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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54화 (154/273)

154화

단호하게 들려오는 천소울의 목소리에 성현과 서지현, 요하는 모두 놀라서 그를 쳐다봤다.

저 정도로 크게 자신의 목소리를 낸 적이 없는 천소울이기에 더욱 놀랐다.

대기실에 잠깐 정적이 나돌고 나서, 성현이 천소울의 표정을 살피는데 그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천소울씨, 안된다는 건 무슨 뜻인 거죠?”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은 대답 대신 서지현에게 다가갔다.

장신의 천소울이 굳은 얼굴로 앉아 있는 서지현 앞에 서자 뜻하지 않게 위압감이 느껴져 서지현이 몸을 움찔 굳힐 정도였다.

“제드 프로듀서한테 영입 제의가 온 겁니까?”

천소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격양되어 있었다.

이는 평소 무뚝뚝하고 차분했던 천소울 답지 않은 모습이었다.

“네? 네.”

서지현은 그런 천소울의 모습에 당황해서 더듬거리듯 대답했다.

그러자 확답을 들은 천소울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 계약 절대 하면 안 됩니다.”

천소울은 이전보다 더욱 격양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했다.

다급을 넘어서 조금은 흥분한 듯한 모습이었다.

성현은 평소답지 않은 천소울의 모습에 언제든지 둘 사이에 끼어들 수 있도록 그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서지현은 천소울이 이렇게까지 나오자 이유가 궁금해졌는지 당황한 기색을 지우고 그에게서 이유를 캐내려고 했다.

“왜요? 무슨 이유 때문에요?”

“하면 안 된다니까!”

천소울은 이유도 말해주지 않고, 이제는 거의 윽박지르듯 외쳤다.

그 모습에 놀란 서지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갑작스러운 천소울의 일갈에 순식간에 가라앉는 대기실의 분위기.

자신이 소리를 질러놓고 스스로도 놀랐는지 흠칫 몸을 굳힌 천소울이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이를 본 서지현은 이내 침착함을 되찾고 천소울을 바라봤다.

“소울씨, 저도 이유를 알아야 거절을 하죠.”

서지현은 이제 천소울을 달래듯 말을 걸어봤지만, 천소울은 입을 꾹 다물고는 그대로 대기실 나가버렸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을 뒤따라 나가려다 서지현을 돌아보고 당부했다.

“공연 곧 시작되니까 끝나고 다시 얘기해요.”

“그래요. 그럼 저희도 이만 자리로 가 볼게요.”

“형, 이따 봐요.”

성현이 상황을 정리하자, 서지현과 요하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대기실을 나가 객석으로 향했다.

대기실에 혼자 남은 성현은 방금 천소울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가만히 떠올렸다.

‘설마 과거 트라우마랑 관련된 일인 걸까......’

마음 같아서는 무슨 일인 것인지 쫓아가 묻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지금 말할 생각도 없을 거고, 무대 앞두고 감정을 더 흔들어도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지금 이 선택이 후회를 불러일으킬 줄은 몰랐지만 말이다.

***

소극장 공연의 입장이 시작되자 금세 500석 이상의 관객석이 가득 찼다.

객석은 응원하는 가수 참가자에 따라 총 4개의 그룹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 참가자에 따라 모여 앉았다.

주최 측은 벌써 팬들의 니즈를 파악해, 가수 참가자마다 담당 컬러를 지정해 여러 굿즈까지 발매한 상태.

방청이 당첨된 팬들은 기념으로 받은 풍선과 자신들이 사온 굿즈로 무장하고 무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서지현은 요하와 함께 관객석 가장 뒤편, 초대석에 앉았다.

곧이어 그들 옆자리로 심훈영이 앉자, 서지현은 낯익은 얼굴의 등장에 크게 반가워했다.

“사장님! 잘 지내셨어요?”

“그럼. 서지현씨는 안 본 사이 더 예뻐졌네.”

“사장님도 안 본 사이 더 젊어지신 거 같아요.”

“그래? 요새 술을 줄여서 그런가?”

서지현의 말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은지 심훈영은 능청스럽게 받아넘겼다.

그렇게 심훈영과 서지현이 대화를 주고받는데, 서지현 옆에 앉아 있던 요하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요하는 긴장된 차렷 자세로 심훈영에게 깊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김요하입니다.”

