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36화 (136/273)

136화

홍대 오아시스 라이브 바의 오픈 전 시간.

언제나처럼 오픈 전 가게를 청소하고 있던 심훈영이었다.

딸랑, 하는 경쾌한 벨이 울리며 아직 오픈이 한참이나 남은 라이브 바에 성현이 찾아왔다.

심훈영은 시간에 개의치 하지 않으며 기다렸다는 듯 성현을 맞이했다.

“커피 마실래?”

“그전에 곡 먼저 들어봐 줄 수 있어요?”

“그래. 그럼 나야 더 좋지.”

기꺼이 알겠다라고 하며 청소도구를 정리하는 심훈영.

청소를 방해받은 것임에도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재빠르게 움직였다.

이전에 성현이 바에 왔을 때 1절에 불과했던 노래.

이제 그 노래가 거의 완성됐다고 하니 얼마나 더 좋을지 어젯밤부터 기대감에 잠을 설칠 정도였다.

심훈영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성현을 쳐다보았다.

얼른 노래를 틀라는 듯이.

성현이 이제는 익숙하게 심훈영의 노트북에 USB를 연결해서 노래를 틀었다.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기에 후회는 없지만, 오늘 심훈영에게 할 부탁을 생각하면 손에 땀이 찼다.

가만히 눈을 감고 노래를 듣는 심훈영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피어났다.

1절만 들었어도 좋았던 노래는 길이가 배가 된 만큼 늘어질 수도 있건만, 성현이 가져온 곡은 더더욱 좋아진 상태였다.

10년 전, 신현식이 녹음했던 단 3마디.

10년 후, 이렇게 완전한 곡으로 탄생한 것만으로도 언감생심이었는데, 완성된 곡 자체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해서 심훈영의 마음을 울렸다.

‘현식이가 곡을 완성했으면 딱 이렇게 만들었겠지.’

심훈영은 곡이 끝나가는 걸 느끼고, 곡을 만든 성현을 보며 대견하다는 듯 웃었다.

죽은 신현식의 신곡을 들은 것 같은 묘한 기분.

그만큼 이 곡은 신현식이 처음 곡을 만들고자 했었던, 그때 그 당시의 메시지가 너무나 잘 전달하고 있었다.

“성현아.”

“네?”

“고맙다.”

심훈영은 감격에 젖은 목소리로 말했다.

성현이 죽은 신현식의 곡을 이렇게 완성도 있게 만들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거기에 더해 그 메시지까지 이렇게 잘 간직해주다니.

그런데 막상 심훈영에게서 고맙단 말을 들은 성현의 표정이 마냥 밝지 못했다.

아직 스스로 죽은 신현식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만큼 완벽한 노래가 아니라는 판단했기에.

“신현식 선배님에 비하면 아직 부족한 게 많아요.”

“아니야. 지금도 괜찮아.”

성현의 풀죽은 말에 심훈영은 무슨 소리냐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심훈영은 성현의 끝 모를 완벽주의적 성향을 보고 신현식의 예전 모습이 떠올라 회한에 젖었다.

곡은 작곡가, 프로듀서를 따라간다더니.

이 곡이 성현의 손에 넘어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는 심훈영이었다.

성현의 등을 두들기며 괜찮다고 말해주는데, 성현이 조금 뜸을 들이더니 입을 뗐다.

“사실 아직 다 완성된 곡이 아니에요.”

“응? 마스터링 작업까지 다 끝낸 거 아니었어?”

성현의 말에 심훈영이 조금 의아해서 물었다.

자신이 듣기에 지금의 곡은 더 손댈 곳이 없이 완벽했다.

오히려 더 이상 손을 대면 지금 가지고 있는 메시지의 전달력이 흐트러질 가능성이 컸다.

심훈영은 성현이 섣부르게 욕심을 내지 않도록 자신이라도 제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성현의 말을 기다렸다.

더한 것이 덜 하는 것만 못할 때가 있었으니까.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어서요. 이 곡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줄.”

“그게 뭔데?”

이미 마음을 단단히 굳힌 듯한 성현의 말에 심훈영이 물었다.

그의 물음에 성현은 의미심장한 표정과 목소리로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리요.”

성현의 말을 들은 심훈영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의아해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알겠다는 듯 물었다.

“현식이 녹음 파일 말하는 거야? 그래, 그걸 넣는 것도 괜찮겠네. 인트로나 브릿지 부분에 추가하는 것도 좋을 거 같고.”

