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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37화 (137/273)

137화

노래가 시작되자마자 신현식의 어머니를 비롯한 유가족들 모두 단번에 이것이 신현식의 목소리란 걸 눈치챘다.

짧은 세 마디의 노래.

그 짤막한 노래가 끝난 후, 신현식의 목소리가 남긴 먹먹함, 그리움 등 여러 가지 감정이 그들을 덮쳤다.

오랜만에 듣는 생생한 신현식의 목소리에 가족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

성현은 잠시 그들을 지켜보다가 유가족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더 넥스트 슈퍼스타라는 서바이벌 오디션에 참가 중인 참가자입니다.”

유가족들은 성현이 다소 뜬금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자 순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곧 성현의 진지한 표정에 모두 말없이 성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매번 혼자서만 음악 작업을 해오다가 처음으로 동료가 생겼고 처음으로 팀 작업을 하게 되면서 함께하는 것의 의미를 알게 됐어요.”

성현은 어떻게 하면 유가족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밤새 고민했다.

나온 답은 결국 하나뿐이었다.

이번 오디션을 통해 겪은 일과 동료들의 탈락을 보면서 자신이 느꼈던 감정들.

이에 대한 자신의 진솔한 설명을 들려주는 것.

성현의 설명이 이어지자 유가족들 모두 말없이 성현의 말을 경청했다.

“이번 곡을 통해 당장은 함께할 수 없지만 언젠가 각자의 길을 걷다 보면 결국에 만날 수 있을 거라는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었고, 그래서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리가 필요해요. 저 혼자 아무리 노력해도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리만큼 감동을 줄 순 없었어요. 전 제가 선배님의 노래를 들었을 때 받았던 위로와 감동을 대중들한테도 전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감히 말씀 드리지만, 신현식 선배님이 결국 지금 세 마디의 노래를 통해 하고 싶었던 것 또한 이러한 위로와 감동이었다고 생각해요.”

성현의 말에 유가족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족들은 평소 신현식이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수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렇기에 누구보다 지금 성현이 하는 말에 공감했다.

가만히 성현을 지켜보던 신현식의 모친이 입을 열었다.

“완성된 노래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녀의 말에 성현은 곧장 자신이 만든 노래를 들려주었다.

유가족들 모두 다시 말없이 성현이 만든 노래를 들었다.

완성된 노래가 끝났을 때, 신현식 어머니는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의 동생들 또한 눈가가 촉촉해졌다.

성현이 만든 곡에서 죽은 신현식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

한동안 성현과 유가족이 앉아 있는 테이블은 정적에 휩싸였다.

“정말 그게 다예요? 위로와 감동을 주고 싶어서?”

가장 먼저 정적을 깬 것은 지금까지 말이 없던 신현식의 막내 동생이었다.

그는 다른 형제들과 달리 성현을 조금 경계하듯 쳐다봤다.

그의 눈 역시 붉게 충혈되어 성현을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네.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어요? 지금까지 형 이름 팔아서 장사하려던 놈들이 어디 한둘인 줄 알아요?”

“현우야, 너무 그러지 마.”

“엄만 가만있어요. 이러다 당한 적이 한두 번이에요?”

막냇동생인 신현우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죽은 자신의 형을 가지고 같잖은 장사를 벌이려는 사기꾼을 수도 없이 만나왔다.

그럴 때마다 형에게 고개를 들 수도 없었고, 만신창이가 되는 모친을 지켜보기도 힘들었다.

성현이 혹시 자신의 형을 이용하여 돈벌이를 하려는 걸까 봐 의심하는 건 그에게 당연했다.

거기다 듣고 보니, 더 넥스트 슈퍼스타?

요즘 한창 시끄러운 그 프로그램 참가자란다.

동생의 입장에서 한순간 이슈몰이로 형을 소비하게 둘 수는 없었다.

신현식의 모친이 날이 선 그를 말렸지만, 여전히 그의 경계는 풀어질 줄 몰랐다.

“현우아, 이 녀석 진심은 내가 보장하마.”

그리고 그때 나선 건 심훈영이었다.

