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52화 (152/273)

152화

“저녁 먹고 들어갈래요?”

“그럽시다.”

성현은 어느새 어두워진 하늘을 보며 둘에게 물었다.

인터뷰가 끝나고 바로 사진 촬영 일정까지 소화하느라 셋은 제대로 끼니를 챙기지 못했다.

긴장을 하고 있어서 못 느끼고 있던 허기가 밖에 나와 바람을 쐬자 격하게 느껴졌다.

천소울 역시 마찬가지인 듯 가장 먼저 대답하는데, 임하나가 조금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전 약속이 있어서 안 될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죠. 오늘 고생 많았어요, 하나씨.”

“네. 식사 맛있게 하세요!”

임하나는 성현과 천소울에게 인사를 한 후, 먼저 자리를 뜨고 성현과 천소울 둘만 남았다.

이런 건 또 처음이네.

성현은 천소울과 둘만 남게 되자 어색함을 느꼈다.

평소에는 괜찮았는데 오늘 한껏 꾸며놓은 천소울은 조금 낯선 사람 같았다.

특히 외모가.

“뭐 먹고 싶어요?”

“전 아무거나 상관없습니다.”

평소처럼 무던한 천소울의 말에 성현은 근처에 밥집이 있나 두리번거리는데 횡단보도 맞은편, 김치찌개 집을 발견했다.

성현은 반가운 마음에 그 집을 가리키며 물었다.

“김치찌개 괜찮아요?”

“좋아합니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김치찌개 집에 도착한 두 사람.

둘은 밥을 기다리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천소울은 오늘 들은 광고 이야기는 이미 잊은 사람처럼 이 뒤의 일정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이주 간 일정이 끝난 뒤에 다음 미션이 뭘까요. 한국 본선은 끝났다고 하니까 다른 나라 대표들과 경연을 붙일 것 같은데.”

“벌써 다음 미션이 궁금해요?”

아직 다음 미션이 시작되는 날짜조차 공지되지 않은 상황.

성현은 상당히 조급하게 다음 미션을 궁금해하는 천소울을 보고 놀라서 물었다.

천하의 천소울일지라도 다른 나라 대표랑 붙는다니까 조금 긴장이 되나 싶기도 했다.

“당연한 거 아닌가. 이성현씨는 안 궁금해요?”

“글쎄요.”

여상하게 대답하는 성현은 아주머니가 가져다준 공깃밥 하나를 무심하게 천소울 쪽으로 밀어줬다.

성현은 이미 게임을 통해 주최 측에서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해서 궁금한 점이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덤덤한 성현을 보는 천소울의 눈초리가 가늘어졌다.

게임 속 주인공답게 우승을 노리는 천소울의 심정은 그게 아니었다.

‘굳이 지금 말해줄 필요는 없겠지.’

천소울의 속내를 대충 알 것 같은 성현은 아직 다음 미션까지는 시간이 많았기에 당장 그에게 힌트를 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다.

아무것도 흘리지 말자, 다짐하고 천소울을 보는데, 그는 또 다른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었다.

“무슨 생각해요?”

“뭐 하나 물어봐도 됩니까?”

성현은 적잖은 감동을 느꼈다.

그 천소울이, 자신에게 매서운 눈길을 보내기 바빴던 천소울이, 같이 밥을 먹자고 하더니 이번에는 궁금한 게 있다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성현은 천소울이 자신에게 마음을 연 듯한 기분을 만끽하며, 반가운 마음에 웃으며 대답했다.

“천소울씨 질문이야 언제든 환영이죠.”

“아까 전에 인터뷰 할 때 말했던 계획이 뭔지 궁금해서요.”

성현은 콩나물무침으로 향하던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혼자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나 했더니, 아까부터 이성현이 말한 계획이 무엇일까 궁금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천소울씨한테도 미리 말해줄 필요가 있을까.’

천소울과 임하나는 여전히 오디션을 진행 중인 참가자였다.

지금까지처럼 성현은 두 사람 모두 오디션을 진행하는 중에는 온전히 거기에만 집중하길 원했다.

어차피 두 사람은 오디션 내에서 말고는 기획사와 계약할 수도 없었다.

성현은 잠시 지금 자신의 계획을 말하는 것이 그에게 혼란을 줄까, 아님 안정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입을 다물기로 했다.

‘아직이야. 조금 더 기다린 다음에 때가 되면 말해야지.’

성현은 곧 천소울과 임하나 두 사람에게는 따로 계획을 말할 때가 있을 거라고 판단하고 이만 생각을 접었다.

때마침 보글보글 끓는 김치찌개 두 사람 사이에 놓였다.

