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40화 (140/273)

140화

성현의 곡이 천소울과 임하나에게 선택받은 그 날의 오후.

성현은 배정받은 한남동 아지트 스튜디오로 향했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성현은 바로 본격적인 미션을 준비하기로 했다.

음원 발표까지 정해진 기간은 단, 2주.

그 안에 음원 발표할 곡을 임하나와 천소울에게 맞춰 편곡해서 녹음하고, 그 후에 믹싱까지 마쳐야 했다.

성현은 곧장 자신이 해야 할 것들을 정리했다.

‘당장 중요한 건 피쳐링 진행 현황이야.’

본격적으로 천소울과 임하나에 맞게 편곡을 진행하기 전.

주최 측에 맡긴 신현식의 목소리 부분을 곡에 맞게 배치하는 것이 먼저였다.

오늘 성현의 곡을 선택한 두 사람은 신현식의 피처링이 들어간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상태.

두 사람에게 피처링까지 들어간 곡을 들려준 다음에 편곡 방향을 논의해야 되기 때문에 어디까지 작업이 이루어졌는지 파악해야 했다.

단순히 성현이 전달하는 메시지가 좋아서 선택해 준 두 사람이 신현식의 피처링 파트를 듣고 깜짝 놀랄 생각을 하니까 더 몸이 달았다.

성현은 커넥트 앱을 통해 기술팀에 연락을 넣었고 이내 곧 답장이 돌아왔다.

-기술팀: 오늘 안으로 완성될 것 같습니다.

‘목소리는 완성됐고 이제 남은 건 편곡 방향인 건가.’

성현이 보내준 가사와 음정에 맞게 신현식의 목소리가 완성되었다.

기술팀의 확답을 받은 성현은 맘 편하게 둘의 편곡 방향에 대해 궁리했다.

이제 남은 건 그 완성된 목소리를 편곡 방향에 맞게 파트 배분을 하고 반주를 넣는 것.

‘음원 완성에 무대 준비까지 해야 되네. 시간이 좀 촉박하려나.’

두 명에게 선택을 받은 성현은 녹음과 무대 준비 두 가지를 모두 배로 준비해야 했다.

아무래도 두 가수의 음원을 준비해야 하는 만큼 느껴지는 시간의 촉박함.

압박을 느끼며 시간을 확인하는데 곧 천소울이 도착할 시간이 다 된 것을 확인했다.

성현은 편곡 방향을 정하기 위해 천소울과 임하나와 1시간 간격으로 회의 일정을 잡고 그들을 호출했다.

이는 서로가 곡에 대한 해석에 영향을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

두 사람이 같은 곡을 하는 만큼 서로에게 해가 될만한 일은 최대한 배제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천소울씨는 어떤 구상을 하고 있으려나.’

성현은 천소울이 자신의 노래를 선택했을 때 어떤 그림을 있던 건지 궁금했다.

생각하기 무섭게 곧 작업실 문 열리고 천소울이 들어왔다.

“때마침 잘 왔네요. 안 그래도 천소울씨 생각 중이었는데.”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성현의 웃음기 어린 말에 천소울은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한쪽 눈썹을 치켜들었다.

성현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젓고,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천소울씨는 이번 곡에 대해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성현의 질문에 천소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천소울이 이 곡을 선택한 이유는 곡이 주는 메시지 때문.

곡을 선택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생각을 정리하기 전이었다.

“아까 곡이 주는 메시지가 좋다고 했는데 어떤 점이 좋았는지. 곡을 처음 들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는지 자유롭게 말씀해주시면 돼요.”

천소울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듯하자 성현은 마음을 편히 먹으라는 듯이 가볍게 말했다.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조금 더 고민을 하더니, 입을 열어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슬픔과 불안이 나만 느끼는 게 아니라는, 이 슬픔이 언젠가 반드시 해결될 거라는 공감과 위로의 메시지가 좋았어요. 피아노 반주밖에 없었지만 그 잔잔함 속에서 묻어나오는 따뜻함이 분명 느껴졌고 개인적으론 그 느낌을 극대화시키고 싶습니다.”

“그렇군요.”

메시지 전달에 모든 힘을 쏟고 싶다는 천소울의 의지.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가 원하는 것이 메시지와 위로라면 그것을 가장 극대화시킬 수 있는 무기를 이미 가지고 있었었다.

