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30화 (130/273)

130화

지금까지의 노래와는 달랐다.

지직거리는 소리가 많이 섞인 녹음본은 남자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소리 같았다.

심훈영은 분명 색다른 노래를 들려준다고 하며 재생했었다.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지?

반쯤 졸고 있던 성현은 노이즈 속에서 들리는 대화를 듣기 위해 완전히 목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진짜 녹음 한다고?

-어. 지금 이 감정 꼭 음악으로 남기고 싶어.

-남길 수 있으면 좋지. 야 이러다 불후의 명곡 탄생하는 거 아니냐?

-그렇게 되면 좋겠다. 지금 이 순간 우리, 지금 감정이 영원히 기억에 남으면 좋겠어.

그리고 대화를 듣던 성현은 정말 심훈영의 말처럼 술이 확 깰 수밖에 없었다.

미간을 찌푸린 채 아스라이 들리는 대화에 집중하던 성현의 눈이 점차 커졌다.

뭐야 싶었던 심정이 설마가 되고 들으면 들을수록 확신으로 바뀌었다.

‘설마 이거......?’

성현은 별로 좋지 않은 음질 속에서도 두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 들었다.

한 사람은 지금 자신과 함께 있는 심훈영.

다른 한 사람, 심훈영을 형이라 부르는 사람은 지금은 고인이 된 가수 신현식이었다.

성현은 놀라서 기대고 있던 벽에서 머리를 떼고 외치듯 물었다.

“신현식 맞죠?”

“역시 바로 맞추네.”

그 물음에 심훈영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대답했다.

심훈영의 확답까지 들은 성현은 더 집중해서 흘러나오는 녹음본을 들었다.

두 사람은 웃고 장난치며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신현식.

그는 한국 가요계에 큰 획을 그은 가수 중 한 명.

대학가요제로 80년대 혜성처럼 등장해, 역사를 쓴 사람이었다.

언더그라운드에서 시작하여 골든디스크상을 휩쓸 정도로 영향력을 가진 신현식은 후대 가수들에게도 칭송받고 있는 대가수 중에 대가수였다.

수많은 명곡들은 계절에 맞춰 리메이크되어 아직도 음원 차트를 휩쓸고 있는 가왕.

그런 그의 목소리가 지금 심훈영의 녹음기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이다.

‘이런 보물이 잠들어 있었다니.’

신현식의 곡들은 하나같이 명곡이라는 소리를 들었지만, 안타깝게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앨범이 많은 건 결코 아니었다.

다만, 그가 생전에 썼던 노래에서 영감을 받아 음악을 시작한 후배 가수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그가 죽은 지 몇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그의 노래를 추억하고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는 성현 또한 마찬가지.

성현이 녹음 속 그의 음성을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던 것도 그의 음악을 수없이 들어왔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이게 무슨 대화인 거예요?”

신현식과 심훈영의 관계는 뭐였으며, 둘이 하는 대화가 어떻게 남아있나.

그리고 이 대화는 어떤 맥락에서 나온 것인지 궁금해 물었다.

쉬지 않고 쏟아져 나오는 성현의 질문에 심훈영은 검지 손가락을 입에 올려 쉿, 하고 작게 말했다.

그러자 곧이어 녹음기에서 노랫말이 들려왔다.

-지금 우리가 함께하지 못하지만

기억해 우리가 함께 놀던 놀이터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내가 너에게 쉼터가 돼 줄게-

긴 노래도 아닌 3마디 정도의 짧은 구절이었다.

20초가량의 짧은 멜로디와 가사를 읊는 담담한 목소리.

정말 살아있는 신현식의 목소리였다.

레코딩을 통해 음을 가다듬고, 어떤 리듬과 비트도 덧붙여지지 않은 본연의 목소리.

이 짤막한 노래를 들은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이 들었다.

이유도 성현 자신도 잘 몰랐다. 도통 알 수가 없었다.

단지, 그냥 세 마디의 가사와 멜로디에 그동안 묵묵히 담아두었던 감정이 흔들리는 걸 느꼈다.

어쩐 이유로 심훈영과 신현식의 대화에서 이런 노래가 나오게 된 것인지 모른다.

신현식의 사연이 성현과 꼭 같으리라는 법도 없었다.

그런데 마치 성현은 제게 꼭 맞는 위로를 받은 사람처럼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말도 안 돼.’

