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38화 (138/273)

138화

프로듀서 참가자에게 주어진 2주가 지났고 곡을 발표할 시간이 다가왔다.

성현은 서둘러서 지난번과 같이 서울 한남동에 마련된 장소로 향했다.

가는 길에서도 성현은 계속 자신이 만든 노래를 반복해서 들으며 생각에 잠겼다.

‘신현식 선배님 목소리 파트는 정해졌고 이제 중요한 건 이 노래를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가수를 만나는 거야.’

곡도 완성됐고 신현식의 목소리를 입히는 과정도 마무리됐다.

이제 중요한 건 이 노래 전체를 가장 잘 표현해줄 목소리를 만나는 것.

곡에 가장 어울리는 가수를 만났을 때, 그 곡의 매력이 훨씬 빛나게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자신의 곡에 어떤 목소리가 가장 어울릴지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성현은 이 곡을 선택하게 될 가수 참가자에 대한 생각에 걱정 반 기대 반을 안고 걸음을 옮겼다.

‘천소울씨라면 좋겠지만 임하나씨나 주선아씨 목소리도 괜찮을 것 같고.’

성현은 우선 멤버들의 목소리로 자신의 노래가 불리는 걸 상상했다.

천소울이 자신의 노래를 부른다면?

임하나의 목소리라면, 또 주선아는 어떤 느낌일까?

그러자 자연스럽게 미소가 지어졌다.

‘각자 스타일이 다르니까 편곡하는 것도 재밌을 것 같아.’

성현은 자신의 곡을 각각의 멤버들의 스타일을 어떻게 살릴지 궁리했다.

그들의 개성을 살려 어떤 식으로 편곡을 할지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성현.

벌써부터 가슴이 뛰는 성현의 입가에 미소가 가실 틈이 없었다.

한참 즐거운 상상을 하던 성현은 어느새 한남동 건물에 도착했다.

***

설레는 마음으로 본선 5라운드가 진행되는 건물에 들어간 성현.

건물 입구에 진행 스탭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성현 참가자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전국에서 24명 남은 참가자들이기 때문에 스탭들 또한 참가자들의 얼굴과 이름을 외우고 있었다.

성현이 건물로 들어가자 성현의 얼굴을 알고 있는 스탭은 자연스럽게 성현을 안으로 들여보내 줬다.

“들어가서 바로 오른쪽 대기실로 가시면 됩니다.”

스탭이 안내한 곳으로 가보니 이미 도착한 몇몇 참가자들이 보였다.

대기실에는 가수 참가자는 한 명도 보이지 않았고 모두 프로듀서 참가자들 뿐이었다.

오늘 곡 선정을 위해 가수 참가자와 프로듀서 참가자를 2개의 대기실로 나눈 것.

‘다들 어떤 곡을 준비했으려나.’

성현이 프로듀서들을 둘러보며 대기실에 마련된 의자에 앉았다.

그 후로도 몇 명의 참가자들이 들어왔다.

성현을 포함 서울, 부산, 광주 세 지역에서 살아남은 10명의 프로듀서 참가자들이 모두 모이자 메인 PD가 들어왔다.

메인 PD는 도착한 프로듀서들의 얼굴을 모두 확인한 후에 입을 열었다.

“프로듀서 참가자분들께서 어제 제출하신 10곡의 가이드 녹음은 주최 측에서 선정한 가수 한 분이 진행했으며, 이는 곡 자체의 퀄리티 제외하고 모든 평가 기준을 동일하게 하기 위한 것임을 말씀드립니다. 같은 이유로 곡의 주인과 피쳐링 가수 또한 가수 참가자들에겐 비공개로 전해질 것이며 선택을 받지 못한 프로듀서 참가자는 자동 탈락입니다.”

메인 PD의 설명이 끝났을 때 설명을 듣고 있는 10명의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표정은 비슷했다.

기세등등한 자신감이 넘치는 표정.

본선 5라운드까지 왔다는 것은 그만큼 실력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들 모두 탈락에 대한 걱정보다는 자신의 음악에 대한 프라이드가 강했다.

이는 성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현 역시 이번 곡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성현에게는 탈락에 대한 부담감이라곤 손톱만큼도 없었다.

“역시 실력자들이라 그런가 다들 얼굴에 여유가 넘치는군요.”

