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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74화 (174/273)

174화

성현의 금수저 썰이 확실시되자 이번에는 서자명이 손을 들고 물었다.

“그럼 아까 사무실, 진짜 저희 사무실 맞나요?”

이참에 확실하게 기쁘고 싶었다.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아하니 아무래도 성현의 말이 사실인 거 같으니까.

“네. 기획사를 차린다고 하니까 아버지가 선뜻 건물 3층을 내어주신다고 해서 앞으론 B&V 건물을 함께 사용하게 될 거예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이 모두 쾌재를 불렀다.

요하와 서자명은 하이파이브를 하며 기쁨을 숨기지 않았고, 서지현과 릴리의 아까 본 녹음기기들을 떠올리며 활짝 웃었으며, 주영준은 꿈에서만 그리던 장비들을 만져볼 생각에 입이 귀까지 찢어졌다.

아직 사무실을 본 적이 없는 조은별과 주선아만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왜? 사무실이 어떤데?”

서지현은 조은별의 물음에 아까 찍어 놨던 사무실 내부 사진들을 보여주었다.

서지현이 보여준 사무실 정경을 둘러본 조은별과 주선아도 최신 장비와 내부 시설에 입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성현씨, 제가 브이로그 찍어서 기획사 홍보해도 될까요?”

“상관은 없는데, 조금 자리 잡고 하시면 좋을 거 같아요.”

성현의 대답에 릴리는 설레는 마음에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우리 사무실이라니 급할 이유가 없었다.

조은별과 주선아는 아직도 어마어마한 시설에 정신을 못 차리고 사진을 돌려보고 있었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요하가 얄밉게 웃으며 주선아를 약 올렸다.

“부럽지? 누나네 사무실보다 훨씬 좋지?”

“아니거든? 우리 회사도 좋거든?!”

주선아는 끝까지 안 부럽다고 외치면서도, 계속 서지현이 찍어 놓은 사진을 곁눈질했다.

계속해서 사무실 내부를 보던 조은별은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부럽긴 하네......”

조은별은 소속사와 이미 계약이 돼 있어서 성현의 영입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다 함께 음악을 할 생각에 신나서 들떠있는 동료들을 지켜보던 조은별은 생각에 잠겼다.

얼마 지나지 않은 과거에 함께 오디션을 준비하던 시절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좋았는데, 참.”

“뭐가요?”

조은별의 말에 성현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되물었다.

그러자 조은별은 재빨리 아무것도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망설이던 조은별이 조그맣게 덧붙였다.

“……함께 못해서 미안해요.”

“앞으로 같이 음악 할 기회 많을 거니까 미안해할 거 없어요.”

성현은 조은별의 마음을 다 안다는 듯 여상하게 대꾸했다.

그 대답에 놀란 것은 오히려 조은별이었다.

“그게 가능할까요?”

“네. 가능할 거예요.”

확신에 차서 말하는 성현을 멀거니 바라보는데, 이주성이 아주머니와 함께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미안합니다. 차를 잘못 내와서.”

아주머니가 멤버들의 차를 새로운 차로 바꿔주었다.

그와 동시에 이주성이 자리에 앉자 그동안 신나게 떠들던 멤버들이 모두 입을 다물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채 이주성을 쳐다봤다.

심훈영이 넋을 놓을 정도로 굉장한 인물이었다.

멤버들은 클래식 쪽은 잘 모르지만, 만만치 않은 분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듯했다.

바뀐 찻잔을 들어 올리던 이주성이 그런 멤버들의 기색을 알아차리고 부드럽게 웃었다.

“긴장할 거 없어요. 그냥 아들 녀석이 어떤 사람들이랑 일을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애비로서 잘 부탁드린다는 의미로 식사 대접이나 하려고 초대한 거니까요.”

이주성이 잔뜩 얼어있는 분위기를 풀어주려고 말하지만, 긴장한 멤버들의 표정은 좀처럼 풀릴 줄 몰랐다.

천천히 차 맛을 음미한 이주성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심훈영에게 물었다.

“한동안 음악 활동은 안 하신 걸로 아는데 어쩌다 대표 자리를 맡게 되셨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심훈영은 자신에게 돌아온 질문에 멈칫하다가 잠시 성현을 바라보았다.

가장 상석에 앉은 이주성 양옆에 앉은 심훈영과 성현.

