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같은 프로듀서는 없었다-118화 (118/273)

118화

그렇게 셋은 함께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갔다.

셋의 연습을 주도하는 건 당연히 저스트미였다.

임하나는 일단 녹음실로 들어가지 않고 함께 어떤 공연을 꾸밀지 구상하기로 했다.

“생각해둔 곡은 있어요?”

저스트미 물음에 성현은 기다렸다는 듯이 미리 준비해 온 USB를 건넸다.

“곡을 준비해왔어요?”

경악에 찬 저스트미의 물음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

가수 매칭이 된 것이 바로 어제였다.

게다가 10팀의 가수 중에 자신과 팀이 됐을 거라고 예상할 수도 없었을 텐데 벌써 곡이 준비되어 있다니?

그 짧은 시간에 성현이 곡을 준비해왔단 것에 놀라 묻자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네. 아직 미완성이지만요.”

“일단 들어봅시다.”

겸손한 말이었지만 미완성인 곡이라도 성현의 준비성은 놀라웠다.

저스트미는 성현이 준비한 USB를 연결하자 한 곡이 아니라 여러 개의 곡이 주루룩 떴다.

또 한 번 감탄이 터진 저스트미는 연신 스크롤을 내리며 곡 리스트를 살폈다.

“뭘 많이 준비해왔네.”

“네. 뭐가 마음에 드실지 몰라서 일단 준비를 하긴 했는데, 아, 이건 크레이브의 뻔한 노래를 재즈 스타일로 편곡한 곡인데 이것 먼저 들어보실래요?”

성현은 저스트미에게 자신의 곡을 들려줄 생각에 신이 나서 두서없이 빠르게 말을 뱉었다.

임하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성현을 쳐다봤다.

원래 저렇게 정신없는 사람이 아닌데, 평소의 이미지를 생각했을 때 지금 성현이 얼마나 신이 난 건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저스트미 역시 성현의 눈이 전보다 훨씬 반짝이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

“재밌어요?”

저스트미의 물음에 성현은 순간 의아하지만 이내 그 말뜻을 이해하고 웃으며 답했다.

“네. 현역 가수분이랑 작업하는 건 처음이라서요.”

“영광이네. 이러다 나중에 내가 반대로 이성현씨 떡상하면 자랑하게 되는 거 아냐? 근데 그러려면 우선 이성현씨 떡상이 먼저니까 노래부터 들어보죠.”

저스트미 말에 성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곧장 준비한 첫 번째 곡을 틀었다.

저스트미는 작업실 한 쪽 벽면을 꽉 채운 스피커로 들리는 음악에 집중했다.

인트로부터 그의 얼굴이 흥미롭게 변했다.

원곡에 없던 전주, 재즈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자 저스트미는 자신도 모르게 짧게 감탄이 튀어나왔다.

“이야….”

이를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본 임하나는 마치 자신의 곡이 칭찬받은 것마냥 기뻐서 성현을 쳐다보는데 성현의 온 신경은 음악을 듣고 있는 저스트미에게 꽂혀 있었다.

프로 가수가 내 노래에 어떤 식으로 반응할까.

‘대중을 사로잡은 귀를 가진 이에게 평가 받고 싶어.’

어느새 리듬을 타며 성현의 노래를 듣는 저스트미.

중간중간 얼굴이 꽤나 심각하게 변하면서도 리듬을 타는 목의 까딱임은 멈추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지 추임새를 넣기도 했다.

“음, 으흠.”

그냥 흥얼거렸을 뿐인데 감각적인 그의 흥얼거림에 임하나는 당장 죽어도 여한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현 역시 자신의 곡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는 저스트미를 신기루처럼 멍한 얼굴로 쳐다보는 중이었다.

자신이 곡을 준비하면서 생각한 저스트미의 이미지에 너무나도 부합하는 모습이었다.

크레이브 뻔한 노래는 두 남성 보컬이 듀엣으로 불러 인기를 얻었던 곡.

기존 곡이 힙합적이고 그루브한 노래였다면 성현은 거기에 재즈식 피아노 연주를 가미하여 감성 R&B 느낌을 살리면서, 남남 듀엣을 남녀 듀엣으로 작사를 바꿨다.

“오, 여기.”

저스트미 역시 그걸 알아채고 중간중간에 임하나를 가리키며 흥겨워했다.

정확히 임하나가 들어오는 타이밍이었다.

성현의 편곡 의도는 명확했다.

이 곡을 저스트미와 임하나가 불렀을 때 어떻게 하면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을까를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

저스트미가 가지고 있는 힙합적인 리듬감, 그리고 임하나가 가지고 있는 그루브함과 R&B함을 살릴 수 있는 곡을 만들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리고 그 결과 두 사람의 감각적이면서 그루비한 매력을 더 극대화시키는 곡이 탄생했다.