메인 PD 역시 그런 참가자들의 표정을 확인했는지 웃으며 말했다.

다음으로 곡의 순번을 정할 추첨을 진행했다.

“지금부터 추첨을 통해 1번부터 10번까지 곡의 순번을 정하겠습니다. 가수 참가자들은 무작위로 정해진 곡 번호로만 프로듀서 참가자들의 곡을 듣고 결정하게 됩니다.”

PD의 말에 진행 스탭이 들어와 추첨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차례로 나와 숫자가 적힌 볼을 하나씩 뽑았다.

모두가 볼을 뽑았고, 곡에 번호가 매겨졌다.

성현이 뽑은 건 1번.

순간 이게 좋을지 나쁠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성현이 알기로 지금 정해진 순번으로 가수 참가자들의 프로듀서들의 곡을 듣고 정하게 되니까.

‘뭐, 상관없지.’

성현은 자신이 완성한 곡을 떠올리고는 곧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맨 처음 듣는다고 잊혀질 만한 곡은 아니었으니까.

“지금부터 가수 참가자들의 곡 선택 진행될 것이며 프로듀서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대기하여 주시면 됩니다.”

메인 PD는 모든 안내를 끝내고 나갔다.

프로듀서들만 남은 대기실에는 정적만이 흘렀다.

이제 여기 남은 이들의 운명은 가수 참가자들 손에 달렸다.

***

같은 시각, 성현과 떨어져 다른 대기실에 있는 가수 참가자들, 천소울과 주선아, 임하나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가수 참가자 대기실은 저쪽 대기실과 마찬가지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무슨 곡이 나올지 어떠한 힌트도 없는 상황이었다.

가수 참가자들은 이제부터 들은 곡에 대한 설렘 반, 걱정 반으로 초조하게 시간을 확인하고 있었다.

“성현씨는 프로듀서 참가자들이 있는 대기실에 있겠죠?”

“네. 아마 곡 선택을 익명으로 하기 위해 대기실을 나눈 것 같습니다.”

천소울은 정확히 주최 측의 의도를 파악하고 말했다.

그 말에 주선아는 조금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럼 누가 어떤 곡을 썼는지 전혀 모르는 거죠?”

“그러지 않을까.”

여상한 천소울의 말에 주선아는 자신의 곡을 제대로 만들어 본 적 없는 프로듀서들의 곡 중에 자신과 어울리는 곡이 있을까 걱정하는 중이었다.

가수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프로듀서들의 곡은 단 10개.

그중에 주선아가 잘 소화할 수 있는 곡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었다.

“성현씨는 어떤 곡을 썼으려나 궁금하네. 물어봐도 대답도 없고.”

곡을 완성했다고는 알려줘놓고 그 뒤로 끝끝내 무슨 곡인지 털끝만큼도 힌트를 주지 않은 성현.

임하나는 괜히 그런 성현의 태도에 섭섭해서 투덜거렸다.

“그만큼 자기 곡에 자신이 있는 거겠죠. 거기에 실력도 뒷받침해주고.”

천소울은 그런 태도를 보이는 성현을 인정하며 말했다.

천소울의 확신에 가득 찬 말투에 주선아와 임하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하긴, 성현이 대충 곡을 만들었을 리는 없을 테니까.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대기실에 진행 스탭이 들어왔다.

삼삼오오 모여서 떠들고 있던 가수 참가자들이 일순 조용해졌다.

“지금부터 곡 선택을 할 시간이 주어질 텐데, 그전에 간단한 룰을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과 동시에 커넥트 알람 울리고 이내 곡 선정 미션과 관련된 룰이 떠올랐다.

“프로듀서의 이름, 제목, 피쳐링 정보 등 곡과 관련 정보는 모두 비공개로 처리되어 있으며 가이드 녹음 또한 동일한 가수가 진행하였습니다. 한 곡에 최대 두 명의 가수 참가자가 지원 가능합니다. 선택은 선착순으로 이루어집니다. 한 번 곡을 선택하면 번복은 불가능합니다.”

진행 스탭이 설명을 이어가는데 한 참가자가 손을 들고 질문을 던졌다.

“저 질문이 있는데, 그럼 10곡을 다 안 듣고 곡을 선택해도 상관이 없는 건가요?”

룰에는 곡을 듣고 선정하는 데 있어서 딱히 시간 제한이 있지는 않았다.

