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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25화 (125/273)

125화

대기실에서 성현과 임하나의 마지막 무대를 지켜본 참가자들 역시 박수를 보냈다.

30표라는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성현과 임하나의 무대를 직접 두 눈으로 봤기에.

감각적인 편곡과 매력적인 보컬, 두 사람의 완벽한 하모니와 무대 퍼포먼스까지 완벽하기만 했다.

“2주 만에 저 정도 실력이 나올 수가 있구나. 재능은 재능이네.”

주선아는 임하나가 보여준 퍼포먼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건 다른 참가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랩하는데 음정 딱딱 맞추는 것도 대단한데 박자감이 미쳤더라.”

“발성이 좋아서 그런가. 오늘 무대만 보면 그냥 래퍼던데.”

임하나가 보여준 새로운 모습에 감탄하는 참가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자기들끼리 의견을 나누던 그들은 조용히 있던 주선아와 천소울 쪽을 힐끗 봤다.

“두 사람은 오늘 무대 어땠어요?”

성현과 임하나는 유일하게 천소울과 주선아 팀보다 더 많은 표를 받은 팀이었다.

더 볼 것도 없이 천소울과 주선아의 무대가 1등을 할 거라고 생각한 참가자들은 그들의 평가가 궁금하기만 했다.

“유원열 대표님 심사평과 같습니다. 편곡도 좋았지만, 지금의 임하나를 만든 건 프로듀서 이성현씨니까요.”

어쨌든 무대에서 가장 빛나는 건 가수가 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대기실에서 나오는 소리만 들어도 참가자들의 관심 또한 상대적으로 프로듀서인 성현보다 임하나에게 쏠려 있었다.

다만 천소울의 생각은 달랐다.

천소울이 주목한 것은 프로듀서 이성현의 능력.

단, 2주만에 임하나의 새로운 재능을 끌어내고 이것을 무대에서 폭발시킨 그 무시무시한 능력이었다.

“지금 같은 성장세라면 유원열 대표님 말처럼 조만간 현장에서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천소울의 극찬에 참가자들 모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중에 프로듀서 참가자들은 더욱 얼굴을 굳히고 방금 성현의 무대를 조용히 반추하고 있었다.

그의 말처럼 이번 무대를 구성하고 무대를 조율한 건 프로듀서인 이성현.

그 누구도 임하나가 랩에 재능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을 때, 그걸 가장 먼저 알아챈 것도 그였다.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지금까지 보던 시각을 바꾸고 수군거렸다.

다른 심사위원들도 아니고 천소울이 뱉은 말 한마디의 여파였다.

“이성현씨 잘하지. 안목도 좋고.”

“그 사람이야 원래 잘하는 걸로 유명했잖아. 더 비기너 영상으로 얼굴 알려지기도 했고.”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 이제 성현에 대한 칭찬을 이어가기까지 했다.

그때 천소울이 갑자기 일어나더니 누군가에게로 걸어갔다.

요하였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요하는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성현의 팀이 1등을 하게 되면서 서자명과 자신은 자연스럽게 최종 탈락이 확정됐기 때문.

아슬아슬하게 4등을 유지하고 있던 요하와 서자명은 성현의 1등으로 합격권 밖으로 밀려나게 되었다.

“고개 들어도 돼. 지금 네 재능이면 나가도 여기저기 소속사에서 영입 제안 올 거고 어쩌면 데뷔도 곧 할 수도 있어. 음악, 계속할 수 있다고.”

“형…?”

“이번 일로 모든 게 끝이라고 생각할 필요 없다고.”

천소울의 말에 요하는 놀란 듯 그를 쳐다봤다.

원래 다정한 말을 자주 하는 천소울이 아니었지만, 툭 던져진 그의 말에서 진심이 묻어나왔기 때문이다.

요하는 짧은 말을 끝으로 다시 자리로 돌아가는 천소울의 뒷모습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별거 아닌 듯한 그 말에 요하는 꽤나 위로를 받은 듯 우울한 얼굴을 풀고 생각에 잠겼다.

***

“마무리 촬영 들어갑니다. 참가자들 대기시켜 주세요.”

본선 4라운드 무대가 모두 끝이 나자 오늘 공연한 모든 참가자들이 스튜디오 무대 위로 올라야 했다.