“좋다….”

성현이 준비한 첫 번째 곡이 끝났을 때, 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다가 합, 입을 닫았다.

저스트미는 한동안 심각한 표정으로 아무 말도 없었다.

임하나는 자신이 더 조마조마하여 성현과 저스트미를 힐끗 쳐다보는데, 성현 또한 긴장했는지 표정이 평소와 달리 조금 굳어 있었다.

‘재밌게 들어줬으면 좋겠는데.’

저스트미의 평가를 기다리는 동안 작업실 안은 침묵이 계속됐다.

잠시 생각에 잠긴 듯한 저스트미는 이내 성현을 보고 물었다.

“편곡이랑 피아노 누가 했어요?”

“제가 했습니다.”

성현이 말에 저스트미는 한동안 믿을 수 없다는 듯 말이 없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물어왔다.

“천재야?”

“예?”

저스트미 물음에 성현이 당황해서 되묻는데, 저스트미의 굳은 표정이 그제야 밝아지더니 입이 찢어질 듯 크게 웃었다.

“쩌는데?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어?”

저스트미의 조금 과장된 것처럼 느껴지는 크나큰 반응.

처음 프로 가수에게 이런 찬사를 들어본 성현은 이 상황이 얼떨떨해서 굳어버렸다.

옆에서 듣고 있던 임하나 또한 놀란 듯 눈이 휘둥그레졌다.

‘성현씨가 해냈어!’

매번 듣는 성현의 편곡이었기에 임하나는 저스트미의 반응을 보고 제가 더 뿌듯했다.

들을 때마다 성현의 곡이 좋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프로 가수의 귀에도 그렇게 들린다니.

“와, 재즈를 대중가요에 이렇게 녹여낼 수 있다고? 이건 미친 거지, 그냥. 게다가 이걸 순식간에 했다는 거잖아. 와….”

아직도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해 고개를 흔들며 혼잣말을 하는 저스트미를 보고 임하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저스트미는 성현이 하룻밤 사이에 이 모든 곡을 뚝딱 만들었다고 알았기에 충격이 더 한 것.

이제야 정신을 차린 임하나는 성현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이며 작게 말했다.

“축하해요, 성현씨. 준비 많이 했잖아요.”

“고마워요.”

임하나 말에 성현 또한 아직도 넋이 나가 중얼거렸다.

저스트미가 갑자기 성현의 어깨를 잡으며 부담스럽게 이쪽을 응시했다.

“나도 알려줘.”

“뭐, 뭐를요?”

“이 곡 어떻게 만든 건지. 이거 진짜 내 스타일 노래고 나도 평소에 꿈에서만 해본 음악인데 이걸 당신이 만든 거라고. 진짜지.”

저스트미는 평소 표현이 조금 격하고 음악에 미친 사람이라는 표현이 적당할 정도로 음악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연예계에서 유명했다.

그랬기 때문에 성현 또한 그의 격한 표현이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그것이 진심이란 걸 알기에 기쁘면서도 얼떨떨했다.

“그냥 한 건데요. 저스트미씨랑 임하나씨 생각하면서.”

게임을 통해 이번 라운드에서 저스트미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저스트미를 만난단 생각에 지난 한 달 죽어라 다양한 음악을 듣고, 연구하고, 연습하고, 편곡하고 준비했다.

이름 없는 아무개의 노래로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었으니까.

그 결과 평소 동경하던 그에게 천재 소리까지 들었다.

이 마음 가짐을 설명하기에는 몇 박 며칠도 부족하기에 어떻게 했다는 걸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거 현실인 거 맞겠지. 게임이나 꿈은 아니겠지?’

성현은 스스로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와중에도 저스트미는 놓칠 수 없다는 듯 성현의 어깨를 계속 흔들어 물었다.

“알려달라니까? 어? 알려만 주면 원하는 장비들 다 빌려줄게.”

그러다 이내 저스트미의 뒷말을 들었을 때, 성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기, 이곳을 채운, 이 어마어마한 장비들?

“장비요?”

“다 빌려줄게.”

저스트미는 성현의 양 어깨를 잡은 채로 고개를 힘차게 끄덕이며 진지하게 말했다.

“알려드려야죠, 당연히.”

성현은 싱긋 웃으며 대답했고 이를 본 임하나는 꺅, 소리를 지르려다 입을 막았다.

그동안의 노력이 진정으로 빛을 본 듯했다.

“진짜 너무너무 축하드려요.”

임하나 또한 성현이 얼마나 노력했는지 알았다.

성현에게 지금 저스트미의 칭찬이 어떤 의미인지.

그 모습을 옆에서 보고 들었기에 그녀는 그 누구보다 기뻐했다.

