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56화 (156/273)

156화

소극장 공연이 막바지에 치달았다.

참가자들이 준비한 개인 공연이 끝난 후, 단체곡까지 마무리되자 이제 남은 건 팬들과의 소통이었다.

무대가 빠르게 정리되고, TOP 7 참가자들은 모두 세팅된 기다란 테이블에 줄지어 앉아 팬들을 기다렸다.

객석에 있던 팬들이 줄을 지어 그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는 식으로 행사가 이어졌다.

그들 손에는 각각 응원하는 가수들에게 주기 위해 준비한 선물 꾸러미가 가득 들려있었다.

진행 스탭들은 참가자들 뒤편에서 팬들에게 받은 선물을 무대 뒤로 정리하기 바빴다.

이런 자리가 어색한 참가자들은 초반에 다들 뻣뻣한 모습을 보였지만 차츰 적응해나갔다.

“오빤 경마장 출입 금지당했다면서요?”

“내가 왜요?”

“존재를 보면 말이 안 나와서…… 꺄아아악!”

보라색 응원봉을 든 팬 중 하나가 천소울에게 주접을 떨며 말했다.

천소울은 그런 팬을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이내 피식 웃었다.

“재밌네.”

“헉…….”

천소울 미소에 주접을 떨었던 팬이 넋이 나가 입이 떡 벌어졌다.

이를 옆에서 지켜보던 다른 참가자들의 팬들 또한 자신이 좋아하는 참가자한테 집중하지 못하고 천소울의 미소에 넋이 나가버렸다.

이날 SNS에는 천소울이 아재개그를 좋아한다는 글들이 떠돌게 되었다.

“언니 대한민국 3대 바다가 뭔지 알아요?”

이번엔 노란색 응원봉을 든 팬이 임하나에게 물었고, 임하나는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눈을 껌뻑였다.

팬은 그런 임하나를 보고 씨익 웃더니 이어 말했다.

“동해, 서해, 임하나 사랑해.”

“…….”

“꺄아악!”

팬은 자신이 말해놓고도 하나가 반응이 없자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가렸다.

임하나는 그런 팬을 보며 귀엽다는 듯 웃으며 싸인을 해줬다.

“성현 오빠.”

“네.”

이번에는 한 팬이 성현에게 와서 진지하게 이름을 부르자, 성현은 나긋하게 대답해주며 팬을 올려다 봤다.

팬은 진지한 표정을 잃지 않은 채로 말을 이었다.

“곡 만들 때 다 좋은 데 하나만 고쳐주세요.”

“뭘 고쳐드릴까요?”

“제 심장이요. 오빠 때문에 망가졌잖아요.”

팬은 자신이 준비한 회심의 주접을 떨고 성현의 답변을 기다리는데, 거기다 대고 성현이 무표정으로 대답했다.

“심장이 아프면 의사한테 가야죠.”

“……네?”

팬은 성현의 진지한 반응을 예상 못 했다는 듯 되물었고, 성현은 그런 팬을 보고 다시 활짝 웃었다.

“농담입니다.”

“세상에. 잔망스럽기까지. 오빤 대체 부족한 게 뭐예요?”

팬은 성현의 농담에 감동했다는 듯 입을 벌리며 성현의 손을 잡고 감탄했다.

성현은 예상치 못한 강한 적수를 만난 듯 당황했다.

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서로의 센스가 만만치 않았다는 듯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팬미팅은 그 뒤로도 평화롭게 진행되면서, 주최 측에서 마련한 소극장 공연이 끝이 났다.

“수고하셨습니다! 오늘 받은 선물은 한남동 건물에 개별로 정리해 놓을 테니까 가져가시면 됩니다.”

진행 스탭들이 카메라를 비롯한 장비들을 철수시켰고, 참가자들 모두 서로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여기저기서 고생했다는 이야기를 건네는데 PD는 곧장 천소울을 향해 갔다.

“천소울씨, 아까 어떻게 된 거야. 갑자기 무대에서 그래 버리면 어떡해.”

“죄송합니다.”

천소울은 각오한 일이라는 듯 아무런 반박 없이 바로 고개를 숙였다.

