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49화 (149/273)

149화

“여러분들이 행복한 거죠.”

성현의 말은 바로 묵살됐다.

릴리와 서자명은 성현의 말을 듣더니 대꾸도 없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열변을 토했다.

릴리는 제습기 이야기를 꺼낸 서자명에게 말했다.

“습기 제거제 저희 집에 많아요. 제거 가져다드릴게요.”

“괜찮습니다. 제가 먼저 말했으니 제가 가져다드리면 됩니다. 이성현씨도 괜찮죠?”

“네? 아니 괜찮은데......”

성현을 사이에 두고 둘의 신경전이 시작됐다.

서자명과 릴리는 서로 습기 제거제를 가져다주겠다고 성화였다.

그 사이에서 성현이 난처해하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주영준이 껴들었다.

“나도 습기 제거제 필요한데. 남으면 나 주면 되겠네.”

주영준 말에 서자명과 릴리는 말이 없어지더니 조용히 음료수를 들이켰다.

약속이라도 한 듯이 입을 조개처럼 닫은 둘의 모습에 지켜보고 있던 서지현과 조은별은 웃음이 터졌다.

좁은 작업실은 멤버들의 웃음소리로 꽉 차고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는 성현은 뿌듯함을 느꼈다.

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생각보다 좁고 허름한 공간에 어색해하던 멤버들 역시 적응이 되었는지 평소처럼 서로 장난을 치며 웃고 떠들었다.

“왜 두 분 다 조용하세요?”

“영준이 형, 오렌지 주스 맛있어요. 이거 드세요.”

“아, 고맙다. 요하… 요하 너까지 나 놀리는 거지!”

프로듀서로서 꿈을 꾸면서 요즘처럼 작업실에 누군가가 들락거리는 것이 생소했다.

오디션을 시작하기 전까지 성현에게 작업실이란 그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혼자만의 공간이자, 방해받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에 다닥다닥 멤버들이 낑겨 앉아 있고, 멤버들의 웃음소리로 좁은 방안이 가득 찼다. 이상한 일이었다.

성현의 성격대로라면 당연히 달갑지 않은 상황인데, 오늘은 그냥 왠지 좋았다.

아니, 생각보다 훨씬 좋다고까지 여겨졌다.

‘그만큼 내게도 소중한 사람들이 된 거겠지.’

성현은 오디션을 해오며 하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하는 것 외에도 함께 음악을 할 소중한 동료들을 찾았다는 것에 새삼 감사함을 느꼈다.

“아! 케이크 사 오는 거 깜빡했다. 근처에 케이크 집까지 다 알아놨는데 그걸 깜빡했네.”

“갑자기 웬 케이크예요?”

조은별이 박수를 치며 이제야 생각났단 듯 말하자, 성현은 갑자기 나온 케이크 얘기에 조금 의아해 물었다.

“성현씨 노래가 음원 사이트 올킬했는데 축하 파티는 해드려야죠.”

“그러지 말고 아예 따로 날을 잡고 축하를 하죠? 1, 2위면 5라운드 진출은 거의 확정시 된 거니까 마음 놓고 쉬어도 될 거 아니에요.”

“맞아요! 그때는 형, 누나들 다 부르고 해야죠.”

“장소는 제가 예약할게요. 축하해요, 성현씨!”

멤버들은 너나 할 거 없이 모두 성현의 노래가 음원 차트 1, 2위를 한 것을 축하해 주었다.

성현은 그런 멤버들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여러분들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어요.”

“에이, 저희가 한 게 뭐 있다고.”

“한 게 없다뇨. 여러분들이 없었으면 이번 곡은 탄생하지 못했어요.”

고개를 가로젓는 성현은 진심이었다.

성현은 멤버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발표한 이번 곡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사실 이번 곡은 여러분들을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에요. 여러분들과 오디션을 함께하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참 많았는데 그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더라구요. 그래서 음악으로라도 들려주고 싶었어요. 언젠가 꼭 다시 함께 음악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성현의 말에 멤버들 모두 생각에 잠겼다.

요하와 서지현은 예상치 못한 성현의 발언에 감동했는지 멍하게 그를 바라보기까지 했다.

모두와 함께했던 시간들에 대해 떠올렸고 곧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함께 무대를 했을 때의 즐거움, 더 이상 함께하지 못하게 됐을 때의 아쉬움 등 여러 가지 감정들이 밀려들었다.