성현은 잘 됐다 싶어서 앞접시와 국자를 들고 천소울에게 말했다.

“다음에 때가 되면 말해줄게요.”

“그래요, 그럼.”

타이밍이 좋았다.

두 사람은 난생처음 겪어보는 스케줄 때문에 몸도 마음도 지쳐서 허기진 상태였으니까.

성현은 이 이상 천소울을 마냥 기다리게 할 수 없다는 걸 알았다.

‘계획을 조금 빠르게 진행해야겠네.’

김치찌개 앞에서 천소울도 한 수 접기로 했는지 그의 숟가락도 바쁘게 움직였다.

성현은 아까부터 천소울의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것 같아 화제를 돌리며 숟가락을 들었다.

“레이팍이 천소울씨 언급한 기사 봤어요? 음색 좋다고 칭찬 일색이던데.”

“이성현씨도 저스트미가 천재라고 칭찬 일색이던데요.”

“좋네요. 우리 둘 다 칭찬받아서.”

천소울은 성현의 말에 피식 웃고 성현 역시 천소울을 따라 웃었다.

둘은 그 뒤로 말없이 식사에 열중했고, 김치찌개는 빠르게 바닥을 드러냈다.

***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천소울은 버스를 타고 떠나고 성현은 소화도 시킬 겸 걸으며 이것저것 생각을 정리했다.

한국 본선 라운드도 끝이 났고, 2주간은 주최 측에서 정해준 스케줄 외에는 아무 일정도 없었기에 시간이 조금 남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해야겠어.’

생각을 다 정리하고 뭔가를 결심한 성현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는데 혹시 지금 시간 돼요? 제가 거기로 갈게요.”

성현은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는 전화를 끊었다.

약속을 잡은 성현은 전과 다르게 산책하듯이 천천히 걷는 것을 멈추고 늦을세라 발걸음을 재촉했다.

***

그날 저녁.

성현이 약속 장소의 문고리를 잡아당겼다.

문 위에 붙은 간판은 익숙한 모양새였다.

[ 오아시스 라이브 바 ]

성현이 늦은 저녁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본격적으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키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인물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허락을 해주셔야 할 텐데.’

성현은 긴장되는 마음을 안고 오아시스바에 들어가자 언제나처럼 시끌벅적한 바의 모습이 나왔다.

항상 이곳에 들어올 때면 긴장되는 마음이었는데 반가운 모습들을 마주하자 그 긴장감이 상쇄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 이성현이!”

한 손님이 가게로 들어서는 성현을 발견하고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크게 외쳤다.

그 말에 왁자지껄 술을 부어라 마셔라 하던 손님들이 일제히 입구를 바라봤다.

성현을 본 손님들은 신이 나서 목청을 돋워 성현에게 반가운 내색을 보였다.

“이야, 너 완전 스타 됐더라?”

“온 김에 노래 한 곡 뽑구 가!”

“그래, 한 곡 뽑구 가! 그냥 가면 섭하지.”

오아시스 바에 만취한 손님들은 여전했다.

성현의 얼굴을 알아보고는 저기 구석에 있는 단골손님까지 인사를 건넸고, 모두 하나 같이 성현에게 노래를 해달라고 아우성이었다.

계속되는 노래 요청에 난처하게 서 있느라 들어오질 못하는데, 주방에 있던 심훈영이 이 소란을 듣고 나왔다.

“바쁜 애한테 노래는 무슨 노래예요! 술이나 자셔들. 여긴 좀 시끄러우니까 방으로 가자.”

심훈영이 성현을 취한 손님들한테 떨어뜨리자 여기저기서 야유가 들렸다.

사장의 횡포라느니, 이성현은 내가 키웠다느니 하는 볼멘소리들까지 터져 나왔다.

심훈영은 그런 손님들의 반응을 죄다 무시하고 안쪽 방으로 성현을 데리고 들어왔다.

“인터뷰 봤어. 완전 연예인 다됐더라? 광고 촬영만 몇 개야.”

괜히 자신이 더 뿌듯한 마음에 성현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하는 심훈영.

그는 계속해서 성현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기에 일정 또한 이미 다 꿰고 있었다.

성현은 그 말에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쑥스러운 듯이 뒷목을 긁적였다.

매일 멤버들하고만 이야기해서 몰랐는데, 자신을 아는 사람이 이렇게 말해주자 괜히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간지러운 느낌이 발끝부터 올라왔다.

“아직도 저랑 관련된 기사 찾아보세요?”

“너 활동하는 내내 감시해야지. 약속 지키나 안 지키나.”

성현은 뼈가 있는 것 같은 심훈영의 농담에 말없이 웃었다.

