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22화 (122/273)

122화

“이번 무대는 천소울, 주선아 참가자가 준비했다고 하는데 함께 준비하는 가수가 어마무시하네요. 국내 최고의 보컬리스트 김재한 선배님입니다!”

MC의 소개 멘트와 함께 천소울, 주선아의 얼굴과 가수 김재한의 얼굴이 스크린에 떠올랐다.

천소울, 주선아와 함께 무대에 오를 가수는 김재한.

보컬리스트로 이미 역대급이란 소릴 듣는 그의 등장에 심사위원석에 있는 엔터 관계자들 또한 술렁거렸다.

심사위원에 앉아 있는 이들에게도 대하기 어려운 대선배라는 칭호를 가진 가수였다.

바로 이전 무대에서 독설을 퍼부었던 문지운은 나서서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김재한 선배님께서 이번 오디션에 참가했단 소식을 미리 들어서 알고는 있었는데 진짜네요. 이번 무대를 준비하는 참가자들한테 김재한 선배님과의 콜라보가 독이 될지 약이 될지는 두고 봐야 알 것 같습니다.”

문지운의 말에 대기실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성현이 그의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김재한이란 가수가 지니고 있는 보컬리스트로서의 상징성, 무대 장악력, 보컬 실력, 퍼포먼스가 너무나 압도적이었기에 자칫하면 앞선 무대처럼 가수와 실력이 비교되면서 오히려 참가자의 실력이 뒤떨어져 보일 것을 염려하는 말이었다.

‘잘할 거야. 천소울이니까.’

성현은 천소울의 실력을 믿기에 그가 이번 무대를 훌륭하게 해낼 거라 생각했다.

이런 생각도 잠시, 이번 무대에서 떨어지면 이번 오디션에서 두 번 다시 그를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조금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성현은 그렇게 기대반 걱정반의 심정으로 조마조마하게 무대를 지켜봤다.

무대가 암전되고, 이내 무대에 주선아와 천소울, 김재한이 올랐다.

센터는 주선아. 주선아 오른쪽으로 천소을, 왼쪽에는 김재한이 위치했다.

세 사람은 덤덤한 표정으로 심사위원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주선아와 천소울은 그다지 긴장되어 보이지도 않았다.

편안하게 두 팔을 늘어뜨린 그들은 스탭들에게 신호를 보내 노래를 시작했다.

천소울이 이번 무대를 위해 준비한 곡은 김재한의 별 헤는 밤이었다.

명곡 중의 명곡으로 소문난 노래를 당사자인 가수와 함께 서는 무대.

천소울의 배짱이 그대로 드러나는 선곡이었다.

‘주선아씨 파트가 제일 궁금해. 어떻게 녹여냈을까.’

잔잔하기 그지없는 반주가 흘러나왔다.

원곡을 크게 뒤바꾼 편곡은 아닌 듯했다.

김재한은 남자 솔로 가수였다.

성현은 천소울이 그의 곡에 여성 보컬인 주선아 파트를 어떻게 녹여냈을까 궁금했는데 보컬이 시작되는 순간, 그 궁금증을 풀 수 있었다.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이 봄으로 가득 차 있어요.”

주선아의 맑은 목소리가 첫 소절을 내뱉고 이어서 천소울과 김재한이 그 위로 화음을 얹었다.

인트로부터 세 사람의 목소리가 완벽하게 하모니를 이루어 내며 탄성을 자아냈다.

화려한 편곡은 아니었지만 천소울과 주선아, 김재한의 음색이 이미 충분히 화려했기에 여기에 무언가 하나라도 얹으면 조잡스러울 뻔한 무대.

두고 보겠다고 했던 문지운은 주선아의 첫소절만 듣고 황홀하다는 표정이 되었다.

거기에 천소울과 김재한의 목소리까지 더해졌을 땐 입을 벌리며 노래를 들었다.

다른 심사위원의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프로듀서는 이미 평가하고 말고의 경지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편안하게 기대어 앉아서 눈을 감고 곡을 감상하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여성 보컬만 추가했는데 섬세함이 극대화됐어. 가장 훌륭한 악기는 목소리라는 걸 이렇게 증명해버리네.’

