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본선 5라운드가 시작된 지 사흘이 지났을 때, 성현은 장비에서 손을 뗐다.
미친 듯이 음표를 쏟아낸 지 불과 사흘 만에 곡이 완성되었다.
곡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믹싱 작업, 가이드 보컬까지.
모든 작업을 완료하고도 가수 선택을 받기까진 꽤 시간이 남았다.
‘생각보다 좀 시간이 남네.’
이미 미션 내용에 대해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남들보다 여유롭게 준비한 것을 감안하더라도 성현의 작업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
신현식의 짧은 노래를 듣고 기존의 준비하던 노래를 엎고 새로운 곡을 준비했다는 걸 생각하면 경이로운 속도.
스폰서의 도움을 받지 않은 것까지 생각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작업 속도였다.
곡이 완성되고 열흘 넘게 여유가 생겼음에도 정작 성현의 표정은 밝지 못했다.
어딘가 찝찝한 표정의 성현은 계속해서 완성한 작업물을 몇 번이나 듣기를 반복했다.
노래를 듣자 마치 어제처럼 짧은 신현식의 녹음을 들었을 때가 생각났다.
그때 느꼈던 공감과 위로, 희망의 감정 역시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걸 느꼈다.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나 문제가 있다면 그때 느꼈던 그만큼의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
성현은 노래를 정지하고 의자에 몸을 깊게 기댔다.
‘메시지는 좋은데 왜 그때 그 느낌이 나지 않는 거지.’
그때 분명 신현식의 짧은 세 마디만으로 엄청난 위로와 감동을 받을 수 있었다.
정작 그것보다 더 길게 노래를 만들고 나니 그것보다 감동이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었다.
성현은 그 이유를 찾고 싶었다.
‘이유가 뭘까.’
반주도 없이 세 마디에 불과했던 그때보다 곡의 완성도는 단연 향상됐다.
완성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면 성현은 작업을 그만두지도 않았을 것이다.
훌륭한 피아노 반주도 짜임새 있게 입혀지고, 가사도 다 완성됐다.
그런데 신현식의 목소리를 들었던 그때만큼의 감동이 없었다.
성현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수백 수천 번을 듣고 여러 가지 변주를 줘봤지만, 쉽게 나오질 않았다.
“뭐가 문제지.”
물론 지금 노래가 나쁜 건 아니었다.
지금 노래도 괜찮았고 부족하지 않았다.
그러나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음원으로 공개하는 라운드.
프로듀서로서 이런 찝찝함을 넘기고 음원을 내기는 싫었다.
처음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만큼 완벽한 곡으로 대중들에게 인사하고 싶었다.
성현은 결국 별다른 수를 찾지 못하고 찝찝한 이유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자신이 만든 곡과 신현식의 목소리가 담긴 녹음을 번갈아 반복해서 들었다.
그렇게 몇 시간이 흘렀을까, 성현은 결국 듣고 있던 노래를 모두 꺼버렸다.
“미치겠다.”
성현은 아무리 노래를 들어도 어디에 뭐가 부족한 건지 찾을 수가 없었다.
노래도 끊기고 정적만 남은 작업실, 성현은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그 감동의 원천. 그게 뭘까. 난 왜 그 짧은 세 마디에서 위로를 받았던 거지. 신현식 선배님 목소리에 담긴, 내가 아직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걸까.’
성현은 그 원인을 찾기 위해 자신이 그 노래를 듣고 눈물을 흘렸을 때의 상황과, 북받쳤던 감정을 떠올려봤다.
단순한 공감과 위로라는 표현보다 더 디테일한 뭔가를 찾아내고 싶었다.
성현은 조용한 작업실에서 신현식의 세 마디 짧은 가사를 직접 읊조려봤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기억해 우리가 함께 놀던 놀이터.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너에게 쉼터가 돼 줄게.”
그 순간, 성현은 머리를 맞은 듯 자신이 왜 그때 위로와 감동을 받았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믿음.
앞으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고.
우리가 지금 가는 길이 맞다.
