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화
저스트미는 성현과 임하나를 반갑게 맞이하며 둘을 건물 안으로 들였다.
건물로 들어가던 임하나는 저스트미에게 들고 있던 봉지를 보여줬다.
그게 뭐냐는 듯 쳐다보자 임하나 조금 부끄럽다는 듯 외쳤다.
“메, 메로나 사 왔어요!”
임하나의 큰소리에 놀란 저스트미.
놀라 있는 그에게 메로나를 건네자 저스트미는 이게 무슨 소리인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문자 내용을 떠올리고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임하나는 쑥스러운 마음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뿌듯하다는 미소를 짓고 있었다.
“농담이었는데. 진짜 사 오셨구나. 고마워요.”
저스트미는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메로나 하나를 까서 입에 물고는 둘을 개인 작업실로 안내했다.
“우와!”
드디어 저스트미의 작업실에 들어간 임하나는 퉁퉁 부은 눈이 번쩍 뜨일 정도로 놀라고 말았다.
작업실 내부는 보통의 작업실과는 달리 여기저기가 번쩍이며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었다.
하지만 인테리어보다 두 사람을 압도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커다란 작업실 반을 차지하고 있는 녹음실이나 그 속을 빽빽하게 채우고 있는 고가의 장비들.
‘꿈의 작업실…!’
성현 역시 바로 장비들을 알아보고 눈을 빛냈다.
물론 주최 측에서 참가자들에게 지원해준 스튜디오도 상당한 수준이긴 했다.
하지만 저스트미의 작업실에는 비할 바가 못 됐다.
직접 고가의 장비들을 접한 성현의 심장이 빨라졌다.
‘어서 빨리 이것들을 다루고 싶다.’
둘은 작업실에 전시하듯 놓인 온갖 장비들의 스캔을 끝내고, 뒤이어 레코딩실에 있는 장비들을 보느라 정신이 팔렸다.
“대박. 이거 Sony C800G 맞아요?”
레코딩실 마이크부터 확인한 임하나는 저도 모르게 새된 소리로 물었다.
마이크를 확인하자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감히 만져볼 엄두도 못 내는 임하나.
“네, 맞아요.”
“지, 진짜…. 내가 이걸로 녹음을 하다니.”
튜브 콘덴서 마이크인 Sony C800G는 천만 원이 훌쩍 넘는 고가의 마이크로 마이클 잭슨을 비롯해 세계적인 유명 가수들이 쓰는 마이크로도 유명했다.
여기저기 널린 장비 모두가 한 유명 하는 고가의 기기들.
성현은 말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장비들을 만지지도 못하고 구경하고 있었다.
저스트미는 장비 구경에 정신이 팔린 둘을 보며 피식 웃었다.
“장비 구경은 천천히 하고 일단 우리 무대 얘기 먼저 시작할까요?”
저스트미 말에 성현과 임하나는 자신들이 지금 왜 여기 온 건지 깨달았다.
정신을 차린 둘은 서로를 보며 멋쩍게 웃었다.
성현은 먼저 녹음실을 벗어나 저스트미에게 말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비싼 장비들을 눈앞에서 본 건 처음이라서요.”
“음악하는 사람이 장비 욕심 있는 건 당연한 건데요 뭘.”
저스트미는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넉살 좋게 웃어보인 그는 둘을 소파로 불러 앉혔다.
둘의 앞에 앉은 저스트미.
진지한 눈빛이 되어서 둘을 응시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겠지만 전 항상 재밌는 음악을 하고 싶은 사람입니다.”
저번 심사장에서 저스트미의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재미는 음악이라는 기준 아래 무대를 심사하는 그의 표정은 진지하기 짝이 없었다.
미리 준비를 충분히 해둔 성현의 팀을 제외한 두 팀은 그런 그의 눈빛 앞에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항상 재밌는 무대를 만들고 싶어 했고, 무대를 통해 가수도, 관객도 즐거워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뭐, 이게 제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해요. 재밌으면 미친 듯이 하지만 반대로 재밌을 것 같지 않은 작업엔 처음부터 손도 대지 않거든요.”
그의 말에는 작업에 임하는 태도와 여유로움이 동시에 묻어나왔다.
저스트미 말을 하며 메로나 하나를 더 까서 먹는다.
“드실래요?”
“괜찮습니다.”
“저도 괜찮아요.”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 문 저스트미는 우물거리며 말을 이었다.
“사실 처음 더 넥스트 슈퍼스타 출연 제의가 왔을 땐 거절할 생각이었어요. 서바이벌 오디션 같은 건 취향이 아니라.”
“왜요? 오디션 프로그램 싫어하세요?”