성현 또한 천소울의 무대를 감동하여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편곡 자체에 화려함은 없었지만, 오직 목소리 하나만으로 풍부한 감정을 표현해냈다.

그 어떤 악기보다 풍성하게 무대를 채우는 목소리는 세 명에게서 끊임없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게다가 천소울과 주선아, 둘 다 김재한이란 엄청난 보컬리스트와 함께하면서도 존재감이 잃지 않았고 오히려 자신들만의 보컬 특색을 살리는 모습까지 보였다.

1절은 빠르게 흘렀고 마침내 2절 클라이막스.

“별 헤는 밤, 그 밤에는 당신과의 추억이 우리의 사랑이 우리의 이별이.”

클라이막스를 맡은 천소울과 김재한의 하모니에 심사위원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입을 떡 벌리고 넋이 나가 무대를 지켜봤다.

그리고 이는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도 마찬가지.

참가자들 대부분이 경쟁자에 대한 질투라기보다 순수한 감탄만이 묻어나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요하야, 선아가 없는 말 한 건 아닌가 보다. 진짜 엄청난 무대네.”

임하나는 스크린에서 눈을 떼지 못하며 요하에게 말했고, 요하도 둘의 무대에 압도된 듯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한 채 스크린을 쳐다봤다.

그렇게 무대가 끝났을 때 투표를 위한 30초의 시간.

그 짧은 시간이 흐른 뒤에도 심사위원석에 있는 사람들 모두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특별한 제스처나 말도 없이 정지된 상태.

하지만 그들의 표정만 보고도 그들이 이번 무대를 어떻게 봤는지 알 수 있었다.

감동, 감격, 소름으로 상기되어 있는 그들의 표정은 이번 경연의 최고의 볼거리로 남을 것이 분명했다.

“투표 결과 나왔다고 합니다. 심사평을 듣고 결과를 발표할까요, 아니면 결과 발표를 먼저 할까요.”

MC의 말에 레이팍이 제일 먼저 정신을 차리고 마이크를 들었다.

“뭘 망설이고 그러세요. 투표 결과가 심사평일 것 같은데 공개 먼저 하죠.”

유원열 역시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참고로 이번 무대는 30초가 길었던 것 같습니다.”

“대표님이 탈락시켰던 제 무대처럼요?”

“아니, 무슨 말을 못 하겠어.”

기다렸다는 듯이 이어지는 MC의 서운한 물음에 유원열은 다시 당황하여 손을 저으며 마이크를 내려놓고, MC는 재밌다는 듯 웃었다.

MC는 무대 아래 스탭의 신호를 확인 하고, 한쪽 손을 번쩍 치켜들어 스크린을 가리켰다.

“그럼 두 번째 팀 투표 결과 공개하겠습니다!”

MC의 말과 동시에 무대 뒤로 스크린에 투표수가 공개됐다.

투표수를 확인하고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놀라지 않는 초연한 모습의 심사위원들.

반면에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은 모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29표.

과반수를 넘지 못했던 전 팀과 확연히 비교되는 결과였다.

심사위원들 중에서 딱 한 표만 못 얻게 된 충격적인 결과.

“와, 두 번째 무대에서 이러면 나머지 사람들 어떡하라고….”

대기실에서 한 참가자의 말에 다른 참가자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어지는 호평 일색의 심사평.

“개인적으로 문지운 대표님 심사평이 가장 궁금해요. 독이 될지 약이 될지 두고 보겠다고 하셨는데 어떠셨나요?”

MC는 투표수를 확인하고 놀란 마음을 숨기지 않았다.

뒤이어 무대가 시작되기 전 으름장을 놓았던 문지운을 호출했다.

이름이 불린 문지운이 마이크를 들자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 모두 숨을 죽이며 그의 심사평을 기다렸다.

“독도 약도 아니고 그냥 그 자체로 완벽한 무대를 보여준 것 같습니다. 사실 김재한이란 엄청난 대선배와 무대를 하면 기죽기 마련인데 그런 것도 전혀 없었고 본인들만의 멋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감히 말씀드리지만 원곡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완벽했습니다.”

문지운의 극찬에 MC는 놀란 표정을 짓고 대기실서 이를 지켜보던 참가자들도 술렁거렸다.