“어떻게 보면 제 스스로한테 메시지였기도 해요. 저한텐 여러분들과 함께했던 시간이 너무나 행복했지만 여러분들과 헤어지는 그 순간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끝까지 함께 가지 못한 게 전부 제 잘못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게 왜 성현씨 잘못이에요. 탈락한 건 여기 있는 누구의 잘못도 아니잖아요.”

조은별은 대번에 성현의 말을 자르고 부정했다.

예선전에서부터 그에게 받은 도움을 셀 수 없이 많았다.

홍대팀을 만나고, 여러 참가자들과 무대에 오를 수 있는 기회들,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껏 프로듀싱을 할 수 있었던 경험들.

이 모든 것은 그때 성현이 내민 도움의 손길이 없었다면 자신에게 오지 않았을 소중한 시간이었다.

“맞아요. 모두 최선을 다했고 매 순간 진심으로 음악 했잖아요. 떨어진 건 슬프지만 그것만으로도 저한텐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이었어요.”

“맞습니다. 후회 없이 즐겼고 멋있는 음악 했으니까 그걸로 충분해요.”

릴리의 말에 멤버들 모두 공감하며 이야기를 꺼냈다.

곧이어 모두와 함께했던 무대와 추억을 하나씩 떠올리며 즐거워했다.

제일 먼저 나온 것은 1라운드 때 임하나.

“난 하나씨가 제일 대단한 거 같아. 어떻게 거기서 일 대 일로 붙자고 할 수 있지?”

“멋있다. 결국 춤도 음악을 구성하는 악기 중 하나라는 걸 증명해낸 거잖아요.”

“자기가 하는 음악에 확신이 없으면 그런 도박을 할 순 없었을 텐데. 대단하네요.”

그때만 해도 다른 지역에서 오디션을 진행했던 릴리와 주영준이 그 이야기를 듣고 감탄했다.

역시 떡잎부터 남달랐던 사람이었다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자 다음으로 요하의 무대, 그다음에는 주선아와 모건의 무대까지, 정신없이 이야기가 쏟아져 나왔다.

멤버들이 그렇게 한참 과거 얘기에 빠져 있는데, 옆에서 이를 가만히 듣고 있던 서지현이 갑자기 멤버들에게 물었다.

“이 노래처럼 우리 꼭 다시 함께 음악 할 날이 오겠죠?”

이에 순식간에 조용해지는 멤버들.

다들 앞으로 이렇게 다 함께 모이는 것도 힘들어질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멤버들은 각자 여러 소속사로부터 좋은 제의들을 받고 있었다.

다들 언젠가 소속사와 계약을 맺고 각자의 음악 활동을 하게 될 것이니까.

“할 수 있을 거예요. 아니, 할 수 있어요.”

지금까지 조용히 멤버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성현이 정적을 깨고 말하자, 멤버들 모두 성현을 쳐다봤다.

성현은 결연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번에 제가 여러분들한테 했던 말, 전 그 말 진심이었습니다.”

멤버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맞추며 성현은 자신이 결코 헛된 말을 했던 것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정말로 조만간 소속사 차릴 생각이고 가능하다면 여러분 모두를 영입하고 싶어요.”

직접 소속사를 차려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할 계획을 하고 있었던 것.

성현에게 스쳐가듯 이야기를 들었던 멤버들이었지만, 모두 당황해서 아무도 입을 열지 못했다.

멤버들과 마주한 성현은 굳은 눈빛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

“…….”

이전에 성현에게 소속사를 차리는 계획에 대해 듣긴 들었었다.

하지만 언젠가 먼 미래에 대해 말하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빠르게 일을 진행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아무 말도 못 하는 멤버들을 둘러본 성현이 그들을 보며 확신에 가득 차서 말했다.

“꽃길만 걷게 해주겠단 약속은 못 드려요. 보시다시피 전 당장 가진 게 없는 사람이고 시작도 이 좁은 작업실에서 하게 될 거예요. 그런데 딱 하나 제가 여러분들에게 확실하게 약속드릴 수 있는 건 있어요.”

멤버들은 모두 성현의 뒷말을 기다렸다.

성현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멤버들에게 말했다.

