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화
저스트미의 말에 임하나와 성현은 긴장한 채로 이어질 그의 말을 기다렸다.
어느 지점이 부족했을까?
성현은 저스트미의 말 한 마디 놓치지 않을 거라고 다짐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도입부 부분에서 하나씨가 ‘설레고 두근거려 기분 좋은 네 목소리’ 여기서 첫 음을 벤딩처리 했는데 살짝 올드해 보일 수 있어서. 그리고 2절 훅에서 ‘뻔한 사랑 노래 중 하나’ 여기 이 부분을 가성 처리했는데 내 생각엔 하나씨가 가지고 있는 파워풀한 음색을 더 살려서......”
저스트미는 아직 미완성인 곡의 섬세함을 채워줄 수 있는 조언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의 말이 길어질수록 감탄을 흘리는 임하나와 성현.
세세하기 그지없었다.
저스트미와 딱 한 번 호흡을 맞췄고, 심지어 이번 연습이 처음이었다.
그런데도 저스트미의 피드백은 연습한 노래가 끝나고 바로 이어지고 있었다.
‘무슨 요술 항아리 같아. 프로들은 다 이런 건가?’
임하나는 술술 나오는 피드백에 저도 모르게 생각했다.
그 짧은 사이에 자신의 파트뿐만 아니라 임하나의 파트까지 분석을 끝낸 것이다.
성현과 임하나는 저스트미의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메모를 했다.
그의 말을 통해 자신이 놓치고 있던 디테일한 부분을 배울 수 있었다.
“그래도 임하나씨 실력이 대단하네요. 끼쟁이야, 끼쟁이.”
저스트미의 말에 임하나는 개선사항을 듣기 전보다 시무룩해져서 저스트미가 했던 말을 적은 종이를 내밀었다.
메모장은 저스트미가 해준 충고가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지적을 이렇게 많이 받았는데 과연 끼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임하나의 당돌한 말에 저스트미는 호탕하게 웃었다.
“끼는 많아요. 아직 폭발시키지 못한 끼가 많다는 소리지.”
저스트미는 시무룩해진 임하나에게 유쾌하게 말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임하나는 한가득 받은 충고에 여전히 시무룩한 채.
이를 본 저스트미는 한마디를 더 해주었다.
“음, 사실 지금 내가 해준 충고 정도는 일반인들이 들었을 때 전혀 없는 걸 수도 있어. 하지만 지금 내가 지적한 부분들만 고친다면 임하나씨는 대한민국의 디바 임하나가 될 수 있을 거야. 끼를 폭발시켜버리는 거지.”
“저, 정말요?”
단호하게 선언하듯이 말하는 저스트미의 말에 임하나가 놀라서 물었다.
쉽게 단언하는 저스트미는 나만 믿으라는 듯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우지 않았다.
이것만 고치면 완벽하다는 말은 이번 노래에서 임하나가 이미 충분히 완성되어 있는 가수라는말과 같았으니까.
“그럼. 나 저스트미야. 내 말 못 믿어?”
“믿어요. 저 진짜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미 광신도가 되기라도 하듯 임하나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저스트미는 그 모습에 또 재미있다는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저스트미의 칭찬에 다시 또 기분이 좋아진 임하나는 열심히 하겠단 다짐을 했다.
성현은 임하나를 마치 원래 알던 사람처럼 너무 자연스럽게 다루는 저스트미를 보며 살짝 웃었다.
그런 그답게 사람을 대하는 저스트미의 모습은 편안해 보였다.
프로듀서 겸 가수를 하고 있는 저스트미 다웠다.
수많은 객원보컬과 피처링 가수를 만나온 저력이 그대로 묻어나오는 사람.
곡 작업 외에도 프로듀서로서도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능숙하네요.”
“내가? 진짜 여우는 이성현씨 아닌가?”
성현의 말에 저스트미는 과장될 정도로 놀라며 자신을 가리켰다.
그 말에 성현이 그게 무슨 말이냐는 듯 쳐다보자 저스트미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당신이 내 마음을 뺏었으니까.”
저스트미의 말에 당황한 성현이 입을 못 떼자, 그 모습을 본 저스트미가 다시금 호탕하게 웃었다.
자신을 즐겁게 하는 능력까지 갖춘 후배들과 하는 작업이라.
앞으로 작업이 참 기대되는 저스트미였다.
“농담이에요. 다음 곡 들으시죠.”
