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34화 (134/273)

134화

본선 5라운드가 시작된 당일 저녁.

새로운 미션이 공지되고 만 하루가 지나지 않은 시각.

김인호는 성현의 연락을 받고, 곧장 카메라 VJ와 함께 성현의 개인 작업실로 출발했다.

“AD님. 진짜 준비 다된 거 맞대요?”

“그래. 다 계획이 있다니까 걱정 붙들어 매라.”

“무슨 미션 발표하고 하루도 안 돼서 준비가 다 끝납니까?”

VJ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물었다.

방송상 프로듀서 참가자의 제작 영상이 필요해 제작 스케줄을 물었던 게 화근이었다.

바로 성현이 그런 영상이 필요하다면 오늘 와야 할 것 같다고 말해왔기 때문.

“거 참 말 많네. 후딱 안 따라오지?”

“AD님이 카메라 좀 들어주시던가요. 뭔 놈의 동네가 오르막길이 끝도 없네.”

안 그래도 언덕 오르느라 힘이 드는데 VJ가 계속 물어대자 김인호 AD는 결국 짜증을 냈다.

VJ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과 장비를 바리바리 싸들고 따르는 VJ 입장에서는 그럴 만도 했다.

2주 기간을 줬으니 빨라야 내일이나 내일모레쯤 촬영이 시작될 줄 알았던 VJ.

그는 맘 놓고 저녁을 먹으려다 불려 나와야 했다.

김인호도 숨을 거칠게 내쉬며 힘들어 죽겠다는 VJ를 끌고 언덕길을 올랐다.

거기서 조금 더 올라가자 나온 것은 허름한 건물 한 채.

김인호는 건물의 외양을 보고 믿기지 않아 번지를 확인했다.

‘여기가 맞는데.’

건물 앞에 도착했지만, 쉬이 들어갈 수 없는 비주얼의 건물이었다.

김인호는 믿기지 않다는 듯 재차 주소를 확인해봐도 분명 성현이 보내준 주소가 맞았다.

‘이런 데 작업실을 만들었다고......?’

김인호는 조금 의심스러운 마음에 결국 성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이성현씨. 나 지금 앞에 왔는데 여기가 맞아? 아무래도 잘못 온 거......”

김인호가 수화기에 대고 말을 하는데 순간 철컥 옆에 닫혀 있는 문이 열렸다.

익숙한 얼굴이 계단을 올라 불쑥 솟아올랐다.

이성현이다.

김인호는 당황해서 아무 말도 못 하는데, 성현 밝게 웃으며 두 사람을 맞이했다.

“오시느라 힘들었죠. 들어오세요.”

성현은 밝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

김인호와 VJ, 함께 계단을 내려가 성현의 작업실에 들어섰다.

성현의 작업실은 성인 남성 셋이 들어가니 꽉 찰 정도로 김인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허름했다.

‘생긴 건 부잣집 도련님 같아서 의외네.’

김인호는 멋대로 생각한 자신이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지금까지 성현이 항상 뛰어난 무대와 좋은 곡들을 보여줬기에 자연스럽게 좋은 장비를 가지고 작업을 했을 거라 여겼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착각이었다.

직접 허름하고 좁은 작업실을 확인한 김인호는 세상의 진리를 깨달았다.

‘이래서 장비탓 하면 안 된다니까.’

그러면서 문득 옆에서 여기저기 카메라를 설치하는 VJ를 쳐다보며 괜히 꿀밤을 먹였다.

“장비탓 하지 마, 인마.”

갑자기 머리를 맞아 어리둥절한 VJ가 억울한 마음에 김인호를 쳐다봤다.

그러자 김인호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이 미디 앞에서 작업 중인 성현 옆에 앉았다.

“어느 정도는 인터뷰 형식으로 진행되긴 할 건데 그냥 편하게 원래 하던 대로 작업하면 돼요.”

“네.”

김인호 말에 성현은 정말 편하게 작업으로 빠져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옆에 있는데 김인호는 쳐다보지도 않고 작업에 열중하는 성현.

VJ는 조용히 그 모습을 모조리 카메라에 담았다.

김인호는 뭔가 인터뷰할 만한 게 있나 싶어서 작업실을 이리저리 둘러보았다.

매의 눈으로 장비를 살피던 김인호.

성현이 마주하고 있는 모니터에는 악보가 켜져 있었는데 성현이 며칠 전 찍어놓은 멜로디 음계였다.

‘어라?’

