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화
“엄청난 무대들이 연이어 지나갔습니다. 정말 콘서트장에 온 것 같이 정신을 차릴 수가 없네요.”
7번째 무대가 종료된 후, 연달아 이어지는 화려한 무대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며 말하는 엠씨의 말에 환호성이 터졌다.
시간이 갈수록 객석의 분위기 또한 더욱 뜨거워지고 있었다.
“이제 단 세 개의 무대만이 남아있는데 저만 아쉬운가요? 여러분들도 아쉽지 않나요?”
“아쉬워요!”
“오늘 끝나고 앵콜 공연 같은 거 없나요?”
엠씨는 관객들을 달구며 스탭들을 보며 물었다.
엠씨의 말에 객석에 있는 관객들 또한 환호를 하며 앵콜을 외쳐댔다.
스탭들은 엠씨의 우스갯소리에 그저 허허 웃고 있었다.
아무 신호도 보내지 않는 스탭을 보고 엠씨가 입을 열었다.
“예, 아쉽지만 앵콜은 꿈도 꾸지 말라고 합니다. 에잇, 방송국놈들.”
엠씨의 농담에 객석에서 웃음 소리 튀어나왔다.
연달아 이어진 무대에 잠시 숨을 고른 엠씨는 인이어를 통해 참가자가 모두 준비됐다는 소리를 듣고, 다음 무대를 소개했다.
“여덟 번째 무대를 장식할 참가자는 이미 인기가 상당하군요? 버스킹 무대 조회수만 500만을 돌파했고 홍대 공연 무대는 조회수가 무려 800만을 돌파했다고 합니다. 제가 딱 봐도 지금 방청객분들이 든 피켓에서 이 참가자의 이름을 종종 볼 수 있을 정도인데요.”
엠씨의 말에 다음 참가자가 누구인지 눈치챘는지, 객석에서 환호성을 지르며 누군가의 이름을 외쳐댔다.
“천소울! 천소울!”
엠씨는 엄청난 환호에 정신을 못 차리겠다는 듯이 비틀거리다가 곧 무대 소개를 마쳤다.
“이어지는 무대는 현재 ‘더 넥스트 슈퍼스타’ 최고의 인기 참가자! 심금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마성의 남자 천소울씨의 무대입니다!”
엠씨의 말에 객석에서 소리를 지르며 환호가 터졌다.
뒤이어 무대에 오른 천소울의 모습이 보였다.
무대 앞으로 뻗어 있는 좁고 긴 통로를 지나 따라 걷자 팬들은 천소울의 걸음마다 소리를 질러댔다.
긴 통로 끝에 작은 원형 무대가 나오자 천소울은 그 무대로 향했다.
성현이 커넥트 앱을 통해 구입한, 오로지 천소울만을 위해 만들어진 원형 무대는 스탠드석에 있는 객석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대박, 천소울 여기서 노래하나 봐!”
“바로 앞에 있어. 세상에, 저 얼굴 좀 봐. 나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다.”
팬들은 지척에 다가온 천소울을 보고 넋이 나갔다.
영상이 제대로 외모를 못 담았구나, 생각보다 키가 크구나, 옷발은 왜 저렇게 잘 받지.
온갖 웅성거림이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무대 옆, 관객석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몸을 숨기고 천소울을 지켜보고 있던 성현은, 생각보다 더 격한 반응에 미소를 지었다.
성현은 천소울을 담기엔 무대가 조금 좁다는 서자명의 코멘트를 듣고, 무대 가운데 원형 무대를 설치하여 공연장 전체를 무대로 만들어버린 것.
상당한 캐시가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천소울에게 제대로 된 무대를 마련해주기 위해 모은 캐시였으니까, 쓰는 데 주저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피아노와 첼로 반주자는 기존 무대에 있고, 천소울 혼자 원형 무대에 마련된 의자에 걸터앉게끔 무대를 꾸몄다.
천소울은 바로 앞에 설치된 스탠딩 마이크의 높이를 자신의 앉은키에 맞게 조절하고, 피아노석에 앉는 연주자와 첼로 연주자도 손을 풀었다.
소리를 지르던 관객들은 조용히 천소울의 노래가 시작되길 기다리며 숨을 죽였다.
시끄럽던 공연장에 순식간에 적막이 돌았다.
‘드디어 시작된다.’
성현 역시 저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던 천소울은 이내 스탭들에게 완료됐다는 사인을 보냈다.
