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26화 (126/273)

126화

최종 종료된 본선 4라운드.

탈락자들과 스폰서, 기획사 관계자들은 모두 무대를 떠났다.

무대엔 서울 지역 최종 합격자가 된 8명의 참가자만 남아있었다.

이성현, 임하나.

천소울, 주선아.

문희진, 이소율.

정세훈, 김태균.

8명의 참가자 중 성현을 포함한 프로듀서는 3명 나머지 5명은 가수 참가자였다.

애초에 프로듀서보다 가수 참가자가 월등히 많았기 때문에 가수 참가자의 지원자 수가 더 많은 건 당연했다.

“본선 4라운드 합격 축하드립니다. 여러분들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서울 지역 최종 8인에 들어갔으며 광주, 부산 지역을 통합한 한국의 최후 24인 안에 포함됐습니다.”

PD의 말에 합격한 참가자들의 표정이 조금 상기됐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라운드는 서울, 광주, 부산 세 지역에서 치러졌다.

서울 지역 본선 4라운드가 가장 먼저 치러졌고, 이제 곧 광주와 부산에서도 경연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수십만 명의 지원자가 몰렸던 각 지역.

이제 단 세 군데에서 각각 8명, 한국에서는 총 24명만 남게 되었다.

수십만에서 24명이 되기까지 살아남은 참가자들의 얼굴에는 희망의 빛이 가득했다.

“그럼 본선 5라운드 관련 간단한 공지사항 말씀드리겠습니다. 본선 5라운드는 일주일 후인 다음 주 토요일부터 진행되며 이전 라운드와 다르게 서울, 광주, 부산 지역 최종 합격자들이 함께 경연하는 통합라운드가 진행될 겁니다.”

통합라운드라는 말에 참가자들의 표정에 긴장감이 서렸다.

이제 지역 본선을 넘어, 한국 통합 본선이 시작되는 것.

이번 라운드는 각 지역의 에이스들만 살아남았기에, 마치 왕중왕전처럼 치열할 것이 분명했다.

상기되고 고양된 표정은 설렘, 적당한 긴장을 품고 있었다.

여기까지 올라온 참가자들은 앞으로 힘겨워질 경쟁에 맞서 다부진 얼굴들로 눈을 빛냈다.

성현 역시 여러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서울 본선도 정말 끝났구나.’

성현은 PD의 말을 듣자 비로소 실감이 났다.

막연하기만 했던 서울 지역 본선의 끝.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처음 게임 속 오디션이 현실에 등장하고, 참가를 결정한 뒤에 천소울을 비롯한 지금의 멤버들을 만났다.

본선 5라운드 진출은 막연한 목표 중 하나였는데, 지금 눈앞에 닥쳐온 것이다.

‘동료들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야.’

중간중간 등장한 변수들 때문에 처음 세웠던 계획을 수정하고 여러 가지 고비도 있었다.

결국 뜻을 함께한 동료들과 함께 음악으로 이 자리까지 왔다.

그렇기에 성현은 서울 본선을 벗어나 다음 라운드로 간다는 설레는 마음과 동시에, 여기까지 올라오는 데 도움을 주고받았던 동료들이 생각나 묘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띵, 띠링.

띠링, 띠링, 띠링.

착잡하기도 하고 설레기도 한 심정에 고개를 숙이고 있던 그때, 성현과 임하나 휴대폰이 동시에 울렸다.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멤버들에게 온 문자였다.

-조은별: 성현씨, 하나씨 합격 축하드려요! 홍대팀을 대표해서 본선 5라운드도 무조건 합격하세요!

-서지현: 항상 응원하고 있어요. 언제나처럼 좋은 무대, 즐거운 음악 해주세요!

-요하: 우승 가즈아!

멤버들의 응원 문자를 확인한 성현은 복잡한 머리를 비웠다.

그러자 곧 한 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지금 자신이 이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유일한 길.

더 좋은 음악과 무대로 보답해서 우승을 향해 한 발짝 다가가는 것이라고 다시금 굳게 마음 먹었다.

“다들 뭐야. 너무 감동이지 않아요, 성현씨?”

“그러네요.”

임하나는 방금 전 무대에서는 의연한 모습으로 눈물을 보이지 않더니 멤버들의 문자를 보고는 눈물이 그렁그렁하게 맺혔다.

성현은 그런 임하나는 보며 웃었다.

