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21화 (121/273)

121화

‘더 넥스트 슈퍼스타’에 스폰서로 참가한 한국의 굵직한 소속사.

그들 모두가 오늘 한자리에 모이게 됐다.

이들은 하나같이 말 그대로 전국민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는 슈퍼스타들이었다.

젊은 날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소속사 대표들.

빌보드 차트에 입성했다가 금의환향한 스타들.

손만 댔다 하면 대박이 터진다는 프로듀서들.

오늘 그들이 본선 4라운드의 심사위원이었다.

참가자들의 격한 환호를 받으며 입장한 그들은 무대 앞에 마련된 여러 개의 심사위원석으로 이동해 앉았다.

TM의 소속 가수이자 프로듀서 백영현.

AMOD의 대표이자 프로듀서 레이팍.

안단테 뮤직의 소속 가수와 프로듀서 유원열.

퍼네이션의 소속 프로듀서 김재상.

이들을 비롯한 총 30개 엔터에서 칠십 명이 훌쩍 넘는 대인원이 심사위원석에 자리해 무대를 지켜볼 예정.

참가자들은 말로만 듣던 실제 소속사 대표 스타들을 눈앞에서 보니 흥분감을 숨기지 못했다.

“헐. 레이팍이다.”

“설마 저 뒤에 유원열이야? 아, 나 안단테 들어가려다 떨어졌는데.”

“비아 언니도 왔어! 언니! 사랑해요!”

각자가 흥미를 가지고 있던 소속사의 대표인물들의 얼굴을 확인하려는 참가자들의 모습은 오디션 참가자들이라기보다 열성 팬 같아 보이기도 했다.

심사위원들은 각자가 받는 환호성이 당연하다는 듯이 손을 흔들거나 묵례를 하는 식으로 답하며 자리에 앉았다.

성현 또한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심사위원석에 앉은 대표 인물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그중엔 성현에게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왔던 엔터 스폰서들도 있었다.

‘FTT 이일호 실장님도 오셨네.’

FTT 이일호 실장은 성현과 더 비기너가 함께 했던 무대를 인상 깊게 봐서 캐시까지 보내준 인물이었다.

이 자리에서 막상 그의 얼굴을 실제로 보니 조금 신기했다.

FTT뿐만 아니라 드로잉 사운드의 김원 프로듀서, SH 레코딩의 최성림 대표, U&I 엔터테이먼트 전주민 실장 등 성현에게 캐시와 함께 스폰 제의를 해온 수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그들 모두 현 한국 음악계를 이끄는 장본인들.

그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심사를 위해 이곳까지 발걸음했다는 사실에 참가자들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는 평범한 오디션 서바이벌이 아니며 그 규모 또한 역대급이란 사실을.

“오늘 여기서 눈도장 제대로 찍고 AMOD 들어간다.”

“난 합격해서 안단테 후회하게 만들 거야.”

“그러다 영입 제안 오면 바로 오케이 할 거면서.”

“당연하지.”

이미 본선 4라운드보다 각각의 소속사에 눈독을 들이는 이들도 있었다.

어차피 글로벌 오디션에서 1등을 차지하기 힘들다면 굴지의 한국 엔터 기획사에 좋은 조건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았으니까.

그만큼 참가자들 모두 이번 라운드에서 자신들의 모든 걸 쏟겠다고 다짐했다.

이는 성현도 마찬가지였다.

유명 소속사에 눈도장을 찍겠다는 다른 참가자들의 의도와는 조금 다른 이유였지만.

“하나씨 너무 설레지 않아요?”

“설레는데 긴장되고 모르겠어요.”

임하나는 아직도 떨림이 가시지 않았는지 긴장된 표정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성현의 말대로 설레기도 하는지 복잡한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빛을 하고 있었다.

“하나씨의 숨겨진 끼 이번에 제대로 폭발시켜 봐요. 전 하나씨를 대한민국 최고의 디바로 만들어줄 자신 있어요.”

성현은 임하나에게 자신감을 주며 말했다.

끼쟁이, 아직 분출하지 못한 임하나만의 끼.

지난 연습 동안 저스트미와 성현에게 꾸준히 들었던 말이었다.

끼를 많이 가지고 있고, 그걸 보여줄 수 있다는 말.

임하나는 이제 익숙해진 그 말에 비로소 조금 표정을 풀고 믿는다.

“저, 정말 끼쟁이 맞는 거죠?”

“네. 장담해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평소와 같이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었다.

무대 체질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서서히 자신의 페이스를 찾는 듯했다.