오늘의 본선 4라운드를 마무리하는 촬영만이 남겨진 상태.

“참가자 전원 무대로 올라가 주시길 바랍니다.”

진행요원의 말에 각자 멀찍이 떨어져서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다 함께 무대로 향했다.

MC는 모두가 모인 앞에서 오늘의 결과를 다시 한번 발표했다.

“다들 오늘 너무 고생 많으셨어요. 저도 오늘 여러분들 보고 많이 배워 갑니다. 아, 이렇게 해야지 유원열 심사위원님한테 칭찬을 받을 수 있구나를 확실히 알겠더라구요.”

끝까지 유원열을 물고 넘어지는 엠씨의 말에 유원열은 웃으며 마이크를 잡았다.

그 모습을 보고 눈을 반짝이는 엠씨의 모습에 다른 심사위원들도 웃음을 터트렸다.

“그래, 한 번 들어나 보자. 어떻게 하면 되는데요?”

“이성현 참가자처럼만 하면 되지 않을까.”

“정답입니다. 그런데.”

유원열은 표정을 살짝 진지하게 바꾸더니 엠씨에게 물었다.

“과연 안다고 할 수 있을까요?”

“워오.”

유원열 말에 문지운은 재밌다는 듯 웃었고, 다른 심사위원들 또한 이 상황을 지켜보며 웃었다.

무대에 올라있던 참가자들은 유원열의 말에 한 방 맞은 듯 쓰게 웃는 모습을 보였다.

성현은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극찬에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가고 있었다.

임하나 역시 여보라는 듯이 성현을 팔꿈치로 툭툭 건드렸다.

“대표님, 방금 그 말은 무슨 뜻이죠?”

“노코멘트하겠습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마무리한 유원열은 얼른 마이크 내려놓았고, 짐짓 인상을 쓰던 엠씨도 본선 4라운드 진행을 이어나갔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4라운드 최종 미션 결과 발표하겠습니다.”

엠씨의 말과 동시에 합격한 팀의 이름과 탈락자들의 투표수가 공개됐다.

참가자들 모두가 스크린을 주목했다.

[합격팀]

1등. 이성현, 임하나 팀 30표

2등. 천소울, 주선아 팀 29표

3등. 문희성, 이소율 팀 24표

4등. 정세훈, 김희성 팀 23표

[탈락팀]

5등. 김요하, 서자명 팀 22표

6등. 유지영, 김수빈 팀 21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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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등 정세훈, 김희성 팀까지만 다음 라운드에 진출권을 얻었으며. 5등 김요하, 서자명 팀 아래로는...... 아쉽지만 전원 탈락입니다.”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다.

예선전에서부터 본선 4라운드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이들의 시원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가득 담긴 한숨 소리였다.

참가자들 또한 이미 결과를 알고 있었기 또한 딱히 극적으로 슬퍼하진 않았지만, 엠씨의 확인사살에 몇몇 참가자들은 다시 참았던 눈물을 터트렸다.

무대 위는 웃음보다 울음으로 가득 찼다.

“…….”

촬영에 앞서 이미 자리를 정해놨기에, 성현은 요하와 서자명을 바라볼 뿐 다가갈 순 없었다.

서자명과 요하는 살짝 넋이 나가 있었고 둘 다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울지 않고 의연한 모습이었다.

성현에게 우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은지 계속 꾹 참고 있는 모양새였다.

하지만 부은 두 눈 때문에, 이미 많이 울었다는 것을 숨기기는 힘들었다.

“저도 오디션 프로그램을 해봐서 아는데 이 순간이 참 힘들거든요. 이렇게 했으면 붙었을까 저렇게 했으면 붙었을까 온갖 후회가 다 들어요. 그래도 한 번 떨어져 봤던 오디션 선배로서 말씀드리는데 훌훌 털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어요. 계속 음악 할 거잖아요. 그렇죠?”

엠씨의 말에 참가자들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탈락한 참가자분들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고생 많았고 그냥 가기 아쉬우니까 마지막으로 영상 편지 하나씩 보내고 가시죠.”

엠씨는 탈락자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마디씩 할 수 있는 기회를 줬다.

갑작스러운 엠씨의 말에 당황하던 참가자들은 곧 차례로 영상편지를 남겼다.