자신의 뜻을 기꺼이 따라줄 것이 분명한 임하나도 곁에 있었다.

성현은 앞으로에 대한 걱정은 털어내 버리기로 했다.

서울 본선을 벗어나면 부산, 광주 지역 최종 합격자들과 만나게 된다.

그들 모두 뛰어난 음악을 하는 참가자들이겠지만 그런 건 성현에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더욱 치열해질 경쟁 또한 별 문제 없었다.

‘그들보다 더 열심히 더 치열하게 해서, 더 뛰어난 나만의 음악을 만들면 돼.’

이번일로 성현은 이 생각을 더욱 단단하게 굳혔다.

저스트미의 말처럼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무대, 더 치열하게 준비한 무대일수록 심사위원들은 환호했고, 평가 역시 좋았다.

자신의 노래를 얼른 더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것저것 준비하기는 해야겠지만….’

그렇게 앞으로 있을 본선 5라운드와, 그 다음 라운드에 대한 다짐까지 하는 성현.

어딘가로 긴밀하게 연락을 주고 받던 메인PD는 또 하나의 공지를 했다.

“여길 주목해주십시오. 마지막으로 중요한 공지 사항 하나가 더 있습니다.”

PD의 말에 참가자들은 뭐가 더 있나 싶어서 긴장하여 그를 쳐다봤다.

그가 이미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는 성현만이 심드렁한 표정을 짓고 있을뿐.

“본선 5라운드 전 여러분들에게 2차로 스폰서를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겁니다.”

바로 2차 스폰서 선택.

“2차?”

“하긴… 우리 인지도도 더 올라갔으니까.”

합격자들은 저들끼리 소곤거리며 좋아라했다.

2차 스폰서 선택은 기존 스폰서와 계속 계약을 할지 아니면 새로운 스폰서들의 제안을 받을지를 결정하는 시간이었다.

힐긋.

성현은 저번 스폰 계약 기간을 떠올렸다.

많은 소속사에게서 연락이 왔었지만, 성현은 아무하고도 계약하지 않았다.

앞으로 펼쳐진 라운드는 스폰서의 유무가 당락을 좌우할 수도 있었다.

이번에는 어떻게 할까….

그 와중에 천소울과 눈이 마주쳤다.

‘아,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지, 참.’

“현재 스폰서와 재계약을 할 건지, 다른 스폰서와 새로운 계약을 맺을지는 전적으로 참가자분들에게 달렸습니다. 현재 계약을 맺고 있는 스폰서들에게 우선 협상권이 주어지며 지금부터 1시간 동안 여러분들의 스폰서 분들과 협상이 진행될 겁니다.”

기존에 스폰 계약을 맺었던 스폰서들에게 먼저 재계약 제안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지금껏 스폰해준 게 있으니, 기존 스폰서들에게 우선협상권이 있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지금?”

“오늘 결정해야 되는 겁니까?”

그러나 갑작스러운 소속사 대표와의 미팅 자리에 참가자들은 당황했다.

누구와 스폰서 계약을 맺을지 설레하던 참가자들마저 대표와의 면담은 부담스러운 듯했다.

지금까지 커넥트 앱이나 개인 연락처를 통해서만 연락을 해오던 이들과 얼굴을 마주하고 제대로 된 협상을 하게 된 것이기에 당연한 반응이었다.

혹시나 하고 다른 소속사의 제안을 기대하고 있던 참가자들은 고민이 깊어지는지 말이 없어졌다.

“지금 바로 하는 건가요?”

“네. 스폰 계약을 맺은 참가자들만 진행요원을 따라 이동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PD 말에 참가자들은 모두 진행요원을 따라 나갔다.

하나 둘 따라나가는 참가자들 뒤로 임하나와 주선아 역시 손을 흔들어 보이고 스튜디오를 벗어났다.

“저 다녀올게요.”

스폰서가 없는 성현과 천소울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 모두가 진행요원을 따라 미팅장으로 이동하자 무대에는 성현과 천소울 그리고 메인PD만 남겨졌다.

메인 PD는 덩그러니 남은 두 참가자들에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스폰서가 없는 참가자들 또한 이번에 새롭게 스폰서 계약을 맺을 수 있으니 이번만큼은 신중하게 선택해주시길 바랍니다.”

PD 또한 성현과 천소울이 스폰서 계약을 맺지 않은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이 다음번에도 스폰 선택을 하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된 그가 저도 모르게 덧붙인 말이었다.

