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42화 (142/273)

142화

임하나의 곡까지 들은 이후, 두 사람 모두 빠르게 연습에 들어갔다.

곧 얼마 지나지 않아 천소울과 임하나 모두 차례대로 녹음을 진행했다.

한 사람이 어느 정도 진행하고 쉬는 동안 나머지 사람이 녹음을 하고, 또 교대해서 쉬는 식이었다.

두 사람이 서로에게 자극을 받고 더 빠르게 끝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겨 생각해낸 방법이었다.

성현으로서도 작업 속도가 빨라지니 더할 나위 없었다.

“한 번 더 갈게요, 하나씨.”

“네, 저 물 한 번만 먹고요.”

두 사람 모두 처음에 편곡 방향을 잡았던 것에 따라 천소울은 담담한 위로와 격려를, 임하나는 희망적인 미래에 대한 밝은 메시지를 강조했다.

각각 자신들이 준비한 컨셉에 맞게 곡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다.

“천소울씨 다 좋았는데 도입부에서 힘을 조금 빼고 툭 내뱉듯이, 말하듯이 부를 수 있을까요? 가사가 가지고 있는 감정 전달에 조금 더 신경을 쓰면 좋겠어요.”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바로 적용했다.

이전에 노래 하듯 노래를 불렀다면 이번엔 미묘하지만 조금 힘을 빼고 이야기하듯 노래를 불렀고, 확실히 전보다 메시지나 감정 전달이 좋아졌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임하나는 천소울이 기계 같다며 소름 끼쳐 했다.

“하나씨는 보컬적인 면은 다 좋은데 C 파트에서 코드랑 멜로디가 완전 밝게 바뀌잖아요. 그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써서 대비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음, 몸을 조금 더 써보는 것도 방법일 것 같아요. 하나씨가 춤에 강점이 있으니까 몸으로 노래가 주는 희망적인 에너지를 표현한다는 생각으로 역동성을 더 살릴 수 있을까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조금 더 대비를 주는 것을 신경 쓰며 노래를 불렀다.

그 말처럼 확실히 몸을 쓰니까 메시지 자체가 주는 희망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더 잘 표출할 수 있었다.

그렇게 녹음 과정이 대체로 수월하게 진행됐고, 이틀 만에 천소울과 임하나의 녹음이 대충 완성이 됐다.

“수고하셨어요!”

“수고하셨어요.”

“성현씨, 밥 거르지 말고 하세요. 우리 가면 또 장비만 붙들고 있지 마시고. 알았죠?”

이제 녹음에 있어서 자신들의 역할을 끝낸 천소울과 임하나가 먼저 작업실을 떠났다.

두 사람은 무대 컨셉 회의가 잡히기 전에 개인 연습을 하기로 했다.

성현은 꼭 쉬겠다며 두 사람을 안심시키고 나서야 둘을 내보낼 수 있었다.

두 사람이 나간 문이 닫히고 성현은 기지개를 한 번 켜고는 다시 장비 앞에 앉았다.

둘에게는 미안하지만, 성현은 쉴 생각이 없었다.

이제 음원 작업은 기계를 거쳐 두 사람이 녹음한 노래를 믹싱하는 작업만이 남았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는 음원 발표가 끝이 아니라, 라이브 무대까지 준비해야 하기에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성현은 전보다 완성도가 높아진 두 사람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무대 구상에 대해 떠올렸다.

‘같은 노래를 부르는 만큼, 두 사람 모두 다른 컨셉의 무대를 보여줘야 하는데 무대 연출을 어떻게 가져가야 메시지를 더 효과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까.’

본선 5라운드는 곡을 완성하고, 음원이 공개되기 전에 먼저 너튜브 라이브 방송을 통해 곡과 무대가 공개된다.

그렇기 때문에 이번 라운드는 음원 발표 전에 라이브 무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발표를 하기 전에 어느 정도 주목을 끌어두어야 후에 유리하게 고지를 선점할 수 있었기에.

‘무대로 탈락 여부가 정해지는 건 아니지만 너튜브 공연을 하나의 마케팅 수단이라 생각하면 음원 못지않게 중요한 게 라이브 무대야.’

성현에게는 음원을 홍보할 수 있게 도와줄 스폰서도 없었다.

게다가 그건 천소울도 마찬가지였다.