이 두 문장에서 결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는 어떤 확신과 믿음이 느껴졌기 때문.
왜?
그걸 부른 게 다름 아닌 신현식이었으니까.
직접 자신과 같은 경험을 하고, 또 그걸 극복하고, 극복을 넘어 역사를 쓴 사람이었으니까.
그 모든 걸 겪은 사람이, 후배에게 잘하고 있다고 알려주는 듯한 나지막한 목소리.
신현식의 정수가 담긴 보컬을 통해 공감과 위로를 받았던 것.
그 짧은 세 마디에서 성현이 그것을 느꼈기에 울음까지 터트린 것이었다.
결국 성현은 아주 당연한 걸 놓치고 있었던 것이다.
문제는 성현이 만든 노래에 있던 것이 아니었다.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에게 있었던 것.
‘지금 당장은 결코 신현식 선배님처럼 될 수 없으니까.’
성현은 아직 신현식이 걸었던 길을 따라 걷지 못했다.
온전히 따르는 것은 아닐지라도 그에 비하면 아직 성현의 경험은 햇병아리에 불과할 정도였다.
당연히 신현식이라는 대가수가 대한민국 가요계에 지니고 있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지도 못했다.
즉, 성현의 노래가 주는 메시지는 신현식의 짧은 노래보다 믿음과 확신을 줄 수가 없다.
그걸 듣는 성현뿐만 아니라 대중들에게도.
‘그 누가 온다 해도 마찬가지일 거야.’
물론, 성현이 이 방향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은 확실했다.
음악과 동료 뮤지션을 사랑하는 마음이 진심인 것도 노래에서 드러났다.
거기서 오는 감동은 충분히 줄 수 있었지만, 제 아무리 천소울이 이 노랠 부른다 해도, 신현식이 주는 위로와 감동을 뛰어넘는 건 불가능할 것이 분명했다.
성현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목소리를 가진 천소울을 포함해서 지금 오디션에 참가한 참가자들 중, 이 노래를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신현식이 겪은 일을 겪은 게 아니고, 또 겪었다 한들 신현식처럼 극복과 성공을 하지도 못했으니까.
‘이건 재능이 아닌 경험의 문제야.’
거기까지 생각한 성현은 갑자기 불가능이라는 벽에 부딪혀 의자에 깊게 몸을 기댔다.
완벽한 곡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세월과 경험이 더해져 곡의 맛이 깊게 우러나야 한다는 문제.
그것이 줄 수 있는 진심 어린 위로는 시간이 아니면 해결할 수 없었다.
‘결국 그때의 감동은 되살릴 수 없는 건가.’
신이 나서 사흘간 잠도 제대로 안 자고, 먹지도 않으며 완성했는데.
곡이 완성됐다는 기쁨도 잠시, 깊은 좌절감이 성현에게 밀어닥쳤다.
성현은 마른세수를 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성현은 자신이 받았던 것과 같은 위로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고 싶었다.
그 열망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달려왔다.
그러나 그것이 결국 흉내 내는 것에 불과한 감동에 그칠 수도 있다는 현실에 절망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방법이 없는 걸까.’
성현은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자신이 완성한 곡을 재생했다.
몇 번을 들어도 성현의 결론은 마찬가지였다.
이대로는 무언가가 부족하다.
하릴없이 피아노 건반을 다시 쳐보기도 하고, 다른 악기를 추가해서 변주를 줄까도 생각해봤지만 모두 허사였다.
이건 곡의 만듦새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에.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하기는 싫었다.
어떠한 가수도 줄 수 없다면, 그걸 줄 수 있는 곡을 만드는 게 프로듀서의 능력이었으니까.
‘시간이 해결해 줄 경험의 문제라면 그 시간을 메꿔주면 되는 거 아닌가.’
시간, 시간이라.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던 성현이 떠올린 그 시간을 메꿀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뿐이었다.
피쳐링.
그것도 인생 선배가 줄 수 있는 위로의 감동을 줄 수 있는 선배 가수의 피쳐링.
그것만 추가된다면 경험의 부족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도달한 성현은 곧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좁은 작업실을 서성거렸다.
