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43화 (143/273)

143화

서자명의 말에 성현은 임하나의 곡을 이어서 틀어주었다.

노래가 진행될수록 서자명의 표정이 밝아졌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생각과 함께, 완전히 안도를 한 모습이었다.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같은 곡으로 준비를 한다길래 겹칠까 봐 걱정했는데, 완전히 다른 노래라 해도 믿을 만큼 서로 가지고 있는 매력이 확연하게 달라요. 천소울씨가 감동과 위로에 집중했다면 임하나씨는 조금 더 희망적인 메시지에 집중한 것 같네요.”

“역시 정확하시네요.”

각 곡을 한 번만 듣고 바로 성현의 의도를 알아채고 말하는 서자명에게 성현은 감탄을 했다.

서자명의 말대로 확실히 임하나 버전의 곡은 천소울 버전의 곡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이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와 성현의 편곡이 더해져 같은 곡임에도 전혀 다른 매력을 가지게 되었다.

‘거기에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리까지 더해졌으니 이미 게임은 끝난 거 아닌가.’

서자명은 이미 곡이 가지고 있는 완성도도 충분한데, 신현식의 목소리까지 더해지니 이미 이번 라운드 통과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아무튼 매번 상상 이상의 곡을 가져온다니까.’

이제 성현과 작업을 어느 정도 하면서 그의 기량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다고 자신했는데, 아직 멀었던 모양이었다.

서자명은 이번에도 까다로운 미션을 훌륭하게 완수한 성현의 어깨를 저도 모르게 툭툭 쳐주었다.

이러니까, 믿고 갈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

본격적인 무대 구성에 대한 회의가 시작됐다.

임하나와 천소울의 프로듀서를 맡은 성현이 주로 의견을 내며 회의를 주도했다.

서자명에게 자신의 안이 어떤지 확인 받는 식이었다.

“천소울씨 무대는 천소울씨와 천소울씨가 부르는 노래가 빛나면 좋겠어요. 조명도 화려하게 가기보다는 천소울씨한테만 포커스가 갈 수 있게......”

성현은 자신이 천소울의 무대에서 원하는 무대의 분위기를 설명했고, 이와 관련된 무대 구성과 필요한 장치들에 대해 언급했다.

편곡과 녹음을 거치면서 성현의 머릿속에서 서서히 구체화 되었던 계획들이었다.

성현의 아이디어를 들은 서자명은 나쁘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그것뿐.

서자명은 이성현의 설명이 끝난 뒤에도 머릿속으로 한참 무어를 생각하는지 말이 없었다.

눈알을 굴리며 한참이나 가만히 있는 서자명을 본 성현 또한 아무 말 없이 그의 코멘트를 기다렸다.

서자명의 머릿속에는 이미 무대에 대한 거의 완벽한 시뮬레이션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성현은 그의 머릿속이 대충 상상이 되었다.

지난 오디션 내내 보여줬던 모습이 있으니까.

‘서자명씨라면 내가 발견하지 못한 어떤 걸 발견할 수 있겠지.’

성현은 시간이 길어져도 초조해지지 않고 오히려 기대 중이었다.

무대 퍼포먼스에 일가견이 있는 서자명이기에 자신이 놓친 엣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성현이 잠자코 서자명의 생각을 방해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생각을 마친 서자명이 갑자기 혼자 고개를 끄덕이다가 중얼거리고 다시 끄덕이기를 반복했다.

“서자명씨?”

놀란 성현이 저도 모르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성현은 그런 서자명이 조금 이상해서 그를 부른 것인데도 서자명은 이내 별일 아니라는 듯 화제를 돌렸다.

마치 자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얼굴이었다.

“임하나씨 무대 브리핑도 마저 해주세요.”

“천소울씨 무대 피드백은요?”

“그건 임하나씨 무대 마저 듣고 해줄게요.”

서자명의 대답에 성현은 조금 찝찝했지만, 이어서 임하나의 무대 연출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천소울씨 무대와 반대로 화려하게 갈 생각이에요. 조명이나 특수장치를 사용해서 하나씨가 전달하려는 밝은 에너지를 무대를 통해서도 느낄 수 있게 끔요.”

서자명의 반응이 걸리긴 했지만, 차분하게 임하나와 주고받았던 의견을 생각하며 자신이 생각한 무대 구상을 설명하는 성현.

