소리만 들었을 뿐인, 가수의 등장.

게다가 그 전설 속 가수가 자신들에게 손을 흔들기까지 했다.

“나, 한국 대표되기 잘했다.”

한 참가자는 브르노 막스의 광팬인지 두 손을 가슴에 모은 채 중얼거리기까지 했다.

“다들 눈치챘겠지만, 오늘 전 여러분들의 버스킹 나라 추첨을 하기 위해 왔습니다. 바로 저 슈퍼스타 브르노 막스가 고작 박스에 든 공이나 주우러 왔다구요. 이제 알겠어요?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스케일이 다른 오디션과 차원이 다르다는 걸?”

막스가 자신의 앞에 놓인 투명한 박스를 가리키며 농담을 내뱉었다.

이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PD를 향해 소리쳤다.

“이 정도 띄워주면 되는 거죠? 충분한가? 뭐라고? 부족하다고? 더 넥스트 슈퍼스타 쩔어! 이제 됐나? 만족해요?”

막스의 농담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크게 웃으면서도 다시 한번 더 넥스트 슈퍼스트의 위상을 느꼈다.

다른 한편으로 극도의 긴장이 찾아왔다.

아무나에게 주어지는 기회가 아닌 만큼 그 누구도 이대로 떨어질 생각은 없었다.

그만큼 이 이후에 이어질 나라 추첨이 더욱 중요해졌다.

참가자들은 어느새 환호를 관두고 긴장한 눈으로 우스갯소리를 내뱉는 막스를 쳐다보았다.

막스는 이후로도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대한 소개를 이어가며 관련된 메이저 스폰서와 후원사들을 간략히 얘기했다.

어찌나 많은 후원사들이 붙었는지, 단순히 소개를 하는 데에도 꽤나 많은 시간을 잡아 먹어야 했다.

드디어 모든 소개가 끝이 나고, 버스킹 나라 추첨이 시작되었다.

“여러분 모두에게 행운의 여신이 함께하길 바라며 지금부터 추첨 시작하겠습니다.”

막스는 두 손을 비비며 무대 가운데 위치한 투명한 박스 두 개를 내려다봤다.

박스 두 곳엔 각각 빨간색과 파란색으로 된 공이 들어있었다.

“여기 보이는 빨간색 공 안에는 각 참가자들의 나라가 들어있고. 옆에 있는 파란색 공 안에는 여러분들이 가야 하는 버스킹 나라가 들어있습니다. 과연 어떤 나라가 어디로 향할지 궁금하네요.”

막스는 카메라를 향해 짓궂게 웃으며 박스에 손을 넣었다.

이리저리 박스 안에 들어있는 공들을 휘젓던 막스가 빨간색 공 하나를 꺼내들었다.

꺼낸 빨간색 공을 돌려서 열자, 그 안에 쪽지가 하나 나왔다.

막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으며 이내 카메라를 향해 쪽지를 보여줬다.

[Spain]

“정열의 나라 에스파냐군요. 과연 이들의 정열은 어디로 향할까요.”

막스는 이번에는 파란색 공을 하나 집어서 올려 비틀어 열었다.

안에 들어있던 쪽지를 확인한 막스는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흥미로운 조합이네요.”

막스는 그 말을 하며 쪽지를 카메라를 향해 보여줬다.

[Japan]

“벚꽃이 아름다운 나라 일본입니다.”

막스는 바로 이어서 두 번째, 세 번째 나라의 추첨도 막힘없이 이어나갔다.

그러다가 네 번째 차례에서 빨간 공을 확인한 막스의 눈이 조금 커졌다.

“이번 나라는 절대 얕볼 수 없는, 작지만 강한 나라입니다. 최근 이 나라의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쓸고 있다 해도 지나치지 않거든요.”

막스의 말에 한국의 대기실이 조금 술렁였다.

마침내 막스가 쪽지를 화면에 보여주고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이 일제히 소리 질렀다.

[Republic of Korea]

드디어 한국이 나온 것이다.