성현에게 있어서 이번 라이브 무대는 단순히 관객에게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눈도장을 찍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기에, 온 힘을 다해 준비해야 했다.

이전의 라운드를 통해서 느꼈을 만큼 너튜브만큼 홍보에 좋은 방법도 없었다.

여기서 좋은 퍼포먼스를 보여줘서 화제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음원 홍보도 됐기 때문에 일석이조였다.

‘음원 못지 않게 최고의 무대를 준비하고 싶어.’

성현은 무대가 점수에 들어가지 않는다 해서 결코 설렁설렁할 생각이 없었다.

이는 성현뿐만이 아니라 천소울과 임하나도 마찬가지였다.

둘은 성현을 남겨 놓고 작업실을 떠나기 전에 성현에게 여러번 일러두었다.

“제 스폰서 쪽에서도 이번 무대가 중요하다고 하더라구요. 조금씩 해외 시청자도 늘고 있는 만큼 외국 애들한테 얼굴 알리기에도 좋은 기회라고 하고.”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이기에 당연히 한국 말고도 다른 나라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이 오디션을 진행 중이었다.

이제 전 세계적으로 소수가 남은 만큼 다른 해외 참가자들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었다.

그만큼 한국 방송사에서 방영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라이브 무대와 방송분이 너튜브에 풀리는 이번 오디션에서만큼은 최대한 너튜브를 활용해야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성현씨도 알다시피 저는 스폰서가 없어서 이번 무대에서 아니면 따로 곡을 홍보할 방법이 없습니다. 화제성 있는 무대를 준비하고 싶은데 가능할까요?”

천소울 또한 너튜브 라이브로 공개되는 무대의 중요성을 이미 알고 있었다.

자신이 스폰서가 없기에 가지고 있는 핸디캡을 잘 인지하고 있었기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이었다.

“네. 가능합니다.”

바로 나오는 확답에 말을 꺼낸 천소울도 의외라는 듯이 성현을 바라봤다.

“생각해 둔 거라도 있는 겁니까?”

성현 자신도 스폰서가 없고, 연예계 인맥도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감에 차 있었다.

이번 오디션을 통해 음악적인 경험 이상으로 소중한 것을 얻었다면 다름 아닌 함께 음악을 할 동료들이었다.

“무대 퍼포먼스라면 누구한테도 안 뒤지는 사람 있거든요.”

***

성현이 스튜디오에서 곡작업이 한창이었는데, 이내 작업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왔다고? 그럴 리가 없는데.’

성현이 시간을 확인하니 연락한 지 30분도 채 안 지나있었다.

천소울과 임하나가 떠나기 직전에 연락을 한 것인데 벌써 작업실에 손님이 찾아온 것이다.

성현이 설마 벌써 왔나 싶어, 얼른 작업실 문을 열자 모자를 푹 눌러쓴 서자명이 들어왔다.

아까 천소울에게 호언장담을 하며 부른 인물은 바로 서자명.

자신의 인맥 안에서 무대 연출과 퍼포먼스 구상이라면 지금 서자명을 따라올 자가 없다는 게 성현의 판단이었다.

“이렇게 갑자기 오라 가라 하면 어떡해요. 나도 스케줄이란 게 있는데.”

서자명은 스튜디오에 들어서자마자 투덜거렸다.

그러면서 합격자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한남동 스튜디오를 이리저리 구경하기 바빴다.

“저 때문에 스케줄까지 바꾼 거면……. 저녁에 오셔도 된다니까, 괜히 미안하네요.”

“아니, 그건 아닌데...... 몰라요. 큼, 그래서 왜 불렀어요?”

놀란 성현이 바로 저자세로 나오자 뻘쭘해진 서자명이 말을 흐렸다.

괜히 반가운 마음에 민망해서 말한 건데 성현이 이렇게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서자명은 투덜거리면서도 성현이 왜 부른 건지 궁금해했다.

급하게 온 건지 숨도 살짝 헐떡인다.

성현은 그런 서자명을 보고 피식 웃은 뒤에 작업실 뒤쪽 소파로 안내했다.

성현의 반지하 작업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깨끗하고, 넓고, 푹신한 소파였다.

만족하는 얼굴이 된 서자명에게 자신이 생각해둔 무대 구성을 보여주는 성현.

