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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66화 (166/273)

166화

천소울과 문희진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떡 벌린 채로 검사장이라고 쓰여있는 남성의 명함과 성현을 번갈아 쳐다봤다.

정작 당사자들은 둘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너무나 태연하게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안 본 새 더 젊어지신 것 같아요.”

“너 이런다고 용돈 줄 거 같냐?”

김유혁의 말에 성현은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 자신의 나이가 몇인지 가늠이 안 되는 모양이다.

“제가 나이가 몇인데 용돈이에요.”

“왜? 너 애기 땐 용돈 받으려고 아빠보다 아저씨가 훨씬 더 좋다고 말하고 다녔잖아.”

김유혁 말에 천소울과 문희진은 피식 웃고, 성현은 할 말이 없는지 조금 부끄럽다는 듯 헛기침을 했다.

천소울과 문희진은 점점 더 성현과 남자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검사장이라는 사람과 저렇게 친근하게 대화를 나눈다고?

그리고 남자 역시 이를 눈치 챈 듯이 두 사람을 향해 자초지종을 설명해줬다.

“내가 얘 아버지랑 대학교 동문이거든요. 얘 아버진 피아노학과 난 법학과. 둘이 클래식 동아리 만들어서 활동하다 죽마고우 된 거지, 뭐.”

성현은 김유혁 입에서 아버지란 말이 나오자 표정을 굳히더니 재빨리 화제를 돌렸다.

김유혁의 말이 길어지도록 놔둘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어쩐 일이긴. 너 때문에 온 거지.”

“아저씨까지 알 정도면 이번 일이 꽤 파장이 크긴 한가 보네요.”

성현은 김유혁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어느 정도 예상은 하고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김유혁과 아무리 아저씨라고 편하게 부르는 사이일지라도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진 이후로는 몇 년을 연락을 안 하고 지내온 성현이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얼굴이나 보자고 이곳까지 왔을 리는 없었기 때문.

“조만간 우리 쪽에서 본격적으로 조사 들어갈 거니까 걱정 안 해도 돼. 이번 사건, 내가 직접 맡을 생각이거든.”

김유혁이 살벌하게 웃으며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장이 직접 사건을 조사하겠다는 말에 천소울과 문희진은 자신들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새삼스럽게 지금 성현이 던진 돌이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 실감이 된 듯했다.

“안 그래도 걱정하고 있었는데. 고마워요.”

성현은 안 그래도 이대로 조사가 흐지부지 되어 버리는 건 아닌가 걱정하던 찰나였다.

그런 참에 김유혁이 직접 조사를 한다는 말에 안심이 되어 활짝 웃었다.

“참고인 조사 필요하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그 말에 그동안 잠자코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문희진이 김유혁의 손을 붙잡았다.

“꼭, 꼭 연락 주세요.”

갑자기 튀어나온 문희진의 모습에 김유혁이 당황해 눈을 껌뻑였다.

“제드PD 사건 현장에 있었던 문희진씨예요.”

성현이 놀란 김유혁에게 문희진에 대해 설명해주자, 김유혁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혁은 순간적으로 사람 좋은 아저씨의 모습에서 냉철한 검사장의 얼굴이 되어 문희진에게 말했다.

“제가 볼 때, 이미 목격자 진술도 하셨고 우리가 이번에 조사하는 건 WE 엔터 성접대와 뇌물 관련 수사라 문희진씨의 증언이 당장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다. 걱정하지 말고 이번 일로 많이 놀라셨을 텐데 마음 추스르고 안정만 잘 취하고 계세요. 안 그래도 그놈들 탈탈 털어버릴 생각이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마지막 김유혁의 장난스러운 말에는 이제 걱정하지 말라는 당부가 담겨 있었다.

문희진은 믿음직스러운 김유혁의 말에 감동하여 연신 고맙다며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셋은 김유혁에게 감사의 말과 인사를 전하고 방송국 앞을 떠났다.