마주보고 있던 성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심훈영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고민 많이 했습니다. 옷도 다 맞는 사람이 있는 건데 제가 과연 대표라는 자리를 맡아도 되는 건지 부담스럽기도 하고. 그런데 성현이 이 친구 때문에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심훈영에 말에 안색이 밝아진 이주성이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우리 성현이가 음악에 재능이 많습니다. 어릴 때부터 클래식 교육을 받아서 박자감이나 곡 해석 능력도 뛰어나고 또 애가 얼마나 성실한지,”

“아버지.”

이주성은 아들 이야기에 자신도 모르게 성현의 칭찬을 줄줄이 늘어놓기 시작했다.

성현은 난생처음 보는 이주성의 모습에 놀라서 말을 끊었다.

그제야 이주성은 자신이 어떤 결례를 저질렀는지 깨닫고 헛기침을 하며 차를 마셨다.

멋쩍은 마음에 이주성은 심훈영에게 사과의 말을 건넸다.

“미안합니다. 말씀 도중에 그만.”

심훈영은 아버지로서 이주성의 마음이 이해가 가기에 그 모습에 미소 지으며 말을 이어갔다.

잔뜩 굳어 있던 멤버들 역시 이주성의 모습을 보고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작게 웃었다.

성현과 사이가 안 좋았다더니, 저 모습만 보면 거짓말 같았다.

“성현이 재능에 대해서는 더는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봅니다. 대한민국 TOP 7 중에 1등을 한 걸로 그 천재성은 이미 입증이 되지 않았습니까.”

심훈영의 말에 이주성은 심히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그의 얼굴이 기쁨으로 빛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부모 마음은 다 거기서 거기란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그러나 단순히 재능 때문에 제가 성현이와 함께 하기로 결심한 건 아닙니다.”

심훈영의 말에 이주성은 끄덕이던 고개를 멈추고 심훈영을 봤다.

그에게는 의외성이 짙은 발언이었다.

기획사를 차리겠다는 프로듀서를 따라 대표직까지 수락했으면서, 재능을 보고 따른 것이 아니라니?

“이 바닥에 돈 좀 번다고 초심 잃은 아티스트들, 한둘이 아닙니다. 저 또한 그랬구요. 그런데 성현이는 달랐습니다. 음악에 대한 향한 열정은 당연하고 사람을 아낄 줄 아는 친구더라구요. 전 그 점이 좋아서 함께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심훈영의 말에 함께 듣고 있던 멤버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모두들 동의를 해 보였다.

“저도 그래요. 전 오디션을 통해 성현씨를 처음 만난 거지만 성현씨 덕분에 진심으로 음악을 즐길 수 있게 됐고 제가 가지고 있었던 아픔들이나 상처를 마주할 수 있게 됐어요. 음악인으로서, 한 인간으로서 성장할 수 있게 됐어요.”

가만히 있는 것으로 성이 안 차는지 서지현은 나서서 성현과 있었던 일에 대해 이야기했다.

성현과 함께한 일들이 지금 그녀의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주었다.

지난날, 성현의 질문으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게 된 것은 기나긴 꿈에서 깨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해주는 것 같은 충만함을 가져다주었다.

서지현은 아직도 성현에게 고마움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성현의 아버지 이주성에게 꼭 이 말을 해주고 싶었다.

“사실 다른 좋은 기획사에서 좋은 조건으로 제안도 많이 받았지만 전부 거절했어요. 성현씨랑 함께 음악하고 싶으니까요. 전 성현씨 하나 믿고 계약서 싸인하기로 한 거예요. 아버님 아드님이 그 정도로 좋은 사람이란 거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순간적으로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그 말에 과거 성현을 믿지 못하여 싸웠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둘 떠올랐다.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아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것에 대한 미안함도 밀려들었다.

아버지인 자신도 믿지 못했던 성현을 누군가는 이렇게 끝까지 믿어주고 있었다니.

“이성현씨가 얼마나 좋은 프로듀서인지 말하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겠지만 저도 한마디만 하겠습니다.”

성현에 대한 고마움 하면 누구에게도 질 생각이 없는 서자명도 입을 열었다.

꼭 한마디를 해야겠다는 듯 호기롭게 찻잔을 내려놓기까지 했다.

“전 사실 저 잘난 맛에 살던 놈입니다. 저보다 잘난 놈 아니면 상대 안 했고 오디션을 하는 동안에도 욕먹을 짓 많이 했습니다.”

서자명의 말에 멤버들 모두 격하게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입으로 한 말이지만 너무나도 격한 동의에 서자명은 할 말을 잃고 그런 멤버들을 쳐다봤다.

아니, 이 사람들이? 동료 맞아……?

“왜요? 서자명씨 욕먹을 짓 한 건 맞잖아요.”

