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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27화 (127/273)

127화

스폰서와의 협상을 끝내고 가장 먼저 무대로 돌아온 건 주선아였다.

주선아는 협상이 시작된 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돌아왔다.

빠른 시간 내에 돌아온 그녀가 어떤 선택을 내렸을지 금방 예상할 수 있었다.

“재계약한 거죠?”

“네. 전 지금 회사에 충분히 만족해요.”

무대에 나란히 앉아 있는 성현과 천소울을 보고 살짝 놀란 주선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고 있는 큰 기획사와 스폰 계약을 맺고 있던 주선아였다.

그곳에서 전폭적인 지원과 배려를 받고 있었기에 굳이 소속사를 바꿀 필요가 없었다.

모건 때의 일 역시, 주선아와 스폰 계약을 맺고 있던 엔터의 김성민 대표가 줬던 도움이 컸다.

그때 일을 떠올려 보면 김성민 대표가 주선아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 수 있었기에 성현은 주선아의 선택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재계약을 하는 데 있어서 대화를 길게 할 것도 없었을 것이다.

이번에 무사히 본선 4라운드를 통과한 것만 놓고 봐도 주선아와 소속사 모두가 만족하는 듯했으니까.

그렇게 주선아가 돌아온지 얼마 있지 않아 돌아온 참가자는 임하나였다.

두 번째 주자가 임하나라는 건 조금 놀라웠다.

“생각보다 빨리 왔네요.”

“네. 애초에 재계약할 생각으로 갔던 자리라 일찍 끝났네요.”

임하나의 말이 조금 의아한 성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임하나와 계약한 큐빅엔터는 물론 그렇게 작은 기획사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주선아처럼 큰 기획사도 아니었기 때문.

이번 경연에서도 대놓고 대형 기획사들이 탐냈던 인재였던 임하나였다.

오늘 같은 날은 더욱 좋은 계약을 맺을 수 있었을 텐데….

그녀가 다른 제안을 뿌리치고 재계약을 한 것이 성현에겐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더 괜찮은 제안이 많이 올 수도 있을 텐데 후회 없어요?”

“네. 메이저 회사는 아니더라도 규모가 작은 만큼 저한테 더 시스템적으로 맞춰주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제가 한참 부족했을 때부터 컨택해 온 회사라 끝까지 함께 가고 싶어요.”

그녀에게 중요한 건 자신을 처음부터 믿어준 회사와의 의리.

성현의 말처럼 앞으로 더 좋은 회사에서 연락이 올 가능성이 컸지만, 임하나가 중시하는 건 조건보다는 의리였다.

물론 이번 일로 큐빅엔터 측에서 조금 더 나은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고 말이다.

‘쉽지 않을 결정이었을 텐데.’

아무리 의리를 중요시하는 사람이라도 서바이벌 오디션에서 소신을 지키는 선택을 하긴 어렵기 마련이었다.

이런 선택도 임하나다웠다.

임하나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협상을 갔던 다른 참가자들도 차례로 돌아왔다.

가장 마지막으로 돌아온 참가자는 뜻밖에도 문희진.

그녀는 1시간이란 시간을 거의 꽉 채우고 돌아왔다.

약속된 협상 시간이 모두 끝난 뒤, PD가 다시 무대로 돌아왔다.

“협상 시간이 종료되었습니다. 그럼, 재계약이 필요한 분들 호명하겠습니다.”

그는 어떤 쪽지를 쥐고 있었다.

“이성현, 천소울, 문희진 참가자.”

PD, 세 사람의 얼굴을 차례로 보며 말했다.

“세 분은 2차 스폰서 계약 이벤트에서 새로운 스폰 계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PD의 말에 성현은 놀라서 문희진 쪽을 봤다.

문희진은 성현의 시선을 느꼈음에도 쳐다도 보지 않고 PD를 응시하고 있었다.

성현과 천소울이야 원래 스폰서가 없었기 때문에 자동으로 2차 스폰서 계약 이벤트에 참여한다지만 문희진은 아니었다.

이미 스폰 계약을 맺었던 그녀가 새롭게 스폰 계약을 맺을 수 있다는 것은 원래 계약한 소속사와 협상이 결렬됐다는 말이었다.

‘지금 계약한 소속사도 나쁘진 않았을 텐데.’

과연 그녀가 원하는 조건은 뭘까.

애초에 지금까지 남은 참가자들은 전부 실력자였고 문희진도 마찬가지였다.

