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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75화 (175/273)

175화

집으로 돌아와 불을 켜니 휑한 반지하 작업실 내부가 보였다.

구석에 가지런히 정리된 박스 안에는 음악과 관련된 책이 한가득이었다.

그 옆 꾸러미들에는 성현의 작곡, 작사 노트가 담겨있었다.

‘이만하면 다 됐으려나?’

성현은 며칠 전부터 조금씩 짐을 정리해 놓은 상태였다.

곧 이 집을 떠나 아버지의 집으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떠나려니까 아쉽네. 나름 추억도 많은데.’

아쉬움에 잠겨 작업실 구석구석을 살피고 있는데, 성현의 전화가 울렸다.

발신인은 아버지 이주성.

“예, 아버지.”

“집엔 잘 도착했어?”

“네, 방금 도착했어요.”

“집엔 언제 들어올 거냐? 지금 차 보낼까?”

이주성은 성현이 하루라도 빨리 집에 들어왔으면 하는 마음이었고, 이를 숨기지 않았다.

이는 성현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 달 후면 오디션을 위해 해외로 떠나야 했다.

결과에 따라서 오랜 시간 해외 생활을 할 수도 있었기에, 최대한 그 전에 아버지와 시간을 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이곳을 계속 비워둘 수도 없었고.

“아직 짐 정리도 덜 끝났어요.”

성현이 대답을 하며 시간을 보자 어느덧 10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생각보다 늦은 시간에 놀란 성현이 아버지에게 당부하듯이 말했다.

“안 주무세요? 내일 오전부터 강의 있다면서요.”

“안 그래도 이제 자려고 누웠다. 성현이 너도 오늘은 일찍 자라. 기획사 설립에 오디션 준비까지 하느라 이것저것 바빴을 텐데.”

“네, 아버지도 주무세요.”

성현은 이주성과 전화를 끊고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오랜 시간 아버지와의 연을 끊고 살다가 하루아침에 이렇게 관계가 바뀔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감정의 골이 깊고 깊었던 3년이라는 시간이 무색하게, 두 사람은 잘 지내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그동안의 시간을 보상하려는 듯이 더 애틋해진 것 같기도 했다.

“이것도 다 오디션 덕분인 건가.”

더 넥스트 슈퍼스타로 인해 좋아하는 음악을 하고, 함께 음악을 할 동료들을 만났다.

게다가 아버지와의 관계까지 좋아지기까지.

어쩌면 이번 오디션이야말로 자신에게 주어진 선물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가 만든 건지 모르겠지만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고 싶네.’

성현은 골방에서 혼자 작업을 하며 프로듀서의 꿈만 키웠던 과거를 잠시 떠올렸다.

그 시절 유일한 낙이었던 게임.

101번째 엔딩을 보았던 게임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게임에서만 보던 천소울과 다른 동료들을 만난 여러 일들이 새삼 너무 신기하기만 했다.

이 모든 일이 어떻게 생긴 건지 궁금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냥 지금의 상황에 감사해하면 되는 거겠지.’

성현은 당장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를 즐기기로 하고 곧장 지하 작업실로 향했다.

이주성에게는 일찍 자겠다 했지만, 당장 해외에서의 버스킹 미션이 한 달 뒤인 상황에서 성현에게는 일 분 일 초가 소중했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낼 수는 없었다.

작업실에 도착한 성현은 미리 선정해뒀던 곡을 하나씩 들어보며, 그중 몇 곡은 따로 만든 파일로 옮기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그때 성현에게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성현이 노래를 멈추고 메시지를 확인하자 임하나로부터 온 메시지였다.

-임하나: 성현씨! 내일 늦지 않게 오세요!

임하나 문자를 본 성현은 그제야 내일 있었던 약속이 떠올라 커넥트 앱을 켰다.

오늘 아침, 주최 측으로부터 TOP 7 멤버들에게 장소와 시간을 보내주며 집합하라는 공지를 보내왔기 때문.

이제 한 팀을 이룬 세 사람은 늦지 않게 만나 함께 가기로 했다.

‘압구정역 근처면 지하철이 빠르려나.’

성현은 주최 측에서 보내온 장소와 시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내일 있을 스케줄을 생각하며 알람 설정까지 완벽하게 맞췄다.

‘아홉 시까지니까 여기서 일곱 시엔 일어나야겠다.’

성현은 밀려오는 피곤함에 하품을 하면서도,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안색이 더 밝아진 듯 환하기만 했다.