조은별의 촌철살인에 서자명은 자신도 할 말이 없는지 괜히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전 이성현씨를 만나고 절박함을 알게 됐습니다. 무대에 서고 음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절박한 일인지 다시 깨달았고 나 못지않게 누군가에게 지금의 무대가 절박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반성도 많이 했습니다. 솔직히 아직도 저 잘난 맛에 살긴 하지만 그래도 동료들의 소중함을 알게 됐고 단순히 음악을 잘하는 프로듀서가 아니라 내 가수를 지킬 수 있는 멋진 프로듀서가 되겠다는 목표가 생겼습니다.”

서자명 역시 성현을 만나고 많은 변화를 겪었다.

과거의 그는 단순히 멋있는 무대를 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사람이었다.

그 과정에서 다른 사람의 열정과 진심을 무시하는 건 당연한 일.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았고, 그들보다 재능이 뛰어난 자신이 모든 이들을 짓밟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아가는 것에 어떤 양심의 가책도 없었다.

그랬던 그가 하나의 무대가 소중한 만큼, 그 무대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마음 또한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됐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진심을 알게 된 그는, 동료의 소중함 역시 알게 됐다.

“이성현씨는 제가 만난 사람들 중 가장 멋진 사람입니다.”

서자명은 이주성에게 고정했던 시선을 돌려 성현을 보며 진심으로 말했다.

“저도요! 저 솔직히 예선전에서 떨어질 뻔한 거, 성현이 형 덕에 붙은 거예요. 그때 형이 얼마나 멋졌냐면…….”

“아버님, 오디션에 제일 잘생긴 사람 아시죠? 천소울이라고 제 사부인데, 쌤이 힘들 때 성현씨가 어떻게 해줬냐면요,”

“유일하게 음악인으로 대해준 사람이 성현씨였어요.”

“제가 뭘 잘하는지 깨닫게 해준 프로듀서 스승님입니다. 제가 많이 보고 배웁니다.”

이후로도 멤버들 모두 각자 성현을 향한 자신들의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요하, 주선아, 릴리, 주영준까지…….

다들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서로 먼저 말을 하겠다고 투닥거리기까지 했다.

이를 듣는 이주성의 마음은 벅차올랐다.

‘아등바등 살길래 걱정하고 있었건만.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이주성은 사람을 시켜 종종 성현의 소식을 전해 들을 때면 음악을 하겠다고 고생을 하는 것이 다인 줄 알았다.

솔직하게 그런 모습이 딱하면서 클래식이 아닌 대중음악을 택한 성현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이주성은 자신의 곁에 앉아 쑥스러운 듯이 멤버들의 말을 듣고 있는 성현을 쳐다보았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느라 바빴구나.’

그 사람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평가를 듣기까지 성현이 어떤 고생을 했을지 다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그 길을 혼자 걸어온 아들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내가 조금만 더 믿어줬더라면......’

이주성의 눈시울이 점차 붉어졌다.

자신이 조금 더 일찍 성현을 지원했더라면.

지금보다 더 편하게 성현이 음악을 하지 않았을까.

성현에 대한 따듯한 말이 쌓일수록 이주성의 마음이 시려왔다.

그 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는 것은 미안함과 후회 같은 무거운 감정들.

‘하마터면 크게 후회할 뻔했어.’

성현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멤버들의 속내에 가슴이 뭉클해졌다.

기획사를 차리기로 한 것이 이렇게 다행으로 여겨질 줄은 몰랐다.

옆을 보니 이주성의 눈시울이 서서히 붉어지고 있었다.

아버지의 안색을 확인한 성현이 중간에 끼어들어 멤버들의 말을 잘랐다.

“제 얘긴 그만하면 하죠. 오늘 여기에 제 칭찬하려고 모인 것도 아니고.”

성현이 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에 있는 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저녁 다됐죠?”

성현 몰래 간간이 들려오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던 아주머니는 찔끔 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외쳤다.

“밥만 푸면 돼!”

“다들 식사하러 갈까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이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하는데, 이주성은 아직도 생각에 잠겨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성현은 난감한 기분이 휩싸였다.

이주성이 자신에게 느끼는 미안함과 후회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주성을 마주하기 전에는 그가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끼길 바랐다.

그런데 막상 그가 자신의 앞에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것을 보니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싫었다.

사람 마음이란 게, 복잡하기 이를 데 없었다.

“식사하러 가요.”

성현의 말에 이주성이 성현을 빤히 올려다봤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구나.”

이주성의 말에 성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은 이주성이 미처 하지 못하고 삼킨 말도 어쩐지 모두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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