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32화 (132/273)

132화

본선 5라운드가 시작되기 하루 전날, 반지하 작업실에 있던 성현은 시끄러운 소음에 작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띠링, 띠링.

잠시 내려놓은 휴대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다.

오늘 성현이 계속해서 작업할 수 없는 이유였다.

한숨을 쉰 성현이 핸드폰을 들었다.

휴대폰 화면에는 수많은 스폰서들에게서 온 제안들로 가득했다.

[FTT 엔터테인먼트 – 이일호 실장: 성현씨가 원하는 어떤 조건도 다 들어드리겠습니다.]

[드로잉 사운드 – 김원 프로듀서: 당장 저희와 스폰 계약을 맺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오디션이 끝난 이후 잠깐 만날 수 있을까요? 저희 회사는 이성현씨의 모든 무대를 모니터링했으며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에...... ]

[U&I 엔터테이먼트 – 전주민 실장: 안녕하세요, 성현씨. 저번에 연락드렸던 전주민 실장이에요. 저희 회사는 성현씨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꽃피워줄 수 있는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으며...... ]

수많은 스폰서들의 제안은 비단 이번 오디션에서의 지원에서 끝날 것이 아니라, 추후 성현이 하게 될 모든 활동에 전폭적인 지원을 약속하고 있었다.

오디션 후 관계까지 언급한 소속사들은 그만큼 후한 조건을 내걸었다.

‘파격적인 조건이긴 하네.’

각 스폰서들이 내민 조건을 자세히 읽은 성현은 이 모든 게 엄청난 제안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디션이 아니었다면, 같은 실력이었을지라도 절대 불가능했을 후한 조건들.

그만큼 ‘더 넥스트 슈퍼스타’가 가져다 준 인지도와 화제성은 엄청났다.

그 사이에 또 울린 핸드폰을 빤히 보고 있을 때, 누군가 작업실 문을 두들겼다.

성현이 연습실 문을 열자, 문 앞에는 김요하와 서자명이 서있었다.

“잘 찾아오셨네요. 여기 길이 복잡해서 다들 헤매던데.”

성현은 활짝 웃으며 둘을 반겼다.

안 그래도 성현의 말처럼 작업실이 외진 곳에 위치하다 찾는데 애를 먹었던 둘이었다.

그 고생은 눈앞의 광경을 보는 순간 싹 다 잊어버리고 말았다.

“…….”

“…….”

요하와 서자명은 성현의 작업실을 보고 말을 잃었다.

성현이 둘의 모습에 반가워 하면서 앉을 자리를 마련해 줬다.

좁은 반지하 작업실에는 여기저기 쌓인 서류들과 공간에 비해 덩치가 큰 기기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성현의 안내대로 남자 셋이 들어가자 비좁게 느껴질 정도였다.

둘은 성현이라면 당연히 좋은 장비들을 가지고 작업을 해왔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었다.

하룻밤 사이에 새로운 곡을 뽑아오기도 하고, 아지트에 있는 온갖 장비들 또한 막힘없이 다룰 줄 알았던 성현이었으니까.

그런데 예상외로 성현의 스튜디오는 굉장히 허름했고, 장비들 또한 많이 낡은 것들이 대부분이었다.

장비의 종류가 적은 것은 아니었지만 개중에는 너무 낡아서 제대로 작동되나 싶은 것들도 있었다.

그동안 이런 환경에서 작업을 해온 건가.

성현의 허름한 작업실을 눈으로 확인한 둘은 아무 말 없이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말자.’

‘네, 형.’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와중에 성현은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실 오늘 두 사람한테 할 말이 있어서 불렀어요.”

성현의 말에 요하와 서자명은 뜬금없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쳐다보고 성현은 둘의 시선을 받으며 묘한 미소를 지었다.

***

본선 4라운드가 끝난 다음 주 토요일 오전.

합격자 발표 후, 일주일이 지났다.

오늘이 바로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5라운드가 시작되는 날.

성현은 주최 측 공지에 따라 지정된 장소로 향했고, 서울 한남동에 마련된 건물에 도착했다.

건물 안에는 최신식 연습실, 스튜디오가 전부 구비되어있었다.

지방에서 온 참가자들, 혹은 가까이 살아도 원하는 참가자들은 이곳에서 숙식도 가능했다.

완벽한 연습 시설이 딸린 널따란 숙소.

성현은 홍대 아지트를 떠올리며 건물을 두리번 거렸다.

‘홍대 아지트랑은 비교가 안 되는구나.’

확실히 본선 라운드가 진행될수록 참가자들에게 주어지는 연습실의 퀄리티가 높아지는 게 눈에 보였다.

이 건물은 홍대 아지트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고급스러운 곳이었다.

“대기실은 복도 끝 오른쪽에 있습니다.”

