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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70화 (170/273)

170화

성현은 천소울과 함께 한남동 근처 카페로 이동했다.

두 사람은 서로 말을 하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카페 가장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건물을 벗어나 번화가 쪽으로 나오자 그들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음에도 천소울의 잘생김이 숨겨지지 않은 탓이었다.

성현이 천소울을 따로 카페에 불러낸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강조된 스폰 계약과 관련된 그의 생각이 궁금했기 때문.

‘천소울을 놓칠 순 없어.’

어쨌든 그 또한 좀 더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다는 이유로 성현처럼 지금까지 스폰서 선택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부터 글로벌 경쟁이 시작되는 만큼 언제까지 스폰 계약을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천소울도 스폰서의 지원과 케어를 원하고 있을 수도 있었다.

다만, 성현 역시 기획사를 차리고 천소울을 영입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일단 무슨 생각인지 먼저 물어보고 그다음에-’

성현이 천소울을 어떻게 떠봐야 할까 생각을 정리하고 있는 와중에, 뜻밖에도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천소울이었다.

“이성현씨.”

천소울의 부름에 성현의 생각이 멈췄다.

“앞으로 어떻게 할 생각입니까?”

선수를 친 천소울은 진지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천소울 역시 이후 행보에 대한 성현의 생각을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

그도 그럴 것이 성현은 글로벌 오디션이 앞으로 어떤 식으로 전개된다는 정보를 쥐고 있었지만, 천소울은 그것도 아니었다.

아마 지금까지처럼 한국에서 진행되는 것이 아니다 보니 제아무리 천소울이라도 조금 걱정이 되는 모양이었다.

그러던 와중에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성현이 무슨 생각인지, 계획이라도 있는 것인지 궁금한 것이 당연했다.

스폰서에 대한 생각, 성현의 생각은 말할 것도 없이 단순했다.

“전 이번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스폰 계약을 맺지 않을 겁니다.”

성현의 확고한 대답에 천소울은 이번 대답만은 예상치 못했는지 놀라서 눈이 커졌다.

그가 쉽사리 스폰 선택을 하지 않을 거란 건 알았지만,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계약을 맺지 않을 정도로 확고한 생각을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렇군요.”

천소울은 성현의 생각보다 굳건한 모습에 생각이 많아지는지 말을 흐렸다.

곧바로 이어진 성현의 말에 다시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제가 직접 기획사를 차릴 생각이거든요.”

“……?”

천소울은 성현의 말에 방금 자신이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뭘 한다고……?

그러거나 말거나 성현은 내친김에 다 말할 생각으로 태연하게 계획을 이어 말했다.

이제 슬슬 천소울에게도 말할 생각이었으니까.

“사실 천소울씨랑 임하나씨를 제외한 나머지 팀원들한텐 전부 말해놓은 상태고 구체적인 건 아니지만, 대략적인 플랜도 세워놨어요.”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더욱 크게 놀라서 말을 잃고 말았다.

아무래도 진심인 것 같았다. 저 정도로 계획이 세세하기까지 하다니.

성현뿐만 아니라 천소울 역시 앞으로 남은 오디션을 진행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이어가기 위해선 기획사가 필요할 거라고 생각을 하긴 했다.

그렇지만 성현처럼 기획사를 차릴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다.

그리고 성현은 놀란 천소울의 반응을 보며 미안하다는 듯이 웃었다.

“놀랐어요? 오디션 보는 동안은 다른데 신경 쓰게 하기 싫어서 말 안 했는데 미리 말할 걸 그랬나.”

“기획사를 차려서 뭘 어쩌겠단 겁니까?”

생각보다 경악에 가깝게 놀라는 천소울의 반응에 머쓱한지 말을 주워섬기는 성현이었다.

천소울은 기획사를 차리겠다는 성현의 계획은 알아들었다.

다만, 오디션을 보는 도중 기획사를 차리겠단 이유를 이해할 수 없었다.

천소울 자신이 보기엔 오디션에서 우승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에서 스폰을 받아도 모자랄 판에, 자신이 기획사를 차린다는 것은 납득이 가질 않았다.