오늘 벌어진 일은 입이 몇 개라도 할 말이 없는 명백한 자신의 실수였다.

이제 천소울은 아마추어가 아니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한국을 대표하는 일곱 명 중 하나의 아티스트로서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이다.

자신의 예상대로 저자세로 나오는 천소울을 내려다보는 PD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

천소울 때문에 아까 흘렸던 진땀을 생각하자 PD는 다시 욱하고 감정이 치밀어 올랐다.

“죄송하면 다야? 아까 이성현씨 아니었으면-”

뭐라고 더 쏟아내려는 찰나, 성현이 둘 사이에 등장해 PD의 말을 끊고 천소울을 PD의 시야에서 가렸다.

이미 좋게 끝났고, 천소울도 사과를 건넸으니 이 이상 쓴소리를 듣게 할 수는 없었다.

성현은 자신의 가수가 얼마나 약한 멘탈을 보유하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에.

“PD님 아까 죄송했습니다. 콜라보 하는 게 갑자기 결정된 일이고 PD님한텐 제가 말씀드리기로 해놓고 깜빡했네요. 무대 늦게 올라간 것도 제 잘못이고 천소울씨는 잘못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턴 조심하겠습니다.”

“……그래, 뭐. 앞으로 조심하면 되지.”

성현의 깍듯한 사과에 PD는 되레 할 말이 없어져 알겠다고 하고 말았다.

어차피 이번 일로 좋은 스토리가 나온 건 사실이었고, 사고가 날 뻔했지만 이번 무대가 큰 무대도 아니었다.

어찌됐든 이번 일은 결국 성현이 잘 마무리 지었기 때문에 자신이 질책을 받을 일도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이성현씨 잘못 아닙니다. 처음부터 콜라보 하기로 한 것도 아니-”

“천소울씨 우리 잠깐 얘기 좀 하죠. PD님 아깐 정말 죄송했고 저희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성현은 천소울이 솔직하게 구구절절 말하려는 걸 끊고 PD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버티는 천소울을 붙잡은 성현은 촬영장을 급하게 떠나야 했다.

***

성현이 공연장 건물 뒤편으로 천소울을 데려가는 도중부터 버티던 힘을 몸에서 푼 천소울의 표정이 어두웠다.

천소울은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성현에게 복잡한 마음이 들었다.

“무대 실수 덮어주려는 건 고마운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습니다.”

천소울은 조금 자존심이 상한 듯 말했고, 성현은 그런 천소울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확실하게 짚고 넘어갔다.

“프로듀서가 자기 가수 챙기는 건 당연한 거예요. 아까 일, 단순한 실수 아니잖아요.”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조금 당황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번 일에 대한 것만큼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겠다는 듯이.

‘역시 과거 트라우마랑 관련된 거네.’

성현은 그가 프로듀서나 기획사와 어떤 일이 있었고, 그것으로 인해 함께 음악을 하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것까지 눈치채고 있었다.

지금까지 굳이 그것에 대해 캐묻지는 않았었다.

‘아직도 부족한 건가.’

성현은 그가 스스로 말하기 위해 기다리기로 했던 것.

그러나 그 트라우마로 인해 무대에 지장이 생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즉, 프로듀서로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기에 이번만큼은 그가 가지고 있는 트라우마가 무엇인지 알아내기로 했다.

앞으로도 이런 문제가 생길 때, 성현이 적절하게 대처할 수 있게끔 말이다.

“아, 배고프다. 천소울씨. 라면 좋아해요?”

천소울은 성현이 무엇을 캐물을지 몰라 긴장한 채로 서 있던 중에, 성현의 뜬금없는 질문을 던지자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성현은 자신을 응시하는 천소울에게 싱긋 웃으며 가볍게 말했다.

“나 라면 기가 막히게 잘 끓이는 곳 아는데 같이 갈래요?”

천소울은 갑자기 라면을 먹으러 가자는 성현의 제안에 황당하게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

“이런 곳에 라면집이 있을 것 같진 않은데.”

천소울은 지금까지 성현의 인도에 잘 따라오다가 더 이상은 참을 수 없었는지 입을 열었다.