이미 며칠 전에 완성을 해두고, 이제 완성 단계에 있는 곡이었다.

그 곡을 본 김인호는 이게 바로 미션 공지 당일부터 자신들이 이곳에 온 이유다 싶었다.

눈치로 밥 벌어먹고 사는 AD답게 김인호는 저거다 싶어 눈을 빛냈다.

관심이 생긴 김인호는 바로 성현에게 물었다.

“이번 미션에 쓸 곡이에요?”

“네.”

“짧게 들려주실 수 있어요?”

김인호의 부탁에 성현은 곧바로 옆에 있던 건반을 눌러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연주를 듣는 김인호의 입이 점점 벌어졌다.

이거다, 이거.

프로듀서 준비과정 시청률 1위는 자신이 걸머쥐게 될 거라는 예감이 팍팍 들었다.

“완성은 다 된 거예요?”

김인호는 저도 모르게 신이 나서 물었다.

“멜로디랑 코드는 다 완성됐는데 아직 가사를 못 썼어요.”

성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신현식이 불렀던 짧은 몇 마디로 후렴구 부분 가사는 이전에 어느 정도 짜놓은 상태였다.

다만, 아직 전체적인 작사는 미완성 단계였다.

김인호는 테이블에 굴러다니는 연필을 보고 VJ에게 테이블을 찍으라 지시하며 물었다.

“그럼 오늘 작사 작업을 하는 건가요?”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평소에도 작사를 직접 하는 편인가요?”

“웬만하면 제가 하려고 해요.”

“노하우나 그런 게 있나요? 작사가마다 중점으로 두는 것들이 다르던데. 어떤 분은 메시지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어떤 분들은 음율이나 라임에 더 신경을 쓰기도 하고.”

김인호의 디테일한 질문에 성현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곧 대답했다.

“그때그때 다르긴 한데 이번 곡은 처음부터 메시지를 중점에 두고 작업했던 곡이라 그쪽에 더 중점에 둘 것 같아요.”

“메시지라면 어떤 메시지요?”

그 물음에 성현은 입을 다물었다.

안 그래도 자신이 제일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부분을 제대로 건드린 탓이었다.

동료들과 함께 준비해 온 미션들과 누군가는 탈락해야만 했던 순간들.

신현식의 노래를 들었던 날과 그날 받았던 위로들.

‘재료는 다 나왔는데 말이지.’

성현은 당시 신현식의 음악을 들었을 때, 큰 위로를 받았다.

알게 모르게 성현의 마음속에는 그동안 꾹꾹 눌러 담아 왔던 슬픔이 고여 있었다.

그때 성현이 처한 함께 음악을 하던 동료들과 당장 함께할 수 없게 된 상황.

함께 음악을 하던 순간을 잊지 못해 그리워하는 감정이 뒤섞여서 말이다.

그런 성현이 신현식의 짧은 노래를 통해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언젠가 반드시 다시 동료들과 함께 행복하게 음악을 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성현은 때마침 자신과 같은 감정을 가졌던 당시의 신현식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공감을 통해 큰 위로를 받았지만, 신현식 선배의 목소리에 관한 이야기를 김인호에게 밝히기에는 아직 일렀다.

게다가 지금은 곡을 만드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고 있었다.

성현은 무대 전에 최대한 이 사실을 숨겨서 모두를 놀라게 해주고 싶었다.

“이번 오디션을 준비하면서 가장 좋았던 건 좋은 사람들을 만났던 거예요. 함께 좋은 음악을 만들고 무대를 하면서 음악이 지금보다 더 재밌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거든요.”

성현은 천소울처럼 항상 혼자 음악을 만들어 왔다.

누군가와 이렇게 함께 무대를 만들고 팀이 된 경험이 처음이었다.

처음 느낀 혼자 음악할 때 모르던 다른 기쁨을 쉽사리 잊을 수 있을 리 없었다.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 힘든 순간조차 즐거웠는데 끝까지 함께 할 수 없는 상황이 오니까 그땐 정말 견디기 힘들 정도로 괴롭더라구요. 그래서 만든 노래예요.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날 수 있고 함께 음악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었어요. 제 자신한테도 동료들한테도.”

성현은 짤막하게나마 자신의 심정을 압축해서 말해주었다.

김인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노래를 듣는 대중들한테도 희망과 위로를 주면 좋겠네요.”

“그럼 너무 좋겠죠? 그러려면 가사를 잘 써야 할 텐데.”

“이제 방해 안 할 테니까 편하게 작업하세요.”