“파이팅!”

임하나가 큰소리로 외치자 무대에 있단 다른 참가자들 임하나를 힐끗 보는데 성현 또한 그녀를 따라 큰소리로 외쳤다.

“파이팅!”

무대 위에 있던 참가자들을 비롯해 심사위원들까지 쟤네 뭐냐고 웃으면서 주목할만큼.

***

무대 뒤 대기실에 모인 참가자들.

그곳엔 무대를 볼 수 있는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스크린으로 경쟁자들의 무대를 볼 수 있는 참가자들은 대기실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게 된다.

바로 전 순서가 되면 백스테이지에서 대기를 하다가 타이밍에 맞춰 비로소 무대로 올라갔다.

차례는 추첨을 통해 랜덤으로 정해졌는데 성현의 일행 중엔 천소울과 주선아 팀이 가장 빠른 순번이었다.

“이진솔, 김태연 참가자 가수 대기실로 이동해 주세요.”

스탭의 호명에 짤막하게 앓는 소리가 났다.

드디어 본선 무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첫 번째 순서는 여자 둘로 구성된 참가팀이었다.

둘은 결연한 표정으로 진행요원의 안내를 받아 대기실을 나갔다.

함께 무대를 꾸미는 프로 가수들은 각자의 대기실이 있었다.

그리고 이를 지켜보고 있는 참가자들 사이에선 긴장감이 감돌았다.

무대에 오르면 조금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으며, 삐끗하는 순간 그대로 탈락이었다.

잔혹한 서바이벌의 장이었지만 동시에 엄청난 기회의 순간이기도 했다.

아직 대기 순번인 참가자들은 초조한 마음에 솟아나는 땀을 바지에 문지르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렸다.

한편 스튜디오 무대에 이번 라운드를 진행할 MC가 등장해 본격적인 4라운드 시작을 알렸다.

“반갑습니다. 더 넥스트 슈퍼스타 본선 4라운드 진행을 맡게 된 가수 이 현입니다.”

이 현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데뷔하여 현재까지 현역 가수로 활동하고 있었고 심사위원석에 있는 몇몇 그를 아는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얼마 만에 이런 무대에 서는 건지. 제가 다시 오디션장에 서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지금 뒤에 계실 참가자분들이 얼마나 떨리실지 잘 아니까 빠르게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 본선 4라운드가 시작됐다.

MC는 서바이벌에 대한 간략한 소개를 마치고 투표 방식에 대한 설명을 이어갔다.

“심사위원분들 앞에 기계 하나 보이시죠?”

이 현의 말에 심사위원석에 앉아 있던 각 소속사 대표들이 기계를 확인했다.

안단테 유원열이 마이크를 잡고 질문했다.

“이걸로 투표하는 건가요?”

유원열은 이미 이런저런 오디션 프로그램을 많이 해봤기에 척하면 척이었지만, 생소할 수 있는 심사위원들, 그리고 시청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물은 것이었다.

절로 느껴지는 노련함에 MC는 웃으며 설명을 덧붙였다.

“네, 맞습니다. 무대가 끝날 때마다 30초의 투표 시간이 주어질 건데 반드시 그 안에 버튼을 눌러주셔야 투표가 완료됩니다. 총 30명의 심사위원들에게 가장 많은 득표수를 얻는 네 명이 이번 서울 지역 본선의 생존자가 될 겁니다.”

“에이, 30초 너무 짧다.”

장난스러운 유원열 말에 MC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되물었다.

“대표님께서 제 무대 보시고 10초도 안 돼서 탈락 버튼 누르셨던 걸로 기억나는데 30초가 짧군요. 그렇군요.”

이 현은 과거 자신을 평가했던 유원열에게 살짝 뒤끝이 남았기에 말했다.

예상치 못한 그 말에 유원열은 당황하며 웃었다.

“30초 적당한 것 같습니다.”

유원열과 MC의 농담이 오고 가는 사이 분위기는 더욱 풀어졌다.

둘이 시간을 끌고 있는 사이, 스탭은 이내 무대가 준비됐다는 사인을 보내왔다.

“본선 4라운드 첫 번째 무대가 준비됐다고 합니다. 첫 번째 무대는 이진솔, 김태연 참가자가 꾸미며, 가수 청아씨가 함께 무대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MC의 말과 함께 무대 스크린에는 청아와 참가자들의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떠올랐다.