무언가 더 쏘아붙일 생각으로 입을 연 천소울은 이어지는 성현의 말에 가로막혔다.

“이상적인 목표는 천소울씨 포함해서 지금 우리 팀원들 전부 영입해서 같이 음악하는 거예요. 어떤 간섭도 없이 자유롭게.”

“…….”

그 말에 천소울은 다시 말이 없어졌다.

상상도 못 했다.

성현이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자신이 보고 겪었던 사람들과는 다른 프로듀서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이유도 아니고 정말 자신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하기 위해 기획사까지 차릴 거라니.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을 거라더니 진짜였구나, 그 말.’

천소울은 성현이 처음 자신에게 자신만만하게 약속했던,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을 거라던 성현의 말을 곱씹었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의 표정을 조심스럽게 살폈다.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목표니까 너무 부담 안 느껴도 돼요. 현실적으로 저만 믿고 계약서 싸인하는 게 어렵다는 것쯤은 저도 잘 알아요.”

가만히 있는 천소울의 반응이 신경쓰인 성현은 영 다른 방향의 걱정 때문에 구구절절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혹여나 천소울이 자신의 말을 듣고 부담을 느낄까 걱정이 되었던 것.

“아직 기획사 세운 것도 아니고 당장 합류하라는 것도 아니에요. 당장 오디션도 계속 진행해야 하고. 천소울씨가 어떤 선택을 내려도 응원할 거니까 오늘 제가 한 얘기는 그냥 이런 계획을 가지고 있다 정도로만 알고 계시면 돼요.”

물론 마음 같아선 천소울을 영입해서 마음껏 자유롭게 음악을 하고 싶은 것이 성현의 욕심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천소울에게 강요하는 것 또한 성현의 욕심.

다만 지금 그에게 이런 말을 늘어놓게 된 것은 당장 그가 스폰 계약을 해 버릴까 봐 조금 조급해졌기 때문이었다.

“천소울씨?”

초조하게 묻는 성현의 목소리에 천소울은 성현의 말뜻을 알 수 있었다.

만약 자신이 스폰서 계약을 하게 되면 성현이 이런 설명을 자신에게 하고 있을 필요가 없어진다.

그때부터는 함께 음악을 하는 것에 있어서 제약이 생길 수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었다.

“고민을 좀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스폰 선택까지 남은 기간은 1주일.

천소울은 성현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민하겠다고 전했다.

성현은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기를 마친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이성현.

단체 채팅방에서 멤버들이 보낸 메시지를 확인해보자, 대화 내용 모두 글로벌 미션과 관련된 것들이었다.

-서지현: 이제부터 글로벌 미션이라면서요? 장소는 정해졌어요?

-임하나: 아니 아직! 삼 일 후에 추첨으로 결정된대.

-요하: 우와 그럼 외국 나가서 노래하는 거예요?

-서자명: 외국에서 버스킹이라니. 낭만도 이런 낭만이 없네. 부럽습니다.

-릴리: 외국 나갔다고 기죽지 말고 하던 대로 하세요. 한국 대표로 매운맛을 보여주고 오세요!

-조은별: 미국에서 공연하다가 막 비욘세 같은 슈퍼스타가 태그해서 진짜 완전 슈퍼스타 되는 거 아니에요?

-임하나: 진짜 그랬으면 좋겠다. 비욘세한테 태그 당하면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겠어요.

멤버들은 모두 글로벌 미션에 대한 부러움을 담아 응원의 말을 전해왔다.

이를 지켜보던 성현은 곧 있을 다음 라운드에 대해 생각에 잠겼다.

‘버스킹까지 남은 기간은 한 달. 그 안에 두 가지는 확실히 정하고 준비를 해야 해.’

첫 번째는 바로 다음 라운드에 있을 버스킹 공연의 형식이었다.

천소울과 임하나의 매력을 마음껏 보여줄 수 있는 곡을 선별해야 했다.

물론 버스킹인 만큼 그날의 분위기나 관객 분위기에 따라 선곡이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에 예상보다 많은 곡을 준비할 필요가 있었다.

