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화
천소울이 1번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당연히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10곡 중에 단 1곡만 듣고 선택을 마친 천소울이었다.
남은 13명의 참가자 중에 천소울의 기행에 따를 사람이 있지 않았으니까.
‘한참은 더 기다려야 되겠지.’
애초에 5분 만에 선택을 끝내는 건 말도 안 되는 선택이었다.
천소울은 이 방에 다른 참가자가 오기까지 시간이 더 소요될 거라 생각하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비교적 이른 시간에 또 한 명의 참가자가 방에 들어왔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천소울은 내심 놀라서 열리는 문 쪽을 바라보았다.
자신 외에도 생각보다 상당히 이른 선택을 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천소울씨?”
“임하나씨?”
1번 방에 또 들어온 사람은 임하나.
임하나와 천소울은 서로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놀랐다.
임하나는 일단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며 문을 닫고 천소울의 곁으로 와서 앉았다.
제일 빠른 속도로 가수 참가자 둘에게 선택을 받은 1번 방.
“저보다 먼저 와 있을 사람이 있을 거라곤 생각 못 했는데 조금만 더 망설였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전 듣자마자 바로 왔는데 하나씨도 비슷한가 보네요.”
천소울의 말에 임하나는 입이 떡 벌어졌다.
듣자마자 바로? 역시 천소울의 담력에는 이겨낼 자가 없었다.
자신 역시 1번 노래를 듣자마자 삘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긴가민가한 마음에 바로 선택할 생각을 하진 못했다.
“전 두 번째 노래까진 듣고 왔어요.”
임하나는 졌다는 듯이 두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이 선택한 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소울씨는 왜 이 노래를 선택했어요?”
“좋으니까요.”
바로 튀어나온 당연하지 않느냐는 듯한 천소울의 대답.
그 심플한 대답에 임하나는 그의 대답에 공감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아무래도 열 곡 중에 달랑 두 곡만 듣고 선택하는 것은 너무 섣부르지 않았나 생각하며 올라온 임하나였다.
“후회 없어요?”
“네. 이 노래보다 좋은 노래는 없을 거라고 확신합니다. 임하나씨는요? 후회 안 해요?”
그런데 올라와 보니 1번 방에는 자신보다 더한 사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임하나는 이 상황이 다행이라고 여겨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았다.
좋게 생각하자면, 두 사람이 선택한 1번 방은 이제 다른 가수를 받지 못한다.
어차피 한 번 선택한 이상 곡 선택을 번복할 수는 없었다.
“저도 안 해요. 솔직히 이번에 조금 밝은 노랠 하고 싶어서 살짝 고민을 하긴 했지만 노래가 주는 메시지가 워낙 좋아서요.”
“피아노 반주로만 이루어져서 조금 비어 보일 순 있겠지만 그것도 이 곡이 가지고 있는 매력이라 생각해요. 작곡을 한 사람이 주려는 메시지에 더 집중할 수 있으니까요.”
피아노 반주.
성현은 곡을 완성하면서 성현은 화려한 비트를 찍거나 웅장한 악기들을 더하지 않았다.
자신이 연주한 피아노 반주로 담백하게 곡을 구성한 다음, 그 멜로디에 가수의 목소리를 얹은 것이 다였다.
그만큼 맨 처음으로 이 곡을 듣는다면, 다음으로 내리 9곡을 듣는 동안 잊히기 쉬운 곡 구성이기도 했다.
“맞아요. 누가 작곡한 걸까요? 전 대충 예상가는 사람이 있긴 한데.”
임하나의 의미심장한 말에 천소울이 고개를 돌리는데, 그 역시 궁금하다는 표정이 아니었다.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둘은 알았다.
두 사람이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저도 예상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천소울 대답에 임하나와 천소울, 모두 알 수 없는 미소를 지었다.
“아아, 그 사람은 알기나 하려나? 우리의 지고지순함을.”
“전 딱히 그래서 고른 것은 아닙니다만.”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한 곡만 듣고 이 방을 선택한다고?’
임하나는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그러는 동안에 곡 선택 시간이 끝이 났고, 곡 선택이 모두 마무리되었다는 알람이 울렸다.
[가수 선택 시간이 종료됐습니다. 가수 참가자들은 선택한 방에서 대기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곡 선택 시간이 마무리됐고, 이제 작곡자들이 밝혀질 시간이 왔다.