이 지점을 보고 들어온 질문이었다.

참가자의 물음에 진행 스탭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습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며 선착순 두 명만 지원이 가능하다는 점만 명심해 주시면 됩니다. 참가자분들 모두 각자 정해진 방으로 안내받을 것이며 곡 선택을 끝내면 밖에서 대기를 하고 있는 스탭의 안내를 받아 이동하여 주시면 됩니다. 그럼 참가자들 전원 이동하겠습니다.”

진행 스탭의 말에 대기실에 있던 14명의 가수 참가자들이 일어났다.

드디어 프로듀서들의 곡을 들으러 가는 길.

들뜬 참가자들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과연 어떤 곡들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모두 진행요원을 따라 대기실을 나서자 각자 작은 방으로 안내를 받았다.

“쌤, 이따 봐요.”

주선아는 천소울에게 인사를 건네고 제일 먼저 안내 받은 작은 방에 들어갔다.

그 뒤로 천소울 또한 방으로 들어가자 테이블과 의자가 보였다.

그 위에는 주최 측이 미리 배치한 노트북이 설치되어 있었다.

노트북 화면엔 총 10곡의 곡이 업로드되어 있었다.

당연히 노래 제목과 작사, 작곡자 이름은 표시되지 않았고, 노래1, 노래2와 같은 파일명으로만 올라와 있었다.

‘이번엔 어떤 노랠 준비했으려나.’

천소울은 프로듀서 참가자들이 각자 어떤 곡을 썼을지 궁금했지만, 그중 가장 궁금한 건 성현의 곡이었다.

성현과 함께 무대를 준비해 오면서 천소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한 것이 있기에 더욱 그랬다.

매 라운드마다 매우 빠른 성장을 하고 있는 성현이라는 것을.

성현의 성장 속도는 자신을 놀라게 할 정도였으니까.

반대로 자신이 성현의 곡을 알아들을 수 있을지도 궁금했다.

‘그걸 안다고 해서 무작정 선택할 마음은 없지만.’

성현을 인정하지만, 다른 프로듀서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 못 한 것도 있었다.

과연 제대로 데뷔를 하지도 못한 프로듀서들이 각자 어느 수준의 곡을 준비해왔을지 의문이었다.

“그럼 지금부터 곡 선택 시작하겠습니다.”

방에 연결된 스피커에서 진행 스탭의 말이 들리자, 드디어 가수 선택 시간이 시작되었다.

***

각 참가자가 들어간 대기실마다 한 명씩 총 14명의 진행 스탭이 문 앞을 지키고 있는 조용한 복도.

진행 스탭들은 각자 배정받은 방문 앞에서 대기를 하며 참가자들이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조용히 자릴 지키는데 시작한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한 참가자의 방문이 열렸다.

천소울이다.

“화장실 가시게요?”

선택을 하러 간다기에는 너무 빠른 퇴장이었다.

그걸 본 스탭은 당연히 천소울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나온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천소울은 아니라고 고개를 내저었다.

“노래 선택 끝났는데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벌써 선택이 끝났다고요?”

천소울 말에 스탭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시간 확인했다.

곡 선택이 시작되고 나서 고작 5분이 지나있었다.

5분 만에 선택을 끝냈다는 건, 다른 노래는 들어보지도 않고 하나의 노래만을 듣고 선택을 했다는 소리.

“네. 어디로 가면 되는 거죠?”

얼이 빠진 스탭이 아무런 말도 못하자 천소울은 재차 물어왔다.

답답하다는 듯한 천소울의 어조에 진행 스탭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천소울을 안내했다.

“따라오세요.”

진행 스탭은 천소울을 데리고 계단을 올라 한 층 위에 있는 복도로 향했다.

그곳에 1~10 번호가 적힌 열 개의 문이 세팅된 스튜디오가 있었다.

그 앞에 천소울을 안내한 스탭이 고지했다.

“선택하신 곡 번호에 맞는 방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스탭의 말에 천소울 각 방에 적힌 번호를 확인하더니,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왼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곡을 듣자마자 천소울은 다른 곡을 들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의 귀는 이미 그 곡에 사로잡혀 어떻게 그 곡을 소화해서 부르고, 무대를 꾸밀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찼다.

천소울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1번 방문을 열어젖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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