‘곡 리스트를 정해야 두 사람이 연습할 여유가 있으니까 최대한 빨리 준비를 해야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곡을 정하는 것 말고도 중요하게 할 일이 남아 있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빠르게 진행하지 못했지만, 한국에 남을 멤버들을 생각했을 때 최대한 빨리 일을 마무리 지을 필요가 있었다.

‘언제까지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을 정리한 성현은 곧장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걸었다.

***

오아시스 라이브 바는 아직 초저녁이기 때문에 손님이 많지 않았다.

심훈영이 빈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데 곧 문이 열리고 성현이 들어왔다.

“이게 누구야! 슈퍼스타 이성현이 아니야!”

테이블에 있던 손님 몇 명이 성현을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성현은 들어서다 말고 그들 모두에게 깍듯이 인사를 했다.

그중 몇몇은 저번 제드 사건 때 성현의 연락에 달려와 준 사람들도 섞여 있었다.

성현의 은인이라고 할 수 있는 고마운 이들이었다.

“오늘은 빼지 말고 한 곡 하고 가지?”

성현을 알아본 손님들은 그를 붙잡고 노래를 한 곡 하라고 늘어졌다.

성현은 미안한 마음을 담아 그들의 손을 하나하나 떨어뜨렸다.

“이따가요. 지금은 사장님이랑 할 말도 있고-”

“에이, 맨날 그러고 그냥 가잖아. 우리가 한두 번 속나 어디?”

“오늘은 진짜 한 곡 뽑고 갈게요. 이따가 손님 좀 많아지면 그때요.”

안 그래도 지난번 클럽에서 자신들을 도와준 아저씨들이었기에 은혜를 갚고 싶었기에 오늘은 꼭 노래를 한 곡 하고 갈 생각이었다.

성현의 사정하며 말해도 아저씨들은 완강했다.

오랜만이라 잊고 있었는데, 이미 얼큰하게 취한 오아시스 단골들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아저씨들은 이번만큼은 성현의 노래를 듣겠다는 듯 쉽게 보내주지 않으려고 했다.

“애 좀 그만 괴롭혀요. 안 그래도 피곤한 애를.”

보다 못한 심훈영이 중재에 나섰다.

평소 같으면 단골들이 무얼 하고 있든지 최대한 간섭하지 않는 심훈영이었지만, 오늘은 성현의 볼일이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알기에 나선 것.

성현은 심훈영을 보고 웃으며 결국 졌다는 듯이 두 손을 들었다.

“전 괜찮아요. 사장님 테이블에 맥주 한 잔씩 돌릴 수 있을까요? 저번에 신세 진 것도 있고 해서 오늘은 제가 한턱 내고 싶은데.”

성현의 말에 손님들 모두가 박수를 치며 환호하고, 거기에 그치지 않고 성현의 이름을 연호했다.

“이성현! 이성현!”

오아시스 바 분위기는 금세 뜨겁게 달아올랐다.

심훈영은 피식 웃더니 직원을 시켜 테이블마다 맥주를 돌리게 시켰다.

맥주를 돌리고서야 겨우 빠져나온 성현을 데리고 조용한 방으로 들어간 심훈영은 굳게 문을 닫았다.

“대답 들으러 온 거지?”

“네.”

심훈영은 오늘 성현이 왜 왔는지 이미 다 안다는 듯이 말했다.

성현 역시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번에 생각해 보겠다 하셨잖아요. 오늘은 꼭 대답 듣고 싶어요. 리더로서 저희와 함께 해주시겠어요?”

성현은 저번부터 심훈영에게 기획사를 차리게 될 경우, 대표로 모시고 싶다 부탁을 해왔다.

두 번, 세 번을 찾아와도 완강하게 거절의 의사를 밝혀온 심훈영.

최근에야 소극장 공연 관객으로 와서 생각해 보겠다는, 아주 조금이지만 희망적인 말을 했었다.

성현은 오늘만큼은 그에게 반드시 대답을 들을 생각으로 결연하게 심훈영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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