‘앞으로 더 힘들어질 수 있겠지.’

시청률을 신경 써야 하는 PD 입장에서도 현재 서울 지역에서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인 성현과 천소울이 스폰서가 없다는 건 신경 쓰이는 일이었다.

실력이 아니라 지원을 받지 못해 떨어지는 그림은 주최 측 입장에서도 결코 좋지 않았다.

그 말을 끝으로 무대에서 내려간 PD 뒤로 카메라맨을 비롯한 스탭들도 모두 휴식 시간을 가졌다.

무거운 카메라를 내리고 어깨를 돌리거나 종종 걸음으로 스튜디오를 나가는 스탭들의 모습을 본 성현은 그 중 한 사람에게 물었다.

“그냥 여기서 대기하면 되는 건가요?”

“나가셔도 되고 1시간 안에만 다시 복귀하시면 돼요.”

둘만 두고 나가는 게 맞나 싶어서 던진 질문이었다.

성현의 물음에 스탭 또한 이런 일을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 눈을 굴리다가 그냥 무작정 대기하란 말만 전했다.

애초에 여기까지 살아남은 참가자 중 두 명이나 스폰서 없는 게 이상한 일이었다.

주최 측에서도 이런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을 정도.

따라서 진행하는 스탭들도 어떻게 대응할지 알 리가 없었다.

모두가 떠난 뒤, 성현과 천소울만 달랑 남게 됐다.

성현은 말없이 무대 끝에 걸터앉아 심사위원석을 바라보는데, 뜻밖에도 천소울이 그 옆에 와서 앉았다.

한동안 말없이 텅 빈 심사위원석 보는 성현과 천소울.

성현은 이내 천소울을 쳐다보며 못내 궁금했던 것을 캐물었다.

“천소울씨는 왜 스폰서 선택 안 했어요?”

“내가 원하는 음악 하고 싶어서요. 관리를 명목으로 아티스트 옭아매는 건 지겹습니다.”

지긋지긋하다는 듯한 천소울의 어투는 퉁명스러웠다.

그 말을 들은 성현은 순간 과거 모건과의 일을 떠올리며 술에 취한 그가 했던 말들을 기억해냈다.

‘소속사랑 문제가 있었던 건 확실한 것 같네.’

자세히는 알 수 없지만, 확실히 천소울은 과거 소속사나 프로듀서와 있었던 모종의 사건 때문에 혼자서 음악 하기를 고집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파고들고 싶지는 않았다.

그럴 생각도 없고.

자신의 대답을 들은 성현의 침묵이 길어지자 이번엔 천소울이 입을 뗐다.

“이성현씨는 왜 스폰서 선택 안 한 겁니까?”

“저도 제가 원하는 음악 하고 싶어서요.”

단순하기 그지없는 대답.

성현 또한 천소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누군가 짜둔 판 대로 움직이기 보다 스스로 판을 짜는 걸 즐기는 성현으로서는 당연한 선택이었기에.

“천소울씨도 아직 스폰 계약할 생각 없어요?”

“없습니다.”

“그럼 서로 원하는 음악 하고 싶은 사람들끼리 같이 음악 하는 건 어때요?”

흘러가듯 던져진 성현의 물음에 천소울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를 쳐다봤다.

다소 뜬금없는 말에 천소울의 미간이 찌푸려져 있었다.

“그게 무슨 뜻입니까? 계약을 맺자고 하는 건가요?”

천소울 물음에 성현은 쉬이 대답하지 않고 고개만 가로저었다.

저도 모르게 속마음이 새어 나오고 말았다.

‘아직은 밝힐 때가 아니겠지.’

좀 더 준비가 됐을 때까지 기다려 보자는 결론을 내린 성현.

처음 만났을 때보다 천소울이 이쪽에 마음을 연 것 같기는 하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럴 때 섣불리 일을 진행해서는 안 되었다.

더군다나 상대는 그 천소울.

미심쩍게 이쪽을 바라보는 천소울을 확인하고 성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을 돌렸다.

“그냥 해본 말이에요. 다음 라운드에서 우리가 팀이 될 수도 있는 거잖아요. 그걸 염두에 둔거죠. 별 말 아닙니다.”

성현이 웃으며 넘기자 천소울도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다시 앞을 봤다.

성현은 그런 천소울을 힐긋거리며 그가 이번에도 스폰 계약을 맺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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