“무대 구성은 러프하게 제가 그려놨는데 아무래도 디테일한 부분은 서자명씨의 힘이 필요할 거 같아서요. 도움을 좀 받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일 이야기가 시작되자 서자명의 얼굴빛이 진지하게 바뀌었다.

성현은 서자명의 대답을 기다리며 조금 긴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서자명의 원래 성격상 자신의 무대가 아니면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거절할 거라는 경우의 수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영광이죠.”

성현의 걱정이 무색하게 서자명은 어떤 고민도 없이 수락했다.

그동안 음악 작업을 해오면서, 독단적이고 자기중심적이라는 소리를 많이 들었다.

그게 나쁘다고 생각 하지는 않았다.

자신은 충분한 능력이 있고, 혼자 결정하는 게 편했으니까.

‘많이 변했다.’

서자명은 새삼 성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성현을 만난 이후로 멤버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스스로도 그런 모습이 낯설 정도로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할 때면, 그 어느 때보다 즐거운 자신을 발견했고 앞으로도 기회가 된다면 멤버들과 함께 음악을 하고 싶었다.

“일단 천소울씨 노래 먼저 들어봅시다.”

서자명은 긴말은 필요없다는 듯 성현을 재촉했다.

성현은 서자명의 허가가 떨어지자 바로 장비 앞으로 가서 곡을 재생했다.

두 사람은 무대 구성을 위한 본격적인 회의에 들어가기 전, 천소울과 임하나와의 작업물을 먼저 듣기 시작했다.

곡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것은 무대를 구성하는 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

서자명은 흘러나오는 천소울의 노래에 깊은 인상을 받은 듯 고개를 끄덕이며 열심히 들었다.

‘피아노 반주 하나만 있는 노래에서 도입부부터 사람을 홀려버리다니. 역시 천소울이네.’

천소울은 노래의 도입부부터 듣는 사람을 확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귀를 기울이지 않고서는 지나칠 수 없는 그의 목소리.

거기에 천소울이 말하는 듯이 툭툭 뱉는 가사들이 더해지자, 사람의 감정을 자극하는 힘까지 있었다.

“축복받은 목소리긴 하네요.”

서자명 말에 성현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안다는 듯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작업을 하면서 몇 번이나 생각한 것이었고, 뒤에서 천소울의 녹음을 듣고 있던 임하나도 몇 번이나 감탄을 터뜨린 목소리였으니까.

확실히 도입부가 가지고 있는 몰입도는 천소울이 가지고 있는 보컬, 목소리에 의한 거였다.

이게 바로 성현이 그토록 이번 라운드에서 천소울과의 작업을 바란 이유이기도 했다.

서자명은 계속해서 집중해서 노래를 듣고 있는데, 곡의 2절 후렴구부터 천소울과는 다른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갑작스럽게 끼어든 다른 목소리에 서자명은 미간에 힘이 들어가며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군지 생각해봤다.

‘분명 어디서 들어본 목소린데.’

노래를 들으면서 계속 남자의 목소리에 집중하던 서자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서, 설마 이 목소리 신현식 선배님......?”

서자명은 임하나, 천소울과 마찬가지로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화들짝 놀라서 성현에게 물었다.

성현은 서자명의 반응을 보고 만족스럽게 웃었다.

“네. 맞아요.”

“진짜 신현식 선배님이라고? 아니, 돌아가신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리를 어떻게?”

서자명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성현은 임하나, 천소울 때와 마찬가지로 놀란 서자명에게 A.I 기술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서자명은 성현의 설명에도 진정이 되지 않는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이건 진짜 대박인데? 나도 이렇게 놀랐는데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릴 들었을 때 세상이 얼마나 놀랄지 상상도 안 가요. 그리고 이거 첫 공개가 라이브 무대잖아. 반응이 엄청나겠는데요?”

서자명은 생각지도 못한 성현의 아이디어에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성현은 이제 놀라는 사람들의 반응에 익숙해졌다는 듯이 그저 태연하게 웃어 보일 뿐.

“뭐해요. 빨리 임하나씨 노래도 마저 들어봅시다.”

서자명은 성현의 노래에 완전 도취되어서 성현을 닦달했다.

이 사람이 또 어떤 일을 벌였을지 궁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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