최근 성현의 일정을 생각하면 몸이 두 개라도 부족했다.

한국 대표로서 인터뷰와 광고 등 여러 일정을 소화하는 와중에, WE엔터와 관련된 일과 기획사 설립까지 겹치며 바쁘게 움직인 성현이었다.

오늘 새벽까지 곡 작업을 하고도 내일 아침 일찍 집을 나서야 했다.

그런데도 성현은 지금 이 바쁜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저장되었습니다.]

성현은 마지막으로 선정한 곡을 저장하며 기지개를 켰다.

그동안 자신이 하고 싶어 했던 일들을 하나둘 현실에서 실현해 나가고 있었기에 피곤한 것도 몰랐다.

기획사 설립도 현실이 됐다.

막연하게 동료들과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이룰 기반이 생긴 것.

거기에 앞으로 있을 글로벌 오디션은 성현이 항상 꿈꿔오던 기회였다.

‘이제부턴 정말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어. 천소울씨, 임하나씨와 함께 만드는 음악을.’

성현은 이제 한국이 아니라 전 세계에 자신과 동료들의 음악을 보여줄 생각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자신의 모니터에 띄워놓은 곡 리스트를 보는 성현의 눈빛에는 걱정하는 기색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

압구정역에서 내린 성현은 주최 측에서 보내준 지도를 따라 한 건물 앞에 도착했다.

그 앞에 먼저 도착한 천소울과 임하나가 성현을 기다리고 있었다.

“성현씨 안 본 사이 얼굴이 왜 이렇게 좋아졌어요? 어젯밤 푹 잤나 봐요?”

임하나는 평소보다 더욱 빛이 나는 성현의 얼굴을 보며 비결이 뭐냐며 물었다.

곁에 있던 천소울 역시 성현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얼굴에 살이 좀 붙으니까 더 보기 좋네요.”

그 말에 요리조리 성현의 얼굴을 살피던 임하나가 감탄했다.

“그러고 보니 볼살이 좀 붙은 것 같기도 하고. 소울씨는 여자인 저보다 눈썰미가 좋은 것 같네요. 어라? 잠깐만, 근데 왜 저 앞머리 자른 건 못 알아봐요?”

천소울의 눈썰미를 칭찬하던 임하나는 문득 생각하니 조금 서운하다는 생각에 천소울을 쳐다봤다.

난처해진 천소울은 그저 웃을 뿐이었다.

두 사람의 말을 들은 성현이 곰곰이 떠올려 보니, 바뀐 것은 근래에 아버지 집에 자주 갔다는 것뿐이었다.

집에 갈 때마다 이주성이 아주머니를 시켜 몸에 좋다는 음식이란 음식은 전부 차리게 하는 바람에 몇 그릇씩 음식을 먹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조절을 좀 해야 하나. 그렇다고 안 먹으면 또 실망하실 텐데.’

성현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쓸어보았다.

자신에게 뭐든 먹이려 하는 이주성이 실망할 모습을 생각하니 차마 입이 떨어질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운동량을 늘리거나, 적당히 자신이 알아서 조절을 해야겠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성현까지 도착하자 세 사람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대기실로 향했다.

먼저 도착해 있는 TOP 7 멤버들이 그들을 반겼다.

“마카롱 좀 드실래요? 유찬이가 맛집까지 가서 사 왔다는데.”

“감사합니다. 다들 일찍 오셨네요.”

참가자들은 비록 다른 팀이지만 성현과 일행들 챙겼다.

성현의 일행 역시 서슴없이 그들과 어울렸다.

한국 대표가 되면서 그동안 스케줄을 소화하면서 친해진 탓이었다.

TOP 7까지 올라와 한국의 대표가 된 이후에는 글로벌 경쟁이다.

아직 미션이 시작되지 않아서인지, 같은 오디션 참가자라기보다는 한 나라의 대표라는 유대가 강해져 있었다.

“다들 원하는 나라 있어요? 전 미국이 제일 좋을 것 같긴 한데.”

한 참가자의 말에 다들 눈을 빛내며 10개국을 떠올렸다.

유럽과 미국, 동아시아.

언어, 문화, 인종도 모두 다른 곳으로 떠나는 음악 여행.

일반인이 쉽게 꿈꿀 수도 없는 매력적인 미션인 것만은 확실했다.

그 난이도가 어떨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말이다.