잠자코 있던 그는 유가족의 날 선 반응은 미리 다 예상했다는 듯이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너도 내 성격 알잖아. 애초에 다른 뜻이 있었으면 여기 데려오지도 않았어. 장담하는데 정말 음악밖에 모르는 놈이야.”

살아생전 형의 절친한 친구였던 심훈영의 말에 그제야 신현우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자신들이 여기 나온 이유이기도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심훈영의 호출이었기에 혹시나 하는 마음을 접고 나올 수 있었다.

심훈영의 말처럼 그가 단순히 돈벌이 때문에 신현식을 이용하려는 사람이라면, 이 자리에 데려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심훈영이 이 정도로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문제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슬며시 들었다.

“쓰세요.”

가장 먼저 허락의 말을 꺼낸 건 신현식의 모친.

“현식이 목소리가 아직도 누군가에게 위로를 줄 수 있는 거리면 써야죠. 성현씨 말처럼 현식이도 그걸 원했을 거예요.”

“나도 찬성. 훈영이 형이 이 정도로 보장하는 사람이라면 의심할 필요도 없이 허락해야지.”

신현식이 살아생전 가장 믿고 의지했던 사람인 심훈영이 보장하는 사람이었다.

첫째 동생 역시 형의 노래를 믿고 맡겨도 될 사람이라 판단했다.

두 사람은 완성된 곡을 들어보고, 거기서 신현식의 흔적을 발견한 것만으로 흔쾌히 허락할 가치가 있다고 여겼다.

이제 남은 건 막냇동생의 동의였고 성현과 심훈영, 자연스럽게 그에게로 시선이 간다.

성현, 숨을 죽이고 그의 대답을 기다리는데 심현우, 마침내 고개를 끄덕인다.

“…저도 찬성입니다. 잘 부탁드려요. 우리 형 15년 만에 컴백하는 거잖아요.”

그렇게 말한 막내 동생은 슬쩍 심훈영을 쳐다보았다.

“형이 보장한다니까, 뭐.”

마침내 심현우의 허락까지 얻자 성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유가족들을 향해 다시 인사를 했다.

“감사합니다. 꼭 좋은 곡으로 보답하겠습니다.”

“그래요. 요즘 같이 힘든 시기에 위로와 희망을 주는 노래 만들어주세요.”

“네. 그 약속 반드시 지키겠습니다.”

신현식의 모친은 성현을 향해 따뜻하게 웃어 보였다.

성현은 그런 그녀를 향해 다짐하듯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

신현식의 유가족과 만난 이후 작업실로 돌아온 성현은 곧장 커넥트 앱 상점에 접속했다.

그는 이제 거리낄 것 없이 바로 AI 목소리 복원 아이템을 선택했다.

[ AI 목소리 복원 : 10,000 캐시 ]

상당히 높은 가격의 아이템이었다.

고가인 만큼 상점탭에서도 찾기 힘든 위치에 있었다.

아마 성현이 게임 플레이를 해보지 않았다면 오디션이 끝날 때까지 존재조차 모르고 지나갔을 수도 있을만큼.

성현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캐시를 확인했다.

[보유 캐시 : 18,450 캐시 ]

충분히 구매가 가능했다.

성현이 바로 AI 목소리 복원 아이템을 선택하자 다시 한번 알람이 떴다.

[ 복원 원하는 목소리 ]

구매 전에 원하는 목소리를 복원할 수 있는지 미리 확인해주는 시스템.

성현은 그 창에 망설임 없이 신현식 이름을 입력했다.

그러자 로딩중이라는 화면이 뜨더니 이내 다시 안내 문구가 떴다.

[ 복원까지 걸리는 날짜 : 9일 ]

[구매하시겠습니까?]

‘역시 빠르네.’

성현의 예상대로였다.

주최 측이 어떤 기술력을 가졌는지는 파악할 수 없지만, 복구 시간 또한 게임과 동일했다.

상당히 빠른 소요 시간인 만큼 성현이 계획 한대로 이후 본선 5라운드 미션에 차질이 있지는 않아 보였다.