이대로 제드와 WE 엔터의 유착관계가 묻히지 않을 거라는 안도감에 차서.

그러던 중 날아 들어온 김유혁의 말이 떠나려던 성현을 붙들었다.

“저번 주말에 네 아버지랑 라운딩 갔다.”

그 말에 성현의 몸이 자동적으로 굳는데, 김유혁은 대수롭지 않게 얘기를 이어갔다.

“분명 14홀까진 내가 5타 앞서고 있었는데 막판에 버디를 연달아 하는 바람에 18홀에서 뒤집혔지 뭐냐. 네 아버지도 참 독하지? 지는 건 죽어도 싫어한다니까.”

“……”

“그래서 네가 독한가 보다. 네 아버지 닮아서.”

성현은 슬슬 김유혁의 잔소리에 시동이 걸리려고 하자 그의 말을 끊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심란한 와중에 아버지의 이야기를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너무 늦었고 나중에 식사라도 같이해요.”

“내가 왜 너랑 둘이 식사하냐. 할 거면 네 아버지까지 셋이 해야지.”

성현이 부러 화제를 돌리지만, 김유혁은 그럴 생각이 없는지 성현을 빤히 보며 말을 이었다.

“나 사실 이번 사건 모르고 있었다. 검사장 일이 얼마나 바쁜데 이런 사건 하나하나 다 알고 있겠어. 네 아버지 연락받고 안 거야. 너 걱정 된다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라더라.”

“……!”

김유혁 말에 성현의 눈이 조금 커졌다.

그 아버지가?

김유혁에게 따로 전화까지 하여 걱정을 했다는 말이 아무래도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가 자신의 행보를 알고 있다는 것도 의외였지만 말이다.

쉬이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의 전개에 성현이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자, 마지막으로 쐐기를 박는 김유혁의 말이 들려왔다.

“너 괜찮은지, 그것부터 먼저 확인해 달라고 해서 내가 이 오밤중에 널 보러 온 거 아니냐.”

성현은 김유혁의 말에 여전히 놀라서 어떤 말도 꺼내지 못했다.

자신이 생각하는 아버지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다.

김유혁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있는 성현을 보면서 궁금하면 자신이 찾아오지 말이야, 라고 투덜거리더니 성현에게 말했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어. 너 그러고 나간 뒤로 네 아버지가 얼마나 네 걱정을 많이 한 줄 아냐? 내가 볼 땐 네 아버지보다 더 독한 놈이 너야, 인마. 언제 한 번 연락 드려. 좋아하실 거다.”

김유혁은 성현을 향해 혀를 차며 말하고 자리를 떴다.

성현은 그런 김유혁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

김유혁과 짧은 만남 이후, 집으로 가는 버스에서 성현은 생각에 잠겨 멍하니 창밖을 봤다.

성현의 머릿속을 가득 메운 건 아버지였다.

음악 때문에 아버지와 관계가 완전히 틀어지면서 집을 나온 게 벌써 몇 년째였다.

성현에겐 그 일이 아직까지도 트라우마로 남을 정도로 아버지와의 갈등은 양쪽 모두에게 큰 상처로 남았다.

그 이후 아버지와 연락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처음 집을 나왔을 때만 해도 성현도 화가 났었기에 의도적으로 아버지에게 연락을 하지 않았었다.

그러다 점차 시간이 흐르면서 아버지가 미워서가 아니라 아버지가 자신을 미워하고 있을까봐 연락을 하지 못했다.

분명 자신이 아는 아버지라면 자신을 완전히 지워냈을 테니까.

그리고 그 생각은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김유혁에게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자신을 걱정하고,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아버지.

‘아버지가 정말 내 걱정을 하고 계실까? 클래식이 아니라 대중음악을 하고 있는 나를?’

성현은 이내 휴대폰을 꺼내 주소록에서 아버지의 번호를 찾고 메시지를 입력했다.

-성현: 아버지

단 세글자를 친 뒤 한동안 휴대폰 화면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 이내 다시 메시지를 적어 내려갔다.

