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화
성현과 천소울은 지체하지 않았다.
둘은 바로 다음 날, 제드와 관련된 일을 기자들에게 풀었다.
예상대로 하루 종일 엄청난 파장이 일었다.
처음에 믿지 않던 기자들도 성현과 천소울이 녹음본과 피해자들의 증언들을 제보하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내보일 수 있는 증거도 있겠다, 기자들은 빠르게 기사를 터트렸고, 이른 새벽부터 기사가 미친 듯이 올라왔다.
사전에 협의되지 않은 증거물은 법적효력을 지니지 못한다.
그러나, 여론에서 법적 효력은 큰 의미가 없었다.
성현과 천소울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무기.
바로 대중들의 관심이었다.
[ 충격! WE엔터테인먼트 소속 프로듀서 제드. 성 접대 의혹 드러나! ]
[ 연예계의 계속되는 성접대 문제, 이번엔 뿌리 뽑을 수 있을까.]
[ 제드PD, 성 접대 피해 여성만 30명이 넘어]
[ ‘더 넥스트 슈퍼스타’ TOP 7의 용기 있는 고백.]
[ WE엔터테이먼트, 제드PD 성접대 문제, 알고도 모른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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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드 프로듀서를 내세운 뇌물, 성 접대 혐의와 관련된 수많은 의혹 기사가 뒤따랐다.
그 과정에서 WE엔터테인먼트는 얼마나 개입을 했는지도 의혹의 쟁점이 됐다.
해당 기사를 본 네티즌들은 경악하며 주요 기사를 빠르게 퍼트리기 시작했고, 뉴스에서도 크게 보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성현의 동료들 역시 성현과 마찬가지로 당장 이 문제가 최대한 이슈화 돼야 한다는 걸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
-조은별: 다행히 이번 일에 많이들 분노를 느낀 것 같아요. 이미 관련된 청원도 올라가 있고.
-서지현: WE엔터가 얼마나 개입이 됐는지가 쟁점이 될 것 같네요.
-릴리: 저도 최대한 이슈화 될 수 있도록 힘써 볼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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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새벽부터 터진 기사에 WE 엔터테이먼트는 발 빠르게 일단 공식 입장을 내, 성접대 의혹을 전면 부정하고 있었다.
다행이건 이 소식에 분노하는 대중들이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
영 불리한 싸움은 아닐 듯했다.
‘이제 남은 건 WE 엔터테인먼트와 제드 프로듀서가 어떻게 나올지를 지켜보는 수밖에.’
***
기사가 나가고 바로 다음 날, 성현과 문희진은 이른 아침부터 모였다.
마주한 두 사람은 모두 표정이 좋지 못했다.
WE 엔터테인먼트의 대응 기사가 올라왔기 때문.
[ WE 엔터테인먼트, 뇌물 및 성접대 혐의와 무관. 모든 것은 제드 프로듀서의 단독 행동. ]
전면 부정하는 공식 입장 이후, 회사 내에서 빠르게 말이 오갔는지 그렇게 늦지 않은 오후에 이런 기사를 올린 것이다.
“역시나 꼬리 자르기 식의 대처네요.”
WE 엔터 측은 모든 혐의를 제드 프로듀서에게 떠넘기려는 움직임 보였다.
성현은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허탈할 수밖에 없었다.
심증은 있었지만, 물증이 없었다.
녹음본을 통해 제드는 완벽하게 의혹에 가담해 있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사실 WE 엔터테인먼트가 회사 차원에서 의혹에 관여가 되어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 개인이 따로 손을 쓸 여지가 있을 리 만무했다.
“제가 더 참았어야 하나 봐요.”
문희진은 자신이 좀 더 참았다면 더 많은 증거, 예를 들어 WE 엔터가 이번 일에 연류됐다는 증거를 잡을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했다.
“제드 프로듀서를 잡아서 다행이긴 하지만 WE 엔터를 놓치면 얼마든지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잖아요.”
일리 있는 문희진의 말에 성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말처럼 이번에 아예 뿌리 뽑지 못한다면, 오히려 악효과만 가져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음지의 세력은 더욱 누구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힘을 키워나갈 것이다.