“청아 선배님 연습했던 것보다 못해서 너무 죄송하고 다음번에 기회 있으면 또 같이 무대 준비하고 싶어요. 엄마 아빠 사랑해요.”

“오늘 저 떨어뜨린 심사위원분들 전 오늘 여기서 떨어졌지만 나가서 더 열심히 해서 꼭 가수 데뷔할 거니까 꼭 지켜봐 주세요. 너무 좋은 무대 함께 만들어주신 리 지 선배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아쉬움과 감사함을 담은 편지, 패기 넘치는 참가자의 선전포고 등등.

다양한 영상 편지가 참가자들에게서 흘러나왔다.

합격한 네 팀의 참가자들은 묵묵히 그런 이들의 마지막 진심을 들으며 서 있었다.

자신들이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은연중에 느껴졌다.

누군가의 꿈이었고, 누군가의 소원이었다.

이루지 못한 부모님의 꿈을 짊어진 사람도 있었고, 차마 잊지 못하는 누군가를 기리기 위해 음악을 하노라 하는 참가자도 있었다.

성현은 영상편지의 내용 하나하나도 심사평을 듣듯이 주의 깊게 들었다.

언젠가 성현이 자신의 음악을 모든 이들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이들의 바람을 잊고 싶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안타깝게 5등으로 탈락하게 된 김요하, 서자명 팀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습니다.”

마침내 돌아온 요하의 차례.

마이크를 잡은 요하는 한동안 무슨 말을 할지 몰라서 머뭇거리다가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성현을 힐끗 보며 입을 뗐다.

“성현이 형.”

예상치 못했던 물음에 성현은 놀라서 요하가 서 있는 쪽을 바라봤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심사위원들은 몸을 앞으로 내밀며 호기심에 가득 찬 눈을 빛냈다.

PD 역시 재빨리 카메라맨에게 지시해 성현과 요하를 집중적으로 마크해 둘의 모습을 담아냈다.

“예선부터 저 챙겨주시고 처음으로 저한테 재능있다고 해줘서 고마워요. 형 그 말 때문에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 형은 제가 만난 가장 좋은 사람이고 좋은 프로듀서예요. 항상 좋은 말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성현이 형, 하나 누나, 천소울 쌤, 선아 누나 오늘 합격 축하드려요.”

끝으로 갈수록 울먹이는 소리에 흐려지는 요하의 목소리.

성현은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감정을 몰려와 무대 위 천장을 쳐다봐야 했다.

요하는 끝까지 성현을 똑바로 보지 못하고 앞만 보고 마지막 말을 끝냈다.

곧이어 다음 참가자의 차례가 왔는데 요하가 다급하게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저! 한마디만 더 해도 될까요?”

요하의 다급한 모습에 엠씨는 귀엽다는 듯 알겠다고 허락했다.

가슴 뭉클해지는 영상편지를 남겨준 어린 참가자에게 주는 작은 보답이기도 했다.

다시 한번 주어진 기회에 요하는 속사포처럼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은별 누나, 지현이 누나, 릴리 누나, 자명이 형, 영준이 형 그동안 함께 음악해서 너무 즐거웠어요. 우리 다시 또 만나서 같이 음악 해요.”

요하는 떨어진 멤버들까지 잊지 않고 인사를 건넸다.

서자명은 참지 못하고 다시 눈물이 터졌는지 팔뚝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입술을 꽉 깨물고 있었다.

같이 음악 하자는 말을 하면서 점차 씩씩해진 요하는 성현과 서자명, 임하나를 돌아보며 밝게 웃기까지 했다.

‘같이.’

성현은 요하의 말을 들으며 무언가가 울컥 솟구치는 것을 참기 힘들었다.

예상치 못한 감정에 성현 스스로도 당황스러웠다.

이런 감정을 오디션에서 겪을 수 있을지 몰랐다.

예선 때부터 봐왔고 프로듀싱했던 요하의 탈락은 다른 멤버들의 탈락에 비해 유독 성현에게 아프게 다가왔다.

성현은 다시금 다짐했다.

떨어진 멤버들의 응원에 보답하는 길은 역시 딱 하나라는 생각을 다시금 마음에 새겼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음악으로 보답하는 것뿐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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