평소 독설을 퍼붓는 그의 입에서 나올 수 있을 만한 말이 아니었다.

그 말에 함께 무대에 올라있던 김재한마저 고개를 끄덕이며 주선아와 천소울에게 박수를 보냈다.

함께하는 가수에게 인정받은 참가자.

그것도 대선배에게 인정받는 모습에 대기실에 있던 참가자들은 조용히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그저 부럽다는 생각뿐, 이제 경쟁심을 느낄 수도 없었다.

“원곡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다라. 사실 우리 원곡자인 김재한 선배님의 생각은 다를 수가 있거든요. 어떠신가요? 동의하시나요?”

MC의 말에 무대에 서 있던 김재한 또한 마이크를 든다.

“동의합니다. 둘 중 뭐가 낫다라고 비교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두 참가자가 덕분에 저 또한 오랜만에 긴장하면서 무대 준비했던 것 같고 신선한 자극이 많이 됐던 것 같습니다.”

이어지는 직접적인 김재한의 칭찬에 심사위원석에 있는 사람들 또한 놀랐다.

마지막까지 안 누른 한 명이 누구냐고 장난스럽게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말에 문지운은 마이크를 들어 심사평을 이어갔다.

“사실 전 비트도 화려한 걸 선호하는 편이고 무대도 멋있는 걸 좋아하는데 이번 무대를 보고 가치관이 흔들릴 뻔했습니다. 화려한 무대 장치나 연출 없이 목소리만으로도 이렇게 음악이 충만해질 수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두 분 5라운드 진출 축하드립니다.”

“아니 문지운 대표님, 아직 8팀이 더 남았는데 벌써 5라운드 진출을 말씀하시면 어떡합니까.”

MC가 당황해서 말하는데 문지운은 한 손을 들어 이미 끝났다는 듯한 제스처를 보여줬다.

그리고 이 상황을 화면을 통해 보고 있던 성현 또한, 문지운의 말처럼 천소울이 본선 5라운드에 진출할 거란 걸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정도로 천소울이 준비한 무대는 엄청났고, 오히려 투표하지 않은 한 개의 엔터가 어디일지가 궁금했다.

“천소울 참가자는 음색이 죽이네요. 떨어지면 저희 회사 들어오시면 될 것 같습니다.”

“아이, 왜 그러세요. 벌써 작업 들어가면 안 되죠. 천소울 참가자 끝나고 잠깐 저랑 얘기 좀.”

레이팍으로 시작하여 스폰서들은 너도나도 천소울을 데려가겠다고 나섰다.

이쯤되자 더 이상 참가자들 사이의 경쟁은 무의미했다.

“워워, 여러분. 지금 여기서 캐스팅하시면 좀 곤란합니다. 그런 말은 천소울씨가 우승이라도 한 다음에 하시죠.”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소속사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나려 하자, MC가 그들을 말리며 진정시켰다.

대기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는 성현은 그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어떤 프로듀서라도 탐낼 수밖에 없는 목소리니까.’

김재한, 주선아 역시 훌륭했지만, 그중에서도 천소울의 목소리는 압도적으로 튀었다.

이쪽 업계에 잔뼈가 굵은 소속사 대표들과 프로듀서들이 그걸 놓칠 리가 없었다.

성현 또한 천소울의 모든 것 중에서 목소리를 가장 마음에 들어 했다.

어디에서도 다시는 만나지 못할 목소리.

지난 2년 동안 성현의 목적지가 되어준 목소리이기도 했다.

그렇게 천소울과 주선아는 성공적으로 무대를 끝냈고,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직 두 번째 무대라지만, 29표라면 이번 라운드 통과 가능성이 이미 상당히 높았다.

“우리도 저런 칭찬 듣고 올라가면 좋겠다.”

임하나는 여운에 잠긴 표정으로 천소울의 무대가 부럽다는 듯이 말했다.

성현은 그런 임하나와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누구나 탐내는 천소울을 이제와서 다른 프로듀서나 소속사에게 뺏길 수 없었다.

천소울을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 역시 천소울과 같은 곳으로 높이 올라가야만 했다.

“우리도 올라갈 거예요. 무조건.”

천소울과 함께하기 위해 남은 건 이제 성현 본인이 통과하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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