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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28화 (128/273)

128화

주선아의 질문에 성현과 천소울은 서로의 얼굴을 잠깐 확인하고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휴대폰을 집어 넣었다.

저런 것까지 닮았다, 저 둘은.

“잘 모르겠어요.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생각을 좀 해봐야 알 것 같아요.”

“생각할 게 뭐가 있어요. 레이팍이랑 김재상이면 무조건 오케이 해야죠.”

“음, 이 얘긴 그만할까요? 오디션 관련된 얘기 그만하고 싶어서 그래요.”

성현이 조금 피곤하다는 듯 말하자 임하나는 아차, 한 표정이 되더니 입을 닫았다.

다른 화제로 말을 돌리려는데, 임하나와 주선아의 폰이 울렸다.

“너도야?”

문자를 확인한 임하나가 주선아에게 묻자 주선아가 씨익 웃었다.

텔레파시도 아니고, 서로를 보면서 키득거리는 둘의 모습에 성현이 물었다.

“뭔데 그래요?”

“아마 성현씨한테도 갔을 걸요?”

그렇게 말을 하며 휴대폰 메시지 보여주는 임하나.

성현과 슬쩍 함께 몸을 기울인 천소울이 화면을 확인했다.

-릴리: 여러분~! 모르셨겠지만 이틀 후가 제 생일이랍니다~! 다른 게 아니라 여러분들을 제 생일 파티에 초대하고 싶어서 연락드려요. 시간이 되시면 잠깐 들러서 얼굴이라도 보고 갔으면 좋겠어요.

릴리가 자신의 생일 파티에 초대하기 위해 메시지를 돌린 것이다.

메시지 하단에는 서울 외곽에 있는 한 장소의 주소까지 찍혀있었다.

저걸 보아하니 이미 직접 장소 섭외까지 끝낸 듯싶었다.

“다들 가실 거죠?”

“당연히 가야죠.”

성현은 웃으며 말했다.

다행히 릴리는 탈락 후에 마음을 잘 추스른 모양이었다.

저번 날 성현이 건넨 제안 덕분인가 잠깐 생각한 성현은 이내 곧 고개를 저어 그 생각을 떨쳐냈다.

“저도 가겠습니다.”

웬일로 동참하는 천소울의 모습에 셋은 오늘 다시 한번 놀랐다.

왜 그러냐는 듯이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는 모습에 재빠르게 임하나 쪽으로 고개를 돌린 주선아였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됐다던데.

살짝 소름끼치는 생각을 한 주선아는 얼른 임하나에게 말했다.

“언니 저랑 선물 같이 고르실래요?”

“그래. 릴리씨 뭘 좋아하려나. 화장품은 이미 많겠지?”

릴리의 생일을 선물을 생각하느라 바빠진 임하나와 주선아는 아까와는 다르게 점차 시끄러워졌다.

어느새 활기를 띠며 떠드는 둘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천소울과 성현.

침울했던 분위기는 어디 가고 모두가 함께 있을 때처럼 시끌벅적한 저녁 시간이 돌아온 기분이었다.

***

이틀 후, 릴리의 생일 파티는 모던한 분위기의 레스토랑에서 열렸다.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생일 초대장을 보여준 성현은 한 테이블로 안내 받을 수 있었다.

릴리답게 레스토랑을 통째로 빌린 건지 생일 파티에 초대된 사람들 말고 다른 손님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래서 초대장이 필요했구나.’

직원의 안내를 받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가자 흩어져 있는 테이블엔 성현도 알법한 유명 너튜브 스타들이 쉽게 눈에 들어왔다.

간간이 개그맨이나 유명 연예인들의 모습도 보였다.

순식간에 다른 세상에 들어온 느낌이 들어 성현은 여기저기 두리번거렸다.

‘다들 엄청 유명인들이네.’

티비나 너튜브를 통해 봐오던 사람들이 눈앞에서 돌아다닌다니.

직원은 두리번거리는 성현을 라이브 무대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로 안내했다.

레스토랑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특등석이었다.

테이블엔 이미 도착한 멤버들이 얘기를 나누느라 정신이 없었다.

멤버들 모두 평소와 다르게 한껏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주로 트레이닝복만 입은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다들 꾸민 모습을 보니 색다르게 느껴졌다.

“잘 지냈어요?”

성현이 왔다는 것도 모르고 대화가 한창인 멤버들에게 반갑게 말을 걸자, 성현을 발견한 멤버들은 입을 딱 다물었다.

순간 놀란 모두가 말을 잃었다.

매일 밤샘 작업을 하느라 편하고 캐주얼한 옷만 입던 성현의 깔끔한 모습이 낯설었기에.

“성현씨 오늘 완전 멋있어요. 프로듀서가 아니라 연예인 같아요.”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린 임하나가 성현의 말끔한 모습에 엄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그 너스레에 성현이 피식 웃으며 자리를 잡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다른 멤버들 또한 성현의 모습을 낯설어하면서도 칭찬하기 바빴다.

“이거 릴리 언니가 사준 정장이죠? 진짜 잘 어울려요.”