라이브바에서 공연한 적이 없는 요하이기에 처음 보는 심훈영에게 인사를 건넨 것.

미성년자이기에 오아시스에 출입할 수가 없어 같이 공연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동안 멤버들에게 심훈영에 대한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래서 그런지 심훈영을 바라보는 요하의 눈이 잘게 빛나고 있었다.

심훈영 역시 요하의 이야기를 성현을 통해 심심찮게 들었기에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었다.

“아, 그래요. 김요하 학생. 성현이한테 얘기 많이 들었어요. 재능이 많다고 칭찬 일색이던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말 편하게 하세요!”

“그럴까, 그럼? 요하는 음악을 한 지 얼마 안 됐다 들었는데 어떤 음악을 하고 싶어?”

“당장은 락 음악을 가장 하고 싶긴 한데, 아직 이것저것 배워보는 단계고......”

요하는 그렇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 줄줄 늘어놓았다.

심훈영 역시 성현이 눈 여겨 본 인재라는 소리를 들었기에 요하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다.

세 사람은 공연 시작 전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얘기를 주고받았다.

얼마간 그러고 있자 곧 객석에 있는 조명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된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오프닝 무대를 장식한 참가자는 부산 지역 가수 참가자 이유찬.

TOP 7의 인기를 증명하듯 콘서트장에 있는 흰색 티를 입은 이유찬의 팬들이 그의 이름을 부르며 응원 구호를 외쳤다.

“우유 빛깔 이유찬! 사랑해요, 이유찬!”

객석의 환호성과 함께 이유찬의 무대가 시작됐다.

이날은 4명의 가수 참가자들이 각각 2개의 노래를 준비했는데, 음원 미션 때 불렀던 곡 1개와 다른 하나는 자유곡이었다.

이유찬은 몇 번 무대에 서봤다고 이제는 꽤 익숙하게 자신의 팬들이 있는 쪽을 향해 씨익 웃고는 입을 떼었다.

“난 매일 우리 집에 홀로 있었어 아버지는 버스 드라이버 어디냐고 여쭤보면 항상 방화대교.”

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이유찬의 커버곡을 따라부르며 함께 노래를 즐겼다.

이런 모습이 이전 경연 무대와는 확연하게 다른 점이었다.

이전 경연 무대들이 객석에 있는 관객들에게 평가를 받는 무대였다면, 지금의 무대는 팬들과 함께 소통하고 무대 자체를 즐기는 콘서트에 가까웠다.

참가자 또한 이전에 경직된 분위기의 무대가 아니라 여유를 가지며 공연을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종종 마이크를 객석 쪽으로 돌려 떼창을 유도하기도 했다.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피었다.

이걸 위해서 촘촘한 일정 속에서도 참가자들 모두가 소극장 공연을 열심히 준비했더랬다.

성현은 가수와 팬이 함께 호흡하고 소통하는 지금 이 순간, 음악으로 하나가 되는 이 순간이야말로 음악을 하면서 가장 의미있는 순간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제 봐도 기분 좋은 광경이란 말이지.’

성현은 이 순간을 즐기기로 마음 먹으며 자신 역시 첫 번째 무대에 몰입했다.

그러다가도 문득 머릿속에 대기실에서 봤던 천소울의 얼굴이 떠올랐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은 채로 멤버들을 외면하고 뛰쳐나갔던 천소울.

‘괜찮을까.’

천소울이 이유찬 참가자 바로 다음 무대였기에 걱정이 더 했다.

대기실에서 있었던 일 이후 표정이 계속 어두운 천소울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어딘가 불안해 보이기도 했어.’

천소울이 대기실에서의 일을 설명해주진 않았지만, 프로듀서인 성현의 눈에 천소울은 단순히 기분이 안 좋은 것만이 아니었다.

모건 때의 천소울이 생각나면서, 알 수 없는 불안함마저 느껴졌다.

‘내가 조금 더 개입했어야 하나.’

무대 전이라도 뭐라고 말을 걸었어야 하나 고심하는데, 이유찬의 무대가 끝나고 이어서 천소울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성현은 착잡한 마음으로 곧 올라올 천소울의 상태를 지켜보기로 마음 먹었다.