성현 역시 게임으로 체감한 난이도와 직접 현장에 가서 부딪혔을 때의 어려움을 비교할 수 없기에 긴장과 설렘을 모두 느끼고 있었다.

“전 의외로 중국도 괜찮을 것 같아요. 중국에서 K-POP이 인기기도 하고.”

승승장구하고 있는 K-POP덕분에 한류붐은 가실 새가 없었다.

이 기회에 글로벌에서의 입지도 굳히자는 농담을 주고 받던 참가자들이 한국 대표의 1위를 쳐다봤다.

“이성현씨랑 천소울씨는요?”

각자 프로듀서와 가수 참가자 1위인 성현과 천소울의 의견이 궁금한 모양이었다.

성현은 생각해놓은 곳이 몇 군데 있지만 입을 열지 않고 조용히 웃고만 있었다.

뜻밖에도 바로 대답한 것은 천소울이었다.

“전 아무 데나 상관없습니다.”

“오오오. 난 어디든 이길 자신 있다, 이런 의미인 건가요?”

참가자들은 덤덤한 천소울 반응에 호들갑을 떨며 환호하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고 진행 스탭이 들어왔다.

“다들 푹 쉬셨나요?”

“네!”

참가자들이 하나같이 힘차게 대답하자 진행 스탭은 만족스러운 듯 웃으며 공지를 시작했다.

“그럼 앞으로 있을 본선 6라운드 관한 오피셜 공지를 드리겠습니다.”

띠링, 띠링.

진행 스탭의 말과 동시에 TOP 7 멤버들의 휴대폰 알람이 울리고 이내 공지가 팝업되었다.

[ 본선 6라운드 : 음악으로 세계 속으로 ]

- 내용 : 10개국은 각 나라마다 2개의 팀으로 나뉩니다. 그리고 추첨을 통해 버스킹의 무대가 되는 나라를 선정 받게 됩니다. 이후, 선정 받은 나라로 향해서 버스킹 공연을 하고, 더 좋은 평가를 받은 팀이 승리하는 방식입니다.

조건 : 1) 각 나라에서 나뉜 두 개의 그룹 중, 무조건 한 그룹만이 살아남습니다.

2) 버스킹 공연은 공연 시간 1시간 이상이라는 조건을 제외하고는 자유롭게 무대를 진행할 수 있습니다.

3) 버스킹 공연 장소는 주최 측에서 20곳을 후보로 추려 알립니다.

4) 공연 장소는 각 팀에서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5) 공연 결과는 해당 장소의 관객에 의해 결정됩니다. 관객들이 공연을 보고 값을 지불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6) 버스킹 공연은 총 3회 진행됩니다. 3번의 공연 결과를 합산해서 승리팀과 패배팀 이 나뉘게 됩니다.

7) 승리팀은 멤버 모두 자동적으로 다음 라운드로 진출. 패배팀은 곧바로 오디션에서 탈락하게 됩니다.

TOP 7 멤버들 모두 숨을 죽이고 미션 내용 확인하느라 대기실에는 한동안 적막이 나돌았다.

해외 버스킹 공연.

해외 공연도 리스크가 있고, 버스킹도 예기치 못한 요소들이 넘치는 공연이었다.

이번 미션은 버스킹의 매력을 최대한으로 살린 채점 방식을 도입했다.

자신들의 공연이 실시간으로 값이 매겨지는 것이다.

이 공연을 이번에는 말도 통하지 않는 외국인들 앞에서 보여줘야만 한다.

해외에서 펼쳐지는 버스킹.

이 둘을 합쳐놓은 이번 미션이 얼마나 고될지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다.

참가자들이 휴대폰 액정에서 시선을 돌려 서로 눈치를 보는 것을 확인한 진행 스탭이 입을 열었다.

“질문 있습니까?”

“버스킹 나라 추첨은 어떤 식으로 진행되나요?”

“10개국이 동시에 실시간으로 진행됩니다.”

진행 스탭은 그 말을 하며 손목에 찬 시간을 확인했다.

“앞으로 30분 후면 추첨이 시작되니 그때 여러분들이 버스킹을 할 나라도 결정되겠네요. 그럼 추첨 시간까지 모두 대기실에서 대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진행 스탭은 그 말을 끝으로 대기실을 나갔다.

앞으로 30분.

참가자들은 본격적인 글로벌 미션의 시작이라는 생각에 초조한 마음으로 시계만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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