임하나는 제가 더 놀라서 물었다.
“네. 오디션에선 즐기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이기기 위한 무대를 하잖아요.”
저스트미의 말에 성현은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성현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항상 스스로 즐거운 무대를 만들고자 했다.
그럼에도 그 무대에 선 가수들의 긴장감은 어쩔 수 없었다.
서바이벌 오디션의 특성상 재미있는 무대를 만들면서도 이겨야 다음 기회가 있다.
어쩌면 성현도 그런 압박감에 이길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왔을지도 몰랐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로 너튜브에서 더 넥스트 슈퍼스타 편집본을 보게 됐어요. 그때 사실 좀 충격이었어요.”
다시 생각해도 신기하다는 듯 고개를 절레 저으며 말한 저스트미의 눈이 반짝였다.
“진짜 재밌는 사람도 많고 재밌는 무대도 많고 재밌는 음악도 많고. 보고 있는데 나도 저기 서고 싶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니까요?”
저스트미는 조금 흥분하며 성현과 임하나를 번갈아 봤다.
그 눈에 성현은 위로를 받았다.
이기기 위한 무대였음에도 자신의 진심을 알아준 사람이 있었을 거라고.
“이성현씨, 임하나씨. 두 분 무대를 보고 내가 맞게 잘 선택했단 걸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도 함께 재밌는 무대 만들어봐요.”
저스트미는 성현과 임하나에게 파이팅 넘치게 말하며 주먹을 쥐어 보였다.
성현과 임하나는 그의 기세에 번갈아 가며 그와 주먹 인사를 했다.
성현은 즐거워지고 있었다.
그와 함께라면 경쟁에 상관없이 정말 자유롭게 즐기기 위한 무대를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아서.
“그럼 파이팅해서 본격적으로 연습 시작합시다.”
박수를 치며 일어나려는 저스트미를 임하나가 다급하게 불렀다.
“저, 질문이 하나 있습니다.”
임하나 물음에 저스트미 다시 자리에 앉고 그게 뭐냐는 듯 쳐다봤다.
“왜 저희를 뽑았던 거예요?”
“심사평은 저번에 말해주지 않았나? 방금도 재미있는 무대였다고 했고.”
임하나의 물음에 저스트미는 선뜻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임하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초조해져서 말했다.
“그렇긴 한데 그런 전반적인 심사평 말고 현역 가수의 시점에서 어떤 점이 좋았는지 구체적으로 듣고 싶어서요.”
“그게 그렇게 궁금한 일인가.”
이번엔 성현이 나섰다.
성현도 저스트미의 보다 자세한 의견이 필요했으니까.
“네. 프로 가수한테 심사를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서요. 프로가 되려면 어떤 점이 부족하고 어떤 점을 더 보완시켜야 하는 건지 알고 싶습니다.”
성현의 설명에 저스트미 그제야 납득이 간다는 듯 고개를 여러 번 끄덕이더니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음, 음. 열심히 생각을 정리한 저스트미는 손가락을 하나 들어 올리며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가장 첫 번째로 편곡.”
저스트미는 곧이어 성현을 보며 말했다.
“댄스곡을 그루브한 리듬 앤 블루스로 편곡한 것도 신선했지만 개사를 한 건 완전 충격. 지금까지 이 곡을 편곡하거나 커버곡을 올린 사람들은 많았는데 그 누구도 여자의 시점에서 곡을 새롭게 재구성한 사람은 없었거든. 그런데 그게 또 기본 코드랑 멜로디는 가지고 가서 뭐랄까, 그래 느낌이 내 거인 듯 내 거 아닌 내 거 같은 너랄까. 아마 이거 정식 음원 발매했으면 내 원곡 소환되면서 차트인 했을지도 몰라요.”
저스트미는 진심으로 성현의 편곡 실력에 감탄을 흘리고, 이번엔 임하나를 쳐다봤다.
“두 번째는 임하나씨.”
“저, 저요? 저 왜요?”
저스트미가 갑자기 임하나를 부르자 놀란 그녀가 되물으며 자신을 가리켰다.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 저스트미.
“임하나씨가 이 팀을 선택한 두 번째 이유라고.”
뭘 묻냐는 듯 태연하게 말하는 저스트미의 말에 임하나는 그 말에 기뻐서 소리치고 싶은 걸 겨우 참고 궁금한 걸 물었다.
“어떤 점이요?”
“진짜 즐기면서 무대를 하더라고. 사실 경연 프로그램에서 오는 압박감 때문에 실수하지 않는 무대를 하는 사람은 많아도 임하나씨처럼 그렇게 무대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은 몇 안 되거든. 브릿지 부분에서 플랫한 거 그거 애드립이었죠?”