“성현씨는 원래 본판이 좋아서 그런가 뭘 걸쳐도 다 잘 어울리네요.”

멤버들의 칭찬에 조금 머쓱해서 테이블에 놓인 물을 계속 들이켜는 성현.

그때, 저 멀리서 정장을 입은 다른 누군가가 이쪽으로 걸어왔다.

“쌤, 여기요!”

천소울을 발견한 주선아가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멤버들이 있는 테이블로 오는 천소울.

그가 가까워질수록 성현의 일행들은 모두가 입이 떡 벌어졌다.

평소 잘 꾸미지 않던 천소울이 옷만 말끔하게 차려입자,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에서 빛이 났다.

이래서 옷이 날개라는 소리가 있구나.

멤버들은 하나같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천소울씨는 그냥 배우 해도 되지 않을까요? 여기 있는 웬만한 연예인들보다 잘생긴 거 같아요.”

임하나는 사뭇 진지하게 말했다.

그러자 서자명이 바로 말도 안 된다며 맞받아쳤다.

“저런 음색을 가지고 있는데 배우는 무슨 배우예요. 어림도 없지.”

“아뇨! 저 얼굴을 썩히는 건 우리나라 국가적 손실이에요!”

“저 목소리를 썩히는 것도 마찬가지거든요?”

둘은 제법 진지하게 목소리냐, 얼굴이냐 하는 싸움을 이어나갔다.

은근히 요하와 주선아가 서자명과 임하나에게 붙어서 한 마디씩 보태기까지 했다.

“천소울씨 데려갈 소속사가 어딘진 몰라도 땡잡은 거예요. 저런 비주얼인데 노래까지 잘하면 끝난 거지.”

감탄어린 조은별의 말과 함께 천소울이 테이블에 도착했다.

일행들 모두가 천소울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데 천소울은 그런 시선이 익숙하다는 듯 태연하게 자리에 앉을 뿐이었다.

이런 시선을 한두 번 받아본 것이 아닌 자의 여유였다.

‘천소울을 데려갈 소속사라.’

성현은 성현 나름대로 이미 완성형에 가까운 천소울을 과연 누가 데려갈 수 있을지 생각에 잠겼다.

한창 인사를 나누랴 천소울 논쟁을 펼치랴 정신없는 일행들은 팟, 하고 꺼지는 조명에 고개를 번쩍 들어야 했다.

생일 파티의 주인공인 릴리가 라이브 무대에 오르며 모습을 드러냈다.

생일이라서 드레스를 입은 릴리는 동화에서 튀어나온 공주 뺨치는 비주얼을 자랑했다.

평소에도 예쁜 그녀였지만 생일이라 더욱 힘을 주고 꾸며서 그런지 평소보다 빛이 났다.

“저기서 더 예뻐질 수 있나 했는데 가능하구나.”

“지현아, 네가 할 말은 아니지 않니?”

릴리의 너튜브 초창기부터 팬인 서지현이 팬심을 숨기지 않고 중얼거렸다.

임하나는 어이가 없어서 웃음밖에 안 나왔다.

역시 예쁜 애들이 더 한다더니….

릴리 못지않게 예쁜 서지현이 하는 말에 임하나가 어이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서지현은 그 말에 순간 당황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다들 바쁘실 텐데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려요.”

라이브 무대에서 한참이나 격한 환호와 박수를 받은 릴리가 테이블마다 시선을 던졌다.

테이블마다 앉아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감사 인사를 하는 릴리.

몇몇 테이블과 인사를 마무리 지을 때쯤, 성현과 일행이 있는 테이블을 돌아보고는 활짝 웃었다.

릴리는 장난스럽게 목을 가다듬는 척을 하더니, 척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밴드 세션에서 갑자기 드럼 심벌즈를 두드리는 소리가 나며, 릴리가 마이크에 대고 온 매장에 울리도록 외쳤다.

“여러분 모두 주목!”

시끌시끌하던 장내가 릴리의 목소리에 조용해졌다.

“사실 오늘 이곳에 저랑 더 넥스트 슈퍼스타 오디션을 함께한 팀원들이 와있어요. 그중에 이번 본선 5라운드에 진출한 참가자분들도 계시거든요. 다들 힘내라고 박수 한 번만 보내주시겠어요?”

릴리의 말에 테이블에 있는 너튜브 스타들과 연예인들이 이쪽을 기웃거렸다.

마침내 성현의 테이블 쪽을 보고, 성현의 일행들의 얼굴을 알아본 사람들이 이내 다 함께 박수를 보냈다.

화이팅! 우승까지 가요!

응원도 함께 섞인 걸 듣고 있자니 성현의 일행들은 낯이 뜨거워져서 대충 인사라도 하기 위해 일어서야 했다.

“다시 한번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해줘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한바탕 응원이 끝나자 릴리는 마무리 멘트를 하고 마이크의 볼륨을 죽였다.

릴리의 인사가 끝이 나자 서버들이 테이블마다 음식을 서빙했다.

음식이 나오면서 본격적인 생일 파티가 시작됐다.

