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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73화 (173/273)

173화

“……!”

자신도 모르게 커피를 떨어뜨린 서지현은 황급히 휴지를 뽑아 테이블에 흐른 커피를 닦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관심은 커피에 가 있지 않았다.

그 증거로 손은 테이블을 닦으면서 시선은 성현을 향해 있었다.

“그럼 여, 여기가 우리 기획사…… 진짜요?!”

“네. 그러니까 일단 앉아 계세요. 커피는 다시 맛있게 타드릴게요.”

성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서지현의 손에서 휴지와 커피잔을 빼앗아 들었다.

서지현은 넋이 나가 자리로 유령처럼 비틀거리며 자리로 돌아갔다.

성현은 커피를 마저 탄 다음, 멤버들에게 커피를 가져다줬다.

“성현아, 지금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먼저 설명을 해주면 좋겠는데.”

심훈영은 최신 장비와 시설에 팔려있었던 정신이 돌아왔는지 대표로 나서서 물었다.

인내심의 한계가 도달한 듯 딱딱하게 목소리가 굳어 있었다.

성현은 멤버들 하나하나와 눈을 맞춘 뒤 말했다.

“여기 어때요? 마음에 들어요?”

“마음에 들죠. 대형 기획사 부럽지 않은 시설에다가 위치도 강남 시내에 있으니까.”

성현의 질문에 모두가 눈치를 보는 와중에 릴리가 나서서 말했다.

좋은 건 사실이었으니까.

거짓말을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행이다. 앞으로 이곳 3층이 우리 사무실이 될 공간이거든요.”

성현의 말에 잠시 침묵이 돌더니 이내 서자명이 어색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성현씨도 참. 가만 보면 은근히 농담도 잘한다니까.”

서자명은 성현의 말이 당연히 농담이라 생각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다른 멤버들도 서자명을 따라 어색하게 웃었다.

“형. 저 진짜 속을 뻔했잖아요.”

요하 역시 농담이라는 쪽이 신빙성 있다고 여겼는지 서자명의 말에 안심하는 눈치였다.

여태 가만히 3층을 둘러보던 문희진이 차분하게 말했다.

“성현씨가 농담할 사람이 아닌 거 알아요. 그런데 아까 그 지하방에서 이 건물은 좀 매치가 안 되는데요.”

문희진은 현실적으로 접근했다.

그녀의 말에 나머지 멤버들은 평소 성현의 차림새나 반지하 작업실을 떠올린 듯 침통한 표정이 되었다.

역시 농담이었나 봐…….

그때 갑자기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직원 하나가 공손히 문을 열고 들어왔다.

“도련님, 대표님께서 집에서 보자시는데요?”

멤버들은 도련님이란 말에 모두 입을 떡 벌리고 굳어버렸다.

“도, 도련,”

“도련님? 성현씨한테 하는 소리예요?”

다들 당황한 얼굴로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중에 태연한 사람은 성현이 유일했다.

“지금 간다고 전해주세요.”

성현은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멤버들을 쳐다보며 도련님보다 더 강력한 한 방을 날렸다.

“여기 있는 동료들이랑.”

***

성현의 일행들은 B&V 엔터테인먼트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상황이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이 모든 것이 꿈이 아닐까라는 생각에 손을 꼬집어보는 멤버들도 있었다.

“도착했습니다.”

B&V 엔터테인먼트에서 마련해준 차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눈에 보기에도 으리으리한 한남동의 대저택.

기사는 친절하게 차에서 내려 차 문까지 열어주었다.

이런 대접이 익숙하지 않은 멤버들은 꾸벅꾸벅 인사를 하며 황송하게 하차했다.

차에서 내린 성현의 일행들은 차에서와 마찬가지로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하고 멀뚱히 저택을 올려다보았다.

성현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사람들부터 시작해서 그들을 태우러 온 검정색 벤츠 세단에, 그것도 모자라서 대한민국에서 집값 비싸기로 유명한 한남동 대저택이라니?

“……우리 지금 꿈꾸는 거 아니죠?”

멍한 요하의 말에 다들 가만히 있었다.

그들 모두 말은 못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으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빠르게 오갔다.

성현이 부자였던가? 그런데 그런 사람이 왜 지하방에서 사는 거지? 버림받은 자식인 건가? 혼외 자식 뭐 그런 건가?

에이, 설마…….

각자 머리에 지난한 소설 한 편씩을 써 내려가고 있었지만, 그 누구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어린 요하조차 지금 상황에서 괜히 형 부자예요? 물어봤다가 성현이 아니라고 대답할 경우 의도치 않게 성현에게 상처를 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선뜻 입을 열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때 그들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조은별과 주선아가 내렸다.