‘앞으론 더 철저하게 교묘해지겠지.’
성현과 문희진은 둘 다 이번에 WE 엔터를 놓치면 안 된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당장 두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없었기에 더욱 답답했다.
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증거는 제드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녹음본일 뿐.
이외에 WE 엔터테인먼트가 직접 관여했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 없었기 때문이다.
현재 밝혀진 사실로 제드가 조사에 들어가도 미리 WE 엔터 측과 말을 맞춘 그가 입을 열 가능성도 제로에 가까웠다.
“우리가 WE 엔터가 관련됐다고 말한다 한들 증거 없인 힘들겠죠?”
“네. 결국 정확한 증거가 없으면 대중들 또한 돌아서게 될 거예요.”
당장 WE 엔터 또한 이번 일에 연루되어있다고 주장한다면, WE 엔터는 잠깐 여론의 뭇매를 맞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결국 증거가 없으면 성현 쪽에서 역풍을 맞을 확률이 컸다.
‘대대적인 검찰 조사 같은 것이 필요해.’
WE 엔터 정도 되는 대형 기획사를 털기 위해서는 성현과 동료들의 힘만으로는 부족했다.
검찰 정도는 되는 국가 기관이 나서야만 했다.
문제는 당장 대중들의 비난이 제드에게 쏠려 있어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는 해도, 결국 WE엔터가 꼬리를 자르는 바람에 배후세력인 WE 엔터가 큰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
‘결국 이러다 대중들 관심이 식으면 제대로 된 조사도 없이 사건이 무마되고 말겠지.’
WE 엔터가 노리는 것은 바로 이거였다.
성현은 일이 이렇게 굴러가자 안 봐도 이번 사건의 결말을 대충 예측해 볼 수 있었다.
지금에야 대중들의 관심이 많이 쏟아져 있기 때문에, WE 엔터 또한 몸을 조심하겠지만 이러다 점점 관심이 식고 조사가 흐지부지되면 그들은 똑같은 악행을 반복할 것이 뻔했다.
거기다 운이 좋아 검찰 조사가 들어간다 해도 WE 엔터는 대형 소속사였다.
그들이 검찰과 어느 정도 결탁이 되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이대로 손 놓고 있어야 하는 건가.’
성현은 자신의 힘으로 제드까지는 어떻게 했지만 WE엔터라는 대형 소속사를 상대로 싸우는 것이 얼마나 힘든 건지를 다시 한번 실감했다.
확실히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큰, 그것도 아주 큰 힘이 필요했다.
***
제드 사건이 터지고 세간에 파장도 컸지만, TOP 7의 스케줄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성현을 비롯한 TO7들은 방송사 인터뷰를 위해 다 같이 방송사로 이동했다.
그러는 중에도 방송사 사람들의 모든 관심은 두 사람을 향해 있었다.
방송사 어디를 가도 기자들이 진을 치고 참가자들을 기다리는 형편이었다.
“이성현랑 천소울씨는 최근 논란이 된 제드 성접대 의혹을 처음 고발하셨잖아요. 당장 제드 PD가 모든 혐의를 인정했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당연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죄를 지었으면 죗값을 받아야죠.”
“그럼 WE 엔터테이먼트는요? 이성현씨 인터뷰를 보면 제드와 WE 엔터가 한통속이라는 뉘앙스로 말을 하셨는데, WE는 모든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잖아요. 이에 대한 이성현씨의 의견이 궁금합니다.”
“글쎄요. 제 의견이 중요할까요? 진실은 그분들만이 알고 있겠죠.”
여기서는 말을 조심해야 했다.
성현은 섣부르게 단정 짓기보다는 앞으로 조사에 맡기겠다는 식으로 말을 흘렸다.
“천소울씨, 저희가 조사를 한 바에 따르면 천소울씨랑 제드 PD가 과거에 작업을 했던 경험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그 당시 폭행 사건에 연루가 됐단 소문이 있던데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알 수 있을까요?”
도대체 어디서 정보를 듣고 온 건지, 과거에 대한 관계자의 질문에 천소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이 빠르게 대신 답변했다.