아까부터 가게는 나올 생각을 않았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오르막길뿐이었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일 뿐 대답 없이 계속 걸어가기만 했다.

천소울은 점점 숨이 차올라서 숨이 거칠어지는데, 성현은 익숙하다는 듯 호흡 하나 안 흐트러지고 오르막길을 오르고, 이내 한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 섰다.

“이쪽이에요.”

성현은 앞장서서 건물 지하로 이어지는 계단을 내려갔다.

천소울은 조금 의심스럽다는 듯 으슥한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그를 따라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자 허름한 현관문이 보이고, 성현은 익숙한 듯 어둠 속에서 열쇠를 꺼내 문을 열었다.

“설마 여기가 라면집입니까?”

“네. 제가 라면 하나는 기가 막히게 끓이거든요. 들어와요.”

황당해서 묻는 천소울에게 성현은 능청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낡은 현관문이 끼익 소리를 내며 열리고 성현은 망설임 없이 그곳으로 들어갔다.

천소울은 황당하지만 여기까지 따라왔으니, 일단 지하 작업실로 따라 들어갔다.

그러자 보이는 좁고 허름한 방과 장비들을 발견하고, 이내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성현이라면 당연히 좋은 집과 작업실을 가졌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얄팍한 편견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이리봐도 저리봐도 막연하게 상상하던 것과 정반대의 환경이었기 때문.

“다른 사람들 눈엔 조금 허름해 보일지라도 전 여기서 행복하게 음악을 해왔고 저한텐 그 어떤 곳보다 소중한 공간이에요.”

성현은 앉지도 서지도 못하는 천소울의 당황한 반응을 보고,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예상한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천소울은 그런 성현의 말에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고, 당당한 성현이 멋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라면 뭐 뭐 있어요?”

그렇게 생각이 정리되자, 천소울은 자연스럽게 성현의 작업실에 들어가며 물었다.

성현은 그 질문에 수납장에 빼곡하게 쌓인 라면을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웬만한 편의점 저리 가라니까 골라 보세요.”

천소울과 함께 라면을 끓여 먹으며 성현이 자연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까 대기실에서 서지현씨한텐 왜 그랬던 거예요? WE 엔터 제드 프로듀서 때문인 건가요?”

예기치 못한 성현의 질문에 라면을 먹는 천소울의 젓가락질이 순간 멈췄다.

성현이 보기에 오늘 천소울은 WE 엔터와 관련된 얘기를 들은 이후부터 갑자기 이상해졌다.

분명 이와 관련된 트라우마가 있는 것이 확실했다.

“…그런 거 아닙니다. 그냥 컨디션이 별로라 예민했던 겁니다.”

천소울은 대충 둘러대며 다시 젓가락질을 하고 라면을 건져 먹었다.

성현이 라면을 먹으러 가자고 했을 때부터 이런 이야기가 나올 줄 예상했었던 천소울이었다.

길고 긴 오르막길을 오르면서 대충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었기에 이쯤은 손쉽게 둘러댈 수 있었다.

작업실에는 한동안 두 사람이 면발을 건져 먹는 소리만 울렸다.

‘절대 먼저 말을 안 할 생각인가 보네.’

천소울은 과거와 관련된 일을 꾹꾹 묻어놓고 결코 열어볼 생각이 없어 보였다.

성현 역시 그 마음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도 그런 자세로 지금까지 묻어놓고 살아왔으니까.

이쯤 되자 성현도 더는 묻지 않기로 결심했다.

자기 편하자고 강제로 천소울의 마음의 문을 열게 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면 달라질까.’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해줘야겠다 마음먹은 성현이 먼저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아직 상당히 면발이 남은 상황이기에 천소울은 뭔가 싶어서 성현을 흘긋 쳐다봤다.

“저한텐 음악을 포기할 뻔했던 트라우마가 있었어요.”

성현의 말에 라면을 먹던 천소울은 놀라서 콜록거렸다.

사레가 들렸는지 놀란 얼굴로 기침을 하는 천소울이 성현을 쳐다봤고, 성현은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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