성현은 밀려오는 아득함에 심훈영 몰래 이를 악물어야 했다.

까닥 잘못하다간 바로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먹먹함.

단순히 세 마디의 짧은 노래가 몰고온 파장은 몇 시간 러닝타임의 슬픈 영화보다 거셌다.

이 짤막한 흥얼거림과도 같은 노래에 성현이 흔들리는 걸 본 심훈영은 확신할 수 있었다.

성현에게 무슨 일이 있었다는 걸.

심훈영은 성현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담담하게 물었다.

“진짜 아무 일도 없는 거야?”

심훈영의 물음에 성현은 울컥한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차례 심호흡을 했다.

감정을 모두 추스리고, 오디션을 겪으며 자신이 느낀 감정에 대해 천천히 풀어놓는 성현의 이야기를, 심훈영은 가만히 들어주었다.

“오디션 하면서 하고 싶은 음악 할 수 있는 것만으로 감사하고 행복했어요. 며칠 전엔 서울 지역 최종 합격자도 됐고.”

“근데 뭐가 널 이렇게 흔드는 건데?”

잠자코 있던 심훈영의 물음에 성현은 생각에 잠기다 대답했다.

“제 가수를 제가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요. 함께 했던 팀원들이랑 끝까지 함께 올라가지 못했어요. 절 믿어준 만큼 보답하고 싶었는데...... 제가 지켜주지 못한 것 같아서 너무 미안해요.”

안타까운 마음이 이렇게 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런 감정이 들이닥쳤을 때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 건지도 알 길이 없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프로듀서로서 성공하는 길에서 이런 일을 맞닥뜨리게 될 거라고.

게임 플레이를 수도 없이 하면서도 만나지 못한 감정.

성현 스스로도 이런 감정을 느낄 줄 몰랐기 때문에 제대로 추스르는 방법을 몰랐던 것이다.

성현은 비로소 오늘 자신이 무작정 심훈영에게 찾아온 이유, 술을 더 먹고 싶었던 이유를 깨달았다.

“오늘 함께 했던 팀원 중에 탈락한 애가 저한테 말해주더라고요. 함께 했어서 행복했다고.”

성현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이 지금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털어놓는 것뿐이었다.

더 이상 홀로 마음속에 담아둘 수 없었던 감정을 입 밖에 꺼내 놓아보니 그나마 좀 나았다.

성현은 지금 자신의 앞에 있는 이가 누군지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심정을 줄줄 털어놓았다.

요하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울컥했던 마음.

탈락한 이들의 퉁퉁 부은 눈을 보면서 어떻게든 하고 싶었던 마음.

“울컥해서 혼났습니다.”

성현이 잠긴 목소리로 덧붙였다.

성현의 긴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심훈영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사람 보는 눈이 영 죽은 거 같지는 않다고 여기며.

성현이 동료들에게 느낄 미안함이 우스워서가 아니라, 성현이 프로듀서로서 가지고 있는 순수한 마음이 기특하기만 했다.

아직 성현은 프로듀서로서의 경험 자체가 풍부하지 못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러한 순수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제아무리 가지고 있는 재능이 많아도 이제 프로듀서로서 첫발을 내딛고 있는 성현에게 이번 일은 큰 경험이 되어 줄 것이다.

심훈영은 수심에 잠긴 성현의 표정을 보면서 안타까우면서도 내심 이번 일을 밑거름 삼아 성장할 성현의 모습이 기대되었다.

‘계속 이 순수한 마음을 잃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그럼 정말 멋진 프로듀서가 될 수 있을 텐데.’

심훈영이 보기에 성현이 가지고 있는 재능은 차고 넘칠 정도로 충분했다.

그러나 좋은 프로듀서란 재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심훈영은 지금의 성현이 가지고 있는 순수함이 앞으로도 계속되길 바랐다.

좋은 프로듀서라면 진심으로 자신의 가수를 아끼고 지킬 수 있어야 하기에.

하지만 그것만으론 안됐다. 순수함만으로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 쇼비지니스 업계다.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심훈영이기에 짧게 한 마디만 보태기로 했다.

이대로 성현이 무너지는 것은 원치 않기에.

“성현아.”

성현은 심훈영의 말에 푹 숙이고 있는 고개를 들었다.

심훈영은 그런 성현의 머리를 거칠게 헝클어 뜨렸다.