“음악 관련된 인터뷰를 하러 온 거니까 이와 관련된 질문만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민한 문제인 만큼 이 자리에서 함부로 말하기가 조금 조심스럽네요.”
성현은 그 뒤로도 이어지는 이와 관련된 질문을 차단하며 답변을 끊어내야 했다.
다행히 그 이후로는 관련 없는 몇 번의 질문이 오고 간 후에 인터뷰 끝이 났다.
두 사람은 살얼음판 같았던 인터뷰 분위기가 지나가자 겨우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성현씨, 이게 다 무슨 일이에요.”
인터뷰가 끝난 이후 오랜만에 얼굴을 보는 임하나가 성현에게 다가와 물었다.
임하나 역시 성현에게 미리 언질을 받아 대충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말로만 들었던 것과 직접 눈으로 보는 것은 차이가 컸다.
천소울과 성현의 표정이 생각보다 더 좋지 않았다.
어지간히 기자들에게 시달린 모양이었다.
임하나는 작은 위로가 되길 바라며 자판기에서 막 뽑아온 시원한 음료수를 둘에게 건넸다.
두 사람은 감사를 표하며 그걸 받아들었다.
“그러게요. 이게 다 무슨 일인지. 어쩌다 보니 이렇게 됐네요.”
“괜찮아요? 집 앞에서 인터뷰하겠다고 기다리고 있는 사람도 많다면서요. 불편하면 저희집 빌려 드릴까요?”
“괜찮아요. 저 정말 괜찮으니까 걱정 안 하셔도 돼요.”
성현은 자신을 걱정하는 임하나를 진정시키려고 애써 밝게 대답했다.
그때, 성현에게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기자님인가?’
성현은 최근 기자들과 연락하는 일이 잦았기에 이번에도 언론사 쪽에서 전화가 온 건가 싶어서 전화를 받았다.
자신이 먼저 시작한 일이기에 전화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절로 피로한 목소리가 튀어 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네, 이성현입니다.”
“......”
성현의 말에 한동안 전화기 너머 말이 없었다.
성현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자, 전화가 끊긴 건가 싶어 다시 확인하는데 전화는 멀쩡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여보세요?”
성현은 아무런 응답도 없는 상대방에게 재차 묻는데, 이내 수화기 너머에서 중년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를 들은 성현은 듣자마자 너무 놀라 순간 몸을 굳혔다.
***
방송국 앞, 스케줄을 모두 마친 성현과 천소울이 누군가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러자 저 멀리서 문희진이 달려왔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온 모양인지 문희진은 작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대체 누굴 만나길래 급하게 오란 거예요?”
문희진은 성현의 연락을 받고 오긴 했지만, 영문을 몰라 물었다.
대답하려던 성현은 이내 문희진의 어깨 너머를 보며 웃었다.
문희진은 성현의 미소에 뒤돌아보는데 멀리서 말끔하게 양복을 차려입은 중년 남성이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문희진과 천소울은 성현의 반응에 서로의 얼굴을 멀거니 쳐다봤다.
두 사람 모두 성현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아저씨, 오랜만이에요. 그간 잘 지내셨죠?”
남자를 발견한 성현이 먼저 밝게 웃으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성현의 미소에 남성 또한 환하게 웃으며 성큼성큼 걸어오더니 와락 성현을 껴안았다.
“이게 몇 년 만이냐. 너 고등학교 졸업하곤 처음이지?”
“네. 졸업식 때 보고 못 뵀던 것 같네요.”
성현과 남자는 서로 안부를 물으며 대화 이어가는데, 문희진과 천소울은 남자가 누군지 궁금해 하며 멀뚱히 서 있었다.
이를 발견한 남자는 서둘러 품에서 명함 두 장을 꺼내 두 사람에게 건넸다.
“인사가 늦었네요. 서울중앙지검 김유혁 검사장입니다.”
남자의 말에 문희진과 천소울의 입이 떡 벌어졌다.
저런 사람을 아저씨라고 부르는 성현의 정체는 뭘까 생각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