***
“가수 참가자들의 곡 선택이 완료됐습니다. 프로듀서 참가자들은 안내에 따라 정해진 방으로 이동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진행 스탭의 말에 프로듀서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가 복도로 나갔다.
진행 요원이 그들을 데리고 계단을 내려가 아래층 복도로 안내하자 번호가 적힌 방이 줄지어 있는 스튜디오가 나타났다.
“참가자분들 각자 배정받은 번호가 적힌 방문 앞에서 대기해 주세요.”
진행 스탭의 안내를 받은 성현은 곧장 1번이 적힌 방문 앞에 서서 대기했다.
다들 자리를 잡기 기다리는 도중 심장이 조금씩 빠르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이제 이 문만 열고 들어가면 자신의 곡을 선택한 가수 참가자들과 만날 수 있다.
‘누가 와 있을까. 천소울씨나 임하나씨 둘 중 한 사람만 있어도 좋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의 노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가수 참가자는 역시 천소울.
성현은 다른 누구도 아닌 천소울만큼은 꼭 함께 작업을 하고 싶었다.
“참가자 전원, 입장해주시길 바랍니다.”
곧 열 명의 프로듀서 참가자들 동시에 방문을 열어젖혔다.
그 속에서 성현은 낯이 익은 얼굴을 발견하고는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자신이 가장 바랐던 두 사람, 천소울과 임하나가 자신이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나 성현을 반기고 있었다.
두 사람은 별로 놀란 표정도 아니었다.
오히려 두 사람의 덤덤한 얼굴에 놀란 것은 성현이었다.
“기분 좋은 출발이네요.”
안 그래도 천소울만큼은 꼭 같이 작업을 하고 싶었는데 천소울과 함께 임하나까지.
자신의 노래를 선택한 둘이 이 사람들이라니 벌써 마음이 든든했다.
“역시 성현씨가 맞았어요.”
임하나는 성현의 얼굴을 확인하고, 천소울 보며 말했다.
돌아본 천소울 또한 얼굴에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말은 안 했지만 두 사람은 이미 성현이 이 곡을 만들었을 거라고 눈치챈 후였다.
예상은 했지만, 막상 성현이란 걸 확인하니 더욱 기분이 좋았다.
자신들의 생각들이 맞았다는 짜릿함도 함께였다.
“왜 이 곡을 선택했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기쁨도 잠시, 성현은 프로듀서로서 왜 가수 참가자가 자신의 곡을 선택한 건지 궁금해 물었다.
임하나와 천소울은 이전에 같이 말을 맞춘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동시에 말했다.
“곡이 주는 메시지가 좋았어요.”
성현은 두 사람의 같은 대답에 흐뭇하게 웃었다.
곡 작업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메시지란 대답이 튀어나왔다.
게다가 곡을 듣고 선택해준 두 사람도 그렇게 생각했다니.
“역시 곡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네요. 이번 곡에서 가장 중요한 건 메시지고 일부러 다른 반주 없이 피아노 반주만 넣은 이유도 메시지 때문이에요. 두 사람 모두 앞으로 곡 작업을 하면서 이 점을 염두하고 작업에 들어갔으면 좋겠어요.”
“좋은 출발만큼이나 마무리도 지어봐요. 잘 부탁드립니다.”
천소울은 성현을 이제 완전한 프로듀서로 인정하며 먼저 악수를 청해왔다.
임하나 역시 성현을 향한 강한 믿음을 보이며 외쳤다.
“이번에도 잘 부탁드려요!”
세 사람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
본선 5라운드를 위한 가수와 프로듀서 참가자 매칭이 끝이 났다.
모든 참가자들은 각각의 번호가 매겨져 있던 방에서 벗어나 한 자리에 모였다.
“곡 선택 시간 끝났으며 최종 결과 말씀드리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에 대기실에 긴장감이 나돌고, 모든 시선이 두 참가자에게 알게 모르게 쏠렸다.
“노래 6과 노래 10은 단 한 명의 가수 참가자들에게도 선택받지 못했습니다. 해당 곡의 프로듀싱을 맡은 이도현, 김지환 참가자 앞으로 나와주세요.”
진행 스탭 말에 대기실에서 굳은 표정으로 있던 프로듀서 두 사람이 앞으로 나왔다.
두 사람은 각각 부산과 광주 지역에서 올라온 프로듀서들이었다.