그 라인업에 70명이 넘는 엔터 관계자들 또한 몰랐다는 듯 놀라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잠시 암전이 된 무대에 청아와 첫 번째 참가팀이 오르고 무대가 시작됐다.

화려한 조명과 함께 산뜻하게 웃음 지은 청아가 첫 소절을 내뱉었다.

대기실에 모인 참가자들은 모두 조용해져서 스크린을 통해 무대를 지켜봤다.

확실히 본선 4라운드까지 온 만큼 실력이 나쁘지 않았다.

프로 가수와 함께 하면서도 많이 뒤처지지 않는 실력으로 곧잘 무대를 꾸미는 듯했다.

무엇보다 가수 청아의 퍼포먼스가 압도적이었다.

‘프로는 확실히 다르구나. 무대 장악력부터가 달라.’

하지만 곡이 진행될수록 무대를 보는 시선은 참가자가 아니라 청아에게 쏠렸다.

이는 대기실에 있는 다른 참가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대의 주인공이 되어야 하는 참가자가 정작 청아의 들러리처럼 보였다.

결국 곡의 마무리에서도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간 건 청아였다.

‘청아 본인만 돋보이는 무대야. 이런 건 프로듀서가 잡아주고 갔어야 하는 건데.’

성현이 보기에 첫 번째 팀의 프로듀서는 청아라는 프로 가수와 무대를 준비하면서 중심을 잡지 못하고 끌려간 것 같았다.

물론 청아의 압도적인 퍼포먼스로 무대 퀄리티가 올라간 것은 사실이었지만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청아가 아니라 참가자여야만 했다.

함께 무대를 꾸미는 프로 가수는 어디까지나 도움을 주는 존재이어야지, 무대의 주인공을 차지해서는 안 됐다.

그리고 마침내 무대가 끝나고 투표 결과가 나왔을 때, 소속사 대표들 또한 성현과 마찬가지 생각이란 걸 알 수 있었다.

무대 뒤 스크린에 뜬 투표수는 30표 중에 13표뿐이었다.

생각보다 높지 않은 투표수에 고개를 떨구는 첫 번째 팀.

그들의 표정은 심사위원의 말을 듣고 더욱 굳어졌다.

제일 먼저 마이크를 든 것은 문지운 심사위원.

“청아씨 무대 너무 잘 봤습니다. 옆에 계시는 백댄서분도 노래 잘 들었습니다. 노래를 꽤 하네요.”

문지운, 그는 힙합 레이블 베스트뮤직 수장이었는데 평소에도 거침없는 독설로 유명한 사람이었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다.

참가자는 자신을 백댄서로 취급하는 심사위원의 말에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문지운의 말에 대기실에 있는 참가자들은 마치 자신들이 들은 것처럼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여러 스타들을 거느리고 있는 대형 기획사의 프로듀서, 가수들.

그들은 보는 눈이 높을 수밖에 없었고, 이전보다 더욱 날카로운 심사를 이어갔다.

“난 저 말 들었으면 울었다.”

“아, 어떻게. 나 너무 떨려.”

일반 대중들보다 훨씬 무서운 관객.

그 앞에서 무대를 선보이는 참가자들은 중압감을 이겨내야 하는 과제도 함께 해결해야만 했다.

“어떻게 본선 4라운드까지 올라오셨는지 모르겠네요. 같이 공연하는 가수를 너무 의지하신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 무대였습니다.”

심사위원들의 평이 길어질수록 참가자들의 긴장감은 더욱 심각해졌다.

모두가 한창 막 끝난 무대의 심사평을 심각한 얼굴로 듣고 있는데, 대기실 문이 열리고 진행요원이 들어왔다.

진행요원은 다음 무대를 준비할 두 사람을 호명했다.

“천소울, 주선아 참가자, 나와주세요.”

경연에 앞서 순서를 정할 때, 2번을 뽑은 둘이었다.

성현의 일행 중에서 가장 먼저 무대를 선보이게 된 천소울과 주선아.

둘은 각오하고 있었다는 듯이 덤덤하게 일어났다.

그 순간, 대기실에 있던 모든 참가자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

가장 강력한 경쟁자의 무대가 이제 곧 시작된다.

“소울이 형 이기고 와요!”

“서로 몇 표 얻을지 대결하는 겁니다!”

그들의 실력을 믿는 멤버들은 별다른 걱정 없이 짧게 응원의 말을 건넸다.

“가장 먼저 본선 5라운드 올라갈 거란 말 증명하고 와요.”

가장 나중에 덧붙여진 성현의 말에 천소울은 살짝 웃고는 주선아와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