이 말을 할 수 있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 인내해왔는지 모른다.

“음악만큼은 가장 좋은 음악만 드릴게요. 이거 하난 제 모든 걸 걸고 약속드릴 수 있어요.”

이번 음원 순위와 무대 영상 조회수를 보고 성현은 확신이 들었다.

멤버들에게 자신의 포부를 밝히고 영입 제안을 할 수 있겠노라고.

허황된 말만 늘어놓는 빈 수레가 될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당당하게 좋은 결과를 내고 그걸 바탕으로 멤버들에게 제안을 건네고 싶었다.

성현은 자신의 소속사를 세계 최고의 기획사로 만들 포부도 있었고, 그러기 위한 계획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당장 그것들을 멤버들에게 말하진 않았다.

대신 자신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확실한 약속을 하기로 했고, 멤버들 모두 성현의 말이 진심임을 느낄 수 있었다.

성현은 음악에 있어 서는 늘 진심이었기 때문이다.

그건 지금까지 몇 달 동안 성현의 곁에서 그를 지켜본 동료이기에 누구보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쉽게 성현의 제안에 대답하지 못하는 건 현실적인 문제들 때문이었다.

데뷔를 하는 가수에게는 소속사가 가지고 있는 파워가 절대적이었고 중요했는데, 성현의 말대로 지금 성현에게는 당장 어떤 인프라나 자금도 없었다.

“지금 하는 말은 제의일 뿐이니까 부담 갖지 말고 천천히 생각하셔도 돼요. 저였어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을 거예요.”

성현 역시 멤버들이 쉽사리 대답하지 않는 걸 이해할 수 있었고 부담을 주기 싫었다.

멤버들 모두 각자만의 계획이 있을 거고 당장 성현이 기획사를 차린 것도 아니었기 때문.

“여러분들이 어떤 선택을 내리든 전 항상 여러분들을 응원할 거예요.”

성현의 마지막 말에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에 잠겼고, 곧 다들 고민을 해보겠다는 대답을 내놓았다.

***

음원 공개 일주일 후, 최종 결과가 발표되는 날이 되었다.

주최 측에서 모이라고 알린 장소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임하나가 성현을 반겼다.

“일찍 도착했네요.”

“네. 혹시 몰라서 택시 타고 왔어요.”

임하나는 못 살겠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최근 더 넥스트 슈퍼스타의 인기가 높아짐에 따라 참가자들의 인기 또한 치솟았다.

임하나는 알아보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곤란한 상황이 종종 생기곤 했던 것.

단체 메시지방에서 지금 버스 정류장에서 내렸는데, 하필 번화가라 팬들이 몰려 움직일 수 없다는 하소연을 올린 적도 있는 임하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임하나 무대 조회수는 1,300만 회를 넘겼고, 음원 순위 또한 2위를 달리고 있었다.

덕분에 오늘은 일찌감치 대중교통은 포기하고 택시를 선택한 모양이었다.

“역시 연예인으로 사는 건 힘들죠?”

“성현씨, 이거 놀리는 거죠?”

“티 났어요?”

“네. 엄청요. 티 나니까 앞으로 하지 마세요.”

성현과 임하나는 서로 농담을 주고받고 건물로 걸어가는데, 그들 앞으로 택시 한 대가 멈추더니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까지 쓴 천소울이 내렸다.

두 사람은 천소울인 것을 알아보고 꿀 먹은 벙어리들이 되어서 입을 다물었다.

“진짜 연예인은 제가 아니라 천소울씨 아닐까요?”

임하나의 말에 천소울 역시 둘을 발견하게 머쓱해하며 마스크를 조금 내렸다.

그마저도 잘생겨서 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입을 조금 벌렸다.

“너무 과한 것 같나요?”

“소울씨가 잘 모르시나 본데 소울씨가 아무리 가려봤자 그 잘생김은 가려지지 않는다구요.”

임하나의 진지한 말에 천소울의 표정이 오묘해졌다.

저 말을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데, 옆에서 성현이 임하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임하나 말대로 그가 아무리 얼굴을 가렸어도 얼굴에서 빛이 났기 때문이다.

지금 잠깐 마스크를 내리는데 천소울의 뒤로 후광이 비치는 줄 알았다.

물론, 천소울이 사납게 쳐다볼까 봐 말은 못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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