-성현: 아버지 잘 지내셨어요? 저는 오디션 준비….

성현은 메시지를 빠르게 써 내려가다가 이내 고개를 젓더니 빠르게 지우고 썼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결국 휴대폰에는 빈 메시지 창만이 남았다.

‘어렵다, 참.’

아버지와의 관계는 성현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마치 답이 없는 수학 문제를 푸는 기분이었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성현은 결국 한숨을 길게 쉬고는 휴대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고 차창 밖을 쳐다봤다.

쓰디쓴 약을 삼킨 것처럼 입맛이 쓰기만 했다.

***

다음 날, 성현이 분주하게 움직이며 집을 정리하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성현은 반가운 얼굴로 문을 향해 크게 외쳤다.

“들어오세요!”

성현의 외침에 문이 열리고, 서지현과 주선아, 릴리가 들어왔다.

세 사람은 성현의 연락을 받고 오늘 성현의 반지하 연습실에 놀러온 참이었다.

바리바리 싸들고 온 세 사람은 재잘거리며 자리를 잡았다.

“짜잔. 아직 점심 전이죠?”

서지현이 도시락 봉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성현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과 일행은 다 같이 상을 피고 둘러앉아 점심을 먹었다.

“그럼 앞으로 일정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한국 본선 끝난 거면 다른 나라 애들이랑 붙는 건가?”

“글쎄요. 일단 공지를 받아야 알 것 같아요.”

성현은 자신도 모르는 척 말했지만 사실 성현은 앞으로의 오디션 일정을 이미 알고 있었다.

심지어 조금이지만, 임하나와 천소울과 함께 다음 미션을 어떤 식으로 준비할지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다.

‘개인적으로 이번 오디션에서 가장 좋아하는 미션이라 더 기대되네.’

이번에 나올 미션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 미션 중 성현이 가장 좋아하던 미션이었기에 더욱 기대가 됐다.

한국 본선이 끝난 후에 항상 주인공인 천소울을 데리고 기쁜 마음으로 참여했던 미션이었다.

매번 게임으로만 겪었던 상황이 이제는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다.

그 기억이 떠오르자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얼굴에 미소가 피었다.

“선아야 거기 오이 들어가 있어. 너 오이 못 먹는다며.”

“아 진짜네.”

“선아 오이 못 먹어?”

“네. 알러지 있어요.”

“그럼 그거 롤은 언니 주고 넌 이거 튀김 먹어.”

성현이 부푼 꿈을 안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동안 세 사람은 오손도손 서로를 챙겨가며 식사를 하고 있었다.

주선아는 음원 미션에서 떨어진 후에 상당히 우울해했는데, 그때 서지현과 릴리가 나서서 주선아를 불러냈다고 들었다.

탈락자 선배로서 이럴 때일수록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이리저리 끌고 다닌 탓에, 셋은 상당히 친해져 있었다.

서지현과 일행들은 밥을 먹으며 별것 아닌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성현은 문득 드는 생각에 세 사람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 조합도 괜찮네.’

서지현, 릴리, 주선아.

세 사람 모두 비주얼도 괜찮았고 노래 실력 또한 누구 하나 뒤처지지 않았다.

셋이 확보하고 있는 팬층도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세 사람 모두 차분한 성격으로 평소 성격 또한 상당히 잘 맞았다.

‘춤실력에는 편차가 조금 있겠지만 그런 거야 연습으로 충분히 커버 가능해. 여기에 한 명만 더 추가해서 걸그룹으로 준비해도 괜찮겠는데 문제는…….’

성현은 이들 세 사람을 어떻게 프로듀싱 해보면 좋을까 구상하는데, 한 가지 걸리는 게 있다면 주선아였다.

주선아는 이미 다른 소속사와 계약이 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당장은 조금 기다려보는 수밖에.’

아직 기획사도 세우기 전이었기에 급하게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성현은 셋의 케미를 지켜보며 흐뭇한 얼굴로 식사를 서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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