저스트미는 둘을 재촉해 다시 연습을 진행하고 그렇게 셋은 한참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연습을 계속했다.
***
“오늘은 이쯤 마무리해야겠네요. 뒤에 스케줄이 있어서.”
마음 같아선 밤을 새우고 연습을 하고 싶었으나 저스트미는 스케줄이 바쁜 만큼 마음대로 시간을 뺄 수 없는 스타였다.
경연에 나설 곡 후보를 최소한으로 뽑고, 편곡 방향 설정이 끝나자 연습도 마무리되었다.
셋은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작업실에서 내려왔다.
“먼저 가볼게요. 우리 팀 파이팅!”
저스트미는 매니저가 몰고 온 차를 타면서도 끝까지 에너지를 잃지 않고 외쳤다.
그 모습에 성현과 임하나는 멀어져 가는 차를 한참이나 바라보고 서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지금 자신들이 저스트미의 작업실에서 연습을 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언제가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진짜 가수, 진짜 프로듀서요.”
바쁘게 떠난 저스트미가 사라진 방향을 바라보며 아련하게 말하는 임하나.
성현은 그런 임하나를 바라보고 말했다.
“네. 제가 그렇게 만들 거예요.”
자신감 넘치는 성현의 말에 감동한 임하나가 성현을 올려다보려 했다.
그 순간 감동적인 분위기를 깬 건 다름 아닌 임하나의 배에서 나는 소리였다.
꼬르륵.
임하나는 배꼽시계가 울리자 당황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휴대폰을 꺼내서 택시를 부르려 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배는 참지 않고, 다시 큰 소리가 울려 퍼졌다.
꼬르륵.
그도 그럴 것이 몇 시간 동안 쉬는 시간도 없이 강행군으로 연습을 소화한 임하나였다.
메로나 하나도 먹지 않은 임하나가 출출해진 것도 당연했다.
그러나 임하나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지 어두운 골목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얼굴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흐흠. 아씨, 이게 왜 안 잡히지….”
당황해서 헛기침까지 하는 임하나의 모습을 본 성현이 택시를 부르려는 임하나를 말렸다.
“저 배고픈데 우리 밥은 먹고 헤어져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차마 반가운 내색을 보이기는 힘든지 조금 망설이다가 물었다.
“그, 그럴까요......?”
***
그렇게 저스트미 작업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저녁을 먹게 된 성현과 임하나.
임하나는 저녁도 못 먹고 연습을 계속한 탓에 배가 많이 고팠는지 빠르게 주문한 음식을 해치웠다.
반면에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며, 저스트미가 해준 말을 적었던 메모장을 보며 복기하는 성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말 한마디가 있었다.
저스트미의 작업실에서 그가 임하나와 처음 합을 맞추었을 때 나온 말.
‘많아요. 아직 폭발시키지 못한 끼가 많다는 소리지.’
임하나에게 자신하며 말하는 저스트미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다.
당시엔 티를 내지 못했지만, 성현은 그 말을 듣고 자존심이 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프로듀서가 자기 가수의 끼를 발견하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돼.’
성현은 임하나를 관리하는 프로듀서였다.
자신이 모르는 임하나의 끼를 저스트미가 간파했다는 사실에 조금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경험의 차이인가….’
“성현씨 배고프다면서 왜 안 먹어요?”
그리고 급하게 밥을 먹던 임하나는 그제야 성현이 먹는 둥 마는 둥 밥을 먹는 걸 보고는 걱정이 되어 물었다.
진지하게 반도 비우지 않은 성현의 밥그릇을 보는 임하나의 모습은 진실로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그렇게 연습을 하고도 밥을 깨작거릴 수 있는 성현을.
자신들이 목이 터져라 노래를 할 동안 성현은 쉴새 없이 건반을 두드려야 했으니까.
“제가 하나씨에 대해 잘 모르는 걸까요.”
밥을 먹다가 튀어나온 성현의 말에 임하나는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입을 뗐다.
“제가 진짜 엄마 말 안 듣는 딸인데 딱 하나 듣는 말이 있거든요? 그게 뭔지 알아요?”
“뭔데요?”
“밥상머리 앞에선 밥만 먹어라.”
임하나 말에 성현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그녀를 쳐다보았다.
자신의 말에도 멀거니 이쪽만 보고 있는 성현에게 임하나는 억지로 숟가락을 쥐여주었다.