두 사람까지 성현이 이곳으로 부른 것.

“성현씨 여기 주택단지잖아요. 여긴 왜 오라고 한 거예요?”

택시에서 내린 조은별과 주선아도 다른 멤버들과 마찬가지로 영문을 몰라 성현을 쳐다봤다.

혹시 다른 이들은 알고 있을까 싶어서 멤버들을 돌아봐도 다들 어색하게 눈을 피할 뿐 이렇다 할 말이 없었다.

성현은 대답 없이 눈앞에 으리으리한 저택의 벨을 태연하게 눌렀다.

철컹.

별다른 말 없이 대저택의 철문이 열렸다.

“들어갈까요?”

“…….”

“…….”

성현이 먼저 앞장서서 걸음을 옮기자 멤버들 모두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성현을 따라 돌계단을 올랐다.

대문을 지나자 화려하게 꾸며놓은 정원이 나왔다.

“드라마에서 이런 집 많이 봤는데. 세트장인 줄 알았는데 진짜 이런 데서 사람이 사는구나......”

요하가 화려한 저택을 보고 넋이 나가 이리저리 바쁘게 둘러봤다.

이는 요하뿐만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 모두 정원부터 시작하여 대저택의 화려한 외관에 모두 넋이 나가 입을 벌리고 구경하느라 바빴다.

“성현씨 부자예요?”

그리고 마침내 주선아가 모두가 궁금했던 질문을 성현에게 던졌다.

그 순간 모든 멤버들은 모두 아닌 척하면서 성현의 대답에 귀를 기울였다.

멤버들은 모두 숨을 죽인 채, 그 어느 때보다 긴장해서 성현의 대답을 기다렸다.

성현이 뭐라고 입을 열려던 순간, 대저택의 문이 열리면서 한 남자가 나오고 모두의 시선이 남자에게 향했다.

“허업.”

“성현씨가 왜 거기서 나와요......?”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주영준은 너무 놀라 저도 모르게 나오는 경악을 삼켰다.

서지현은 멀리서 걸어오는 남자를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성현의 이름을 부르며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누가 봐도 두 사람이 너무나 닮았기 때문.

“아, 아버지. 여러분, 이쪽은 저희 아버지세요.”

성현의 소개에 멤버들은 이주성과 성현을 번갈아보기 바빴다.

“아, 아버님이세요?”

“네.”

조은별이 당황해서 말까지 더듬고 묻자, 성현이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

모두가 두 사람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놀란 것도 잠시 다들 성현의 아버지라는 말에 앞다퉈 인사를 건넸다.

멤버들은 두 사람을 보며 소곤거렸다.

“이야, 유전자의 힘은 대단하구나. 성현이 너 완전 아버지를 빼다 박았네.”

“성현씨 누구 닮아서 잘생겼나 했더니 아버지 닮은 거구나. 아버지도 미남이시네.”

“그러게요. 성현씨 늙으면 딱 저 모습일 것 같네요.”

멤버들은 모두 성현과 똑같이 생긴 이주성의 외관을 보며 유전자는 못 속인다는 말을 실감했다.

그 사이 멤버들 앞에 도착한 이주성은 성현과 인사를 하고는 곧장 심훈영과 악수를 나눴다.

“반갑습니다. 성현이 아버지 이주성입니다.”

이주성의 말에 심훈영은 적지 않게 놀라 동공이 흔들렸다.

“이주성이라면, 혹시 제가 아는 이주성씨가 맞나요? B&V 엔터테인먼트 이주성 대표님?”

“맞습니다. 제가 B&V 대표 이주성입니다.”

심훈영을 비롯한 멤버들은 모두 입이 떡 벌어져서는 대저택과 이주성과 성현을 계속 번갈아 쳐다봤다.

모든 퍼즐은 맞춰졌다.

도련님, 으리으리한 기획사 건물, 대궐 같은 한남동 대저택.

그리고 거기서 나온 성현과 똑 닮은 남자의 등장.

그랬다. 지하방에 살던 성현은 알고 보니 금수저 출신이었다.

***

이주성의 안내로 집에 들어간 성현과 성현의 일행은 외관 못지않게 고급스러운 내부 모습에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드라마 세트장보다 더 세트장스러운 집이었다.

곳곳은 먼지 하나 없이 반짝이고 있었고, 전면 거실 창은 넓게 트여 있어 아름다웠던 정원의 모습이 액자처럼 담겨 있었다.

그 앞에 한 폭의 그림처럼 놓인 새까맣게 빛나는 그랜드 피아노까지.