순간 모든 조명이 꺼지고 공연장이 어두워지더니 오로지 조명 하나만 천소울만을 비췄다.
환한 색 정장을 입고 있던 천소울은 밝은 조명 아래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대 조명까지 준비가 되자 천소울은 피아노 반주자와 눈빛을 주고받으며, 준비가 완료됐다는 신호를 보냈다.
곧이어 조용한 공연장에 잔잔한 피아노 반주 흘러나왔다.
천소울은 나직한 피아노 반주에 맞춰 드디어 첫 음을 내뱉었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기억해 우리가 함께 놀던 놀이터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너에게 쉼터가 돼 줄게-
천소울, 눈을 감고, 한 소절 한 소절 감정을 담아 뱉어냈다.
그 넓은 공연장이 천소울이 말하는 듯한 노래로 가득 메워졌다.
관객들은 눈을 떼지 못하고 숨을 죽인 채 천소울 노래에 집중했다.
어떤 이는 입을 벌린 채 다물 줄을 몰랐고, 그 가사가 주는 위로와 격려에 몇몇 관객들은 눈물을 훔쳤다.
잔잔한 피아노만이 곁들어진 1절이 끝나자 간주 부분에 첼로의 솔로 연주가 시작되었다.
그 아련하면서 쓸쓸한 연주에 관객들 모두 두 손을 모아 집중하는데, 갑자기 멜로디 바뀌면서 조금 격정적인 피아노 연주 흘러나왔다.
천소울은 낮게 허밍을 하며 멜로디를 이어나갔다.
점점 클라이맥스로 치닫던 피아노 연주가 갑자기 멈추더니, 이내 천소울을 비추던 조명도 꺼진다.
팟.
한 번의 회오리가 몰아치듯 격정적인 연주가 끝난 뒤 오는 적막과 어둠.
관객들 모두 숨을 참으며 기다리는데 이내 무대에 녹음한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진짜 녹음 한다고?
-어. 지금 이 감정 꼭 음악으로 남기고 싶어.
-남길 수 있으면 좋지. 야 이러다 불후의 명곡 탄생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지금 감정이 영원히 기억에 남으면 좋겠어.
“뭐야? 노래 끝난 거야?”
“근데 이거 누구 목소리야? 어디서 들어본 거 같은데.”
사람들, 갑작스러운 녹음본 재생에 당황하는데, 무대 뒤 스크린이 점차 밝아지더니 이어질 가사가 떠올랐다.
-벌써 그때가 그리워 우리 함께했던 그 날들.
-나도 똑같아 빛나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해
-희미해져 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져 가 다시 오지 않을 그 날
-돌아올 거야 우리 결국에 가서 만날 수 있을 거야
-모르겠어 너무 늦어버린 것 같아 영원할 순 없는 거잖아
관객들은 갑자기 올라온 가사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걱정하지 마 내가 걸어 봤으니까 너와 나 결국에 곧 만날 거야-
그리고 흘러나오는 천소울과는 전혀 다른 목소리.
알 수 없는 누군가의 한 소절이 끝이 나자 다시 천소울에게 조명이 떨어졌다.
어느새 의자에서 일어난 천소울이 2절을 부르기 시작했다.
“벌써 그때가 그리워 우리 함께했던 그 날들.”
천소울이 아까와 다르게 아쉬움이 담긴 목소리로 노래 하자, 뒤이어 스피커에서 천소울의 말에 대답하듯 신현식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도 똑같아 빛나던 그 날이 아직도 생생해
관객들은 갑자기 들린 목소리에 누군가 싶어 당황하는데, 가사가 적힌 스크린에 신현식의 기타 치는 영상이 함께 틀어졌다.
밝혀진 목소리 주인공의 정체에 노래를 듣던 관객들은 너무 놀라 입이 떡 벌어졌다.
“희미해져 가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아득해져 가 다시 오지 않을 그 날.”
-돌아올 거야 우리 결국에 가서 만날 수 있을 거야
천소울이 다시 신현식에게 답하듯 노래를 부르자, 이내 다시 신현식이 천소울의 말에 대답하듯 노래를 이어 부르길 반복했다.
관객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신현식이 비추는 스크린과 무대 위의 천소울을 번갈아 보기 바빴다.
이는 너튜브로 라이브 공연을 지켜보던 시청자들도 마찬가지였다.
-뭐야? 방금 남자 목소리 누구?
-이거 신현식 목소리 맞지? 이게 가능해?
-설마 목소리 복구한 건가? 와 역시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은 스케일부터가 다르네.
