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화
천소울은 음원도 인기였지만 최근에 그의 외모가 화제가 되면서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들 중 가장 많은 팬층을 보유하게 됐다.
알아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져 얼굴을 내놓고 걷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여서, 그는 요즘 마스크와 모자 없이는 가까운 동네도 못 나갈 지경이었다.
아마 그가 스폰서가 있었다면, 전용 벤과 로드 매니저를 붙여줬어야 할 정도의 인기를 끌고 있었다.
성현과 임하나, 천소울 셋이 대화를 나누며 대기실로 들어가자 그곳에 있던 참가자들의 시선이 셋에게 쏠렸다.
셋에게 꽂히는 시선은 하나같이 곱지 않았다.
“끼리끼리 다 해 먹네.”
“아, 1번 곡이랑 고민하다 다른 곡 선택했는데. 시간 돌리고 싶다 진심.”
참가자들은 이미 이성현, 천소울, 임하나가 TOP4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난 일주일 동안 음원 차트에서 내려간 적이 없는 셋이었다.
무대 영상 조회수 역시 임하나와 천소울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셋에게 쏠리는 주목에는 부러움과 질투심이 담겨 있었다.
“신경 쓸 거 없어요. 부러워서 저러는 거니까.”
그중에 셋에게 유일하게 다가오는 참가자는 먼저 도착해 있던 주선아였다.
그녀는 다른 참가자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굳은 얼굴로 듣고 있던 임하나에게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말해주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평소보다 어두웠고, 눈도 부어있었다.
이를 눈치 챈 천소울은 조금 망설이더니 주선아에게 먼저 말을 건넸다.
“…밥은 먹었냐?”
천소울의 물음에 주선아는 대답도 못 하고 다시 눈시울을 붉혔다.
자신의 말에 울음이 터지려는 주선아를 본 천소울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데, 대기실로 진행 스탭이 들어왔다.
그의 손에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다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알고 있다는 듯 대부분이 침통한 표정으로 종이를 바라봤다.
“지금부터 대한민국을 대표할 참가자들이 결정되는 음원 TOP4을 발표하겠습니다.”
이미 참가자들 또한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스탭은 길게 기다릴 것 없이 곧장 결과를 발표했다.
“프로듀서 참가자 먼저 발표하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과 동시에 대기실 화면에 이름이 떴다.
1위, 놀이터-천소울(Produce by 이성현)
2위, 놀이터-임하나(Produce by 이성현)
3위, 거짓말 같은 이야기-이유찬(Produce by 김동원) 4위, 흔들리는 커피 향 속에서-김지원(Produce by 서나래)
“이성현, 김동원, 서나래 프로듀서 참가자. 그리고 천소울, 임하나, 이유찬, 김지원 가수 참가자 여러분. 합격 축하드립니다.”
이름이 불린 참가자들은 모두 서로 좋아하고 축하해 주는 분위기였다.
이미 음원 사이트 순위는 지표로 나와 있기에 예상했지만, 찰나의 시간에도 변동이 이뤄지는 것이 음원 순위였다.
드디어 일주일 만에 마음 놓고 잘 수 있겠다고 중얼거리는 참가자가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해서 총 7명의 참가자가 다음 라운드 진출이 가능해졌으며 나머지 15명의 참가자는 전원 탈락입니다. 한국 내 최종 본선 라운드는 종료됐습니다. 지금까지 참여해 주신 참가자분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라운드 미션은 커넥트 앱을 통해 공지할 것이니 오늘은 이만 해산하셔도 됩니다.”
떨어진 참가자들 모두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에 스탭의 말에 큰 충격을 받진 않았다.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 건 당연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22인에서 탈락자가 되어 오디션장을 떠나게 만드는 탈락 선고는 여전히 잔인하기만 했다.
그들 모두 쉽사리 대기실을 떠나지 못했고 대기실엔 조용한 적막과 한숨 소리, 훌쩍이는 소리만 들렸다.
성현의 일행 역시 합격 발표 이후 대기실을 떠나지 못했는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주선아 때문이었다.