이야기로만 들었던 재벌집 한가운데에 발을 들인 기분이었다.

“여기 차 좀 내 와줘.”

이주성은 집에 들어가자 일행들을 거실로 안내했다.

이주성의 말에 아주머니은 곧장 멤버들에게 준비해 놓은 차를 내왔다.

멤버들은 모두 이주성의 카리스마에 위축돼서 이 상황에 관련된 어떤 질문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이주성에게 말을 붙여볼 만한 심훈영은 이주성의 이름을 듣고 완전히 넋이 나갔는지 소파에 가만히 앉아서 테이블만 쳐다보고 있어서 도움이 되지 못했다.

B&V 엔터테인먼트는 한국에서 클래식 좀 한다는 사람이라면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 난 곳이었다.

연예계의 날고 기는 엔터테인먼트와는 다르게 클래식 쪽에서 대체 불가능한 명성을 지니고 있는 곳이었다.

살아생전 자신이 이주성 같은 사람과 한자리에 앉아 차를 먹게 될 줄이야.

심훈영은 찻잔을 집어 들지도 못한 채로 멍하니 앉아 있었다.

이주성은 자신의 앞에 놓인 차를 한 잔 마시고 인상을 찌푸리더니 찻잔을 내려놓았다.

“잠깐만.”

이주성은 곧장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부엌으로 가서 아주머니를 불렀다.

그 모습에 찻잔을 집어 들려고 했던 일행들이 찔끔해서는 다들 찻잔에 손도 대지 못하고 이주성을 힐긋거렸다.

“이거 말고 저번에 일본 갔을 때 사온 교쿠로 없나?”

“있어요. 그걸로 내갈까요?”

“귀한 분들 오셨는데 그 정돈 내와야지.”

이주성과 아주머니 대화에 조용히 귀를 기울이던 심훈영은 이내 다시 성현을 쳐다봤다.

이제 조금 정신이 들었는지 묘한 눈으로 성현을 응시하고 있었다.

“교쿠로를 여기서 맛볼 줄이야.”

놀랍다는 심훈영의 말에 서지현이 끼어들었다.

“왜요? 그게 뭔데요?”

“일본에서 나오는 고급 녹차라고 보면 돼. 비싼 건 100만 원이 넘어가는 것도 있고.”

심훈영과 서지현의 대화를 듣던 멤버들은 억, 하고 입이 벌어졌다.

이제 더 놀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성현의 집안은 알면 알수록 놀랍기만 했다.

조은별은 답답하듯 성현을 불렀다.

“성현씨 대체 이게 무슨 일이에요? 그러니까 성현씨 아버지가 B&V 엔터테이먼트 대표님이시고 성현씨는 알고 보니 금수저란 거죠?”

“그럼 지하방에서 살았던 건 부자들이 자식들에게 경제관념을 일깨워 주기 위한 교육의 일종이었던 건가요?”

릴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나름대로 추측한 자신의 의견을 진지하게 내놓았다.

성현은 멤버들의 닦달에 할 말이 없어서 하하, 어색하게 웃음 지을 뿐이었다.

그런 성현을 내버려 두고 멤버들은 너도나도 신이 나서 말을 꺼냈다.

“나도 지금 내 인생이 교육이면 좋겠는데. 부럽습니다, 성현씨.”

“잠깐만. 그럼 아까 3층 사무실을 쓴다는 게 진심이었던 거예요?”

“대박…….”

이제 조금 믿겨지는지 서자명과 요하는 신이 나서 서로를 보며 아까 둘러본 3층을 떠올렸다.

정말로 그 장비와 기기와 시설이 우리 거라니!

“부자면서 그동안 왜 숨겼어요?”

멤버들은 이주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 궁금증을 해소하려는 듯 빠르게 성현에게 질문을 던졌다.

그 바람에 성현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일부러 속이려던 건 아닌데 놀라게 해서 미안해요. 저도 그동안 아버지랑 사이가 좋았던 게 아니라서 따로 말씀드리지 않았어요.”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말에 눈치가 빠른 몇몇 일행들은 입을 닫았다.

성현에게도 뭔가 말 못 할 사정이 있었다고 생각하려던 찰나, 눈치가 없는 한 명이 신이 나서 입을 열었다.

“여긴 그럼 전세? 자가? 명의는 아직 아버님 명의인가요?”

주영준의 질문에 릴리가 인상을 쓰며 그의 팔을 때렸다.

따끔한 손맛에 주영준은 조용히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일단 이 집은 아버지 집이 맞아요. B&V도 아버지 회사가 맞고.”

“…….”

성현이 금수저라는 것이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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