임하나의 무대에 대한 브리핑을 이어지는 동안, 서자명은 가만히 성현의 이야길 듣더니 이번에도 머릿속으로 혼자 시물레이션에 돌입했다.

다시 또 한동안 말이 없는 서자명을 성현은 가만히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생각이 끝났는지 살짝 고개를 끄덕이던 서자명이 드디어 입을 뗐다.

“천소울씨를 전부 담아내기엔 무대가 좁은 느낌이에요. 그리고 임하나씨는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데 그 느낌을 더 강조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길었던 생각에 비하면 짧은 코멘트였다.

성현은 분명히 그의 뒷말이 더 이어질 거라 생각해서 기다렸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게 끝인가요?”

“네. 제가 부족하다고 느낀 포인트는 딱 저 두 개였어요. 그 부족함을 채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 성현씨의 몫인 거겠죠. 무대 연출도 예술이에요. 답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성현씨의 상상력으로 무대를 구체화 시켜 보세요.”

부족한 게 저 두 개라는 뜻은, 결국 저 두 개만 빼고는 완벽하다는 말과 같았다.

하지만, 적어도 성현에게는 ‘두 개만 빼고’라는 수식어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완벽한 완벽이 아니라면, 만족할 수 없었기에, 성현은 재빨리 머리를 굴렸다.

“그럼 이런 무대는 어때요?”

성현은 곧장 서자명에게 새로운 의견을 빠르게 말을 했다.

성현의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던 서자명의 눈이 점점 크게 커져서 성현을 바라봤다.

“이걸 방금 생각해낸 거예요?”

“네. 괜찮은 것 같아요?”

“너무 좋은데요? 제가 부족하다 했던 포인트를 잘 캐치 했네요. 역시 성현씨는 진짜 못 하는 게 없구나. 이거 잘 살리면 쩌는 무대 완성할 수 있을 거 같아요.”

서자명은 그 짧은 시간 이 모든 걸 생각해낼 수 있는 재능에 순수한 감탄을 뱉었다.

성현은 같은 프로듀서인 서자명의 칭찬에 차오르는 기쁜 마음을 숨기며 애써 태연하게 말했다.

“회의 마저 할까요?”

다음으로 천소울과 임하나가 요청했던 요소들이 실질적으로 가능할지에 대한 회의를 재빠르게 이어나갔다.

서자명의 순수한 마음이 담긴 감탄에 성현은 쑥스러운 마음을 숨기느라 뒷목이 다 뻐근해졌다.

그런 성현의 귀 끝은 빨갛게 물들어 있었지만.

***

라이브 무대까지 남은 시간은 삼 일.

한남 아지트 내 연습실에 모인 성현과 천소울, 임하나, 서자명은 얼마 안 남은 시간을 알차게 쓰며 연습에 집중했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턴! 아니, 안무인 것처럼 말고 흥에 겨워서 그냥 돈다고 생각해봐요, 하나씨.”

“천소울씨, 거기서는 툭툭 내뱉던 1절이랑은 다르게 제스처도 사용하면서 감정을 전달해도 좋을 거 같아요.”

임하나, 천소울 모두 비록 연습이었지만 진짜 무대처럼 최선을 다하며 무대를 준비했다.

성현과 서자명 역시 진짜 무대에 올랐을 상황을 가정하며 두 사람에게 최선의 디렉팅을 해주었다.

아직 삼일이란 시간이 남았지만, 이미 두 사람의 무대 완성도는 대단했다.

잠도 줄여가면서 아지트에 남아 있는 보람이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잘하는데 완벽하게 꾸며진 무대에선 얼마나 더 멋있을까.’

성현은 임하나와 천소울의 연습 무대를 보며 감탄했다.

지금 연습만 봐도 이런데, 의상까지 갖춰 입고 완벽하게 세팅된 무대에서 이러한 퍼포먼스를 보이면 얼마나 더 압도적일지 상상만으로 즐거워졌다.

“죄송한데 조금만 쉬었다 해도 될까요?”

임하나가 연습을 멈추며 말하는데 그녀의 얼굴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거울을 통해 보이는 얼굴도 상당히 피곤해 보였다.

“30분만 쉬다 갈게요.”

웬만하면 먼저 연습을 멈춘 적 없던 임하나이기에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갖기로 했다.