참가자들 안내를 맡은 진행요원이 나와 성현을 맞이했다.

진행요원의 안내에 따라 대기실로 이동하자 이미 다른 멤버들이 도착해 있었다.

24명이 들어가야 하는 대기실이니만큼 널찍한 공간에 여기저기 합격자들이 흩어져 있었다.

“성현씨, 이쪽으로 오세요.”

임하나는 먼저 도착한 주선아와 천소울과 함께 있었다.

그 손짓에 성현이 일행들에게 다가가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 모두가 성현을 힐끗 쳐다봤다.

‘뭐지?’

성현은 자신을 쳐다보는 시선을 느끼고 그들의 얼굴을 살폈다.

너튜브에 올라온 영상들로 몇몇 참가자들은 얼굴은 낯이 익기도 했다.

실물로는 처음 보는 부산, 광주 지역 참가자들이었다.

끝까지 살아남은 최후의 24인을 이렇게 마주하다니 본선 5라운드라는 실감이 밀려들었다.

그 중 몇몇은 성현이 실력자라고 생각해서 이름을 기억해둔 이들이었다.

“천소울씨 들어올 때도 다들 저렇게 쳐다봤어요.”

뜨거운 시선을 받으며 성현이 일행들과 합류했다.

임하나는 성현이 자리에 앉자 성현과 일행들에게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해주었다.

그 말에 주선아는 작게 웃으며 대꾸했다.

“그만큼 경계한다는 거겠죠. 잘하니까.”

주선아는 자신이 더 자랑스럽다는 듯이 가슴을 쭉 폈다.

이 정도 환대는 당연하다는 듯 말한 주선아가 천소울을 보는데, 천소울은 성현의 얼굴을 빤히 볼 뿐이었다.

자리에 앉던 성현 역시 그 시선을 느끼고 물었다.

“왜요? 내 얼굴에 뭐 묻었어요?”

“속은 괜찮습니까?”

이게 무슨 소리지.

성현은 천소울의 뜬금없는 질문에 잠시 멈췄다.

그러자 천소울이 친절하게 한 마디를 더 덧붙여 주었다.

“그날 술 많이 마셨잖아요.”

천소울의 설명에 성현은 그제야 릴리 생일파티가 떠올라 헛웃음을 지었다.

설마, 그때를 말하는 건가 싶었는데, 최근에 성현이 술을 마신 날이라고는 그날밖에 없었다.

“그걸 이제야 물어봐요?”

릴리의 생일파티를 연지 일주일이 다 되어가는 지금, 그걸 지금에서야 물어본 것이다.

“괜한 걸 물은 거면 미안합니다.”

웃으며 되물은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감정이 상한 듯 시선을 돌렸다.

성현은 그런 그를 보며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속은 괜찮아요. 더할 나위 없이 아주 좋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이번 라운드도 파이팅해요.”

성현은 그렇게 말하면서 천소울에게 손바닥을 쫙 펴서 내밀었다.

그 동작에 천소울은 싫은 척 하면서도, 결국 함께 하이파이브를 해주었다.

“어, 나 저 사람 영상 본 거 같아. 부산 송도 해수욕장인가? 거기서 버스킹했지, 아마?”

“네. 그때 사람들 떼창하는 영상 아직도 화제잖아요.”

대기실로 들어오는 새로운 참가자들을 보고 있는 임하나와 주선아는 부지런히 서로 알고 있는 정보를 확인했다.

하나같이 다들 뛰어난 실력자였다.

버스킹 미션 때 올라온 영상이 아직까지 화제인 사람들도 있었고, 그 뒤로 휴식 기간에 버스킹을 하다가 시민들에게 찍혀서 올라온 사람도 종종 보였다.

“저 사람! 저 사람들이 부산 1등이지?”

“네. 복고를 제대로 활용했더라고요. 저 두 번 봤잖아요.”

각 지역 본선에서 1등을 한 팀 역시 다른 지역 참가자들의 집중 마크 대상이었다.

다른 지역 사람들이 성현과 천소울이 들어 왔을 당시에, 경계의 눈빛으로 쳐다보던 것과 마찬가지였다.

이쪽에서 타 지역 사람들의 실력을 알듯이 저들도 이쪽을 찾아보고 왔을 것이 분명했다.

그들 모두 본선 5라운드까지 올라온 참가자인 만큼 당장 누가 떨어진다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렇게 참가자들이 차례로 도착했다.

드디어 각 지역 본선에서 살아남은, 한국의 최종 24명의 참가자 모두가 대기실에 모였다.

참가자들은 자연스럽게 함께 오디션을 치른 지역별로 모여 앉았다.

서로서로 타지역 참가자들을 슬쩍슬쩍 쳐다보며 의식하는 모습에 조용한 대기실에는 긴장감만이 흘렀다.