그녀의 실력 정도면 처음부터 나쁘지 않은 엔터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을 것이 분명했다.

‘따로 원하는 스폰서가 있는 건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성현이지만 딱히 입 밖에 내진 않았다.

문희진의 생각이 궁금하면서도 그녀와 이런 걸 물어볼 사이는 아니었다.

“지난 스폰서 이벤트와 마찬가지로 커넥트 앱을 통해 스폰 제의가 갈 것이며 결정 기간은 일주일입니다. 정해진 기간 내 마음에 드는 스폰서 중 한 곳을 선택하여 주시면 됩니다.”

스폰서에 대한 설명을 끝낸 PD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지막으로 다시 성현과 천소울을 쳐다보며 멘트를 마무리 지었다.

그 시선에서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본선 4라운드 동안 모두 수고했고 그럼 일주일 뒤 본선 5라운드에서 뵙겠습니다. 합격자 여러분 전원 해산하셔도 좋습니다.”

본선 4라운드 미션 최종 종료됐다.

성현은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무대에서 벗어났다.

임하나, 주선아는 서로의 소속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며 대기실로 향했다.

천소울은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묵묵히 뒤를 따랐다.

***

성현과 일행들이 공지까지 모두 듣고 나왔을 땐 이미 늦은 저녁, 하늘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합격자들은 삼삼오오 흩어져서 주차장이나 버스 정류장 쪽으로 향했다.

헤어지려는 성현과 일행들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건 다름 아닌 천소울이었다.

“배고픈데 저녁 먹고 헤어지죠.”

다른 이도 아니고 천소울 말에 멤버들 모두 내심 놀랐다.

임하나도 아니고, 주선아도 아니고, 천소울이 저런 말을 먼저 꺼낼 줄이야!

하지만 아무도 속내를 드러내지 않고, 아무렇지 않은 척 대화를 이어나갔다.

“근처에 백반 맛집 있는데 거기로 갈까요?”

“전 좋아요.”

“그럼 하나씨가 안내해 주세요.”

그렇게 성현, 천소울, 임하나, 주선아, 넷이 늦은 저녁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매번 떠들썩했던 일행들과의 식사 시간.

오늘은 젓가락질하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정도로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

평소 먼저 대화를 주도하던 임하나 또한 말없이 밥을 먹을 정도였다.

천소울에게 갑작스럽게 제안을 받은 탓도 있지만, 이번에도 떨어진 일행들 생각이 앞섰다.

게다가 마지막으로 무대 위에서 일행들에게 진심을 전한 요하.

임하나는 요하를 떠올리다가 다시 울컥 감정이 차올라 젓가락을 내려놓고 고개를 돌려야 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천소울이 웬일로 조용히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 음악 인생이 끝난 것도 아니고 어쩌면 더 좋은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니까 우리도 힘냅시다. 앞으로 갈 길이 멀잖아요.”

의외였다.

평소 멤버들과 사이가 각별하게 좋은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 또한 홍대 지역에서 함께 무대를 준비하고 음악을 해왔던 동료 중 한 명이었다.

천소울에게도 그들의 탈락은 크나큰 마음의 동요를 가져왔다.

하지만 지금 합격자들 앞에는 라운드가 많이 남아있었다.

지금 있는 멤버들의 멘탈이라도 지키고 싶은 천소울 나름의 위로법이었다.

그리고 천소울의 말을 들은 멤버들 모두 그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성현은 뒤이어 말을 꺼냈다.

오늘 무대 위에서 탈락자들의 소감을 들으면서 깨달은 바가 많았다.

그토록 다짐 해온 모두와 함께하는 음악, 성현은 이 목표를 포기할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맞아요. 우리가 슬퍼하고 있는 게 지금 떨어진 팀원들한테 실례일 수도 있어요. 천소울씨 말대로 탈락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인 걸 수도 있잖아요.”

성현이 천소울 말에 동의하며 말하자 임하나와 주선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남은 사람이 더욱 힘을 내야 하는 타이밍이었다.

언제까지 떨어진 멤버들만 생각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순간 울리는 성현의 커넥트 알람.

무슨 일인가 싶어 알람을 확인하니 스폰서에게 온 메시지였다.