성현은 그런 임하나가 걱정이 되어서 그녀에게 먼저 다가갔다.

“하나씨 컨디션 괜찮아요?”

“네. 아침을 빵을 먹었더니 기운이 없네요. 한국인은 밥심인데, 그쵸?”

성현의 진심 어린 걱정에 임하나는 정말 자신은 괜찮다는 듯 농담을 건네는데, 성현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오늘은 몇 시에 나왔어요? 8시?”

성현의 물음에 임하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럼 7시?”

임하나는 눈을 이리저리 굴리며 또다시 고개를 젓고, 성현은 이제는 조금 화가 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6시?”

“......네.”

임하나는 성현의 눈치를 보며 대답했고, 성현은 그 모습을 보고 화를 참으며 숨을 골랐다.

“무대 얼마 안 남았으니까 컨디션 관리하라고 했잖아요. 하나씨, 이러다가 정작 실전에서 힘 다 빠져서 무대 망칠 수도 있다니까요?”

임하나는 무대 컨셉 상 천소울에 비해 비교적 에너지 소모가 컸다.

하지만 그걸 알기에 임하나는 더더욱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이번 무대에서 노래 못지 않게 퍼포먼스가 중요한 걸 아는 임하나는 매일 아침 그 누구보다 일찍 나와 연습에 매진했다.

“알아요. 성현씨 말 무슨 뜻인지 아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아요.”

임하나는 성현의 눈치를 슬쩍 보더니 이내 무대를 준비하는 그녀의 마음가짐을 털어놓았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현에게만큼은 이해받고 싶었으니까.

“사실 처음 여기 지원했을 땐 본선 진출만 해도 잘하는 거라 생각했어요. 성현씨도 알겠지만 저 춤만 출 줄 알았지 노래를 영 아니었잖아요. 그러나 성현씨 만나고 좋은 팀원들 만나면서 음악에 더 진심으로 다가가게 됐고 저 스스로한테 놀랄 만큼 성장도 했어요. 그래서 이렇게 값진 기회도 얻게 됐고.”

“그러니까 그 값진 기회 제대로 잡으려면 컨디션 관리 잘해야죠.”

임하나의 진심 어린 고백에 성현이 임하나를 타이르듯 말하지만, 임하나는 조금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니까요? 이번 무대 성현씨 곡으로 처음 하는 무대잖아요. 저한텐 그 어떤 무대보다 의미 있는 무대고 정말 꼭 잘하고 싶어요. 저 때문에 성현씨 곡 망치기 싫다구요......”

임하나는 결국 자신이 가지고 있던 마음의 짐까지 이야기해버렸다.

자신이 누구덕분에 여기까지 올라왔는데, 이제와서 성현에게 짐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떨어지는 한은 있어도, 성현에게 누가 되는 일을 만들기는 싫었다.

그렇기 때문에 임하나에게는 이번 무대가 그 어떤 무대보다 의미가 있었고, 등락과 별개로 성현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

성현은 처음 듣는 임하나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리고 이번 무대 멤버들도 보고 있을 거 아니에요. 제 무대를 통해서 다시 또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가 멤버들한테도 전달되면 좋겠어요. 성현씨는 아니에요?”

“왜 아니겠어요. 애초에 그러려고 쓴 곡인데.”

성현은 괜히 뜨끔한 마음에 처음으로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딱히 이 곡 작업을 할 때 다른 멤버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데, 역시 임하나는 느끼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이를 옆에서 듣고 있던 천소울도 고개를 끄덕이며 이에 동의했다.

그 또한 말은 안 하고 있었지만, 곡 안에서 성현의 마음을 읽었던 것이다.

‘어쩌면 나보다 더 절박한 마음으로 이 무대를 지켜볼 사람들도 있겠지.’

성현은 무대를 통해 멤버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임하나 말을 듣고 나니, 저번에 부탁했던 일이 생각났다.

성현은 급하게 어딘가로 연락을 했다.

-초대 티켓 10장 확보됐습니다.

성현은 답장을 받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늦지 않게 준비해줬어.’

성현은 답장을 보내면서 임하나에게 엄포를 놓았다.

“아무리 그래도 아침 6시 연습은 금지예요. 컨디션 관리 못 하면 무대 안 세울 거니까 그런 줄 알아요.”

성현은 임하나에게 단호하게 한마디 하고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며 연습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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