세 마디의 음성 녹음.

그것이 곡의 앞이나 중간에 들어가면 더욱 그럴듯한 맛이 살 거 같았다.

꽤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한 심훈영은 말릴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하며 계속 곡 구성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러자 성현은 심훈영의 말에 대꾸도 안 하고, 잠시 말이 없었다.

“왜? 별로야?”

잠자코 있는 성현의 반응에 심훈영이 물었다.

그에 성현은 조금 더 뜸을 들이더니 이내 입을 천천히 열어 조심스럽게 말했다.

“녹음 파일이 아니라 진짜 신현식 선배님 목소릴 담고 싶어요. 신현식 선배님이 제 노래를 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성현의 말에 심훈영의 표정이 다시 혼란에 빠졌다.

불가능한 이야기를 늘어놓는 성현의 속내를 짐작할 수가 없었다.

이미 죽은 신현식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다니?

성현의 성격상 모창 가수를 말하는 건 아닐 텐데.

‘저 자식 지금 나랑 장난하는 건가? 그럴 녀석은 아닌데.’

심훈영은 성현의 말에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성현이 내뱉은 말이니 분명 진심으로 저런 말을 하는 것일 텐데 심훈영이 듣기엔 말도 안 되는 계획이었고, 무슨 생각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나 지금 상황이 좀 이해가 안 가는데.”

결국,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심각한 생각에 빠져 있던 심훈영이 먼저 캐물었다.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성현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 심훈영에게 보여줬다.

화면에는 더 넥스트 슈퍼스타 참가자들에게 주어진 커넥트 어플리케이션 화면이 떠 있었다.

“커넥트 앱? 이게 뭔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가운데 이걸 보세요.”

그렇게 말하며 성현은 화면 가운데를 가리켰다.

심훈영은 침침한 눈을 비비며 거기 떠 있는 글자를 읽었다.

“AI 패키지?”

[AI 패키지]

[10000캐시]

저건 뭐고, 10000캐시는 또 뭐란 말인가.

심훈영은 영 알 수 없는 말만 늘어놓는 성현에게 설명을 요구하며 쳐다보았다.

성현은 심훈영에게 커낵트 상점에 있는 패키지를 보여준 것이다.

어리둥절한 심훈영의 얼굴을 본 성현은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왜 이제까지 이 생각을 못 했는지 답답할 지경이었다.

성현은 드디어 자신이 원하던 것을 이룰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다.

“이걸 구매하면 신현식 선배님의 목소리를 AI로 구현해 낼 수 있어요. 당연히 선배님 목소리로 제 노래를 부를 수도 있구요.”

성현의 말에 심훈영은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가 그제야 깨달았는지 크게 눈을 떴다.

저 말인즉슨….

놀란 심훈영의 표정에 성현은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기술이 발달해서 목소리 복원이 가능한 건 알았는데 이걸로 노래까지 부를 수 있단 거야?”

“네. 아직 구매는 안 했어요. 허락을 받는 게 먼저일 것 같아서요.”

“너 이 자식!”

신현식의 목소리를 재현할 수 있다니!

심훈영은 신현식의 목소리를 다시금 모든 사람이 들을 수 있는 광경을 잠시 상상해보았다.

만일 성현의 말처럼 죽은 자의 목소리가 살아생전의 목소리로 구현 가능하다면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이다.

신현식을 그리워하고 있는 팬들, 일찍 요절해 그의 감성을 채 못 느껴본 사람들.

그들에게 자신의 친구, 신현식의 목소리를 소개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하지만….’

성현의 말에 기대감이 벅차올라 설렜던 심훈영이 다시 생각에 잠겼다.

곡을 들려주러 온다던 성현이 갑자기 죽은 신현식의 목소리를 쓰겠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무엇보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예측이 가지 않았다.

자신은 당연히 대찬성이었다.

가끔 이 녹음파일을 꺼내 들을 정도로 신현식에 대한 그리움이 큰 사람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같이 드는 걱정은 어쩔 수가 없었다.

괜히 고인이 된 자신의 친구에게 누가 되는 일은 아닐지.

걱정과 기대 설렘 오만가지 묘한 감정이 들었다. 대중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자신은 어떤 감정을 느낄지.

그러나 그럼에도 고민은 길지 않았다.

‘정말 그 녀석의 노랠 다시 한번 들을 수 있다면. 그럴 수만 있다면......’