성현이 곧장 구매 버튼을 누르자 이내 구매가 완료됐다는 안내 메시지가 떴다.

구매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성현의 휴대폰으로 전화가 왔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측에서 온 연락이었다.

성현은 망설이지 않고 전화를 받았다.

‘이성현 참가자 본인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AI 목소리 복원 아이템 구매 확인차 전화드렸습니다. 본인이 구매하신 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아무래도 큰 액수의 아이템이니만큼 이런 확인 절차가 존재했다.

‘요청하신 복원 목소리는 신현식 가수가 맞습니까?’

“네.”

‘복원을 위해서는 최종 완성된 악보와 가사 보내주셔야 하고 보내주신 날짜를 기점으로 9일 후에 완성본 받을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완성되는 대로 곧장 보내드릴게요.”

주최 측과의 통화를 마친 성현은 곧장 미디 앞에 앉아 작업을 시작했다.

성현이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곡의 구성.

성현은 기존에 만들었던 노래를 틀고는 생각에 잠겼다.

신현식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계획은 세우긴 했지만, 정확히 어떤 파트, 어떤 가사를 어떤 형식으로 넣을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곡을 만들 때만 해도, 피쳐링의 계획은 전혀 없었기에 완성된 곡에 아무렇게나 끼워넣기에는 신현식의 목소리가 다소 뜬금없을 수 있었다.

‘메시지를 가장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이번 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다름 아닌 메시지.

그만큼 신현식의 목소리 또한 그것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이용하고 싶었다.

성현이 고민에 빠져 있는데, 이내 요하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했다.

성현의 일행 모두가 들어와 있는 단톡 메시지 방이었다.

-김요하: 다들 뭐하고 지내요? 전 이제 다시 학교 가는데 형 누나들이랑 음악 할 때 생각나서 노잼이에요ㅠㅠ 보고 싶어요 다들ㅠ

-임하나: 요하 지금 수업 시간에 문자 한 거야? 너 놀고 있다고 선생님한테 일러야지.

-김요하: 지금 쉬는 시간이거든요? 너무해ㅠ

-서지현: 요하야 누나도 요하 보고 싶어~

-조은별: 성현씨는 오디션 준비 한창이려나? 곡은 완성됐어요?

-서자명: 이번 곡 완전 기대 중입니다.

멤버들이 있는 채팅방은 요하의 메시지를 필두로 빠르게 글들이 올라왔다.

성현은 미소를 지으며 그들의 대화를 보다가 퍼뜩 깨달았다.

자신이 이 곡을 가장 들려주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지금의 멤버들이란 것을.

‘지금 한창 다들 이것저것 고민도 많을 테니까.’

오디션에 탈락한 이후 새로운 출발이라고 외친 멤버들이었다.

애써 기운을 내긴 했지만 어떤 소속사와 계약을 맺을지, 아니면 혼자 작업을 이어나갈지 각자 고민이 많을 터.

성현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대충 작사의 방향에 대해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이 노래로 조금이나마 힘이 되면 좋겠다.’

노래를 통해 멤버들의 고민과 부담을 덜어주고 싶다는 생각.

자신이 신현식의 짧은 세 마디의 노래를 통해 받았던 진한 위로.

생각을 이어나가던 중 어떤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자신이 신현식의 목소리를 차용한 이유.

거기에 덧붙여질, 지금 성현이 멤버들을 떠올리며 그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이야기.

‘그럼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주는 거 아닌가?’

이대로만 한다면 곡의 구성과 가사 모두 해결할 수 있었다.

성현은 깊게 생각에 잠겼다.

현재 오디션에 떨어진 멤버들이 어떤 고민을 할지, 미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을지.

성현은 곧 그들을 위로할 한 줄 한 줄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이 노래를 통해 성현이 멤버들에게, 그리고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차곡차곡 담겼다.

이번 역시 처음 이 노래의 뒷부분을 만들어냈을 때처럼, 한 번 작업 발동이 걸린 성현은 무언가에 홀린 듯 미동도 없이 작업을 계속 이어갔다.

신현식의 목소리로 뱉어질 소중한 가사들이 탄생 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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