주선아 또한 이번 라운드에서 탈락하게 된 것이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사람 중에 가장 참담한 표정을 짓고 있는 사람은 천소울이었다.
오디션 초반부터 함께 연습하고, 자신이 좌절했을 때에도 포기하지 않고 의지를 가질 수 있게끔 해준 주선아의 탈락은 천소울에게도 큰 충격이었다.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주선아의 실력을 잘 알고 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
천소울은 분한 마음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
성현을 비롯한 그 누구도 주선아에게 먼저 말을 걸지 못하고 가만히 기다려 주는 것뿐이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조금 시간이 지난 후, 주선아는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고는 애써 웃어 보였다.
“합격 축하드려요.”
주선아는 탈락했음에도 불구하고 합격한 일행들에게 축하를 건넸다.
그녀가 얼마나 힘들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서 이 인사를 건넨 것인지 잘 알기에 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울먹이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선아야 수고했어. 앞으로가 더 잘 될 거야. 이렇게 예쁘고 노래도 잘하는 애를 세상아 가만 둘 리가 없어.”
“너 못해서 떨어진 거 아니니까 속상할 것도 없어. 힘들면 언제든 연락하고.”
임하나와 천소울은 각자의 성격대로 주선아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성현 역시 그녀에게 마지막 조언을 해줬다.
“주선아씨 재능있으니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고 봐요. 이번 경험을 토대로 더 좋은 가수가 되길 바랄게요. 나중에 기회가 되면 꼭 같이 작업해요.”
성현은 주선아가 워낙 좋은 기획사와 계약이 돼 있는 걸 알고 있지만, 언젠가 다시 함께 음악을 하기를 바라며 말했다.
주선아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만나길 약속했다.
“이미 어제 실컷 울었더니 눈물도 안 나오네. 배고파. 밥 먹으러 가요 우리.”
잠긴 목을 몇 번 푼 주선아가 조금 무겁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애써 띄우며 밝게 말했다.
성현과 일행들은 그제야 안심하고 함께 대기실을 나가는데 이내 임하나의 휴대폰에 전화가 왔다.
액정을 확인한 임하나의 얼굴이 활짝 펴지더니 바로 전화를 받아 소리쳤다.
“엄마! 나 붙었어!”
임하나는 전화를 받자마자 기뻐서 소리치는 모습을 지켜보는 성현의 얼굴에도 미소가 피었다.
“응. TOP4! 아니, 이제 밥 먹으러 갈 거야. 아니야, 아빠한텐 내가 말할래. 응, 응. 나도 사랑해.”
임하나는 엄마와 전화를 끊고는 곧장 다시 아빠에게 전화를 걸고 합격 사실을 알리는데, 그 모습을 보던 성현은 아빠라는 말을 듣고 생각에 잠겼다.
‘보고 계시려나.’
성현은 문득 자신의 아버지 또한 이번 서바이벌을 지켜보고 있을지 궁금해졌는데,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튼 생각이라는 마음이 변하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지.’
성현은 마음을 접고는 휴대폰을 꺼내 가족 대신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자신에게는 가족 말고도 지켜봐 주는 멤버들이 있었으니까.
-성현: 붙었어요. 이미 알고 계시겠지만.
-조은별: 축하해요!
-서자명: 우승까지 가즈아!
.
.
성현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멤버들에게 축하한다는 답장이 우수수 돌아왔다.
하나같이 진심이 담긴 말들을 보며 다시 기분이 좋아졌다.
아까 대기실에서 합격자 명단에서 자신의 이름이 불릴 때보다 멤버들에게 축하를 받는 지금이 더 실감이 났다.
‘우승까지 정말 얼마 안 남았구나.’
한국 내 본선 라운드도 최종 종료됐다.
성현은 벌써 까마득하게 느껴지는 몇 달 전, 매일 열심히 하던 게임의 엔딩을 차례로 떠올려보았다.
아득하기만 했던 우승이 그렇게 멀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
음원 미션이 종료되고, 성현을 비롯한 최종 TOP7 멤버가 결정됐다.
이들은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한국 대표가 됐다.