심훈영이 가지고 있는 죽은 신현식의 노래에 대한 그리움이 너무 컸기에.

심훈영은 신현식의 마지막 곡을 성현에게 부탁하고 싶어졌다.

아마 이 기획을 성현이 아닌 다른 사람이 가져왔다면 자신은 거절했을지도 모른다.

곡을 완성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 그리고 메시지까지 그대로 전달하려고 했던 성현이기에.

“정말 현식이 노랠 다시 들을 수 있는 거지?”

“네. 대신 저를 좀 도와주셔야 해요.”

“뭐든 도와줄게.”

심훈영은 죽은 신현식의 노래를 다시 한번 더 듣고 싶었다.

가능한 방법까지 알게 되었는데 이 기회를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었으니까.

***

바로 다음 날, 카페에 나란히 앉아있는 성현과 심훈영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시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나오실까요?”

성현은 초조하게 심훈영에게 물었다.

둘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성현의 물음에 심훈영은 목이 타는지 커피를 들이켰다.

벌써 그의 잔은 바닥을 보이려고 하고 있었다.

“기다려보자. 일단 오신다고는 했어.”

태연한 듯한 심훈영 말에 성현도 말없이 커피만 마셨다.

그때, 카페 문 열리더니 세 명의 남성과 여성 한 명이 도착했다.

그들을 발견하자마자 벌떡 일어나는 심훈영을 본 성현 역시 그를 따라 일어났다.

“저분들이야.”

시선은 방금 들어온 일행에게 맞춘 채로 심훈영이 작게 말했다.

그 말에 성현은 재빨리 옷매무새를 고쳤다.

“오랜만에 연락해서 놀라셨죠.”

일행이 가까이 다가오자 심훈영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먼저 말을 걸었다.

“놀라긴. 기뻤어. 진작 연락 좀 하지 그랬어. 얼굴이나 좀 보게.”

“제가 무슨 염치로요.”

“네 잘못 아니라니까. 네가 자꾸 그러면 내가 죽어서 현식이 볼 낯이 없어. 그나마 너 때문에 모진 시간을 견뎠는데 누가 널 욕하겠니.”

여자의 말에 심훈영도, 성현도, 그리고 함께 온 남자들도 말이 없어졌다.

지금 카페에 도착한 일행들은 심훈영의 친구이자, 한국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신현식의 유가족들이었다.

“이분이 훈영이 네가 말했던 그 친구니?”

무거워진 분위기를 걷어내고 신현식의 모친이 처음 보는 성현을 보며 물었다.

화제를 돌리는 그녀의 모습에 심훈영은 그제야 성현을 신현식의 가족들에게 소개했다.

“아, 네. 소개가 늦었네요.”

심훈영은 성현을 신현식의 유가족들에게 인사시켰다.

“인사드려. 현식이 어머니랑 동생들이야.”

“안녕하세요. 프로듀서 이성현입니다.”

성현은 격식을 차려 유가족들에게 꾸벅 90도로 인사했다.

유가족들도 성현과 인사를 나눴다.

신현식의 목소리를 사용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중 당연하게도 그의 가족들에게 먼저 이야기하고 허락을 받는 과정이 필요했다.

성현은 살아생전 신현식과 절친했던 심훈영에게 유가족들과 만남을 주선해달라고 부탁했던 것.

“얘기는 대충 들었습니다. 우리 형 목소리를 쓰고 싶다는 거죠?”

“네. 허락만 해주신다면요.”

성현의 말에 잠자코 있던 다른 동생이 입을 열었다.

“그럼 AI 기술로 목소리 복구가 가능하다는 게 사실인가요?”

“목소릴 복구해서 노래를 부르는 것까지도 가능해요.”

신현식의 동생들은 심훈영에게 대충 얘길 들었지만, 아직도 쉬이 믿기지 않은 듯 이것저것 물었다.

망설임 없이 돌아오는 성현의 말에 조금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가만히 얘길 듣고 있던 신현식의 어머니가 성현을 물끄러미 보더니 물었다.

“왜, 우리 애 목소릴 쓰고 싶은 거예요?”

성현은 신현식 어머니의 눈을 올곧게 쳐다보며 대답 대신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그날 이후, 항상 휴대폰에 넣어져 있는 녹음 파일 하나를 재생시켜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기억해 우리가 함께 놀던 놀이터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너에게 쉼터가 돼 줄게-

조용한 카페 안에서 신현식의 목소리가 낮게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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