[ AOMD – 레이팍 프로듀서 : 단순 오디션 참가자가 아닌 AOMD의 한 식구로서 이성현 참가자의 합류를 제안하고 싶네요. 대화 좀 나눠보고 싶은데 어떠세요? ]

[AOMD – 레이팍 프로듀서가 1000캐시를 보냈습니다.]

본선 4라운드가 끝난 뒤, 2차 스폰서 계약 이벤트가 시작되었다는 게 실감이 됐다.

그건 그렇고, 2차 이벤트가 열린 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스폰 제의와 함께 캐시를 보내 온 것인지.

성현은 조금 당황스러웠다.

그것도, 무려 국내 최고 힙합 레이블 중 하나인 AOMD의 수장 레이팍으로부터의 메시지.

‘아까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군.’

레이팍, 그는 성현도 평소에 굉장히 존경하던 프로듀서였기에 이번 제안이 성현에게도 굉장히 설렜다.

그 바람에 휴대폰을 보는 성현의 입꼬리가 올라가자 맞은 편에 앉은 임하나가 관심을 보였다.

“무슨 문자길래 그렇게 웃어요?”

임하나 물음에 성현은 아무 말 없이 휴대폰 화면을 내밀었다.

이내 임하나와 그 옆에 앉아 있는 주선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 지금 레이팍한테 스폰 제안 온 거예요?”

그런데 주선아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울리는 알람.

성현보다 먼저 내용을 확인한 임하나와 주선아는 다시 한번 놀랄 수밖에 없었다.

[ 퍼네이션 – 김재상 대표 : 저스트미와 함께 만든 무대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우리 퍼네이션은 이성현 참가자를 본격적으로 후원하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 퍼네이션 – 김재상 대표가 2000캐시를 보냈습니다.]

“미친. 2000?”

임하나는 퍼네이션으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을 확인하자 자신도 모르게 욕부터 나왔다.

퍼네이션의 수장인 김재상은 월드 스타로, 글로벌 시장에서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었다.

“네?”

임하나의 반응에 성현 또한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제안이 들어오네.’

이쯤 되니 스폰서들 또한 1차 스폰서 이벤트 때보다 훨씬 적극적인 구애를 한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그들이 보내오는 캐시 금액 또한 숨이 턱턱 막힐 만큼 엄청났다.

“성현씨 도대체 지금 캐시가 얼마나 돼요?”

“음, 좀 됩니다.”

“와아. 나 성현씨랑 오래도록 함께 해야겠네.”

임하나는 장난스럽게 말했지만 두 눈은 진심을 담고 있었다.

대단한 사람인 줄은 알았지만, 오늘 심사평과 스폰서 계약이 들어오는 것을 보니 새삼 성현의 능력이 실감이 된 탓.

지금까지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실력, 인지도, 화제성은 이미 검증된 상태이다.

처음 자신들이 스폰했던 참가자들이 떨어진 소속사에선 새롭게 스폰 계약을 맺을 대체자를 찾기 원했다.

그들은 전보다 더욱 공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유망주들을 다른 곳에 뺏기기 전 잽싸게 확보하기 위해서.

이를 증명하듯, 이어서 천소울 커넥트 앱도 울렸다.

“헉, 쌤도 스폰 제안 왔어요?”

주선아의 물음에 천소울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내 그 모습을 증명하듯이 그의 휴대폰은 쉬지 않고 알람이 울렸다.

천소울은 무심하게 화면을 훑으며 엄지로 휙휙 알람을 확인했다.

“설마 그거 다 스폰서한테 온 연락이에요?”

끊임없이 밀려 들어오는 알람 소리는 무서울 정도.

임하나는 그걸 듣고 설마 설마 해서 물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알람 소리만 듣고 있으면 어디서 전화 오는 소리 같았다.

천소울은 다시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둘은 알람 내용을 친절하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그걸 본 주선아와 임하나는 둘의 인기에 경악했다.

“두 분 다 어쩌실 생각이에요? 이번에도 스폰 계약 안 할 생각이에요?”

주선아는 천소울과 성현이 걱정이 되어 물어왔다.

주선아가 재계약을 위해 스폰서를 만나러 갔을 때, 들은 말이었다.

앞으로 진행될 라운드는 스폰서의 도움 없이는 정말 힘들 수도 있다고.

그 말에 성현과 천소울은 서로 얼굴을 돌아봤다.

“하아….”

그 모습을 본 임하나와 주선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둘 모두, 그런 것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듯한 초연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런 걸 보면 어쩜 저리 똑같은지, 정말 알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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