무대를 앞둔 이를 더 뒤흔들 수는 없었기에, 성현은 한없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일단, 무대가 끝난 후에 붙잡고 이야기를 나눠볼 심산이었다.

“다음 무대는 잘생긴 외모에 감미로운 목소리의 소유자. 천소울씨 입니다!”

엠씨가 천소울의 이름을 내뱉자, 객석에서 보라색 옷을 입은 팬들이 천소울의 이름을 외치며 환호했다.

척 봐도 엄청난 인기였다.

500명 중에 보라색 옷을 입은 팬들의 비율이 제일 많은 것 같았다.

“소울이 소울했다! 천소울 사랑해!”

공연장 분위기가 뜨거워졌고, 모든 조명이 암전되자 천소울이 무대에 올랐다.

성현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천소울이 무대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별 탈 없이 끝나야 할 텐데.’

성현은 어딘가 모를 불안감에 천소울이 제발 무사히 무대를 끝내길 바랐다.

천소울은 성현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멀쩡하게 마이크를 들고 무대를 시작했다.

천소울의 첫 곡은 더 샤이닝의 감미로운 발라드 곡 ‘너와 나 사이의 거리’.

천소울의 감미롭고 매력적인 보컬을 돋보일 수 있는 곡 선택이었다.

멀쩡하게 관객석 끝을 응시하며 차분하게 입을 여는 천소울의 모습을 보고 성현은 작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눈을 맞추고 너를 보며 속삭여 그저 한 번만 웃어 달라고 난 네 얼굴만 봐도 버틸 수 있어.”

안심한 것도 잠시뿐, 천소울이 감정을 잡고 첫 소절을 부르는데,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의 눈썹이 움찔거렸다.

멀쩡해 보이는 것은 오직 겉모습뿐이었다.

첫 소절부터 음이 흔들리기 시작하면서 노래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그의 목소리를 통해 온전히 느껴졌다.

“가까워 질 수만 있다면......너에게로 달려갈 수만 있다면 ......”

그뿐만이 아니었다.

천소울은 가사 중간중간을 부르지 못하고 노래를 중단하는가 하면, 가사를 뚝뚝 끊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 나중에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무대에 멀뚱히 서 있었다.

천소울의 노래에 맞춰 좌우로 손을 흔들던 관객들이 이상징후를 느끼고는 하나둘 손을 내렸다.

완전히 노래가 멎자 관객석에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걱정과 질타가 뒤섞인 목소리가 객석에서 요동쳤다.

“뭐야? 실수한 거야?”

“그런 거 같은데? 뭐라도 부르지 가만히 서서 뭐하는 거냐.”

“사고 제대로 치네. 꼴랑 두 곡 준비하면서 저걸 실수하냐.”

객석에 있는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실수에 술렁거리기 바빴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서지현과 김요하, 심훈영도 놀라긴 마찬가지였다.

“요하야 지금 무대에 있는 사람 천소울씨 맞지......?”

“네......소울이 형은 확실한데....... 이상하다, 형이 저럴 리가 없는데.....”

서지현과 요하는 자신들이 평소 알던 천소울의 모습이 아니었기에 더욱 당황했다.

항상 완벽하게 무대 준비를 마치고 흔들림없이 공연을 해냈던 천소울이었는데.

오랜 시간 옆에서 그런 천소울을 봐왔던 두 사람이기에, 무대에 있는 사람이 천소울이란 걸 믿지 못했다.

난리가 난 것은 객석뿐만이 아니었다.

백스테이지 역시 공연을 준비한 주최 측 스탭들이 갑작스러운 공연 사고에 난리가 난 것.

“어쩌죠? 중단할까요?”

진행 스탭의 물음에 감독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결국 결단을 내렸다.

오랫동안 멈춰버린 천소울을 이대로 무대에 세워둘 수는 없었다.

“일단 노래 끊고 내려!”

감독의 말에 스탭들이 반주 끄고 천소울 무대에서 내리려고 준비하는데, 누군가 무대 위로 등장했다.

망설임 없는 걸음으로 천소울이 멍하니 서 있는 무대 뒤로 뛰어 올라간 한 사람의 인영.

성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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