잔잔한 음악이 깔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마음놓고 일행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오디션은 어떻게 돼가요?”

“이번에 2차 스폰서 선택 있었는데 성현씨랑 천소울씨 인기 장난 아니에요. 여기저기서 엄청 들이대요.”

조은별의 말이 끝나자마자 임하나가 제가 더 자랑스럽다는 듯이 성현과 천소울을 가리키며 말했다.

그 말에 서자명이 관심을 보였다.

“어디 어디서 연락 왔어요?”

“그,”

“AOMD 레이팍이랑 퍼네이션 김재상, 또 아, FTT 이일호랑, 또 어디였더라. 아 몰라. 아무튼 30명 넘게 연락 왔어요. 짱이죠?”

임하나는 입을 열려는 성현을 제치고 자신의 일처럼 열심히 자랑했다.

누가보면 서자명의 물음을 기다린 사람 같았다.

성현에게 스폰 제안을 한 소속사의 이름이 줄줄이 나오자 서자명과 조은별이 놀라 눈을 크게 떴다.

“30명 넘게요?”

엄청난 스폰서 제안에 놀라는 조은별과 다르게 서지현은 당연하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마치 이런 성현 붐을 예상이라도 한 사람처럼.

“하긴. 성현씨 실력이면 30명이 많은 것도 아니죠.”

“여기서 끝이 아니에요.”

임하나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성현은 그녀의 입을 막아야 하나 순간 고민했지만, 말릴 수도 없을 것 같아 조용히 포기했다.

“왜 30명이나 되냐. 같은 소속사에서 프로듀서랑 소속 가수랑, 두 사람이 동시에 성현씨한테 스폰 제안을 했다니까요?”

“그게 가능해요?”

“네. 제가 슬쩍 봤는데 서로 자기들 조건이 더 낫다고 싸우는 거 있죠!”

“진짜예요, 성현씨?”

임하나의 말에 멤버들은 놀라서 성현에게 물었다.

성현은 도대체 그걸 다 언제 봤나 싶으면서도 조용히 입을 닫고 술잔을 기울일 뿐이었다.

“천소울씨는요? 천소울씨도 연락 많이 왔을 거 같은데.”

서지현 물음에 대신 대답한 건 주선아였다.

임하나와 마찬가지로 자기가 먼저 나서서 자랑스럽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정확히 32곳에서 연락 왔어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또박또박 뱉어진 말에 놀란 건 오히려 천소울이었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걸 주선아가 아는 것이 신기해서 묻자, 주선아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그거야 제자인 제가 다 파악하고 있어야죠.”

에헴, 소리를 내며 가슴을 펴는 주선아.

천소울은 그 대답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자 서자명은 궁금하다는 듯 성현과 천소울에게 물었다.

“그래서 어디로 갈 생각이에요? 생각해 둔 곳은 있어요?”

“성현이 형 레이팍 대표님 좋아한다 했잖아요. 그럼 AOMD도 괜찮을 것 같은데.”

“전 퍼네이션 추천이요. 글로벌 시장을 노릴 거면 김재상 대표 있는 곳으로 가는 좋지 않을까요?”

멤버들은 마치 자신들의 일처럼 진지하게 성현과 천소울의 행보에 대해 고민했다.

그런 멤버들을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는 성현.

짐짓 속내를 알 수 없는 미소였다.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천천히 고민해볼게요. 생각해 둔 계획도 있고.”

“계획이요? 무슨 계획이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 궁금해서 물었지만, 성현은 입을 다물었다.

아직 다음 라운드를 준비 중인 임하나한테까지 계획을 말해줄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에 이내 화제를 돌렸다.

“어, 저기 릴리씨 온다.”

테이블 마다 인사를 하며 성현의 테이블로 오는 릴리를 가리키자 임하나의 고개가 그쪽으로 돌아갔다.

성현이 저번에 따로 불러 계획을 설명해준 서지현, 조은별, 주영준은 남몰래 웃음을 삼켰다.

“다들 와줘서 고마워요. 식사는 입에 맞아요?”

“네. 저 이렇게 맛있는 스테이크 처음 먹어봐요.”

“다행이다. 더 시켜도 되니까 마음껏 먹고 가요. 성현씨, 제가 사준 옷 입고 왔네요. 너무 잘 어울려요.”

“사주셨는데 당연히 입어야죠. 릴리씨도 오늘 너무 예쁜데요?”

“정말요? 다행이다. 오늘 생일이라고 힘 좀 줬거든요.”

싱긋 웃으며 말하는 그녀에게선 성현이 처음 발견했을 때 느껴지던 우울함이 이제 깨끗이 사라져 있었다.

게임 속 성현이 알던 릴리처럼 밝고 유쾌하던 모습을 완벽하게 되찾았다.

“릴리씨 생일 축하드려요!”

임하나 말과 동시에 멤버들 모두 눈빛을 교환하더니 이내 화음을 맞추며 릴리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주었다.

주선아와 임하나가 준비한 서프라이즈 선물이었다.

릴리는 멤버들의 서프라이즈 노래에 놀랐다가 이내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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