저스트미의 지적에 임하나는 제 발 저린 것처럼 놀라고 말았다.
한 번 듣고서 그걸 다 기억하고 있다니.
“그래, 그렇다니까. 진짜 무대를 즐길 때 그런 여유랑 애드립이 나올 수 있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저스트미의 말에 임하나는 프로 가수에게 처음 듣는 칭찬이기에 감동에 젖어 들었다.
하지만 저스트미의 말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사실 본선 3라운드 신촌이랑 했던 무대도 봤어요. 완전 디바던데? 장담컨대 임하나씨는 한국의 비욘세로 커야 돼요. 보컬이랑 춤 벨런스가 이렇게 좋은 가수는 현역에서도 몇 없어요. 맞죠 프로듀서님?”
저스트미는 성현을 돌아봤다.
내 말이 맞지 않냐는 듯이 그의 동의를 구하며 묻는 저스트미에게 성현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한국의 비욘세가 아니라 한국의 디바 임하나로 성장하면 더 좋겠지만요.”
그리고 힘주어서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당돌한 성현의 말에 기가 차서 헛웃음이 나온 저스트미.
거기에 놀라서 입이 떡 벌어진 임하나는 어쩔 줄 몰랐다.
비욘세에 자신을 비견하는 것만으로도 몸둘 바를 모르겠는데, 여기에 성현은 한 술을 더 뜨고 앉았다.
“서, 성현씨?!”
“왜요. 비욘세 뛰어넘을 수 있어요. 하나씨라면.”
‘내가 그렇게 만들 테니까.’
성현은 프로 가수인 저스트미에게 칭찬을 받은 임하나가 자랑스러워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의 계속되는 칭찬에 임하나는 더욱 의욕을 보였다.
“한국의 디바 임하나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이 순간에도 기죽지 않고 제 소신을 밝히는 것이 임하나다웠다.
임하나 말에 저스트미는 후배 가수가 귀엽다는 듯 쳐다보았다.
“그럼 이번 무대부터 잘해야 되겠네.”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최선의 최선을 다해야 할 거예요. 제가 많이 괴롭힐 예정이거든요.”
180도 돌변해서 살벌하게 웃으며 말하는 저스트미.
그 표정을 정면으로 본 임하나는 순간 흠칫했다.
장난스러운 모습, 진지한 모습 말고 정말 한 작품의 제작자 같은 그의 표정에 압도된 탓이었다.
“이번 무대, 단순히 서바이벌 무대가 아니라 여기 참가한 가수들 자존심이 걸린 무대이기도 해요. 알다시피 10팀 가수 전부 네임드 있는 사람들이고 가지고 있는 프라이드가 엄청나거든. 근데 지면 어떻게 될까?”
방금까지 무대를 즐기자고 했던 저스트미의 생각지도 못한 살벌한 말에 임하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결코 호락호락한 무대가 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슬그머니 들었다.
“걱정하지 마. 그건 두 사람도 영원히 모를 거야. 왜냐? 지면 두 사람 모두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예정이거든.”
저스트미 말에 임하나 더욱 얼굴 사색이 되고 저스트미는 그런 임하나를 보고 피식 웃었다.
자신의 말이 먹혀든 것 같은 임하나의 표정에 조금 더 길게 장난을 쳐봤는데 이러다가는 후배님이 제대로 녹음도 하기 전에 도망칠 것 같았다.
그럴 순 없지. 간만에 찾은 원석인데.
“농담입니다. 지면 제 자존심만 바닥에 떨어지는 거지 뭐 별거 있겠어요? 하하.”
저스트미의 농담 반 진담 반이 섞인 말에 성현은 대수롭지 않게 툭 내뱉었다.
“그럴 일 없게 만들겠습니다. 이번 무대 저희가 꼭 이길 거니까요.”
어느 때 보다 자신감을 보이며 말하는 성현의 모습에 임하나는 다른 의미로 놀랐다.
프로 가수 앞인데도 전혀 기죽지 않는 당당함.
성현의 기백은 떨어지는 걸 걱정하느냐 마냐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성현씨, 대체….’
성현은 자신이 있었다.
이번 무대를 위해 한 달 동안 작업실에 박혀서 곡을 준비해왔다.
“푸하하!”
성현의 자신감을 본 저스트미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래도 자신이 엄청난 놈을 주워온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
“마음에 드네요. 그래요, 우리 진짜 제대로 사고 한번 쳐 봅시다.”
그렇게 셋은 드디어 본격적인 연습에 돌입했다.