“K-POP의 나라 한국입니다. 개인적으로 눈여겨보고 있는 참가자 몇 명이 있는데 여기선 노코멘트 하겠습니다.”

막스의 말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모두 당연하다는 듯이 성현과 천소울을 쳐다봤다.

말은 안 했지만, 현재 한국에서도 제일 인기를 끌고 있는 두 사람이었다.

막스라고 다르지 않을 것.

두 사람을 돌아보는 참가자들 눈에는 부러움과 호기심이 어려 있었다.

“막스가 눈여겨보고 있다는데 소감이 어때요?”

임하나는 성현과 천소울에게 장난스럽게 물었다.

성현과 천소울은 모두 그저 웃어 보일 뿐 화면에 시선을 집중했다.

막스에게 받은 인정도 중요하지만,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막스의 인정이 아니었다.

앞으로 있을 미션에서 버스킹을 펼칠 나라가 그들에겐 더욱 중요했다.

“KPOP의 나라 한국은 과연 어디로 향하게 될까요.”

막스는 자신이 더 긴장한 표정으로 파란색 공 하나를 골랐다.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모두 숨을 죽이고 막스의 손이 움직이는 행적을 따라 지켜봤다.

마침내 파란색 공이 비틀어 열리고 하얀 쪽지 하나가 막스의 손에 들어갔다.

쪽지를 펼쳐본 막스의 눈에 이채가 돌았다.

“오, 이 조합도 상당히 흥미롭네요. 음식이랑 비만 아니면 정말 살기 좋은 나란데.”

막스는 가벼운 농담을 잊지 않으며 카메라를 향해 쪽지를 보여줬다.

그 순간, 성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U.K.]

“비틀즈의 나라 영국입니다.”

‘됐다.’

막스의 말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 박수를 쳤다.

미국에 비해 KPOP이 많은 인기를 끌고 있는 나라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다른 나라들에 비해 괜찮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지난 몇 주간 참가자들이 각종 인터뷰를 통해 끊임없이 받은 질문이 있었다.

10개국 나라가 언론에 밝혀지고 어느 나라 대표와 가장 겨루고 싶냐는 질문.

많은 이들이 미국을 꼽고, 간간이 일본이나 유럽의 나라들이 거론되기도 했다.

개중에 미국 다음으로 가장 많은 답변을 받은 나라, 영국이었다.

“영국이면 선방했네. 영어권 나라기도 하고.”

“버스킹 곡 고르기도 좀 수월하겠네요. 영국 출신 유명한 아티스트가 워낙 많잖아요.”

참가자들 모두 끄덕이며 동의하는 와중에, 성현은 참을 수 없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영국은 그가 생각했던 2개의 나라 중 한 곳이었다.

아마 그곳에 가서 버스킹을 한다면…….

성현은 벌써부터 밀려오는 기대감에 주먹을 말아쥐었다.

행운의 여신은 성현의 손을 들어주었다.

***

해외 버스킹 출전 나라가 정해진 후, 성현은 천소울과 임하나와 첫 회의를 가졌다.

노래 선곡부터 어떤 컨셉으로 무대를 준비할지에 대한 의견만 간단히 나누고 헤어졌다.

다만 문제는, 당장 버스킹까지 3주간의 시간만이 남았다는 것.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했다.

‘확실히 기획사 문제까지 겹치니까 시간이 좀 빠듯하긴 하네.’

곡 작업에 소속사 관리 역할까지 해야 하는 성현에게는 그리 많은 시간이 아니었다.

성현은 결국 시간을 확인하고는 버스의 정차 버튼을 누르고 일어났다.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없었다.

‘스튜디오 가서 작업이라도 더 하다 가야겠다.’

성현은 잠을 덜 자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곡작업을 끝낼 생각에 집으로 향하던 버스에서 내려 스튜디오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곧 비틀즈의 나라 영국으로 떠난다.

추첨에서부터 행운의 여신은 자신에게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넸다.

이제 남은 것은 이번 기회를 단단히 틀어쥐는 것뿐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