‘어떤 스타일의 어떤 목소리가 좋을까.’
선배 가수의 목소리를 입힌다는 돌파구가 떠오르자 성현은 금세 절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런저런 유명한 가수들을 떠올리는 성현은 다시금 희망에 차올라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김재한? 아니야. 저번 라운드에서 매칭 가수로 나온 사람들과는 다른, 새로운 목소리로 승부를 봐야 해. 단순히 탄탄대로의 인기를 받아온 사람은 안 돼.’
조금만 더 손을 내밀면 완벽한 곡이 나올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지금 바로 지척에 있는 완벽한 노래에 대한 갈망이 성현을 부채질했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성현의 심장이 격하게 두근거렸다.
‘지금 이런 힘든 시기를 겪는 사람의 목소리와 그 힘든 과정을 극복한 사람의 목소리가 만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모든 세대를 아우르는, 동시에 모든 감정을 아우르는 곡을 완성할 수 있는 곡이 나올 것이 분명했다.
결국 중요한 건 그 공감과 위로를 전달할 수 있는 선배 가수를 누구로 하느냐.
당장 성현의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저번 라운드와 같은 기회가 아니면, 지금 성현으로서는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보컬리스트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부른 자신의 곡을 떠올린 성현은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리고 당연히 스폰서가 없는 성현이 도움을 받을 곳은 녹록지 않았다.
메인PD와 김인호 AD, 모두가 염려하던 상황이 성현을 찾아온 것.
그렇다고 성현이 화려한 인맥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새로운 돌파구가 떠올랐지만, 결국 성현에게 다가온 것은 암담한 현실.
‘이래서 다들 스폰서 계약을 맺는 거겠지.’
만약 스폰서가 있는 참가자였다면 지금쯤 손쉽게 피쳐링 가수를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날의 성현처럼 더 비기너 멤버들을 찾아가 오랜 설득이 필요한 번거로운 일을 하지 않았을지도 몰랐다.
그럼에도 성현은 스폰서를 택하지 않은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았다.
‘그랬다면 지금처럼 좋은 사람들도 만나지 못했을 테니까.’
저도 모르게 자신과 함께했던 동료들을 떠올렸다.
스폰서 계약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동료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던 성현.
외부의 힘 없이도 그들과 함께 더 좋은 음악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와서 스폰서 계약을 하지 않은 걸 후회하며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정하기 싫었다.
‘신현식 선배님 목소리와 비슷하면 좋을 텐데. 일단 비슷한 목소리라도 생각해볼까.’
성현은 당장 캐스팅은 불가능하더라도 머리를 굴려보기로 했다.
어떤 음색, 어떤 스타일의 가수가 좋을지.
다시 한번 선배 가수들의 이름을 생각해 보는데, 이내 문득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비슷? 왜 비슷해야 돼?’
이내 잠시 어떤 고민에 빠져 있던 성현은 곧장 휴대폰을 들어 커넥트 앱을 켰다.
앱을 켠 성현이 들어간 곳은 상점 탭.
가수를 찾다 말고 성현은 바쁘게 손가락을 놀렸다.
‘분명, 분명 있을 텐데.’
성현은 빠르게 상점 탭에서 뭔가를 찾기 시작했다.
이내 스크롤을 내리던 손을 멈추고 해당 상품에 대한 설명을 읽기 시작하는데, 곧 설명을 읽던 성현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거다.’
상점 탭에서 자신이 찾던 걸 발견한 성현은 곧장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이 전화를 받기를 기다리는 짧은 순간에도 성현은 초조하게 작업실 이리저리를 서성였다.
여보세요, 하고 전화를 받은 인물은 오아시스 라이브 바의 심훈영 사장.
“지금 가도 돼요? 곡 완성했어요.”
다급하게 말한 성현은 곧 들려오는 대답에 완성한 곡을 담은 USB를 들고 작업실을 나갔다.
지금 자신이 떠올린 계획을 일 분 일 초라도 빠르게 심훈영에게 들려주고 싶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