바로 천소울의 목소리였다.

성현은 저도 모르게 무대에서 이 노래를 열창하는 천소울을 떠올리고 씨익 웃었다.

‘이미 거기서 나오는 감동과 위로가 분명 있으니까.’

메시지를 전달할 때 가장 중요한 건 전달력과 몰입도.

천소울의 음색은 고음, 저음 할 것 없이 몰입을 할 수밖에 없는 매력적인 음색이었다.

이는 분명 원곡이 가지고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가장 탁월한 장치였다.

그렇기에 곡을 작업하면서도 성현의 머릿속에 천소울이 떠나지 않았던 것.

“이번에도 역시 천소울씨가 가지고 있는 목소리의 힘이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겠네요. 자신 있어요?”

“이왕 하는 거 1등 하죠.”

천소울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성현은 고개를 내저으며 알겠다고 대꾸했다.

그 뒤로도 이런저런 곡에 대한 감상을 전해 듣는데 한 시간이 금방 흘렀다.

천소울의 편곡 방향은 결정이 된 후, 그가 연습실을 떠나자 얼마 안 있어 임하나가 들어왔다.

“하나씨는 이번 곡을 어떻게 해석하고 싶어요?”

성현은 천소울 때와 마찬가지로 곡에 대한 임하나의 의견을 먼저 물었다.

임하나는 성현이 천소울과 회의를 하는 동안 나름의 생각 정리를 했는지 바로 입을 뗐다.

차분하게 자신이 생각한 편곡 방향을 설명하는 임하나.

“음...... 저는 원곡이 가지고 있는 희망적이고 밝은 메시지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천소울이 노래가 주는 감동과 위로에 집중했다면, 임하나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더 강조하고 싶어 했다.

임하나에게 어울리는 해석이었다.

“당장은 함께할 수 없는 건 분명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끝에 가서 결국에 만나게 될 거라는 그 메시지가 마음에 남았거든요.”

‘같은 노래라도 이렇게 해석하는 게 다르구나.’

성현은 내심 둘의 차이에 재미를 느꼈다.

천소울이 곡이 가지고 있는 감동에 더 집중했다면, 임하나는 곡 자체를 밝게 해석하고 있었다.

임하나는 성현이 별 다른 말을 하지 않아도 자신이 느꼈던 곡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성현 또한 임하나가 말하는 편곡 방향이 나쁘지 않게 느껴졌다.

몇 차례 고개를 끄덕이며 악보를 확인한 성현이 물었다.

“하나씨는 기존 곡보다는 더 밝은 분위기의 편곡을 원하는 거네요?”

“네. 요란한 게 아니라, 지금보다 더 희망적인 분위기면 좋겠어요.”

‘나쁘지 않아. 하나씨가 가지고 있는 디바로서 이미지를 보여줄 수도 있을 것 같고. 밝은 곡일 때 무대에서 하나씨가 가지고 있는 자유로운 움직임을 더 잘 표현할 수 있기도 하고.’

임하나의 장점은 폭발적인 보컬과 오랜 기간 춤을 추면서 다져진 자유로운 움직임.

확실히 임하나의 장점은 밝은 분위기의 편곡에서 더 큰 시너지가 나올 것 같았다.

자신의 장점을 잘 파악하고 있는 듯한 임하나의 모습에 성현은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노래는 못할 거라고, 고음은 안 된다고.

계속해서 자신의 능력을 얕봤던 임하나의 모습은 어디 가고 이제는 자신과 대등하게 맞서서 의견을 피력하고 있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음악은 이런 것이라고.

“밝은 분위기의 곡이 하나씨한테 잘 어울리긴 하죠.”

성현은 임하나가 말한 편곡 방향성에 동의하며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임하나는 성현의 허락이나 다름없는 말에 마찬가지로 활짝 웃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에 코러스를 이용해보면 어떨까 생각도 해봤거든요?”

임하나의 말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성현의 허락이 떨어지자 임하나는 곧장 자신이 구상했던 무대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둘은 의견을 주고받으며 서로 빠르게 편곡 방향을 정해갔다.

‘이대로만 가면 두 사람의 강점과 매력을 살려서 같은 노래지만 각자 다른 무대를 보여줄 수도 있겠다.’

두 사람 모두 각자 다른 스타일의 분위기로 편곡을 진행하게 되었다.