“두 사람은 다음 라음 라운드 진출이 불가능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진행 스탭 말에 탈락이 확정된 프로듀서 참가자 둘은 참담하게 고개를 떨궜다.
안타깝지만 탈락은 탈락이었고 진행 스탭들은 두 사람을 대기실 밖으로 안내해 나갔다.
두 프로듀서 참가자가 나간 후 남은 인원은 가수 참가자 14명 프로듀서 참가자 8명이었다.
“그럼 이어서 음원 미션에 대한 공지 시작하겠습니다. 음원은 2주 후에 공개되며 참가자들은 음원 말고도 따로 라이브 무대를 준비하게 될 겁니다. 라이브 무대는 음원 공개 하루 전날 진행될 것이며 이날 무대는 모두 너튜브 실시간 방송을 통해 공개될 겁니다.”
진행 스탭의 설명에 참가자 하나가 손을 들고 질문했다.
“그럼 라이브 무대만 끝내면 본선 6라운드 진출인 건가요?”
아직까지 본 미션의 합격기준은 설명되지 않았다.
참가자의 질문에 다들 궁금했다는 듯 진행 스탭을 쳐다보는데, 때마침 참가자들의 커넥트 알람이 울렸다.
[본선 5라운드 추가 미션]
참가자들은 추가 미션이란 말에 술렁거렸다.
성현만이 그 속에서 고요하게 진행 스탭의 뒤따를 말을 기다렸다.
진행 스탭은 소란에도 신경 쓰지 않고 추가 미션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음원 공개 1주일 후 자정을 기준으로 국내 음원사이트 총합 순위가 가장 높은 TOP4를 제외하고는 전원 탈락입니다. 그러니 곧 있을 라이브 무대를 어떻게 준비하느냐에 따라 음원 순위가 달라질 수도 있는 거겠죠?”
진행 스탭 말에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단순히 음원을 내는 걸로 알고 있었던 라운드였는데 제대로 뒤통수를 맞은 기분.
음원을 순위로 매겨 가장 순위가 높은 TOP4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
이 말은 생각보다 많은 참가자가 이번 라운드를 통해 떨어진다는 걸 의미했다.
“한 곡 당 두 명의 가수가 붙었는데 두 곡이 나란히 TOP4 안에 들 경우는 어떻게 되는 거죠? 프로듀서는 한 명인데 가수는 두 명인 거잖아요. 이 경우 순위 밖에 있는 다른 프로듀서에게 기회가 돌아가는 건가요?”
“아니요. 예외는 없습니다. 프로듀서 참가자는 최소 2명에서 최대 4명까지 이번 라운드 진출이 가능하며 가수 참가자 또한 4명까지만 다음 라운드 진출이 가능합니다.”
“그럼 프로듀서 참가자가 가수 두 명과 작업할 경우 한 사람만 TOP4에 들어도 합격이 가능한 건가요?”
“네, 그렇습니다. 대신 두 개의 녹음과 무대를 준비하는 만큼 준비과정이 더 타이트하겠죠. 더 질문 있습니까?”
진행 스탭 물음에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 모두 말이 없었다.
가수가 유리하냐, 프로듀서가 유리하냐는 식의 항의도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
어느 정도 합격자가 보장되는 것도 아니고, 무려 22명의 참가자 중에 10명이 넘는 인원이 떨어지는 라운드.
룰에 대해 왈가왈부하기보다는 실력으로 증명해야 할 시간이라는 걸 모두가 체감했다.
진행 스탭은 고요한 실내를 휙 둘러보고는 룰 설명을 마무리 지었다.
“궁금한 점은 얼마든지 커넥트 앱을 통해 문의하여 주시면 됩니다. 아, 참고로 이곳 한남동 스튜디오에 있는 모든 시설들은 참가자 여러분들께서 자유롭게 이용 가능하며 숙식 또한 가능하니 마음껏 이용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누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가수와 프로듀서 참가자가 될지 3주 후에 결과가 나오겠군요. 그때까지 모두 파이팅하시고 오늘은 이만 해산하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에 대기실에 모여 있던 참가자들 모두 긴장과 설렘을 안고 대기실을 나섰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프로듀서라.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어.’
성현은 앞으로 있을 미션을 생각하며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이제 정확히 3주 후, 누가 한국을 대표할 참가자가 될지 정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