심훈영은 한동안 성현의 몸을 이리저리 둘러보고 몸 상한 데가 없나 보고는 물었다.

지금까지 성현이 괜히 이곳에 온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그래서 오늘은 왜 찾아온 건데? 무슨 또 힘든 일 있어?”

“힘든 일은 아니고 고민이 있어서 왔어요.”

심훈영은 이제 자처해서 성현의 멘토 역할을 할 생각이 만만이었다.

고민이 있다는 성현의 말에 심훈영은 대번에 고개를 끄덕이고 경청할 자세를 취했다.

“뭐든 물어봐. 먼저 음악 한 선배로서 아는 건 말해줄게.”

“기획사를 차릴 생각인데 사장님 자문이 필요해요.”

성현이 기껏해야 음악 활동에 대한 고민을 말할 거라 생각하고 말한 심훈영이 순간 굳었다. 성현의 대답을 들은 그는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무, 뭐? 기획사?”

“네. 엔터테이먼트요.”

심훈영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어 되묻는데 성현의 표정은 웃음기 하나 없이 진지했다.

“허어......”

심훈영은 성현이 음악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건 알았지만 이제 자기 손으로 기획사까지 차리겠다고 하니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다.

성현은 그런 심훈영에게 차분하게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번에 여기서 같이 공연했던 친구들 기억하시죠? 그 친구들한텐 이미 영입 제안은 해 둔 상태예요. 아직 답변은 못 받았지만.”

“정말 기획사를 차릴 생각인 거냐?”

성현의 말을 들어보자니 혼자 세워놓은 계획도 만만치 않아보였다.

그걸 깨달은 심훈영은 성현에게 재차 되묻고,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성현을 멀거니 바라봤다.

“네. 그 친구들이 제안만 받아준다면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건데? 너 기획사 운영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 줄 알아?”

“쉽지 않단 거 알아요. 지금보다 몇 배, 몇십 배는 힘들 거고 책임감도 커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이유가 있어요.”

성현의 말에 심훈영이 그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성현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너무나 간결했다.

“지금 동료들이랑 계속 음악 하고 싶어요.”

“……고작 그런 이유 때문에 기획사를 차리겠다고?”

“네. 그 친구들이 음악에만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제 손으로 만들어주고 싶어요.”

아주 이상적이고 바른 생각이었다.

심훈영은 신현식의 곡을 가져가서 만들 때부터 느낀 성현의 마음이 이해 안 가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너무나 실행 가능성이 없는 무모한 도전처럼 여겨졌고, 무엇보다 성현이 기획사를 차렸을 경우 겪어야 할 힘든 일들에 대한 걱정이 앞섰다.

“마음은 알겠지만 상상 이상으로 힘들 거다. 까딱하다간 진짜 길바닥에 나앉을 수도 있다고.”

“괜찮아요. 돈 때문에 하려는 것도 아니고 제 가수 제가 지키는 거, 그거면 돼요.”

성현의 진심 어린 말에 심훈영은 차오르는 말이 한 트럭이었지만, 결국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진심만으로 모든 게 해결되는 세상이 아니었다.

정말 성현의 제대로 된 멘토가 될 생각이라면 지금 그를 말리는 것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무모한 일이란 걸 알면서도 그 마음이 너무나 이해 갔기에 심훈영은 별 다른 말을 해주지 못했다.

“네 생각이 정 그렇다면 말리진 않겠다만......”

심훈영은 결국 성현의 계획을 잠자코 지켜보기로 결심했다.

어쩌면 성현은 자신이 꿈꾸던 그런 기획사를 만들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갖고.

성현은 입을 닫은 심훈영을 쳐다보더니 이내 자신이 이곳에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기획사를 설립할 때 회사의 리더 역할을 해줄 사람이 필요해요.”

“근데?”

“사장님이 그 리더 역할을 해주셨으면 해요.”

성현이 지금껏 누구에게도 제대로 털어놓지 않은 이 계획을 오아시스 바를 찾아와서 하는 이유.

다른 이가 아닌 심훈영이 회사의 리더가 되길 원했던 것이다.

성현의 말에 심훈영은 입을 떡 벌렸다.

“지금은 이곳에 계셔도 한때는 음악계를 주름잡던 분이셨잖아요. 사장님께서 가지고 있는 경험과 인맥이라면 충분히 그 역할을 해주실 수 있을 거라 봐요.”

성현은 차분히 생각해 온 심훈영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서도 설명을 늘어놓았다.

성현의 이어지는 말을 들은 심훈영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채 대답이 없었다.

긴 시간 동안 재촉하지 않고 심훈영의 대답을 기다렸다.

자신 역시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여기 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잠시간의 침묵 후, 심훈영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