둘이 모두 떠난 작업실에서 성현은 두 사람이 한 말을 찬찬히 되돌아 곱씹어 보았다.

각자가 말한 스타일이 본인에게 너무 잘 어울렸다.

둘을 프로듀싱하는 성현 자신이 뒤처지면 안 되겠다고 생각할 만큼.

***

편곡 방향이 결정되고 난 후 성현은 곧장 편곡 작업에 들어갔다.

얼마간 생각에 잠겨 작업실 회전 의자에 앉아 빙글빙글 의자만 돌리던 성현.

가장 먼저 시작한 건 천소울의 버전이었다.

‘기존 피아노 버전보다 더 감정을 건들 수 있는 장치가 없을까.’

기존 피아노 반주에 천소울의 목소리만 얹는 것도 괜찮았다.

거기에 신현식의 피처링이 더해지고, 가슴을 울리는 절절한 두 사람의 하모니가 이루어진다면 더 이상 경연이 문제가 아니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 곡을 단순히 어떤 오디션의 경연곡으로 묻히게 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당연히 둘의 목표는 1위.

성현은 여기에 더해 더 사람의 마음을 울릴 수 있는 어떤 것을 원했다.

게다가 이번 라운드는 단순히 음원 발표로 순위를 가르는 것이 아니다.

라이브 무대까지 준비해야 했다.

피아노와 가수로만 구성된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획기적인 무대 연출을 끌어들일 방안 역시 같이 생각해야 하는 것.

물론 여타의 방법은 당연하게도 천소울의 목소리를 방해해선 안 됐다.

무대에서나 음원에서나 가장 강조되어야 하는 것은 천소울의 목소리였으니까.

성현이 이런저런 방식을 시도해보고 까다롭게 구는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깊이를 더할 수 있는 장치라......’

성현은 고민에 빠졌다.

편곡 방향의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겨 있던 성현은 곧, 천소울의 목소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악기 하나를 떠올렸다.

첼로.

‘첼로는 사람의 목소리에 가장 가까운 음역을 가진 악기니까.’

첼로와 같은 저음 현악기는 가장 인간의 목소리와 닮았다고 알려졌다.

그중 가장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는 것이 첼로.

첼로는 확실히 저음에서 큰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천소울의 목소리와 좋은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천소울씨 저음에 깊이를 더할 수도 있을 것 같고.’

천소울 음색이 가지고 있는 매력은 고음에서 나오는 탁성과 미성의 묘한 조화.

거기에 저음 또한 나쁘지 않았지만, 그 깊이를 기준으로 했을 때 고음보다는 조금 부족한 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렇기에 첼로가 가지고 있는 저음의 깊이를 더한다면 더욱 곡이 완벽해진다는 것이 성현의 계산.

천소울의 곡 편곡 구상이 대충 끝이 나자, 다음으로 임하나 버전의 편곡이 남았다.

기존 피아노 반주로 이루어진 곡에 밝은 분위기를 더하면서 임하나의 리듬감 있는 보컬을 더욱 부각시킬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바이올린 합주에 밴드 세션을 추가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

임하나의 곡 경우 기존 곡에서 좀 더 리듬감을 살리는 방향으로 편곡을 진행할 생각.

그에 맞춰 피아노 반주와 바이올린 연주가 합쳐졌을 때, 임하나의 디바로서 매력을 더 부각할 수 있을 터였다.

이제 남은 건 연주자를 구하는 일뿐이었다.

‘당장 연주자를 어디서 구하지.’

라이브 무대까지 단 2주.

바로 연주자를 섭외해서 무대에 올릴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성현이 먼저 편곡 작업과 신현식의 노래를 합쳐서 두 곡을 완성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두 사람의 녹음 시간을 제외해야 했다.

거기다 연주자들이 와서 이 곡을 완벽하게 마스터해 라이브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까지 생각한다면?

연주자에게 주어지는 시간은 일주일이 고작이었다.

스폰서가 있다면 다 구해주겠지만, 성현은 스폰서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성현에게는 이성현 본인이 있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전에 프로듀서 데뷔 준비를 하며 꽤 오래 세션 활동을 했던 경험.

성현은 곧 휴대폰 전화번호부를 뒤지더니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용식이 형. 저예요, 성현이.”

과거 세션 활동을 하며 친분을 쌓았던 회사 프로듀서인 김용식.

성현이 떠올린 구원투수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