“그럼 다음 곡들도 마저 들어보실래요?”

성현은 긴장감이 가시자 이 기세를 몰아 다른 곡들도 저스트미에게 들려주려 몸을 들썩였다.

하지만 고개를 세차게 젓는 저스트미에게 저지 당하고 말았다.

“아니. 그때까지 못 기다려. 일단 이 곡부터 바로 시작해보자고. 임하나씨, 가사 외웠죠?”

“네! 전 바로 가능합니다.”

“성현씨 반주 좀.”

저스트미 말에 성현은 바로 건반 앞에 앉아 피아노 연주를 시작했다.

흘러나오는 성현의 재즈 피아노에 가볍게 감탄을 하던 저스트미는 이윽고 임하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스트미와 임하나가 즉석에서 호흡을 맞추기 시작했다.

저스트미의 눈짓으로 임하나가 첫 소절에 들어가고, 저스트미에 그에 맞춰 더블링을 해주며 음 하나하나를 풍부하게 탈바꿈 시켰다.

임하나와 저스트미는 그전에 한 번도 호흡을 맞춘 적이 없었음에도 예전부터 알던 이들처럼 호흡을 맞췄다.

“그냥 네가 보고 싶어서 불러보는 건데.”

“그냥 그냥 그냥 네가 그리워서 나는 불러.”

임하나는 처음 프로 가수와 합을 맞춰보는 것이었지만, 남들보다 배는 노력했던 연습이 몸에 배어 있었기에 별다른 긴장 없이 노래를 해나갔다.

성현도 놀랄 정도로 제 기량을 있는 대로 내보이는 임하나의 모습에 성현은 저번 무대가 임하나에게 좋은 약이 되었다는 걸 다시금 실감했다.

거기에 임하나를 믿고 마음껏 애드립을 지를 수 있도록 지켜봐 주는 저스트미와 성현이 있기에 맘 놓고 소리를 낼 수 있었다.

‘아, 좋다.’

연주를 하는 성현은 좋다는 생각밖엔 들지 않았다.

즉흥적으로 멜로디가 바뀌긴 했지만, 지금 이 장소에 있는 셋에게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임하나와 저스트미의 하모니 역시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했다.

무엇보다 지금 이 순간은 비슷한 감동을 주던 대학시절을 떠오르게 했다.

처음으로 클래식이 아니라 재즈를 하며 잼연주를 시도했던 그 순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맛보았던 고양감은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자리했다.

그리고 현재, 그것을 뛰어넘는 합연의 짜릿함.

‘이런 기분 정말 오랜만이네. 당장 여기가 무대면 좋겠다.’

성현 역시 임하나와 저스트미 못지않게 흥이 나서 연주를 이어갔다.

지금 당장 이 순간이 무대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좋은 곡이 순식간에 완성됐다.

셋만 이걸 즐기기에는 너무 아쉬운 순간이었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자신이 만든 곡을 처음 프로 가수가 불러준 경험은 생각보다 더 벅찬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가수와 함께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그동안 자신이 프로듀싱해 온 임하나.

그 사실에 가슴이 벅찼고 두 사람을 보는 것만으로 흐뭇했다.

“하!”

마침내 노래가 끝이 났을 때 성현을 비롯한 세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었다.

몇 분의 짧은 순간이었지만 말 그대로 무아지경으로 노래에 빠져들었다.

단전에서 나오는 순수한 음의 향연.

서로의 리듬에 맞춰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애드립.

임하나와 저스트미의 즉흥성에 맞춰 흘러나오는 성현의 재즈 선율.

그 결과물은 모두를 만족시키기 충분했다.

“재밌어. 짜릿해. 미칠 거 같아.”

저스트미는 오랜만에 느끼는 희열에 주먹을 쥐었다 폈다.

이 맛에 음악을 하고 사람을 만나는 거지.

밝게 상기된 표정의 임하나 또한 그 말에 동의하듯 옆에서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곡이 끝나가는 것이 아쉬울 만큼 멋지고 찰나에 불과한 순간.

성현과 함께하면 이런 순간순간들이 스쳐지나가곤 했다.

“그런데 살짝 아쉬운 부분이 있네.”

저스트미는 신나서 웃던 것이 언제냐는 듯 갑자기 얼굴빛을 진지하게 바꿨다.

1인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고 성현과 임하나를 응시하는 저스트미.

저스트미의 롤러코스터 같은 표정 변화에 임하나는 금세 적응이 되지 않아 정신을 못 차릴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는 듯이 조심스레 성현을 보지만, 성현의 관심은 다른 데 가 있어 임하나의 시선을 눈치챌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 문제가 되는 건 저스트미의 표정이 아니라 그가 방금 한 말.

“어떤 점이 아쉬워요?”

성현은 이어질 그의 말이 너무나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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