성현의 말에 김인호는 눈치껏 인터뷰를 마무리 지었다.

성현은 곧바로 가사 작업에 들어갔다.

‘어쩌면 가장 보편의 감정이 아닐까.’

퍼뜩 든 생각이었다.

성현은 과거 신현식과 현재의 자신이 겪은 감정.

어쩌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는 보편의 감정이 아닐까.

누구나 꿈을 향해 달려가다가, 함께 꿈을 키우던 동료들과 만나고 헤어지고 언젠가 다시 함께하길 바랄 테니까.

‘이 노래로 내가 받았던 위로를 다른 누군가도 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작사의 방향이 제대로 정해졌다.

이번 곡을 통해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마음에 공감하고 위로를 건네주기를.

성현 이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멜로디 라인을 쳐보며 떠오르는 단어를 공책에 적었다.

놀이터. 추억. 과거, 후회, 미안함 등등.

단어들을 나열하고 당시 느꼈던 감정들을 정리하다 보니 이내 가사가 술술 나오기 시작했다.

성현은 엄청난 집중력으로 앉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1시간이 채 안 된 시점에 어느 정도 가사의 윤곽이 완성됐다.

성현은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는지 어떤 말도 하지 않고 계속 작업을 이어갔다.

그러다 문득 이곳에 자신 혼자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는지 김인호에게 물었다.

“저 여기서 더 작업하고 갈 거 같은데 촬영은 언제까지 하는 거예요?”

“먼저 퇴근해라. 내가 남아 있을게.”

“진짜요?!”

VJ는 김인호의 말에 신이 나서 크게 인사를 하고 작업실에서 벗어났다.

그렇게 비좁은 공간에 김인호와 성현만 남았다.

“저 때문에 퇴근 못 하시는 거 아니에요?”

“AD가 출퇴근이 어딨어요. 24시간 풀노동이지. 나 신경 쓰지 말고 계속 작업해요.”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김인호의 말에 성현은 피식 웃으며 본격적으로 작업에 들어갔다.

성현은 계속 건반을 두들기며 마음에 들면 녹음했다.

그 다음에 대충 윤곽이 잡힌 가사를 직접 부르고, 녹음하고, 듣고를 반복하며 점점 완성도를 높여갔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배에서 나는 꼬르륵 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 소리에 시간을 확인해 보니 어느새 밤 12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진짜 정신없이 작업했네.’

이번 작업은 성현에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작업이었기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작업했다. 프로듀서가 되기를 꿈꾸며 오디션에 참여했던 성현에게 주어진 이번 기회.

편곡 작업은 그동안 오디션을 거치며 많이 했었다.

이번처럼 완전한 자작곡을 만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거기에 더해 오로지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이 세상이 공개되기까지 하다니.

이보다 성현에게 설레는 일이 없었다.

성현이 기지개를 켜며 옆을 보는데, 김인호는 고개를 꾸벅이며 졸고 있었다.

‘많이 피곤하셨나 보네.’

성현은 김인호를 깨워야 하나 고민하는데, 이내 김인호가 잠꼬대를 하듯 소리치며 일어났다.

“PD님, 그거 제가 편집한 거 아닙니다!”

그 큰 소리에 깜짝 놀라서 김인호 보자, 김인호는 민망한지 헛기침을 하며 물을 마셨다.

“아니 요 며칠 잠을 못 잤더니.”

성현는 그런 김인호를 보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외투를 챙겼다.

“밥 먹으러 갈래요? 제가 살게요. 저 때문에 식사도 못 하셨잖아요.”

성현이 말에 김인호는 하품을 하며 시간을 확인했다.

벌써 12시가 다 돼가고 있었다.

‘이 시간까지 계속 작업만 했다고?’

본선 5라운드 공지사항을 위해 오늘 이른 아침에 한남동으로 집합한 참가자들.

성현 역시 오늘 새벽부터 한남동으로 향했을 것인데, 잠도 자지 않고 저러고 있는 걸 보면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김인호는 성현이 가지고 있는 음악에 대한 재능과 열정, 애정에 감탄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비싼 거 얻어먹어야지.”

김인호는 거기까지 생각하고 먼저 작업실을 나갔다.

대단한 건 대단한 거고, 지금은 단지 퇴근도 안 시켜주는 나쁜 참가자일 뿐이었다.

어지간한 걸로는 넘어갈 생각이 없었다.

성현은 피식 웃으며 그의 뒤를 따라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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