결과 발표가 있고 난 이틀 동안 성현은 오랜만에 휴식을 취할 수 있었는데, 그런 여유도 오늘까지였다.
성현은 이른 아침부터 좁은 방안을 움직이며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부터 ‘더 넥스트 슈퍼스타’ 주최 측이 잡아 놓은 꽤 많은 공식 스케줄을 소화해야 했다.
맨 처음에는 한국 본선에서 살아남은 7명의 참가자가 수많은 기자들 앞에서 가지는 공식 인터뷰 스케줄이 잡혀 있었다.
준비를 마친 성현이 급하게 방을 나가려는데 그의 휴대폰이 울렸다.
임하나로부터 온 전화였다.
“네, 하나씨. 지금 가고 있어요.”
“저랑 천소울씨는 메이크업 때문에 먼저 와있어요. 위치 아시죠?”
“네. 저도 30분이면 도착할 것 같아요.”
전화를 끊은 성현은 자취방을 나가서 곧장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에 올라탄 성현은 계속 울리는 휴대폰을 확인했다.
멤버들이 단체 채팅방에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와 관련된 기사를 보내주고 있는 중이었다.
문제는 기사의 수가 엄청나서 전화가 오듯이 진동이 끊이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성현은 옆자리의 눈치를 보고 휴대폰의 진동을 무음으로 변경했다.
그 다음에 안심하고 멤버들이 보내준 기사들의 제목을 훑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 프로그램의 돌풍! 음원 모두 100위 안에 포진.]
[가수 레이팍, 음원 차트 1위 ‘더 넥스트 슈퍼스타’ 천소울 극찬. “하늘이 내려준 목소리”]
[‘더 넥스트 슈퍼스타’ 임하나 무대 영상, 조회수 1000만 돌파!]
[첫 데뷔로 음원차트 올킬한 신인 프로듀서, 이성현은 누구?]
[가수 저스트미, “이성현 프로듀서의 재능이 부러워 배가 종종 아프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편집본은 거의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편집본 영상이 올라갈수록 그 인기는 더욱 올라가는 중이었다.
영상이 하나 올라올 때마다 관련된 기사와 참가자들에 대한 찬사가 쏟아졌다.
특히 음원 차트 1, 2위를 앞다투는 천소울과 임하나의 언급이 많았고, 그들의 곡을 만든 성현 역시 화제의 인물이 됐다.
-조은별: 기사 봤어요? 회사에서 성현씨 다시 데려오라고 난리예요 지금.
-서지현: 제 주위에서도 싸인 받아와 달라고 난리 났어요.
탈락한 멤버들 모두 성현과 일행들의 성공을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기뻐하는 중에 서자명이 기사 하나를 더 보내왔다.
-서자명: 이것 봐요. 다른 나라들도 하나둘씩 윤곽이 드러나네요.
[중국, 마침내 13억 인구를 대표하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 TOP 8 결정 나.]
[‘더 넥스트 슈퍼스타’ 한국에 이어 미국, 중국, 일본의 TOP 7도 정해져.]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참가한 다른 나라들 역시 대표들이 하나둘 정해지고 있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글로벌 오디션.
성현은 게임 플레이를 통해 각각의 나라에서 얼마나 쟁쟁한 실력자들이 선출됐는지 지켜봐 왔다.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의 참가자들의 실력 역시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생각에 성현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차례로 다른 나라의 대표들까지 정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있자니, 한국 대표로 발탁이 됐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안심하기는 아직 일러.’
앞으로 있을 미션들에 대해 생각하며, 방심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단체 메시지방에 속속들이 올라오는 기사들을 한 차례 훑고 휴대폰을 끄려는 순간, 대화방에 올라온 기사 하나가 성현의 눈에 띄었다.
[ 최종 TOP7 김지원, “부모님이 가장 기뻐하셔!” ]
최종 TOP7로 광주 지역 참가자의 인터뷰 기사.
성현을 사로잡은 것은 특정 참가자도 내용도 아니었다.
‘부모님’이라는 단어, 설렘으로 가득 차 있던 성현의 마음이 풀썩 바람 빠지듯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