“밥 먹을 땐 밥만 먹고, 밥 먹고 생각하세요. 지금 이 순간에는 음식에 집중 하자구요. 우리가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요리사도 이 음식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고민하고 연구를 했겠어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구요? 먹어봐요. 진짜 맛있어. 이건 연구 없이 나올 수 없는 맛이에요.”
임하나는 속사포처럼 말하며 김치찌개 국물을 한 입 떠먹고 맛있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진실의 미간을 본 성현은 임하나를 보며 피식 웃었다.
가만 보면 매 순간에 열심이다.
“빨리 먹어봐요. 진짜 맛있다니까요?”
“많이 먹었어요.”
성현의 말에 임하나가 그의 밥그릇을 확인하는데 밥은 반 이상이 남아 있었다.
임하나는 굳은 표정으로 얼굴을 들더니 성현에게 진지하게 말했다.
“성현씨. 프로듀서가 가수를 챙기는 것처럼 가수도 내 프로듀서를 챙길 줄 알아야 돼요. 그러니까 제 숨겨진 끼를 찾을 생각은 밥 먹고 하세요. 저도 같이 고민해 볼 테니까.”
임하나 말에 성현은 벙찐 표정을 지었다.
티를 안 내면서도 성현이 무슨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이미 알고 있었던 것.
연습실에서 살짝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길래 왜인가 했더니, 저스트미의 말을 임하나 또한 마음에 두고 있던 것 같았다.
‘생각보다 세심한 사람이구나, 임하나씨는.’
성현은 생각지도 못한 임하나의 새로운 점을 새롭게 알게 된 것이 신기했다.
그 순간 성현의 머릿 속에 뭔가가 스치고 지나갔다.
성현은 갑자기 싱긋 웃고는 숟가락을 들고 말했다.
“하나씨, 이번에 저랑 색다른 거 하나 해볼래요?”
“뭔데요?”
일단 이 밥을 다 먹어야 임하나가 자신의 말을 들어줄 것 같았다.
***
드디어 저스트미와 함께하는 무대를 공개하는 본선 4라운드의 날이 밝았다.
본선 4라운드가 진행되는 장소에 다시 모인 참가 팀들은 이른 시간부터 분주했다.
각 참가자들은 정해진 순서에 따라 새벽부터 가수들과 마지막 리허설 진행했다.
“리허설 끝난 참가팀들은 대기실로 돌아가주세요!”
긴 시간 끝에 모든 팀의 리허설이 끝났고 본격적으로 쇼가 진행되는 것만 남은 상황.
합격한 성현의 일행들은 대기실에 모여 공연 시작 전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다.
“그동안 홍대 지역 참가자로 다 함께 미션을 진행했지만, 이번엔 달라요. 이미 경험해 봐서 알겠지만 누군가는 떨어질 거고 누군가는 붙을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지고 이기고를 떠나서 서로가 서로에게 마지막이 될 수 있는 무대라는 걸 생각해서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최고의 무대 보여주기로 해요.”
성현의 말에 멤버들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조은별, 서지현, 릴리, 주영준의 탈락으로 앞으로 계속 함께 올라갈 수 없단 사실을 그들 또한 뼈저리게 깨달은 바가 있었다.
“아까 지나가다 몰래 리허설 봤는데, 죽을힘을 다해서 하더라?”
“누나라고 해서 안 봐줄 거예요.”
임하나는 요하에게 일부러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탈락한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었는지, 심각한 표정이 되었던 요하는 어이없다는 듯이 웃으며 맞받아쳤다.
이 순간에도 같이 웃고 떠들던 일행들이 없다.
둘은 무대 전 긴장감도 없애고, 그들의 빈자리도 잊을 겸 더더욱 열심히 수다를 떨었다.
그때 진행 요원이 대기실로 들어왔다.
“무대로 이동하겠습니다. 참가자 전원 이동해주세요.”
요원의 말에 다들 일어나고 성현은 대기실을 나서기 전, 마지막으로 일행들에게 말했다.
“저희보다 먼저 떨어진 팀원들한테 부끄럽지 않을 최고의 무대 준비해봐요.”
“그래요. 뽑힌 팀이 홍대팀 대표라 생각하고 끝까지 응원합시다. 파이팅!”
서자명의 말을 끝으로 성현의 일행들은 이 자리에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며 결의에 가득 차 본선 4라운드의 무대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