-아 미친......눈물나.....
-신현식이면 끝났네. 음원 1등 해라. 형이 밀어준다.
-20년 전에 콘서트장에서 들었던 신현식 목소릴 너튜브 방송에서 다시 들을 줄이야. 진짜 감회가 새롭다. 클라스는 영원하다. 언제 들어도 좋은 목소리.
-왜 눈물 나냐. 인생 선배가 소주 따라주면서 괜찮다고 다독여주는 거 같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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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식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이 빠르게 채팅창에 올라왔다.
어느새 시청자 수는 50만을 넘어 계속해서 치솟는 중이었다.
커뮤니티 여기저기에 라이브 방송 링크와 함께 ‘신현식의 재림’이라는 식으로 글들이 빠르게 퍼진 덕분에 오디션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던 사람들까지 접속하는 중이었다.
신현식의 목소리로 건네는 조언, 위로, 격려가 이어졌고, 이러한 메시지는 무대를 지켜보고 있는 관객들과 시청자들에게도 전달됐다.
신현식의 목소리인 걸 알아챈 객석도 어느새 그의 목소리에 빠져들었다.
생전 신현식의 목소리를 기억하고 있는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정신없이 무대에 빠져 들고 있었고, 신현식을 모르는 사람들마저 그 깊은 울림이 있는 목소리에 홀린 듯이 무대를 바라봤다.
그들 모두 신현식과 천소울이 주는 위로와 격려에 자신들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흑, 흐읍.”
“형…….”
그리고 지금 이 무대를 다른 그 누구보다 감격스럽게 보고 있는 사람이 있었다면 신현식의 모친을 비롯한 유가족들이었다.
신현식의 모친은 죽은 아들의 목소리로 무대가 채워지고, 그 목소리로 위로를 받는 사람들을 보자 쏟아지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훔쳤다.
신현식의 형제들 또한 흘러나오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무대를 지켜봤다.
김인호 AD의 지시로 이들의 방문을 알고 있던 카메라는 이 모습을 놓치지 않고 찍었다.
‘연락해서 다행이다.’
카메라를 통해 유가족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성현의 눈가에도 눈물이 조금 고였다.
신현식의 모친은 두 손을 간절히 모으고 천소울의 무대를 지켜 보고 있었다.
그녀 자신도 천소울의 무대를 통해 감동을 받고, 위로받고 있었다.
세상을 떠난 신현식이지만 이렇게 노래로 다시 신현식을 만났으니까.
신현식과 천소울의 주고받는 부분이 끝이 나고 마지막 후렴구.
다시 무대에 있는 모든 조명이 꺼지며 오로지 천소울만 비추는 조명만이 남았다.
잔잔하게 맴돌던 피아노 소리, 듣는 이로 하여금 감정을 증폭시키던 애절한 첼로 소리마저 멎은 무대 위, 천소울 홀로 천천히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대고 있었다.
천소울 역시 이번 무대가 감정을 견디기 힘들었는지 눈가가 촉촉했고, 감은 눈에서 살짝 눈물이 떨어졌다.
천소울은 치솟는 감정을 억지로 꾹꾹 누르며 마지막 가사를 읊조렸다.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너에게 쉼터가 돼 줄게.”
천소울은 울었기 때문에 목소리가 살짝 막혀 있었지만, 그마저도 노래가 주는 분위기와 감성에 너무나 적절하게 어우러졌다.
노래가 완전히 끝난 후, 객석에서는 어떤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그들 모두 노래에 압도당한 상태.
심지어 노래가 끝난 줄도 모르고 모두가 계속해서 천소울을 지켜보고 있었다.
천소울은 그렇게 마지막 음을 뱉은 뒤 눈을 떴고, 숨죽이며 자신을 보는 관객들을 보며 마이크를 다시 고쳐 잡았다.
“감사합니다.”
천소울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공연장이 떠나가라 환호를 하며 박수를 보냈다.
박수를 치는 이들 모두 눈가가 붉어졌거나, 아예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람들마저 있었다.
스탠딩석이 아니라 앉아있던 사람들도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성현은 박수를 보낼 수가 없었다.
내내 서 있던 성현은 천소울이 마지막 소절을 내뱉었을 때, 다리 힘이 풀려 백스테이지 구석에 풀썩 주저앉았다.
헛웃음을 지으며 무대 위의 천소울을 바라보던 성현은, 다시 한번 제대로 실감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목소리의 진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