“단단해져야 한다.”

앞뒤 설명 없이 단출한 심훈영의 한 마디.

성현은 심훈영의 말이 무슨 말인가 싶어 멀뚱히 그를 보기만 했다.

심훈영은 대답 대신 술 진열장에서 양주 한 병을 꺼내왔다.

“오늘은 간단하게 마시고 끝내려 했는데 안 되겠다.”

심훈영은 양주 잔 두 개를 가져와 잔을 채우며 말했다.

오늘따라 유독 옛날 생각이 짙게 난다고 생각하면서.

“나랑 정말 친했던 가수가 있었는데 그놈이 지금 딱 너 같았어. 음악밖에 모르고 사람 좋고. 그런데 그놈이 가수가 아니라 프로듀서를 하겠다는 거야. 정말 아끼는 후배가 하나 있는데 그놈 앨범을 제작해주고 싶다고. 정말 아끼던 후배였고 후배도 그 녀석만 믿고 따랐어. 그렇게 열심히 준비를 했는데.”

심훈영은 거기까지 말하고는 입을 닫았다.

양주를 마시며 생각에 잠긴 듯 말이 없는 심훈영.

성현은 그런 그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결과가 좋지 못했어. 자기만 믿고 따라오면 된다고 자신만만하게 시작한 작업이었고 후배도 그 녀석 하나 믿고 전부를 걸었는데, 그 앨범 성적이 고꾸라졌을 때 프로듀서로 무슨 마음이 들었겠냐?”

“죽고 싶었겠죠.”

심훈영의 물음에 성현은 어떤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프로듀서로서 그가 느꼈을 감정이 자신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맞아. 그 녀석도 지금 너처럼 내 앞에서 똑같은 말을 했어. 죽고 싶다고. 내 가수를 내가 지키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해 죽겠다고. 근데 정확히 1년 후에 그 녀석이 어떻게 했는지 알아?”

성현은 궁금한 마음에 고개를 저었다.

심훈영은 지금 생각해도 웃긴지 자신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때 그 후배 앨범 다시 제작해서 앨범 판매수만 100만을 찍어버리더라.”

심훈영 말에 성현은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입이 벌어졌다.

그가 누군지는 몰랐지만, 프로듀서로서 존경심이 들었기 때문.

자신이 실패했던 가수의 앨범을 다시 제작하여 100만을 찍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놀라긴 아직이었다.

“더 대박인 거 말해줄까?”

심훈영은 녹음기 쪽을 바라보며 덧붙였다.

“그 녀석이 방금 저 목소리의 주인공이야.”

심훈영 마지막 말에 성현은 너무 놀라 남아 있던 술기운이 싹 가셨다.

방금 이 일화의 주인공이 신현식이라고?

‘신현식 같은 대단한 사람한테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래서 위로를 받았던 거구나.’

왜 그의 짧은 멜로디, 담담한 목소리에 눈물이 날 만큼 위로를 받았던 건지 깨달은 성현.

성현은 이런 위력을 가진 그의 일화와 짧지만 강렬했던 멜로디를 연결 지어 계속해서 생각했다.

그때 생각에 잠긴 성현을 보고 심훈영이 말했다.

“실패 없이 만들어진 천재는 없어. 천재는 처음부터 완벽해서가 추락했을 때 더 높이 날 수 있어서 천재인 거야. 성현이 넌 재능은 충분해. 음악을 사랑하는 열정도, 가수를 아끼는 마음도 프로듀서로 뭐 하나 부족할 게 없어. 하지만 넌 아직 제대로 떨어져 본 적이 없어. 난 이번 기회로 네가 조금 더 단단해졌으면 한다.”

이 설명으로 심훈영이 왜 자신에게 이 말을 한 건지 알 수 있었다.

단단해져야 한다.

심훈영은 성현에게 순수함은 간직하되 단단해지라고,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실패, 좌절의 상황이 오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부딪치면 될 거라고.

성현 혼자만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니라고 말이다.

성현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심훈영에게 청했다.

“아까 그 노래 다시 한번만 더 들어볼 수 있을까요?”

성현은 방금 받았던 그 감동, 위로를 다시 한번 더 느껴보고 싶었다.

“물론.”

심훈영은 그런 성현을 보며 씩 웃고 이내 다시 녹음기를 틀었다.

조용한 라이브 바에 신현식의 낮은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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