그때 대기실 문이 열리고 메인PD가 들어왔다.

“반갑습니다. 한국 최종 본선 담당자 이준혁 PD입니다.”

메인PD의 등장에 대기실에는 바늘 떨어지는 소리도 들릴 정도로 긴장감이 팽배해졌다.

참가자들의 잔뜩 긴장한 표정을 본 이준현 PD는 모두를 둘러보고는 싱긋 웃었다.

“여기 계신 여러분 모두 치열한 경쟁을 뚫고 오신 분들입니다. 쫄 거 없어요. 카르페디엠! 자부심을 가지고 현재를 즐기시면 됩니다!”

이준혁 PD가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며 외치는 말은 대기실을 공허하게 울렸다.

대기실에 모인 참가자들은 이준혁 PD의 말에 그 누구도 웃지 않고,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이준혁 PD는 민망한 듯 헛기침을 하며 곧장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럼 본선 5라운드 미션 공개하겠습니다.”

이준혁PD 말과 동시에 대기실 화면에 설치된 화면으로 본선 5라운드 미션이 공개됐다.

[ 본선 5라운드 – 음원 발매 ]

* 미션 : 프로듀서 참가자와 가수 참가자의 이름으로 음원 발매의 기회가 주어집니다! 5라운드 미션을 통해 음원 발매의 기회를 잡고 최고의 노래를 완성해 대중들의 평가를 받으세요!

* 조건 : 1) 본선 5라운드는 프로듀서 참가자가 먼저 2주 동안 자신의 곡을 준비해야 합니다.

2) 곡을 준비할 때는 새로 작곡뿐만 아니라 기존 가지고 있던 본인의 곡 사용도 가능합니다.

3) 프로듀서 참가자가 완성한 곡을 듣고, 가수 참가자가 블라인드 형식으로 곡을 선택합니다.

4) 만약 단 한 명의 가수 참가자에게도 선택을 받지 못할 경우 해당 곡의 프로듀서 참가자는 자동적으로 탈락하게 됩니다.

5) 같은 곡을 여러 가수 참가자가 중복 선택할 수 있습니다.

6) 단, 한 곡당 최대 2명의 가수 참가자만이 선택한 곡을 부를 수 있습니다.

7) 가수 참가자의 곡 선택은 선착순으로 이루어집니다.

8) 매칭된 가수 참가자와 프로듀서 참가자는, 해당 곡으로 음원을 녹음, 발매합니다.

9) 음원 발매에 관련된 추가 룰은 매칭 후 공개합니다.

룰이 공개되자 쥐죽은 듯이 고요했던 대기실이 웅성거림으로 가득 찼다.

“음원 발매 미션이라고? 진짜 생각지도 못했네.”

“아, 내 음악으로 차트인 하면 진짜 짜릿하겠다.”

“드디어 싸클 인생 벗어나는 건가.”

미션을 확인한 24명의 참가자들 전혀 생각하지 못한 미션에 당황했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참가자들은 곧 기대에 차올라서 어떤 곡을 하면 좋을지 떠올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이번 라운드는 오디션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진짜 한국 대중 음악계에 입성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 분명했다.

다들 그 사실 자체가 주는 설렘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는 이미 미션에 대해 알고 있던 성현 또한 마찬가지였다.

‘음원 라운드가 시작된다.’

그동안 대중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방식은 공연 위주였다.

그것도 라이브 경연이나 미션 공연으로 관객들을 만났다.

하지만 이번 라운드는 그때와는 완전히 다른 느낌의 미션.

남의 곡을 편곡하거나 개사하는 방식이 아니었다.

프로듀서 참가자와 가수 참가자 모두 자신의 이름을 새긴 곡을 발매하게 되는 것.

다시 말해, 공식적으로 대중들에게 자신들을 소개하는 첫 자리였다.

‘진짜 프로듀서가 되는 기분이야.’

성현이 무엇보다 설레는 일은 따로 있었다.

비로소 자신의 손으로 프로듀싱한 가수를 더 많은 대중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는 것.

프로듀싱을 공부해오며 항상 꿈꾸던 일, 그 기회가 성현에게 찾아온 것이다.

하지만 성현은 이번 미션을 음원 발매에만 의의를 둘 생각은 없었다.

‘반드시 TOP4 안에 들 거야. 그래야만 해.’

이번 미션은 단순히 가수와 프로듀서 매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다.

주최 측에서 밝히지 않은 합격자 커트라인.

음원 발매 이후 집계되는 TOP4 안에 드는 사람만이 다음 라운드 진출이 가능했다.

서바이벌은 서바이벌.

성현은 대기실에 모인 24명의 참가자들을 둘러봤다.

여기서 더 많은 수가 줄어들 것이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결코 많은 참가자를 위로 올려보낼 생각이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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